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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이 아닌 럭비공을 선택하다
보통의 선수들이 그러하듯 장성민 또한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고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한 평범한 중학생이 부천북중 럭비부 감독의 눈에 띄어 럭비공을 처음 만지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운동선수가 된다면 축구선수를 하고 싶었고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접한 럭비는 장성민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렇게 럭비부 훈련에 합류하게 되었다. 당시 반에서 키가 가장 작았던 그였지만 중학교 2학년 말부터 갑자기 크기 시작했고 점점 우월한 신체조건을 갖춰 나갔다. 하지만 눈에 띄는 신체조건에 비해 기량은 보통의 선수였다. 소질이 없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럭비는 취미생활이었기 때문에 즐겁게 운동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후보로 지낸 시간이 더 많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평범한 무명의 선수를 자극시킨 사건이 있었다. 바로 럭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다.
“취미로 시작한 운동이었기 때문에 목표의식이 없었어요.
그런데 럭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순간, 한 번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럭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목표란 것이 생겼어요”
무명에서 MVP로 올라서다
목표의식이 생긴 장성민은 확실히 달라졌다. 취미였던 럭비는 인생의 전부가 됐고 그는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훈련했다. 뛰어난 신체조건은 강력한 무기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활용한 운동능력은 또래 선수들 사이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이었다. 3개의 전국대회에 출전해 모교인 부천북고를 두 번이나 정상에 올려놓았다. 럭비는 15명이 한 팀을 이루어 진행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어느 한 명 덕분에 우승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운동이든 최고의 활약을 펼쳐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선수가 있기 마련이다. 우승을 했던 두 번의 대회에서 주인공은 단연 장성민이었다. 종료 직전 역전 트라이의 주인공이었고, 대회 MVP까지 받으면서 고교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이러한 활약을 통해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영광까지 얻었다.
“럭비를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에요.
두 번의 우승에 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럭비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 목표는 고려대 럭비부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 꿈에 가까워 졌다고 느꼈어요”
안암골로 화려한 입성
중학교 1학년 때, 럭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잠실운동장을 찾았다. 중·고등학교 럭비선수들이라면 꼭 봐야 하는 정기 고·연전 경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붉은 물결에 압도 돼 자기도 모르게 우리학교를 응원하게 되었다. 그날 경기는 우리학교가 종료 직전 실책으로 연세대에게 패하긴 했지만,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그때부터 우리학교에 진학하겠다는 꿈을 품었다. 고교시절 마지막 대회에서 MVP까지 받은 터라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다. 우리학교 입학을 결심했을 쯤, 생각지도 못하게 연세대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왔고, 결국 부모님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장성민의 아버지는 고심 끝에 우리학교 입학을 결정했다.
“처음에 두 학교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고려대를 원했지만 부모님의 의견도 중요했기 때문이죠.
아버지께서 고려대로 결정한 이유는 김성남 감독님의 인품에 반해서였다고 하셨어요.
이런 감독님 밑에서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겠다 생각하셨나 봐요”
대학 최고의 풀백으로
많은 운동량과 체계적인 훈련 등 모든 것이 고등학교 때와 달랐다. 힘들었지만 좋은 환경아래, 기량이 뛰어난 형들과 함께 운동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착실하게 준비한 동계훈련을 마치고 춘계대회에서 대학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장성민은 자신이 있었다. “겨우내 진행한 일본전지훈련에서 일본대학과의 연습경기를 많이 가졌어요. 연습경기다 보니 부담감도 없었고 자신 있는 플레이를 했는데 기대 이상이었어요. 대학무대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게 되었죠” 그러나 실전무대는 생각과는 달랐다. 주전으로 나선 경희대와의 첫 경기에서 긴장한 탓에 몸은 굳어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실책까지 범했다. 대학무대 경험이 많은 선배들에 비해 모든 것이 새롭던 장성민은 스스로 위축됐고 자신감도 잃었다. 결국 경기는 패했고, 자신의 첫 번째 비정기 고·연전인 다음 경기에 대한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경기에 나서자 우려와는 달리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멋지게 트라이까지 성공시켰고, 이로 인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경기에서는 졌지만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제 생에 첫 고·연전을 패배해서 너무 아쉬웠지만 많은 것을 느꼈던 경기였어요.
형들과 부딪히면서 운동하고 생활하다 보니까 이제는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처음과 달리 이제 학년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경기장에선 모두 다 똑같은 한 팀의 일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신화가 되고 싶다
럭비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 또한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목표다. 장성민은 “시대를 잘 타고나서 제 기량이 정점에 오를 때 국가대표에 도전해볼 수 있어 더욱 기대가 됩니다”라고 했다. 그의 또 다른 목표는 국내선수 최초로 일본이 아닌 다른 무대에 진출하는 것이다. 잉글랜드, 호주와 같이 럭비가 인기종목이고, 리그 또한 활성화 되어 있는 나라에서 뛰어보고 싶다고 했다. 힘든 목표지만 더욱 더 열심히 운동해서 도전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장성민에게 중요한 목표가 한 가지 더 있다. 자신을 통해 또 한 번의 우리학교 럭비부 전성기를 만드는 것이다.
“5년 전 고려대 럭비부는 그야말로 대학 최강이었어요.
지는 경기가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도 고려대 럭비부를 보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다시 대학 최고의 럭비부로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신입생의 패기로 당찬 포부를 밝히지만 그의 말투에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말처럼 언젠가 그 꿈에 다가서 있는 장성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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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생년월일 : 1992년 8월 22일
포지션 : Full back
신장(cm)/ 체중(kg) : 186 / 83
출신학교 : 오정초 - 부천북중 - 부천북고 - 고려대(체교 11)
김성남 감독이 말하는 장성민은?
이미 탈 고교급 기량으로 정평이 난 선수였다.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과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고 스피드에 강점이 있는 선수다. 캐치와 돌파 역시 수준급이고 경험을 조금 더 쌓는 다면 지금 당장 국가대표로 뽑혀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아직 어린 나이라 경기장 분위기에 압도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 앞으로 우리학교 럭비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역이기 때문에 기대해도 좋을 선수다.
첫댓글 좋은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