어제 저녁 버스는 7시40분에 떠났다. 스피커 켜고 통화하는 베트남 남자가 있다. 부인과 통화하는지 여자 목소리가 크게 들리고 통화가 꽤 길게 이어졌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 민감한 편이라 저런 행위가 너무 싫다. 옆자리 서양인 남자도 이어폰이 없는지 소리를 켜고 뭔가를 듣고있다. 보통 서양인들은 저러지 않는데 베트남화 되었나? 악을 쓰며 우는 아이도 있다. 아이고.. 야간이동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인데 잠을 잘 수나 있을까?
2시간 쯤 지나서 주유소에 정차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화장실을 다녀와야 한다. 특히 나는 새벽녘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라서.. 무얼 좀 먹으면 좋겠건만 음식을 팔지 않는다. 휴게소다운 휴게소에 서면 좀 좋냐?
발 쪽 공간이 좁다. 발목을 돌릴 공간이 부족하다. 다른 버스는 이렇지 않았는데 디자인이 규격화되지 않은 모양이다. 에어컨이 세다. 커튼이 없는 점도 불편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대체적으로 잘 잤다. 나는 흔들리는 버스 체질인가보다.
7시간 지난 새벽 2시40분에 정차한다. 화장실을 또 다녀와야지. 변기가 옛날에 보던 공중변기다. 좁게 붙어서면 엄청 많은 인원이 동시에 일을 볼 수 있다.
다리 긴 서양 아가씨가 높은 2층 자리를 발 한번 디디고 바로 올라간다. 나는 두세번 디디는데 다음 번에는 한번만 디뎌봐야겠다.
6시 좀 넘어서 호이안에 도착. 호이안 손님 내려주고 다낭에 가는 걸로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다 내린다. 뭐지? 내 표는 다낭행인데.. 내려서 물어보니 말이 안통해 알 수 없다. 미니밴 기사가 호텔로 데려다 주나 해서 물어보니 다낭은 얼마라고 말한다. 다낭행 표를 샀는데 호이안에 내리면 다낭까지 교통수단을 제공해야 하지 않나? 한카페 별로네. 버스회사 이름이 카페가 뭐여.
누군가가 한카페 사무실로 가란다. 가서 물어보니 7시15분을 쓴다. 그때 버스가 있다는 의미인 듯하다. 아침 먹을 곳이 없나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데 아까 미니밴 기사가 다낭 30만동이라 한다. 그런데 내가 뭣에 씌였는지 3만동으로 착각한다. 3만동이면 괜찮다고 생각해 미니밴에 올라탄다. 30만동이라면 당연히 안타지. 거리를 보니 20킬로가 넘는다. 혹시 내릴 때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닐까? 기사가 내가 언제 3만이라고 했나 50만동이다 이런 식으로.. 그러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3만이 아니고 30만이다. 아이고 이것아.. 공학인이 숫자를 틀리다니.. 11시간 버스비가 24만동인데 멀지 않은 곳이 30만동이다. 그냥 기다렸다가 버스타고 갈걸.
호텔로 가야 짐만 내려놓고 나올테니 그냥 배낭메고 구경다니자. 목적지를 다낭 성당으로 수정했다.
내려서 식당에 들어가 스페셜 비프 쌀국수를 주문했다. 그런데 별로 스페셜한 점을 모르겠다. 가격만 스페셜로 2배 가까이 비싸다.
성당 대문은 잠겨있다. 항상 오픈해야하지 않나? 근처 한시장이라는 곳을 간다. 한이라는 단어가 여기도 쓰였네. 시장 전면부는 꽃가게로 가득하다. 베트남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나?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가지를 파는 재래시장이다. 어떤 이는 여행가면 꼭 시장을 가본다는데 나는 시장구경이 별로다. 그냥 슬쩍 훑어보고 나온다.
강가로 나온다. 여기 강도 한강이다. 그래서 경기도 다낭시라고 부르나? 농담. 멀리 롱다리가 보인다. 저 다리도 명소라는데 보기에 그저 그렇다. 그러다 보니 다낭시내 관광지는 대충 다 봤네. 이제 먼 곳만 남았네.
길 맞은 편에 하이랜드 커피점에 가려고 하는데 4차선 길을 건너야 한다. 오토바이와 차들이 무섭게 질주한다. 여기서는 길건너는 것이 일이다. 신호등이 없으니 재주껏 건너야 하는데 여전히 어렵다. 차량이 약간 뜸해진 틈을 타서 재빨리 건넌다. 아까 오다보니 초등학교로 보이는 학교에 아이를 오토바이로 데려다주는지 학교 앞에 오토바이가 넘쳤다. 오토바이로 흥한 나라는 오토바이로 망할 것이라는 내나름으로의 지론을 갖고 있다. 차가 비싸서 차대신 싸고 편한 오토바이를 너도나도 사면 대중교통 수요가 줄어드니 대중교통이 없어지던지 줄어들고 그러면 오토바이가 더 필요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오토바이가 많아지면 길도 복잡해지고 소음도 심하고 부작용이 커질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가 줄어드는 쪽으로 갈 수 없다. 비가역 현상.
커피점에서 12온스 커피를 마신다. 베트남 커피 특징을 좀 알 것 같다. 진하고 달다. 믹스커피 여러개 넣고 물 조금 넣어 만든 커피! 이것도 괜찮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아메리카노가 밍밍하게 느껴질 것 같다. 카페 내에 콘센트가 있어서 충전이나 해야겠다. 어차피 할일도 별로 없으니 에어컨 바람이나 쐬며 여기 와이파이로 인터넷서핑이나 하자.
새벽에 버스에서 후에역에서 닌빈역까지 야간열차표를 예매했다. 4인실 아랫층 침대로 구매하니 수수료 포함 89만동이다. 버스라면 30만동이면 될텐데 기차와 차이가 심하다. 베트남 야간열차도 타봐야지.
다낭을 걷는다. 상권이 죽어있다시피 하다. 한때 다낭을 먹여살리던 한국관광객들이 별로 없어서인가? 호텔에 찾아들어간다. 12시 이후에 체크인하라고 배낭만 맡아준다. 린응사까지 오토바이 타면 얼마 내야하냐고 물으니 그랩 바이크로 체크한다. 그렇지 그랩으로 확인하면 되겠군. 한국에서 그랩을 세팅하다 카드등록에서 계속 실패했다. 베트남에 와서 해야지 생각했는데 유심이 달라지니 안되었다. 4만6천동 나온단다. 8킬로이니 대충 적정가격을 알겠다.
다낭의 미케해변으로 간다. 미케라면 응우옌 어쩌구하는 베트남 이름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미켈란젤로나 그리스 미코노스가 연상된다. 시설들로 인해 비치로 가는 길이 막혀있다. 다른 곳으로 들어가야 할 듯.
지도에 버스정거장이 표시되어 있어서 확인하고 있는 차에 오토바이가 멈춘다. 린응사를 내가 발음해봤자 잘 못알아들을 수 있으니 린응사를 대표하는 큰 불상 사진을 보여줬다. 바로 린응사 한다. 얼마냐고 물으니 5만동이란다. 그랩이 4만6천동이라니 바가지는 아니다. 4만동을 부르니 언덕을 올라야 한다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래도 4만동을 외치니 마지못해 응한다. 김영철의 사딸라라고 외치는 것이 갑자기 생각난다.
요즘엔 자주 오토바이 택시를 탄다. 타고가면서 5천동을 팁으로 줄 생각을 했다. 그러면 4만6천에 비슷해진다. 그런데 기사가 린응사 입구에 내려준다. 남들은 올라가는데 여기서 내리라고? 언덕 어쩌고 한 건 5만동 줄 때 가는 건가? 그냥 팁없이 4만동만 준다.
비탈길을 걸어올라간다. 절 입구와 큰 불상 윗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린응사는 한자로 영응사이다. 신령의 영이고 대응의 응이다. 죽 둘러보니 꽤 괜찮은 절이라고 여겨진다. 입장료를 많이 받아도 좋겠다. 무료라 더 좋지만.. 다낭 미케비치가 멀리 보인다.
슬슬 걸어내려온다. 누가 접근해도 좋고 아니어도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2킬로 쯤 내려왔을 때 누군가 빵빵거린다. 됐다고 해도 오라고 한다. 탔다. 그냥을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일반인은 착한 사람이 많다. 해변가까지 태워주었다. 미케비치를 걸어 호텔로 돌아온다. 대충 다낭에서 봐야하는 건 다 봤다.
땀에 절은 옷을 세탁하고 시원하게 샤워한다.
오늘 오후 4시경에 호이안 관광에 나선다. 생각같아서는 긴 시간 관광하고 싶지만 여러가지를 고려해보면 짧게밖에 시간이 안된다. 모레 아침에 후에로 갈 생각이어서 오늘 내일밖에 시간이 없는데 바나힐 관광에 하루가 든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다낭을 관광하고 오후에 호이안에 가는 것이다. 바나힐에 개인적으로 빨리 다녀온다면 반나절도 가능하겠지만 대중교통이 없으니 내가 원하지 않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혼자서 택시를 전세내고 싶지는 않다. 꼭 그래야하는 게 아니라면.. 그래서 그룹투어로 신청해서 시간이 정해져있다. 바나힐은 유명한 관광지인데 대중교통으로 다녀올 수 없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아까 지적한 오토바이와 관련이 없지 않을 듯하다.
모레 아침 후에로 가는 버스편을 호텔에 요청했으나 호텔에서 표를 예매해주지 않고 예약하는 사이트를 알려준다. 그럴거면 내가 기차표 샀던 사이트에서 사면 되겠다. 인터넷으로 예매를 했는데 24만동 차비에 서비스피가 2만5천이고 처리비가 15000동이 붙어 총 28만동을 지불했다. 뭐가 이리저리 붙냐?
가이드가 3시45분 왔다. 3시50분 ㅡ4시 사이에 온다더니 일찍 오기도 하네. 미니밴에 총 10명이 탔다. 한국인 2팀 인도인 1팀 서양 동양 커플 1팀이다.
대리석 조각공장으로 데려간다. 패키지구나. 짧은 시간에 이런 것도 하나? 엄청 많은 대리석 조각들이 있다. 옆의 산이 대리석으로 되어있다. 지금은 채굴이 허용되지 않는단다.
마블 마운틴 헬케이브로 간다. 천장이 꽤 높고 규모가 큰 동굴이다. 여러 조형물들이 있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구경거리가 많다.
다음으로 오행산으로 간다. 주변에 5개의 봉우리가 있고 가는 곳이 가장 높다. 엘리베이터 타는 비용 15000동. 올라가면 산 위에 절도 있고 동굴도 있다.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3곳만 보고 내려가라고 한다. 여기도 절이름이 린응사이다. 잘 가꾼 절이라는 느낌이 든다.
후딱 보고 계단을 내려간다. 내가 제일 먼저 내려온 듯. 한 인도여자가 내려오는 것이 부담되는지 처음부터 안올라간다고 했다. 그 여자 근처 벤치에 앉아 시간보낸다. 한참 지나니 가이드가 나를 찾아왔다. 다들 밴에 타고있단다. 단체관광할 때 꼭 늦는 사람이 있는데 오늘 내가 본의 아니게 그런 사람이 됐다.
이동 중에 비가 엄청 쏟아진다. 우산을 가져오라는 문자를 받았지만 깜빡했다. 가이드가 우산이나 우비를 사라고 가게에 내려준다.
호이안 이터리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8가지 음식이 나온다. 1시간 식사시간을 줬지만 30분만에 끝냈으니 호이안 올드시티 관광에 나선다. 빛의 도시라고 부르고 싶다. 여러 조명들이 강과 다리를 수놓는다. 강에는 배들이 여러 등을 매단채 다니고 있다. 도시는 중국의 고대도시를 많이 닮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걷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졌다. 벤치에 앉아 쉬면서 경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