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러포트 사령관과의 네티즌 토론회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여성이 있었다.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미망인 김 모(30)씨. 기자에게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김씨는 네티즌 패널에 선정되지 않았지만 사정을 전해 들은 미군측의 배려로 토론회 현장 참석이 허가됐다. 서해교전 발생 후 김씨의 삶은 어떻게 바꿨는지 그 간의 얘기를 들어봤다.
김씨가 러포트 사령관에게 십자수 액자를 선물하고 있다. [사진 = 공동취재팀]
18일 용산 미군기지에서 처음 만난 김씨는 정성껏 포장된 선물을 조심스럽게 들고 있었다. 그녀는 “러포트 사령관에게 줄 선물”이라며 “지난 2주동안 밤잠을 설치며 만든 십자수 액자”라고 설명했다. 이날 러포트 사령관은 선물을 받고 대단히 감명을 받았고 그를 꼭 안아주기도 했다.
김씨와 러포트 사령관과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러포트 사령관은 2번째 만나는 겁니다. 서해교전 추모식 때 한 번 만났지만 당시엔 경황이 없었어요. 오늘 이 자리에 꼭 참석하고 싶었던 이유는 지난 서해교전 1주년 때 받았던 유일한 편지 때문이었어요. 러포트 사령관이 절 위로하기 위해 손수 쓴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네티즌 토론회가 있다는 것을 보고 지원하게 됐습니다.”
그는 오히려 우리나라에 섭섭한 것이 많다. 서해교전 1주년 때 편지를 통해 위로해 준 사람은 한국의 장군들이 아니었다. 주한미군 러포트 사령관이 유일했다. 인사치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날 받은 감동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물론 국방부에서도 서해교전 1주년 행사를 개최하는 등 최선을 다 하기는 했다. 하지만 사건처리과정 처럼 형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남편의 시신을 찾기도 전에 보상문제부터 처리하려고 했던 국방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처음엔 떠들썩하게 돕겠다고 나섰던 단체들도 하나둘 떠났어요. 그런데 주한미군이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어요. 그래도 조국을 지키다 전사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빨리 잊는 것은 아닌지 너무 안타깝습니다.”
김씨는 서해교전 사건 발생 41일만에 발견된 남편 시신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그래서 남편의 시신이 늦게 발견돼 장례식은 따로 8월에 치뤘다.
“현장에 가서 파손된 배를 직접 봤는데 처참했습니다. 도무지 우발적 상황이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았고요. 하지만 발견된 시신은 거의 훼손되지 않았고 유류품들도 그대로 있어 감사했습니다. 대부분의 유품들은 태워버렸는데 타다 만 핸드폰 같은 일부 유품은 보관 중입니다.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요.”
장례를 치르고 언니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떠났다. 사건은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혼인신고만 하고 시작한지 8개월째 되던 때였다. 슬픔에 빠져 캐나다에서 두문불출하던 김씨는 몇 몇 네티즌들에 의해 인터넷에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회’가 생긴 것을 알고 귀국했다. 남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전사자 가족들과 함께 추모 활동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카페 회원은 현재 2300명 정도 됩니다. 지난 1주년 때는 따로 광화문에서 추모식을 열기도 했습니다. 지난 11월에는 미 보스턴에서 열린 ‘센트럴 매사추세츠주 한국전 참전기념탑’ 제막식 현장에도 참석했어요. 그분들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는데 제 처지를 듣고 오히려 그분들이 고마워 하시더라구요. 올해 2주기 행사에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고민중인데 쉽지 않네요.”
김씨가 나눠준 서해교전 추모위원회에서 제작한 추모 버튼. ⓒ미디어다음
김씨는 이제 과거에서 벗어나 힘차게 새출발하기를 바라고 있다. 최근 외국어대 사이버대학 언론홍보학과에 입학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녀는 보조 간호사이었지만 당시 사건을 겪고 사회 생활하기 부담스러워 현재까지 친정집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다.
“당시 언론들은 서해교전을 왜곡하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다뤘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죠.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왜 목숨을 바치면서 나라를 지켜야 하는지, 분단과 통일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기자는 김씨에는 만약 아들이 생긴다면 다시 군대에 보내겠냐고 물었다.
“물론 현재로선 다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처음엔 남편의 죽음이 마음 아파 결코 내 자식 군에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만약 아들이 생긴다면 사병도 아닌 장교로 보내겠어요. 나라를 지키는 것은 결코 시간을 낭비하거나 헛된 것이 아니잖아요.”
인터뷰 내내 김씨는 차에서 울리는 음악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면 곧잘 드라이브를 하며 음악을 크게 따라 부른다고 한다. 마침 CD에서는 머라이어캐리의 ‘히어로’라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씨는 “남편에게 이 음악을 곧잘 불러주곤 했다”며 “남편은 저의 영웅”이라며 음악을 조용히 따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