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제일교회 문학동인지 5집)
시간의 순응과 기원 의식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1. 시간성에 대한 순응 의식
현대시에서 시간성은 공간성과 동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선 시간과 공간 개념에서 추출하는 이미지의 향방이 다양하게 현현되는데 이것이 시의 형상화와 주제의 공감을 유로(流露)하는 중요한 요체가 된다.
올해에 발간하는 안산제일교회 문학동인지 제5집 『서로에게 바라봄으로』에 수록된 작품들은 대체로 이러한 시간성 위에서 전개되는 일상들이 새로운 이미지를 추출하는 특성이 보인다.
여기 회원들이 작품 5편씩을 수록하여 개개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적출해낸 감성적인 구도와 의미는 서로를 비교함으로써 발전적인 계기의 제공은 물론, 새롭고 지향적인 주제의 발현을 구상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시간성의 섭리를 순응하면서 자아를 성찰하거나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작품을 일별해 보면 유영숙과 이계선, 전향란의 시적 구도와 언어들이 계절이나 생활 시간대에서 자신들이 여망하는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제들의 작품을 통한 의미를 단견(短見)으로 알아본다
가을 끝자락
서리가 내렸다
여름내 인내로 견딘
국화의 절개
이제 스러져가는
만추를 품을 수 있기에
행복한 바이러스
그 분의 섭리인 것을
-- 유영숙의 「가을 들녘」전문
유영숙의 시적 시간성은 ‘가을 끝자락’이다. 거기에서 여름과 국화와 만추라는 계절적인 상황의 개념을 도입하여 ‘행복한 바이러스’가 분화하고 이 행복은 곧 ‘그분의 섭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그분’을 강조하는 것은 그가 여망하는 신앙심의 현현으로 ‘섭리’가 바로 ‘그분’과 동질의 상사성(相似性)을 가진다.
빨간 신호등 멈춰진 발걸음
자율학습 나온 여중생 공원 가득
화려한 꽃동산 어제였는데
녹음방초 푸름 가득
폐부 깊이 밀려드는 초록 향기
금잔디 살아 초록 머리 총총
일제 두발단속
까까머리 되었다
행운상징 클로버 가족까지
덜 베어진 클로버꽃
향기 찾아 날아든 봉접들 열심인 아침
손에 쥔 디카로 자연 담는 아이들 곁엔
대여섯 빨간 행랑 안에
초록 향기 무리지어 눈물 흘린다
-- 이계선의 「퇴근길 아침」전문
이계선은 ‘퇴근길 아침’에서 응시한 ‘초록 향기’라는 후각적 감성을 통해서 조망하는 순정의 이미지가 충만하다. 이는 시각적인 ‘빨간 신호등’이나 ‘자율학습 나온 여중생’과 ‘손에 쥔 디카로 자연 담는 아리들’ 등이 ‘아침’의 시간성을 싱그럽게 시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하나의 순응이다
초겨울 문턱에 들어서는 날
단지 내 모퉁이 마다
옷들을 갈아입는 소리 살랑거립니다
지난여름 푸른 그늘 되어
아이들 놀이터 되어주고
마음 터놓던 자리 내려다보며
꽃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고가는 사람 마음 다독거려주고
이제는
떨어지는 가랑잎 쫓아가
바스락 소리에 귀 기울이고
조금 더 낮은 곳을 바라봅니다
-- 전향란의 「낙엽을 보며」전문
전향란의 시간은 ‘낙엽’이다. 가을 이미지가 ‘초겨울’과 ‘지난 여름’ 등이 시간의 조화를 이루고 ‘낙엽’이 감응하는 계절적인 이미지를 동원해서 ‘귀 기울이고’ 또는 ‘바라’보는 상념의 형상화이다. ‘푸른 그늘’ 이 이젠 ‘떨어지는 가량잎’으로 변환된 시적 감응은 잔잔한 동심을 엿보는 시간성의 순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2. 그리움의 보편적 감성
그리움은 우리 인간의 감성에서 지울 수 없는 심리적인 현상이다. 그리움은 항상 사랑이라는 근원 동반하게 된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말했듯이 사랑이란 우리들 혼의 가장 순수한 부분이 미지의 것에 향하여 갖는 성스러운 그리움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보편적으로 그리움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직접이든 간접이든 간에 체험한 한 줄기의 절실함이 어느 날 문득 어떤 사물이나 관념과 일치하는 정서가 이미지로 전이(轉移)되어 시적 형상화로 이루어지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바로 절실성 그 감응에서 분출하는 그리움은 사랑이거나 향수 그리고 가족애 등의 유형으로 현시된다. 김남조 시인이 일찍이 그리움에 대한 노래를 ‘깎아 세운 동기둥에 비스듬히 기운 연지빛 노을의 / 그와 같은 그리움’이라고 시 「연가」에서 부르고 있다.
칠월
마당 한가득
싱그러운 풀 냄새
타닥타닥
불꽃으로 사라질 때
그리운 아버지 모습
-- 강순구의 「풀향기」전문
강순구의 그리움은 ‘풀향기’에서 형상화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칠월’ 염천(炎天)의 밤 ‘마당 한가득’ 피어오르는 시골 모깃불이 ‘싱그러운 풀 냄새’를 풍기면서 ‘불꽃으로 사라질 때’ 그 체험의 ‘아버지 모습’이 이제사 ‘그리움’으로 승화하고 있다. 다른 작품「사랑의 힘」에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음미하는 그리움이 있다.
간밤에 오직 한사람
그대를 위해
산마다 골짜기마다
선홍빛 선혈을 토해
곱게 물들인 두견새
몽울진 꽃망울마다
서려있는 지순한 사랑
그 꽃잎에 입 맞추는
4월의 신부
-- 송양란의 「진달래」전문
송영란은 사물 ‘진달래’를 통해서 ‘지순한 사랑’을 적시하고 있다. 사물이 하나의 의인화로 ‘4월의 신부’로 이미지화한 ‘오직 한 사람 / 그대’에게 띄우는 연가이다. 어쩌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밤마다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치는 현상과 흡사한 장면이다. ‘선혈을 토해 / 곱게 물들인 두견새’가 그러하다.
해풍이 자리한 바닷가
쌓인 정 깔고 앉아있는 바위들이
검붉은 토혈 쏟아내는
해당화를 품고 있다
바람에게 꽃 술 다 내어주고
입고 있는 겉옷조차 헐거워져
붉은 눈망울 툭툭
떨어트리고 있는 지친 화(火)신
파도 속 젖어오는 그리움
푸른 잎으로 베어내며
오늘 밤도
꿈꾸는 해당화가 된다
-- 이윤수의 「기다림」전문
이윤수의 그리움은 우선 ‘기다림’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해풍’과 ‘해당화’와 ‘파도’가 조화를 이루면서 ‘그리움’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작품 「시」에서도 ‘내 안에 / 토할 듯 / 쏟아질 듯 / 울부짖는 / 먹먹한 心 / 발 자 국’이라고 함축하는 것처럼 ‘해당화를 품’었다가 다시 ‘꿈꾸는 해당화’로 강조하는 시법이 공감을 이룬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
꽃눈 되어 내리는데
황금길 꽃 터널 거닐던 그 날
그려 본다
눈 오는 황사바람 애타하던 튜울립
언제 저리 예쁘게 피었을까
무지개 수놓았네
수다스런 입 잠재우고
꽃 따라 웃음 짓게 하는
우아한 그분 솜씨
어느덧 라일락 향기에
젖어 드는 내 발길
-- 정경숙의 「꽃동네」전문
정경숙은 ‘꽃동네’에서 ‘그려’보는 옛 체험이 뇌리에 맴돌고 있다. ‘벚꽃’과 ‘튜울립’ 그리고 ‘라일락’이 ‘무지개 수’를 놓고 있는 것은 ‘그분’의 섭리이지만, ‘향기에 /젖어드는 내 발길’과 접맥하면서 진한 그리움을 분출시키고 있다. ‘황금길 꽃터널 거닐던 그 날’이 암묵적으로 적시하는 체험(추억)은 시발상에서 큰 몫을 하고 있다.
3. 자아 성찰과 기원 의식
우리가 살아가면서 공허의식을 갖는 것은 현실의 실재(實在)에서 피할 수 없는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시인들뿐만 아니라 일상인들에게도 동일한 양상이 나타나는 것을 대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말하면서 허무의식을 역설하는가 하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글 「반철학적 단장」에서 ‘어째서 마음은 허무한 생각에 동요될까. 어떠한 각도에서 허무한 생각은 동요받게 되는 것일까. 어쨌거나 허무한 생각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피력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인생행로에서 고뇌와 갈등이 현실의 불확실성과 마찰하면 깊은 철학적 성찰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공허나 허무의식으로 현현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러한 허(虛) 의식이 김윤자와 최홍연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으며 기원의 잇ㄱ은 고옥자와 한영애에게서 살펴볼 수가 있다.
버려야 할 것
선재 섬 앞 바다에
모두 던졌다
물때만 잘 알았던들
아픈 흠집 그냥 드러낸
갯벌을 보았으랴
물살 빠져 나가면
말갛게 치유될
내 속살
남겨야 할 것
검푸른 파도에 안겨
잠잠히 낙조(落照)에 물든다
-- 김윤자의 「갯벌」전문
김윤자는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을 시적 대칭구도로 설정하고 공허의 의식을 심화하고 있는데 이는 자아 성찰의 단계를 ‘갯벌’의 ‘물때’와 ‘물살’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나를 찾고 싶다 / 누구인가에게 얼마나 많은 손짓을 했는지’라고 그의 작품「폴라로이드」에서도 강조하고 있어서 자아의 가치관 승화를 꾀하고 있다.
손에 쥐면
내 것이 된다
많은 것에서도 한 줌
비 내리는 묘지
무엇을 가졌었는지는 모른다
그의 생애 품었던 나눔이
들려 온다
텅 빈 하늘의 바람이 서늘하다
한 줌 쥐어도
여전히 빈 손
-- 최홍연의 「몫」전문
최홍연의 공허의식과 성찰의 구도는 ‘텅빈 하늘’과 ‘여전히 빈 손’이라는 어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비내리는 묘지’의 시적 정황과 ‘무엇을 갸졌었는지 모른다’는 어조가 바로 ‘그의 생애 품었던 나눔’으로 형상화하면서 시의 위의(威儀)와 품격을 상승하는 효과를 제공하고 있다.
누군가 겉모습의 만족감
마음도 평화 있게 하소서
우리의 영혼과 육신
회복 되는 일이 있게 하소서
누구도 웃음에 웃음을 더하여
어두움이 없게 하소서
오래전 무장된 겉사람
그 분 말씀 따라
자유가 있게 하소서
-- 고옥자의 「자유」전문
고옥자는 신앙에 의한 자신의 소희를 기도의 의식으로 기원을 여망하는 어조로 분화하고 있다. ‘그 분’이라는 절대자를 부르면서 ‘있게 하소서’를 염원한다. 이런 형상은 신앙시나 종교시에서 접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의 특징은 ‘평화’와 ‘영혼과 유신’의 회복 그리고 ‘자유’를 간절하게 기원하지만, ‘어둠’은 ‘없게 하소서’라고 대칭적 구도를 읽을 수 있다.
아침이슬의 청아한눈
세상 것과 바꿀 수 없는 그의 입술
천사 날개 짓으로 사랑 나누고
진실함으로 높이 날아오를 꿈꾸며
긍정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변하지 않는 하늘마음처럼
가슴속 언제까지나 밝은 미소로
그리스도 향기만을 전하는
한그루 작은
그루터기가 되길 소망하여본다
-- 한영애의 「그루터기 꿈」전문
한영애의 기원도 ‘그리스도 향기만을 전하는’이라고 전제하고 그의 ‘소망’을 염원하고 있다. 이러한 기원 의식도 신앙을 원류로 한 자아의 성찰을 지향성 있게 시로 승화하려는 그의 노력이다. ‘사랑’과 ‘진실’과 ‘긍정적인 것’과 ‘밝은 미소’ 등이 암묵적으로 적시하는 주제는 기독교적인 사랑을 위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4. 마무리
2010년 안산제일교회 [시인의 집] 문학동인지 제5집에 발표한 작품들의 경향이나 의식의 흐름은 한결같이 투철한 신앙심을 작품의 원류로 설정하고 자신의 고결한 체험을 승화하는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일찍이 호라티우스의 시론에서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으며 듣는 이(혹은 읽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명언을 인용하지 않드라도 우리는 시는 영혼의 음악임을 상기해야 한다.
더구나 기독교적 박애정신의 실현이 바로 시적 주제의 창출이며 영혼과의 접맥이라는 점이 지향적인 시세계의 창조임을 절감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시창작의 요체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또한 시는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고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의 말도 새겨 들어야 한다. 이는 항상 하는 말이지만 외형적 사물이미지에는 스케치로 흐르지 않도록 하고 내면적으로는 독백의 범주를 탈피하는 노력이 가미(加味)될 때 영혼과 육신 또는 외형과 내면(사물과 관념이미지)이 적절하게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 인간들의 최후 여망인 가치관의 창조가 시적 진실로 발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