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겨울철 목욕하기와 머리깍기는 큰 행사중의 하나였다
물이 귀했을까? 나무가 귀했을까?
일본식집 사택에는 큰 목욕 무쇠솥이 걸려 있고
직원들의 식구들이 번갈아가며 그 목욕탕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넣고 장작을 지펴 물을 데우면 온 가족의 목욕이 시작된다
제일 먼저 아버지가 몸을 불리고 탕 밖의 나무깔판에 앉아
때를 밀기 시작하면 차례 차례 들어가 목욕을 한다
뿌우연 수증기에 안이 잘 보이지 않지만
물은 이미 땟국물이 둥둥 떠다니고
아이들의 묵은 때를 벗겨주신 엄마가 제일 마지막 차례다
그리하여 큰 연례행사를 치루는 것이다
그나마 탕이 없는 사택은 커다란 고무다라가 한 몫을 한다
여름철이야 냇가에서 살다시피하니
미역을 감든 나이들어 등목을 하든 자연스레 해결이 된다
다음은 머리깍기
나이가 어릴적에는 이발소에 머리를 깍으러 간다
어른의 의자위에 아이들이 올라앉는 나무 판대기를 걸쳐놓으면
덜렁 아이를 올려 놓는다
단발머리로 반듯하게 깍아놓고 뒷머리를
가죽에 쓰으쓱 문지른 면도날로 사각 사각 하얗게 밀어놓는다
네 살 위인 언니가 커다랗게 자라더니
언제부터인가 머슴애들은 이발소로 보내고
나의 머리를 깍는 전용미용사가 되었다
그 날은
닭새끼 돼지새끼를 때려 잡는 날이다
한 쪽을 자르고나면 한 쪽이 내려오고
내려온 쪽을 자르면 옆쪽이 내려온다
싹둑 싹둑 머리를 자라내고 거울을 보는 순간
차라리 거울을 본 것이 화근이다
우와왕
들쑥날쑥 층층이 머리는
그렇지 않아도 까무잡잡하니 이쁘지 않은 계집아이를
혼자보기에 아까운 인물로 둔갑시켰으니
돼지멱을 딸까? 닭 모감지를 비틀까?
내머리 내놔! 그대로 붙쳐놔!
눈이 크고 겁이 많은 언니는 십리밖으로 튄다
불파마를 하던 아득한 시절부터 파마머리를 하시던 엄마가
왜 딸내미를 미장원에 데려갈 생각을 못하셨을까?
그럼에도 다음에 머리깍기가 돌아오면
얌전히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그녀 앞에 앉아 있던 계집아이
들쑥 날쑥이면 어쩌랴
봉숭아 채송아 곱게 피어나는 화단옆에서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앉아
머릴 디밀고 앉아 있던 계집아이가 그리운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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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앙탈 부리던 계집아이
휘파람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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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01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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