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견학하고 돌아온 후 평소 잘 알고 지냈던 윤도현에게 일본에서 둘러보고 온 도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때 윤도현은 칠량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의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뒤에 칠량의 주조장을 매입하고 도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칠량에는 이미 옹기를 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면에 흙공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옹기를 만들때 사용되는 흙을 이용해 도자기 제작을 시작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처음 칠량에서 윤도현은 도강요라는 개인요 업체를 설립했고 이는 강진에 여러 명의 작가들이 찾아와 개인요가 생겨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청자사업소 시절부터 해외에서 전시회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청자사업소 탄생 직후인 1987~1988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 전라남도에서 기획해서 미국에 한국의 문화를 알리자는 취지로 각 지역의 유명 특산물을 모아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LA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결정됐다.
이 시기는 강진군에서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때였고 도청의 주요 인사들도 강진을 찾아와 청자제작 과정을 둘러보기도 했던 때였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전라남도내 각 지역마다 유명한 특산물과 함께 강진의 고려청자도 전시회에 참여하게 됐다. 강진군에서는 사업소 직원과 내가 전시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기간은 약 일주일 남짓이었다.
청자사업소에서는 그동안 제작했던 작품중 우수한 것을 골라 매병, 주병을 포함한 찻잔과 주전자 등 약 20여점을 모아 전시회에 참여하게 됐다. 전시장소가 LA였지만 한국인들도 있었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왔지만 이곳에서 강진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시회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와중에 한 무리가 눈에 띄었다. 2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였는데 공간이 비좁은 전시장을 찾아와 말없이 조용히 둘러보고 있었다. 이때 2명의 남자중 한명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신이 강진사람인데 멀리서 고려청자 재현 소식을 전해듣고 자랑스러웠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나는 당연히 깜짝놀라서 이름을 물어보았고 그는 자신을 ‘윤한봉’이라고 소개했다.
윤한봉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로 핵심주동인물로 찍히면서 1981년 미국으로 밀항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칠량 동백리가 고향으로 평소 알고지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멀리서 소식은 전해들었기에 낯이 익었다. 나는 그와 반갑게 악수를 하며 최근 안부를 물었다.
윤한봉은 한인학교에서 지내고 있고 같이 온 사람들도 학교 관계자들이라고 밝히면서 고향에서 천년전 사라졌던 고려청자를 재현해냈다는 소식과 LA에서 전시회를 한다는 말을 듣고 방문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외국에서 고향사람을 만나게 된 반가운 마음에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그와 헤어졌다. 후에 나는 고향의 가족들에게 함께 촬영한 사진을 전해주었다.
이 전시회에 가져간 작품 대부분이 판매가 이뤄졌다. 한번은 미국사람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찾아왔다. 그는 3일동안 연속으로 전시회장을 찾아 작품을 지켜보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청자작품을 구입해갔다. 적지 않은 가격이기 때문에 청자의 가치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 상황을 감안해 한참을 고민했던 것이었다.
LA에서 전시회는 강진의 청자가 외국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정리=오기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