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쏟아지는 폭우로 계획했던 일들이 자꾸만 뒤로 밀려나고 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엔 현장도 올스톱 상태가 된다.
덕분에 오랜만에 홀가분한 맘으로 모모헌에서 지내게 되었다.
퍼붓던 쏘낙비가 잠깐 그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얼른 밖에 나가 배수로와 주변을 점검한다.
빗물에 쓰러진 꽃들을 손본다.
그러다 다시 비가 후득후득 쏟아지기 시작하면 얼른 안으로 들어간다.
한옥은 한 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다.
망사문만 닫고 있으면 귀찮은 모기도 얼씬 못한다.
방안이 꿉꿉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것도 인내심을 갖고 견디면 그런대로 생활하는데 문제없다.
대청에 앉아 책을 골라 본다.
그것도 심드렁해지면 기타를 두드리며 못하는 노래 한 곡 불러 본다.
이것도 싫증 나면 대청에 누워 바깥 동정에 귀 기울이며 망중한을 즐겨 본다.
누마루에 걸어놓은 해먹에 몸을 얹고 있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싱그런 정원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잠이 솔솔 온다.
올여름은 이렇게 지내며 살고 있다.
집사람은 시골보다 도시가 좋단다.
그러니 한옥에선 늘 혼자다.
조금은 쓸쓸하지만 그런대로 혼자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똘똘한 보리가 늘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온통 깜장털이라 밤중엔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보이지만
녀석이 있어 그래도 맘이 든든하다.
낮엔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밤중엔 내가 자는 문 밖 마루에서 웅크리고 잔다.
안방에서 자면 그곳 쪽마루에서
대청에서 자면 그곳 툇마루에서
자다가 내가 뒤척이면 얼른 일어나 나를 쳐다본다.
옷을 벗고 있을 땐 녀석의 시선이 민망해 슬며시 안쪽 미닫이 문을 닫는다.
난 겨울보다 여름이 좋다.
땀이 유난히 많이 흘리는 게 좀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름이 좋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고
해가 뜨면 해가 떠서 좋고
바람 불면 바람 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