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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아침 자율학습시간부터 분위기가 숙연했던 한하고등학교 교실은
시험지가 돌려지자 한숨과 신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한상고와는 다른 분위기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말투.
"고개 처박고 시험지만 봐"
남녀공학이었던 한상고등학교보다
강압적인 어투의 한하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때릴 때 쓰는 몽둥이 굵기도
한상고등학교 선생님들과 확연한 차이를 나타냈다.
한상고의 체벌도구가 회초리 정도였다면,
한하고의 체벌도구는 각목에 비할 정도이다.
"컨닝하다가 걸리면 배째버린다."
아이들이 혹여라도 악마의 유혹(?)에 빠질까 싶어,
미리 단단히 으름장을 놓는건 시험감독 선생님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호영도 전국 모의고사 그 타이틀도 거창한 시험지를 앞에 두고
빠르게 풀어나가고 있었다.
표정없이 문제에만 집중하여 답을 찾아낸다.
주어진 시간안에 만만찮은 개수의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다 보면 으레 찍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지만,
호영은 한번도 시간에 쫓겨 찍어본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한상고등학교에서 자랑하는 천재가 아니였던가.
예전같으면 시험보고있는 계상을 의식적으로 살폈을 호영이지만...
..... 계상은 여기에 없다.
대신 여유있는 시간에 문제를 한번씩 더 짚어본다.
머릿속에 들어있던 것들을
한꺼번에 답안지 위에 쏟아내버린 것 같아
허탈감보단 피로가 먼저 몰려왔다.
이번에는 꽤 난이도가 있다는 문제들이 대거 출제되었고,
차마 예상문제를 제대로 집어주지 못했던 선생님들은 난색을 표한다.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컨닝소동은 없었지만,
대게 논술형식이라 아마 컨닝을 했더라도
제대로 맞출 수 있는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루 꼬박 모의고사를 보고,
마치는 종이 치자마자 환호성 혹은 안타까움의 신음이 흘러나온다.
호영은 무표정으로 책상위를 정리하고 가방을 챙긴다.
별거.. 아니다.
꼼짝없이 머리박고 책상에 붙들려 있었던터라 허리가 뻐근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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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고등학교
"이거 전국시험이야 이것들아. 성적 제대로 안나오면 각오해"
"아씨 한 개도 모르겠다."
"이걸 내가 어찌 아노.."
주변에서 투덜투덜.
태우는 이미 다 풀어놓고는 답안지를 체크하고 있었다.
큰 단위의 시험이라서 그런지 고난이도의 문제가 많았다.
어떻게 어떻게 답을 찍어서 적고,
그나마 아는 문제만은 점수를 깎기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이번 모의고사에선 좋은 점수를 기대하진 않는다.
할 일없이 시험지 귀퉁에다가 낙서를 하던 태우는
잠시 넋을 놓고 멍하니 책상을 응시한다.
어제는...
문득 떠오른 어제일...
데니가 내던지고 가버린 헬멧을 소중히 들고 집으로 가지고 갔었다.
어머니께서는 무슨 쓰레기를 주워왔냐고 핀찬도 주셨지만,
태우는 입을 굳게 다물고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었다.
울면서 갔었다면....
눈물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텐데....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았는지......
내 손에 들린 이 헬멧이 없어 크게 다치는 일이 벌어지는건 아닌지..
태우는 그날 저녁 내내 데니 걱정에 노심초사했다.
다음날이 모의고사라는 것도 잊고 그렇게 안절부절 헬멧만 매만졌다.
집에는.... 제대로 들어 갔을까.....
전화로 확인 해볼수도 있었으나 그럴수 없다는건.
이제와서 그럴수 없다는건...
데니를 놓아주어야만 하는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우린..... 어울릴수 없는 사이인걸....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빈부의 격차.
자신의 형편이 다른 가정들과 견주어 빈곤하다고 볼 정도는 아니지만,
데니에게 비하면..... 정말 하찮았다.
부잣집 도련님인데다가 안하무인의 태도까지.
좋은말로 포장하면 도도한거지
세상물정 모르기는 7살난 꼬마와 견줄게 아니였다.
어떻게든 데니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어보려고
정떨어지는 사람으로 취급하려고 해도,
그는..... 태우 자신의 왼쪽 심장을 가진..... 단 하나뿐인 연인이다.
나는 너를 사랑할테니까...
.. 넌 나를 미워해..
다시는 돌아보지 말고..... 기억도 하지마.....
증오에서라도... 다시는 날 찾지마....
그게... 싸가지라곤 국 끓여먹을래도 없는.....
그래도 너무 예쁜... 안데니가 할 일이야..
나만.. 널 사랑할께.....
어젯 밤,
데니를 더 생각한다면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져 눈물이 날까봐
그만 생각을 접고, 잠이 들었던 태우였다.
"자 얼른 시험지 걷어라."
종소리와 함께 선생님의 명령에 정신이 바짝 든 태우.
답안지를 제출한다.
하루종일 모의고사에 시달리고 난 아이들은
끝나자 환호성을 지르며 교실을 나선다.
태우는 먹구름낀 표정으로 교실을 나와 터벅터벅 운동장을 걸었다.
"이제.....무슨 낙으로 사냐......?."
데니를 내친건 자신이었건만, 생각해보니 그런 자신 역시
데니가 없는 자리를 채울 어떠한 대안책도 없었다.
데니를 대신할 사람 따윈......... 생각해본적도 없고
그럴수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이 아니였던가..
그러기에.... 더욱 괴롭다...
.
.
.
.
.
하늘이 캄캄하게 어두워지더니 어느새 도시에 불이 하나둘 켜지며
멋들어진 야경을 연출해 낸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빛에 밤에 더욱 번잡하고 활기찬 골목.
돈쓸데가 없어 드나드는 상류층의 젊은이들이나,
정말로 시름을 덜기 위해 술과 여자를 찾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안데니. 오랜만이네. 왠일이냐?"
"............."
전에 계상과 함께 찾던 나이트.
계상을 찾아 함께 올 정신조차 없어서 무작정 혼자 와버렸다.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이곳은 많이 달라져있다.
그리고 한때 어울리던 친구들은
여전히 여기서 할 일없이 돈이나 쓰고 놀고 있다가
데니를 알아보곤 다가온다.
"너 통 안보다가 오랜만에 보니까 얼굴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다른데서 놀았냐?
".............."
아무 대꾸도 않고 무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은 데니에게 접근해온다.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짓지 말라고..
천하의 안데니가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러고 있는거야?"
"................젠장..."
데니는 거칠게 한마디 뱉어내곤, 앞에 놓인 술잔을 들이킨다.
목으로 싸하게 넘어가는 알코올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틔워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취하지 않으면 계속 생각날테니까...
어떻게 해서 오피스텔로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이 서울로 되돌아 왔었다.
추운 날씨에 얼굴은 온통 빨개져있고,
오한이라도 들었던건지 몸이 오들오들 떨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깨어나보니.... 저녁이었다.
다행히 감기를 피해간 듯 해 그나마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는 것...
"안데니, 너 오토바이 있냐?"
".........그건 왜?"
"오늘 모이거든. 알지? 오랜만에 한번 껴볼래?"
"......오...늘??"
여자를 데리고 놀다가 마음에 들면 오토바이 뒤에 태워
시원하게 뻗은 대로를 질주하곤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불과.... 몇 달전 일이다.
"요즘 여기 물 좋거든.
너도 생각있으면 기집애 하나 끼고 고수부지로 나와."
"..........못할 것도 없지..."
슬며시 웃음을 띄우는 데니는 왠지 많이 힘겨워 보인다.
너에게 난 죽던 말던 상관할 가치조차 없는
꼴도 보기 싫은 놈인걸...
한때의 욕구해소를 위한 상대자였던...내가 어떻게 지내든...
넌 상관없겠지...
나도 너 따위... 다시는 떠올리지도..
... 신경쓰지도 않겠어...
이게 맞는거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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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편 감상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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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재벌 덴상 길/들/이/기 2부-(22)
막가파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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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0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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