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베일속에 감춰진 천불지상
리태학
사람들은 룡정이란 말만 들으면 흔히 간도성의 서울에 있는 룡드레우물이며 해란강가에 있는 비암산의 일송정을 떠울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막상 백두산 동북쪽으로 30여리 떨어진 룡정시 경내에 위치한 1200메터의 해발고도를 갖고있는 천불지상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있는 상황이다. 도로표지판에도 엄연히 《천불지상자연보호구》라고 씌여있어도 룡정에 적을 둔 사람도 해내외의 문인학자들의 안중에도 천불지산은 이름 넉자는 거의 공백상태로 남아있다.
내가 등잔밑이 어둡다는 속담의 진가를 알게 된것은 룡정시의 소문난 중의이자 약물학자이며 음양리치에 밝은 오정묵원장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오정묵선생이 집필한 《중약명명전설》을 내가 책임편집을 맡게 되었다. 나는 심오한 뜻이 깃들어있는 약명에 일부 리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그를 찾아갔다.
《황정()이 조선말로 둥글레뿌리란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황정이 중국의 4대 불교명산 구화산의 개산조사()를 만들어낼줄은 뜻밖입니다. 지장보살 김교각은 신라의 황태자인데 그가 어떻게 중국불교계의 추앙을 받고있는 고승으로 되었을가요?》
중등키에 예지로 반짝이는 눈매가 사뭇 인상적인 오정묵선생은 나의 순진한 질문에 얼핏 어설픈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김교각이 우월한 황궁생활을 버리고 당나라로 떠날 당시의 복잡한 세계정세와 구화산에서의 기이한 행적은 지금까지 불교계의 미스테리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지금 국내에는 부처님이 나타났다고 하는 곳이 매우 많답니다. 그중에서 유명한 곳이 네곳이 있는데 부처님의 이름을 가진 산은 이 천불지산밖에 없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지금 이곳으로 찾아오는 국내외 고승과 불교학자들이 줄을 서고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높은 년세에도 불구하고 서너차례나 왔다 갔더랬습니다.》
명산을 지척에 두고도 모르고있었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나는 자비감에 잠겨있다고 원장이 알려준 선색에 따라 현지답사도 하고 유관전설과 력사자료도 찾아보며 베일에 감춰진 천불지산의 신비한 면모를 드러내보이고저 어려운 탐색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1
당조 개원칠년은 서기로 719년이다. 이 해에 신라의 황태자 김교각은 머나먼 당나라에 와서 사처로 두루 전진하다가 드디여 구화산의 동애봉 산굴에다 짐을 풀었다. 그가 축축한 산굴에서 솔잎가루로 연명하며 도를 닦게 된데는 나름대로의 연유가 따로 있었다.
당시 신라는 주변 강국들이 혼전을 벌리는 사이 남몰래 국력을 다져오다가 김은선, 김춘추대에 이르자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쳐서 드디여 통일신라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학식이 깊고 민족애가 남다른 황태자-김교각의 생각은 사못 달랐다. 외세에 의하여 이룩한 통일은 그의 안중에 허깨비나 생지옥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천리에 닭울음소리 그치고 동사자의 백골이 나뒹구는 참경을 목격한 김교각은 치가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만백성이 원하는 극락정토를 찾기위해 그는 부황과 황후마마의 간곡한 청도 무시하고 《이 다음 부처님이 되어 다시 나타나겠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결연히 고국을 떠났던것이다.
그가 구화산동굴에 숨어서 75년동안 수행하던중 한번은 안휘일대에 큰 기근이 들었다. 굶주림을 달래보려고 구화산에 온 농민들은 한 동굴앞에 이르자 그만 깜짝 놀랐다. 동굴앞에는 너덜더덜한 해진 장삼을 걸쳤으나 학발동안()을 한 스님이 명상에 잠겨있었던것이다.
주위가 소란해지자 김교각은 천천히 눈을 뜨면서 굶주림에 피골이 상접한채 연신 신음소리를 내는 농민들을 측은한 눈매로 바라보았다. 그는 말없이 일어나 자신이 캐온 둥글레뿌리를 그들한테 나누어주었다.
둥글레뿌리는 맛이 달착지근하여 먹기도 좋지만 비위를 돕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효능까지 있다. 굶주림에 지친 농민들은 김교각이 알려준대로 둥글레뿌리를 캐서 며칠간 먹었다. 과연 배가 고프지 않고 힘이 솟아남을 느꼈다.
이로부터 안휘성일대에는 《구화산동굴에 생불이 계신다.》《그가 알려준 풀뿌리만 먹으면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 바람결처럼 퍼져나갔다.
아사직전에 놓인 안휘성일대의 수십만 기근민들은 김교각의 덕분으로 목숨을 살리고 건강까지 되찾았다. 이에 감격한 농민들은 생불을 보기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뒤미처 린근현의 현감도 찾아와 김교각을 배알하고 그의 간고한 수행전신에 깊이 감복되였다.
구화산일대의 백성들은 생불을 루추한 곳에 머물게 할수 없다며 쌀있는 사람은 쌀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서 사찰을 짓기로 공물을 모았다. 일이 크게 벌어지자 현감은 부랴부랴 공문을 작성하여 명나라조정에 상주서를 띄웠다. 명나라황제는 신라의 황태자가 구화산에서 수행정진한다는 말이 미덥지 않아 례부시랑을 파견하여 그 진유를 알아보게 하였다. 례부시랑이 와서 알아본적 사실은 기대이상으로 크고도 감격적이였다.
사실을 확인한 명나라조정에서는 수십만냥의 은전을 조달하여 사찰중진에 돕도록 하고 황제는 친필로 쓴 편액까지 하사하였다.
이리하여 구화산에는 대웅보전을 비롯한 여러채의 으리으리한 사찰이 들어서고 몇천존의 불상을 모신 중국 4대 불교명산이 되었으며 김교각은 구화산의 개산조사()로 되었다.
중국 불교력사에서 한획을 그은 지방보살은 99살까지 건재하다가 하루는 수제자한테 기이한 향이 나는 약초를 몇가지 뜯어다 달여달라고 하였다. 지장보살은 곡기를 금하고 약물만 마시다가 좌선에 든채로 보름후에 입적하였다.
그는 생전에 수제자한테 《내가 ()에 들어도 육신은 썩지 않고 앉은 그대로 진한 향기를 풍길것이다. 너희들은 나의 육신을 동굴속에 건사해두었다가 수십년 혹은 수백년에 한번씩 밖에 내다 놓아라. 내가 가볼곳이 있느니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장보살의 말은 사실 그대로였다. 그의 육신은 천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여있고 특이한 향까지 뿜고있어 중국의 국보로 불리운다.
그런데 문제는 지장법사의 육신을 밖에 내놓았을 때에 생기는 기이한 불광() 때문이다. 제정한 날자에 지장보살의 육신이 운구되여 지정된 련화대에 모셔지면 곧바로 파르스름한 불광이 그이 몸에서 뿜겨져 나오다가 동북쪽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지장보살이 날아간 곳은 어디이고 그가 나타난곳은 어느 지점일가?
그래서 국내의 불교신자들은 지장보살의 불광이 사라진 방향을 추측하여 천불지산이라는 이름을 네곳에다 달아놓았다가 마지막으로 지장보살 김교각의 불광이 진짜로 나타난것은 백두산 동쪽 300리 지점에 있는 천불지산으로 가닥을 모으고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가?
2
어떤 사람들은 수백년전에 나타난 백두산의 화산분출을 지장보살의 불광으로 착각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고승대덕들이 예지하는것은 인간세상의 중대사이지 자연계의 이별은 아니다.
전설에 의하면 1300년 후반기에 룡정시 남쪽에 있는 천불지산에 지장보살의 불광이 나타난적이 있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몸에는 검은색 가사를 걸치고 자신의 행적을 나타내는게 싫어 항상 매지구름을 타고 다닌다고 한다.
필자의 외조부는 일찍 지관()으로 지냈던 선조할아버지의 신기한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준적이 있었다.
당시는 고려의 무신정권이 판을 치고 원나라의 과도한 수탈과 왜구들의 소란으로 하여 백성들은 죽지 못해 사는 형편이 였다.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해줄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때 광양 옥룡사에서는 72세에 입적한 도선대사가 살고있었다. 풍수지리와 음양도찰()설의 대가인 그는 자신이 쓴 도선비기에 아래와 같은 글귀를 남겼다.
송경이 떨어진후 어디로 향하뇨
동남방에 서울이 있으리
후에 현명한자 대업을 열면
한강의 고기들이 서해로 통하리
그러나 도선대사는 그 《현명한자》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 위인을 찾으려고 무학대사는 두만강변과 백두대간을 메주밟듯 돌아다니면서 인재가 나옴직한 곳의 풍수를 빼놓지 않고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명당자리를 이름 높은 두만기슭의 천불지상을 지나칠수 있겠는가?
당시 천불지산 북쪽 오봉산기슭에 있던 나의 외조부는 안산()이 서북쪽을 바라보면 인재는 흥하다가 사라지고 녀자가 되지 않는다는 지관의 말을 귀등으로 듣다가 결국 할머니를 잃고 풍수지리를 배우게 되였다고 한다. 어디서 주어들은 말로 지관자리를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던차 그는 내지에서 온 풍수대가가 래일 천불지산을 보러 간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고 한다. 무학대사는 태조 리성계가 군신간의 례절을 잠시 잊고 서로 놀려주기를 하자고 할 때 등장했던 인물이다. 그때 태조는 무학대사를 보고 《그대는 꼭 돼지같이 생겼구려.》라고 하였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페하께서는 꼭 부처님같이 생겼소이다.》라고 말해서 태조를 얹짢게 하다가 《무릇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사람도 부처로 보일것이다. 돼지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사람도 돼지로 보일것이다.》라는 천하명담을 남겼었다.
비록 롱담이기는 하지만 무학대사의 얼굴이 못생긴것만은 사실이였다고 선조할아버지가 말한적이 있었다. 그때 외조부의 옥지땅에서 지관을 해먹던 사람들이 꽤나 모이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농군들이 뒤를 따라서 천불지산기슭은 한동안 북적거렸다고 한다. 그들 일행이 천불지산기슭을 거의 올랐을 때는 바로 6월도 막가는 어느날, 오전 신시(열시)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없는 쾌청한 날씨이던것이 갑자기 서남쪽으로 시꺼먼 매지구름이 한송이가 둥둥 떠오더니 해빛을 가려버렸다. 삽시에 천불지산봉우리는 어둑시그레 해졌다.
불현듯 매지구름우에서 시꺼먼 가사를 걸치고 하얀 념주를 목에 건 고승이 천불지산 봉우리를 서서히 내렸다.
사람들은 때아닌 광경에 깜짝 놀라서 환각인가 생시인가 제 살을 꼬집어보는데 고승의 몸체 주위에는 눈부신 연보라빛광환이 서려있었다. 고승은 찌프렸던 미간을 활짝 펴면서 손가락으로 동쪽방향을 가리키다가 두식경이 지난 뒤 남쪽 두만강기슭을 얼핏 가리키고 동북쪽으로 몸을 틀어 이윽히 바라보다가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서남쪽으로 사라졌다. 그의 뒤로는 파르스름한 불광이 긴 비자루처럼 뒤를 따랐다.
뜨거운 정오의 태양이 또다시 놀라서 눈이 퀭해진 사람들의 얼굴을 사정없이 지져놓고있었다.
이때로부터 천불지산 기슭에는 지장보살이 천불로 화해서 뒤에 일어날 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는 소문이 파다히 떠돌았다.
3
력사적 우연일가 아니면 지장보살의 령험일가! 그후 말단 지관자리를 겨우 지키던 외조부의 선조할아버지의 풍수를 보는 능력은 더욱 제고되였다고 내지로 돌아간 무학대사는 등에 서까래 세 를 지고있었다는 리성계의 꿈을 풀이하여 일세의 명승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때 지장보살이 가리킨 곳은 바로 두만강변의 온성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났다. 천불지산 남쪽에 있는 두만강기슭의 한 초가에 녀진족의 수령인 누르하치가 태여났다. 그는 비범한 통솔력으로 녀진족의 10만 철기를 이끌고 명나라를 멸망시킨뒤 령토가 광활한 청나라를 세웠다.
이렇게 보면 그때 지장보살이 동쪽을 가리키고 또 다시 남쪽을 가리킨 시간이 두식경이였다고 했는데 그것은 조선건국에 이어서 200년후에 나타난 청나라건국을 예언한것이 아니겠는가! 불가의 시간단위는 세속보다 대단히 빠르다.
마지막으로 지장보살이 동북쪽으로 몸을 튼뒤 천불지산일대에는 지장보살의 상을 닮은 바위거나 너럭돌들이 수태 발견되였다. 소문난 중의 오정묵씨도 천불지산 봉우리밑에서 우연히 발견한 길이가 한메터반이나 되는 수석을 소장하고있는데 거기에는 인자한 보살의 얼굴이 은은하게 비껴있어서 본인은 국보처럼 엄밀하게 보관하고있는중이다.
지장보살이 천불지산에 나타난 뒤 불자들과 항간에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무성하였다고 한다. 그 요점을 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김교각은 신라인인데 왜서 허구많은 내지의 명산에 현성하지 않고 옥저, 말갈, 거란인들이 섞여사는 두만강가의 이름없는 산봉우리에 나타났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 필자는 다양한 력사자료에 의해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해보았다.
출가한 사람이 고향을 찾을적에는 대개는 그리움과 변모된 고국의 풍토를 보고싶어서였을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임진왜란의 전란을 거치고 그후에 일본의 속국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분단국의 아픔을 겪게 된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이 다음 부처가 되여 고국으로 돌아가려던 념원을 접고 이 천불지산에 내려서 동북아의 운명을 예시해 주었다고 본다.
이것은 력사사실이 증명해준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36년을 지속되였어도 훈민정음에 의해 키워진 우리 겨레의 얼은 만주벌판에서 되살아났다. 김약연, 홍범도, 윤동주같은 저명한 반일투사들과 문화기수들에 의해 광복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천불지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다. 호랑이 피해가 대단한 당시에 이 천불지산주변에서는 호환을 입었다는 사건이 여직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가파른 산길에서 차를 몰던 운전수는 차와 함께 수십메터나 내리 몰았지만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럼 천불지산에 나타났다는 지장보살은 한낱 이러한 작은 은총만 베풀고 사라졌을가?
아니다. 급변하고있는 동북아에로 눈길을 돌려보자.
아마도 이것이 수백년전에 나타났다는 지장보살의 간절한 념원이 깃든 예언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룡정의 자랑 천불지산이여, 수백년동안 가리고있던 신비한 베일을 벗어버리고 사해의 손님들이 다투어 찾는 명산으로 거듭나라.
(리태학 지음)
송이버섯
학섬
일망무제하게 펼쳐진 장백의 림해우로 은회색직승비행기 한대가 동남쪽을 향해 유유히 날고있다.
비행기 창턱옆에는 은발머리를 한 녀인이 손가락으로 적설을 떠인 백두상봉을 가리키며 감탄하다가 파도처럼 설레이는 소나무숲을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지으며 잠시도 진정할줄 모른다.
《이제 곧 지신진에 도착하게 됩니다.》나이가 좀 많아보이는 비행사는 고도를 낮추며 천진한 소녀애들마냥 흥분에 들뜬 은발머리녀인에게 슬쩍 귀띔해준다.
직승비행기가 진 동쪽의 꽤 너른 평지에 착륙할무렵, 하늘색나는 하이야 한대가 미끄러지듯 달려오다가 《치익-》하고 멈춰섰다. 하이야에서는 회색중산복차림에 구레나룻이 허연 로인이 나오더니 직승비행기 출입구쪽으로 뛰다싶이 달려갔다.
미구에 직승비행기 문이 열리더니 은발머리녀인이 트렁크를 들고 사뿐 내려섰다. 갸름한 얼굴에 잔주름이 가긴 했어도 턱밑에 난 검은 짐은 유표하게 시선을 끌었다.
(정말 그가 옳을가? 오전에 주대외무역국에서 걸어온 전화내용을 보면 사연두 비슷하구 이름도 딱 같은데…)
의혹에 싸여있던 로인의 두눈은 금시 빛을 뿜기 시작하였다. 어렸을적에 받은 또렷한 인상은 지나간 세월의 안개를 헤치고 끝내 학창시절의 벗을 알아보게 하였다.
《하나꼬!》
하나꼬라고 불리여진 녀인은 잠간 어정쩡해있다가 로인의 넓은 미간사이에 난 엇비스듬한 상처자국을 발견하고
《아, 긴도꾸군!(김덕수군)》하며 엎어지듯이 달려왔다. 송이버섯무역 때문에 따라온 중일쌍방의 무역일군들은 하나꼬교수와 김국장의 이 뜻하지 않은 감격적인 상봉을 두고 기쁨도 기쁨이려니와 굴뚝같이 치솟는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여 차에 앉아 호텔로 가기 바쁘게 자초지종을 캐묻기 시작하였다.
1
간도성의 서울이라고 불리워진 이 자그마한 도회지는 련 며칠째 내리는 궂은비로 하여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저 멀리로는 일본령사관 건물이며 동척회사의 검은 굴뚝이 턱을 잔뜩 치켜들고 오만스럽게 서있는데 혼잡한 네거리에는 경찰차의 아츠러운 경적소리와 우산을 든 신사, 귀부인들의 지껄임소리, 마대를 뒤집어쓴 막벌이군들의 한숨소리가 섞여서 들려온다.
덕수는 어깨가 축 처진채 학교에서 나왔다가 비발이 약간 뜸해지자 역전쪽을 향하여 부지런히 걸음을 재우쳤다.
(오늘까지 삯짐을 지면 모자라는 월사금을 마련할수 있지, 헹, 그러면 난 그 절름뱅이왜놈선생에게 보란듯이 돈을 탁 메치고 계속 공부할수 있지 않는가. 그러면 나는 내가 그토록 즐기던 생물학지식이랑 마저 배울수 있구…)
덕수는 제나름으로 생각하면서 옷이야 헐어 팔굽이 보이든말든 짚신을 신은 발로 철버덕거리며 진창길을 헤쳐나갔다.
시내구역을 거의 벗어날무렵, 덕수는 빵빵 하는 경적소리에 놀라 한옆으로 물러섰다. 옷에는 어느새 흙탕물이 가득 튕겼다. 덕수는 노한 눈길로 군용찌프차를 바라도다가 길 저편에서 《아이참!》하며 우산을 제껴든채 바지가랭이를 비다듬는 소녀를 발견하자 낯이 화끈 달아올라 외면하고말았다. 한반에 다니는 하나꼬라는 녀자애였던것이다.
하나꼬는 본래 일본 북해도에서 살다가 작년에 그의 아버지가 미처 대학을 졸업하기전에 삼림조사대에 강제로 뽑혀 만주로 오는바람에 그도 부모를 따라 이곳으로 오게 되였다.
하나꼬는 부모들이 지식인이여서그런지 학급의 여느 애들보다 유순하면서도 활달하였다.
그저께도 그 절름뱅이왜놈선생이 학생들 앞에서 덕수를 세워놓고 이제 이틀내로 월사금을 물지 못하면 퇴학이라는 최후통고를 내렸을 때 옆에 앉은 하나꼬의 눈기슭에는 이슬이 가랑가랑 맺혀있었다.
(흥, 눈물두 흔해빠졌다!) 덕수는 하나꼬가 자기를 진짜 동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없으면 어려운 대수문제를 저 혼자 풀기 바쁘니까 안타까와서 그러는게라고 여겼다.
그는 일본사람이라면 다 한동아리로 몰밀어서 생각하고 그 애들앞에서 쩔쩔매거나 체면이 깎이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았다.
허나 현실은 덕수의 올곧은 생각을 조롱할 때가 많았다. 학교에 있을 때는 할아버지가 송이버섯을 팔아 겨우 사준 물난 교복을 입고 다니다가도 몇잎 모자라는 월사금을 위해서 누데기옷에 짚신감발을 하고 다니는 이 덕수를 보면 하나꼬가 무어라고 할가? 덕수는 공부보다 사치를 즐기며 골목소식에 신경을 쓰는 부자집자식들의 말밥에 올라 짓씹히는것이 싫었다.
덕수는 역전적사장에 가서 삯짐을 메고 좁다란 발판으로 몇번이나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전날보다 짐은 그리 무겁지 않았지만 부피가 어찌나 큰지 드다루기 말째였다.
(도대체 무슨 물건일가?) 덕수는 쉬는 틈에 아마포로 싼 짐을 기워맨 실밥을 살짝 늦춰놓고 속을 들여다보았다. 약재가 아니면 고사리, 더덕, 버섯 따위들이였다.목재나 석탄 같은건 값이 가서 략탈해갈만도 한데 이따위 물건들을 가져다 어찌자는 수작인지 모르겠다. 덕수는 볼수록 호기심이 나서 저쪽 짐까지 살펴보려고 할 때
《네 짐이나 도적질 했소까!》하는 앙칼진 소리와 함께 피대로 만든 채찍이 그의 넓은 미간에 날아들었다. 눈에서 불이 번쩍하더니 뜨거운것이 입안에 찝질하게 흘러들었다. 덕수가 정신을 차리기도전에 왜놈감독은 그를 병아리채듯이 끌고 화물처사무실로 향했다. 왜가리처럼 기다란 목을 한 감독놈은 덕수를 화물처옆의 좁은 방에 처넣고 무어라고 씨벌이다가 밖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에 문을 잠그고 나갔다.
문짬으로 안타까움에 푹 젖은 녀자애의 목소리가 새여들었다.
《이게 몇달째에요, 어머닌 딴건 잡수시지 않고 좋은 버섯만 보이면 인차 얻어달라구 했는데.》
퍼구나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체! 너의 애빈 삼림조사대까지 다닌다는게 하찮은 나에게 버섯구걸을 해, 나두 산에 갔다 송이버섯 한근밖에 못 얻었다.》
《그럼 그거라두 줘요.》
《줘? 헤헤, 나두 거기다 한두근 더 보태서 보낼데 따로 있단말이야. 남은 박사가 되겠노라 벼르는데 나라구 똥눈 자리에 그냥 물앉아있을수는 없지.》
《아잇, 오빠 그것두 말이라구 해요?》뒤미처 문여닫는 소리가 탕! 울리더니 비웃음이 섞인 감독놈의 목소리가 캥캥거린다.
(내가 제맘대로 하니까 뒤에서는 나를 망종이니 제명에 못살놈이나 하고 욕했다지. 대학교 다녔다구 너무 그러지 말라니깐, 이보게 하나꼬 애비!)
뭐, 하나꼬? 그럼 저자가 하나꼬의 오빠란말인가? 어쨌든 하나꼬가 이 피투성이된 동창생을 보지 않았으니 다행이였다.
덕수는 매일 오후시간을 리용하여 이레째나 삯짐을 진 공전 대신 도적질했다는 루명으로 미간에 엇비스듬하게 내리째진 숭터를 남기게 되였다.
몇푼 모자라는 월사금 때문에 또 할아버지를 수고시키지 말자고 한노릇이 이렇게 되자 덕수는 기가 막혔다. 이젠 할아버지를 찾는외 딴 방도가 없었다.
2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락엽더미를 밟으며 천불지산의 서리골로 들어가던 덕수는 뜻밖에도 송이밭 근처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물망태를 둘러맨 할아버지는 손자를 보자 기뻐하다가 미간에 붙인 붕대를 발견하고는 인차 낯빛이 달라지는것이였다.
《무슨 일이 생긴게로구나. 방학전에는 안온다 하구가던게…》
덕수가 운동시합을 하다가 철봉대에서 다쳐서 그렇다고 말하는데 저쪽숲에서 솨르륵솨르륵 소리가 났다. 메돼지무리가 아닌가고 눈여겨보니 센또보시(운두가 높은 일본모자)를 삐딱하게 쓴 사람들이 측량기를 둘러멘채 그들앞으로 다가오고있었다.
《삼림조사대놈들이구나.》할아버지는 이발새로 내뱉듯 말하면서 덕수의 동실한 어깨를 껴안았다. 가슴에까지 검은털이 부스스한 털보녀석이 뻐드렁이발을 드러내놓고 지분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봐 령감상 좋은 버섯이나 많이 캤소까?》
할아버지의 그물망태를 자세히 보던 털보녀석은 허벅다리를 철썩 치며 고아댔다.
《이 송이버섯 어디서 캤소까. 앙!》
송이버섯이란 말에 조사대원들은 똥 본 쉬파리떼처럼 와-하고 몰려들었다. 그들은 마치 제 주머니물건을 다루듯이 싱싱하고 특이한 향기가 풍기는 송이버섯을 제가끔 한송이씩 꺼내들고 지껄여댔다.
《이거 참, 만주로 와서 처음 보는 송이버섯이야!》
《송이버섯은 버섯중의 왕이라 하더니 원체 모양새부터 따구먼!》
《그러게 송이버섯은 천황페하식탁에 오른다구 하잖아!》
조사대원들은 서로 찧고 께끼면서 송이버섯에 대한 찬사를 늘여놓더니 그중 몇놈은 한웅큼씩 쥐여 자기 배낭에 넣는것이였다.
《아니, 이게 무슨짓들이우, 주인의 승낙도 없이!》
《뭐, 주인?! 하하하! 령감은 황국신민이구 진짜 주인은 우리란 말이야. 이 수림도, 이 송이버섯도 말이야!》털보놈이 우쭐해서 하는 소리였다.
배낭이 불룩해지자 놈들은 나머지를 개울물에 씻어서 려행용남비에 넣 고 끓여먹을 잡도리를 하였다.
할아버지는 한나절이나 신고하여 겨우 뜯은 송이버섯을 눈깜짝할새 떼운것이 원통하여 거친 숨만 몰아쉬고있었다.
그래도 허여멀쑥한 얼굴에 검정테안경을 쓴 조사대원만은 송이버섯을 한송이도 자기 호주머니에 넣지 않고 덕수네를 동정어린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덕수는 자기를 공부시키려고 이 심산유곡에서 산나물을 뜯으며 갖은 고생을 다하시다가 놈들의 수모까지 받은 할아버지를 보기 딱해 집으로 오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하였다.
《할아버지 전 학교 그만둘래요.》
《에끼, 이녀석! 할아버질 생각한다는게 고작 그렇냐, 예전에 한석봉의 모친은 베를 짜면서 아들을 학자로 키웠다. 더구나 고학하다가 죽은 애비 몫을 생각해서라두 그럴수 있냐!》
한창 20대의 피끓는 청년이였던 덕수 아버지는 우리 나라가 락후하기 때문에 놈들의 업심을 받는다고 여기고 분연히 일본으로 고학을 떠났다. 아버지는 검은 빵쪼각으로 끼니를 굼때우면서 부지런히 자습하여 제국대학 생물계에 붙었는데 진눈까비가 흩날리는 어느날, 수업료를 장만하느라 화물선에 짐을 메여나르다가 그만 발판에서 미끌어떨어졌다. …그때 덕수를 갓 낳은 어머니는 아버지의 부고를 박고 련 며칠 통곡하다가 심화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더니 역시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말았다.
덕수는 할아버지가 노여워 수염마저 부르르 떠는것을 보고 말없이 그물망태를 둘러메였다.
《암, 그래야지. 그런데 오늘은 늦었다. 래일 나와 같이 송이버섯을 뜯어서 월사금을 마련해보자.》
3
덕수는 송이버섯 팔러 장거리로 나갔다가 보자기를 펼치기도전에 겨릅대같이 여윈 한 일본녀인에게 손목을 잡혔다. 자기가 몽땅 사고 돈도 후하게 주겠으니 자기 집으로 가자는것이였다.
령사관골목곁에 있는 아담진 기와집뜨락에 들어서자 녀인은 어린애들처럼 기뻐하며 안방에 대고 소리쳤다.
《얘야, 송이버섯을 사왔다, 거 돈지갑을 이리 내보내라.》
《네에. 곧 나가요.》뒤미처 다다미(일본식구들)를 밟는 소리가 가볍게 나더니 턱밑에 까만 짐이 있는 소녀애가 이마를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훔치면서 나타났다,
《아니 너 덕수 아니냐!》놀라모가 기쁨이 섞인듯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리자 덕수는 무슨 모욕이라도 당한듯 얼굴이 확 붉어졌다.
어안이 벙벙해서 서있던 아주머니는 딸과 덕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그제야 눈치를 알고 수선을 떨었다.
《하나꼬야, 그럼 너희들은 동창생이 되겠구나!》
하나꼬는 어머니에게 가볍게 머리를 끄덕여보이고나서 덕수앞으로 다가아왔다. 하나꼬는 덕수가 자존심이 강한 애라는것을 알고 딴말을 까딱 하지 않고 서투른 조선말로
《얘, 좀 놀다 가렴, 우리 집엔 별건 없지만 책만은 별의별게 다 있단다.》하고 진심스레 권하였다.
책이라는 말에 덕수의 팽팽해졌던 얼굴에는 인차 희색이 돌았다.
웃방 서재에는 황경피나무로 짠 커다란 책장이 두 개나 놓였는데 거기에는 이름모를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책이란 책은 거의 동식물에 유관된 내용이였는데 산뜻한 채색그림까지 끼여있어서 쥐면 놓고싶지 않았다. 덕수가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펼쳐보니 거기에는 《제국대학 생물계》라는 글자와 책을 산 날자가 적혀있었다.
(아니 그럼 하나꼬의 아버지두 우리 아버지가 다니던 그 학교 다니지 않았는가?) 덕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해서 두리번거리다가 벽에 걸린 사진액틀에 눈길이 갔다, 거기에는 허여멀쑥한 얼굴에 검정테안경을 쓴 분이 자기를 보며 자애롭게 웃고있었다.
지난 주일 송이밭근처에서 봉변을 당했을 때 덕수네를 동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그 얼굴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옆에는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왜가리목이 입을 헤벌리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덕수는 똑마치 맛좋은 송이버섯국에 똥파리가 떨어진것처럼 께름직하고 분한 생각이 울컥 치밀었다.
덕수는 하나꼬가 북해도특산이라며 누릿누릿하게 구운 고구마를 주는것도 마다하고 하숙집에 가겠다고 급작스레 서둘렀다. 하나꼬와 그의 어머니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별수가 없어 송이버섯값을 치러주었다. 덕수는 한달분어치 월사금이 될만큼 돈을 가지고 나머지는 막무가내로 도로 내놓았다.
송이버섯은 맛도 좋지만 약효가 있는 식물이다.
보기 구차할 정도로 가냘파보이던 하나꼬 어머니는 송이버섯을 자시더니 몸이 푸들어져서 온 집식구가 기뻐 야단이였다. 그리고 가을원족을 갈 때였다. 덕수는 하나꼬가 덕수 몰래 준비해둔 음식을 가지고 할수 없이 따라갔다. 점심이 되자 동무들은 자기가 가져온 음식을 승벽내리로 내놓았다. 그러나 그가운데서도 가장 소문놓은것은 하나꼬가 가져온 버섯찜이였다. 쫄깃쫄깃 한데다가 특이한 향기가 풍기는 채를 집으며 모두 혀를 끌끌 차며 야단법석이였다.
덕수는 별로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고 소리라도 버럭버럭 지르고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4
공일이 돌아오자 덕수는 하나꼬네 집에서 빌린 책을 가지고 해란강기슭으로 나왔다.
남에게 빼앗긴 땅이 됐건만 새들은 그런줄도 모르고 귀청이 따갑게 지저귀고있었다.
수양버들밑에 자리를 잡은 덕수는 책을 펼쳐들었으나 웬 일인지 한글자도 읽을수 없었다.
그저께오후, 덕수는 산에서 내려온 하나꼬 아버지를 만났다. 그때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한 하나꼬 알고 책장의 책을 마음대로 가져다보라고 이르고나서 이렇게 한마디 덧붙였다.
《나두 생물학박사학위를 노렸댔네. 헌데 시국이 어디 그렇나? 붓 대신 측량기를 메고 이 땅에 번영을 가져다준다고 나온 우리가…어쨌든 량심대로 살기두 바쁜 때야!》
하나꼬 아버지가 말하는 량심이란 대체 어떤것일가? 덕수는 감아줜 책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토닥거리다가 불현듯 출렁! 하는 물소리에 놀라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뒤에는 하나꼬가 손가락을 입술에 댄채 생글거리고있었다. 연분홍 저녁노을을 한껏 받은 하나꼬는 이름 그대로 한떨기 꽃 같았다.
덕수는 불시로 할 말이 없으니까 잔잔한 물결우에 휘늘어진 버들숲이며 락조가 끓는 강심을 가리키며 자랑삼아 말하였다.
《경치가 어떻니?》
《그래두 우리 나라 후지산보다는 어림두 없어.》
그 말에 덕수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쐐기를 쳤다.
《체, 내 어디 산 이야기를 꺼냈니. 정말 명산을 꼽을 내길 하면 우리 나라 장백산이 제일이지!》
《아니야, 지리교과서랑 봐두 후지산이 세상에서 제일 웅장하고 아름답다 했어.》
덕수도 지려 하지 않았다.
《장백산맥의 주봉인 백두산꼭대기에는 넓은 호구가 있고 몇십길되는 폭포도 있거든. 그런데 후지산에는 그런게 있니?》
하나꼬는 처음 듣는 말인지라 두눈만 말똥말똥 하였다.
《그리고 장백산일대에는 산삼, 록용과 같은 좋은 약재와 홍송, 들메, 항철나무 등 훌륭한 목재가 많지. 게다가 산나물은 어쩌구, 너의 어머니도 송이버섯 때문에 몸이 좋아지지 않았니?》
하나꼬는 말문이 막혔다. 자기 나라 자랑을 하자니 어쩐지 할 말이 적은것 같았다. 그러나 필경 머리가 잘 도는 하나꼬인지라 화제를 딴데로 《진공》을 들이대였다.
《아무리 보배가 많아도 쓸데 있남, 쓸줄을 모르면 없는거나 마찬가지지.》
《쓸줄 모르다니?》
《생각해봐, 이 좋은 보밸 두고 이 나라 백성들은 아주 가난하게 살거든.》
《…》덕수가 잠자코 있자 하나꼬는 더욱 열을 올렸다.
《그러게 봐라, 우리 아버지랑 대신 삼림을 조사해주지 않니?》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덕수는 무슨 도리를 말하려고 했으나 전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아 갑자르다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걷어치워, 내가 이제 공불 잘해서 뭐나 다 우리 절로 할수 있게 하겠어!》
그들 둘은 서로 언짢은 기분으로 갈라졌다.
집으로 돌아온 하나꼬는 괜히 덕수를 골려준것을 몹시 후회하고있는데 어머니가 밥상을 차리며 싱글벙글 야단이였다.
《어머니, 웬 일이세요.》
하나꼬 어머니는 대답 대신 맛갈스러운 송이버섯채를 상우에 놓으며 신비스러운 표정을 해보였다.
《송이버섯은 맛만 제일인가 했더니 정력제로도 그저 그만이라 하는구나.》
《그걸 어떻게 알았나요?》
《이번에 너의 아버지가 덕수 할아버진데로 찾아가서 같이 술잔을 나누면서 들은 이야기란다.》
《그럼 이 송이버섯도…》
《그래 그렇구말구. 덕수 할아버진 마음도 무던한 분이야!》
《아이참, 어머니는 갖다주면 잡술줄만 알구 은공은 안갚아요?》
《말 말아라. 얘야, 너의 아버진 다 예산이 있더라!》
하나꼬 어머니는 누가 엿듣기라도 하듯이 딸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아버지가 덕수 할아버지를 도와 송이버섯특별허가를 맡고 돈벌이 하게 할 예산이란다.》어머니의 말을 다 듣고난 하나꼬의 얼굴은 활짝 핀 해바라기 같았다.
5
여름방학을 한 이튿날, 덕수는 아껴먹고 아껴쓴 돈으로 할아버지에게 드릴 베점삼 한감을 사고 하나꼬도 어머니가 덕수 할아버지께 드릴 례물을 싼 보따리를 들고 자동차에 올랐다.
덕수와 하나꼬는 이번에 같이 버섯표본을 채집하기로 했던것이다.
천불지산어구 큰 박달나무근처에서 그들 둘은 차에서 내렸다. 하나꼬는 기다리던 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안달아났다. 덕수는 갈증이 나서 개울가로 다가갔다. 손바가지로 물을 뜨려고보니 숱한 삭정이며 감탕 같은것이 떠내려오는바람에 무춤 서버렸다. 고개를 번쩍 쳐든 덕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그만 못박힌듯이 우뚝 서버리고말았다.
밋밋한 상릉선을 따라 울창하게 들어섰던 소나무숲은 염병을 하고난 사람의 머리처럼 빤빤해졌다. 개울가기슭에 얼마 남지 않은 신다리만큼한 홍송을 채벌하느라고 민부들이 까맣게 덮여있었다.
이곳은 송이버섯이 많이 돋는 송이밭이란 곳인데 할아버지가 삼림조사대원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가슴을 치던 곳이다.
아, 홍송림! 불쌍한 할아버지가 이 송이밭만 있으면 덕수의 월사금은 문제없다고 기뻐하시던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니였던가!
덕수의 눈에서는 눈물이 괴였다. 어금이에서는 으드득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섭게 일그러지는 덕수의 얼굴을 보고 하나꼬는 겁이 더럭 나서 웨쳤다.
《너 왜 그러니, 응?》
덕수는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하나꼬더러 자기 뒤를 따르라고 손시늉해보였다. 하나꼬는 혼자서 아버지를 기다리기 어려운지라 부득이 덕수를 따라갈수밖에 없었다.
집마당에 들어선 덕수는 뭉청 잘린 덕대주위를 눈이 휘둥그래서 돌고있는데 하나꼬가 허리를 굽히고 무엇인가 살피다가 《아잇, 피!》하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순간 덕수의 머리에는 불길한 예감이 앞서서 큰소리로 《할아버지!》하며 귀틀집 문을 와락 열어제꼈다. 그러나 맞아주는것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검정테안경을 낀 하나꼬 아버지였다.
《아니, 선생님!》
《아버지!》
덕수와 하나꼬는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쉿! 떠들지 말아, 할아버진 금방 잠드셨어.》
덕수는 발소리를 죽이면서 머리에 붕대를 두른 할아버지 가까이로 다가갔다. 고르롭게 숨을 쉬는걸 봐선 큰 문제가 있을것 같지 않았다. 눈확에 가득 고인 눈물을 소리없이 떨구는 덕수의 손목을 잡고 하나꼬 아버지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하나꼬 아버지는 한숨을 지으며 할아버지가 상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였다.
…삼림조사대는 천불지산부근의 삼림을 다 측량하고나자 민부들을 강제로 뽑아서 송이밭이라는 홍송림부터 밀채벌을 들이대였다. 채벌대 총감독은 새로 승급한 왜가리목이였다. 왜가리목은 삼림조사대 대장으로부터 경찰서 서장으로 승급된 털보놈의 은공에 보답하기 위하여 오늘 오전에 졸개들을 거느리고 이 귀틀집에 달려들어가 송이버섯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할아버지를 강박하였다. 덕수 할아버지가
《흥, 네놈들이 소나무를 다 찍어버리구 송이버섯을 내라구? 닭알을 먹겠거든 죽은 암탉을 살려내라.》고 까박을 들이대자 놈들은 할아버지를 마구 차고 때리고 하였다. 놈들이 행패를 부리고 간후 소식을 들은 하나꼬 아버지가 가만히 와서 휴대용약품을 내놨기 때문에 이만해도 다행이라는것이였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하나꼬 아버지는 더부룩한 덕수의 머리를 쓸어주며 한참이나 서있다가 이젠 딸애에게 눈짓하였다.
덕수는 하나꼬와 같이 멋들어진 버섯표본을 만들자고 한 노릇이 뒤틀리자 안타깝기 그지없어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하나꼬는 갖고 온 례물을 덕수에게 주며 할아버지를 잘 간호하라고 재삼 당부하고나서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이때, 덕수는 불현듯 뇌를 치는 생각이 들어 귀틀집구석에 걸어놓은 봇나무껍질다래끼를 벗겨들고 하나꼬의 뒤를 쫓아갔다.
《아니, 이건 뭐냐!》
하나꼬는 땀에 흥건히 젖은 봇나무껍질다래끼를 받아들었다.
《송이버섯이야, 네가 아버진데서 버섯표본을 채집한다 해도 송이버섯만은 얻을것 같지 않아 이렇게 가져왔어.》
하나꼬는 봇나무껍질다래끼에 손을 넣어 마른 송이버섯 한송이를 꺼내들었다. 회갈색비늘이 덮인 송이버섯은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하나꼬의 손에서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반달나마 덕수가 잘 간호한 덕으로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였다. 손자가 사온 베적삼을 건건하게 차려입고 술잔을 든 할아버지는 덕수가 어제 내놓은 문제에 무척 흥미를 느끼며 이렇게 대꾸하였다.
《송이버섯을 인공재배하자면 대단히 까다롭지. 원체 그 물건이 온도나 습도에 대한 요구가 특별하구 돋을 때 시간을 어겨 뜯기만 해두 안되니까말이다. 허나 너희들대에 가서야 별문제지. 사회가 발전하니까말이다.》
6
하나꼬는 천불지산에 왔다 간 다음부터 세상일이 동화세계처럼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외사촌오빠라는 작자가 덕수 할아버지께 부린 행패는 너무나도 어리석은것 같았다.
서재앞에서 이런 생각에 골몰해있던 하나꼬는 이제 지은 작문을 수개하려고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버섯균연구》라는 책이 있었다. 그제야 하나꼬는 아버지가 덕수에게 가져다주라던 부탁을 생각하고 버릇처럼 혀를 홀랑 내밀었다.
하나꼬는 들가방에다 아버지가 준 책을 넣어가지고 덕수가 들어있는 하숙집으로 향하였다. 이때 덕수는 주인집 심부름으로 국수를 사러 사꾸라랭면옥에 가있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겨우 표를 사든 덕수가 줄뒤 끝에 서있노라니 누군가 그의 엉뎅이를 툭 쳐놓는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번 하였다. 피뜩 보니 삼림조사대 대장으로 승급된 왜가리목이였다.
《저놈을 그저…》덕수가 주먹을 불끈 쥐는데 왜가리목은 고급채 몇접시를 청해가지고 비단휘장쪽으로 들어가면서 뇌까렸다.
《서장님! 덕분에 승급두 하구. 헤헤!》
《허, 자넨 빈말뿐이군, 그래 송이버섯을 례물로 가져온다구 해놓구선…》
《헤헤, 됩니다, 됩지요. 헌데 그 령감태기가 검정테안경한테 딱 달라붙어서…》
《그 요강덮개보다 못한 머릴 어따 쓰겠나. 그 령감은 유격대를 도왔다는 죄명을 들씌우구 그 검정테안경은 당국의 시책에 엇섰다는 감투만 씌우구 조겨대보란말이야, 그런 다음 슬쩍… 알만하지!》
덕수는 그길로 하숙집에 돌아왔다. 마침 하나꼬가 와 있었다. 덕수의 말을 듣고난 하나꼬는 격분한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기가 출세할 례물을 준비하기 위해 애매한 아버지까지 잡으려 들다니? 더러운 놈!)
하루밤사이 정세는 생각밖으로 달라졌다.
바람앞에선 초불마냥 간들거리는 운명을 건져보려고 일본제국주의는 마지막 발악을 하였다.
놈들은 젊은이건 늙은이건 닥치는대로 붙잡아다 군복을 입혀선 전쟁터로 내몰았다. 그리고 후방에서는 요해적인 시설을 없애버리며 기술간부들을 슬몃슬몃 국내로 빼돌리기 시작하였다.
이바람에 녹아난것은 털보와 왜가리목이였다. 이자들은 징병등기소에 불리워갔다가 차바곤에 갇힌채 어디론지 실려갔다.
하나꼬네는 오늘 저녁차로 이곳을 떠나 귀국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슬픈지 기쁜지 하나꼬 아버지도 잘 몰랐다. 축구뽈처럼 차는대로 오가는데 가서는 또 어떤 운명이 기다릴는지?
하나꼬 아버지는 덕수네 일행이 오기전에 벌써 짐을 역전으로 실어내갔다. 짐이래야 책박에 없으니 이사도 간편했다.
하나꼬 아버지는 휑뎅그렁한 집에서 나오다가 마주오는 덕수 할아버지를 보고 흠칫 놀랐다.
《아니, 로인님께서 어떻게?!》
《글세 난 덕수보러 왔다가…들을라니 하나꼬네가 도루 북해도로 간다면서!》
《네, 갑작스레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내 정말 면바로 왔군. 좌우간 그간 나와 우리 덕수 때문에 고생이 많았는데 뭘로 보답할게 있어야지.》
덕수 할아버지는 가지고 온 송이버섯을 보짐채로 하나꼬 아버지한테 맡겼다.
하나꼬는 그때까지도 북해도로 되돌아간다는 말이 정말인지 거짓인지 몰라 두눈만 크게 뜨고있다가 사실인줄 알자 그만 덕수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눈에 가랑가랑 맺혀있던 이슬이 두볼을 타고 흘러내려 턱우에 있는 팥알만한 검은 짐 주위에 맺혔다가 똑똑 떨어진다.
하나꼬 아버지는 트렁크에서 덕수가 평소에 몹시 아끼고 즐겨보던 책을 한묶음 내놓았다.
《책을 잘 보게. 아버지몫까지 자네가 마저 해야 하잖겠나. 여기에 <버섯균연구>라는 책도 들어있는데 앞으로 좋은 버섯도 많이 키워내길 바라네!》
차시간이 다가오는지라 그들은 천천히 정거장으로 향하였다. 하나꼬는 눈물이 글썽해서 덕수를 보고 말하였다.
《난 사실 그새 너에게 말하지 말아야 할 말을 많이 해서 널 괴롭혔어.》
《아니야, 네가 그렇게 말하는바람에 오히려 내가 더 분발하게 되었지!》
뿡!_
출발을 알리는 기적소리가 나서야 하나꼬네 식구들은 차에 올랐다.
려객들은 갈라지기 아쉬워하는 그들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일본인이라면 적의를 품고있던 그 시절에 두 가정사이에 맺어진 우정은 그야말로 평범하지 않았다.
뿡!_
기적소리가 재차 울렸다. 하나꼬는 눈물범벅이 되어 덕수를 향해 힘껏 손을 저었다.
하나꼬 아버지도 어머니도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으며 덕수 할아버지와 작별인사를 보냈다.
《이렇게 갈라진것이 거의 50년에 가까워오지요.》
하나꼬교수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후-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런데 하나꼬교수는 이번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가요?》김국장이 이렇게 말하자 하나꼬교수는 기다렸다는듯이 인차 말을 받았다.
《모두 이렇게 생각할줄 알았습니다. 나는 무역일군이 아니니깐. 그런데 나는 대학교에서 세계의야생식물을 강의하다가 송이버섯이란 말만 나오면 해란강기슭에서 장백산의 특산을 가지고 나를 꼴먹이던 이 동창생을 잊을수가 없었지요. 하여 겸사겸사해서 이러허게 찾아왔습니다.》
《하하, 꼴이라니요.그땐 그래도 하나꼬교수가 이겼지요.》
《그때 이겼을게면 우리가 이렇게 몇십근 되는 송이버섯 때문에 직승비행기까지 동원하겠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모두들 이 문제 때문에 궁금해하는 눈치를 보자 하나꼬교수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송이버섯질량을 분석한바에 의하면 천불지산에서 나는 송이버섯이 세계에서 제일 훌륭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돈을 아끼지 않고 송이버섯을 사러 왔습니다.》
하나꼬교수가 정색해서 하는 말에 모두 웃었다.
《그러구 보면 이번엔 김덕수군이 이긴셈입니다.》
하나꼬교수가 하는 말에 김국장이 급히 시정하였다.
《환경오염이 적고 생태평형을 견지한 면에서 그 말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과학기술면에서야 우리가 일본에 지고있는것이 뚜렷하지요.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일본을 이길 작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잔 듭시다.》
김국장의 의미심장한 말에 중일 쌍방의 무역일군들은 연회석이 떠나갈듯 박수를 친 다음 술잔을 높이 들었다.
도솔사와 도선사
천불지산 서쪽에 있는 혜남동에 가면 남북으로 사오리되게 뻗은 골짜기가 나타난다. 이 골짜기를 따라 도보로 6리쯤 되는 곳에 형태가 기이한 로송과 다섯채의 바위가 서로 얽혀 절경을 이루고있는것을 볼수 있다. 일명 현암바위 혹은 요행바위라고도 불리우는 이 풍경점에서 실개천을 건너가면 비교적 펑퍼짐한 돈대우에 이끼돋은 검스레한 기초돌과 무너져내린 돌담을 볼수 있다.
이 곳에는 옛적에 이름을 숨기고 사는 한 무명스님이 백성들의 시주를 받아 지은 자그마한 사찰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절이름을 하나뿐인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절 이름은 도솔사 아니면 도선사로 활용해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까닭은 무엇일가? 여기에는 이런 뜻깊은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바로 7백년전이였다.
고려말기의 왕권은 극도로 쇠약해져 무인들에 의하여 휘둘렸고 조정의 대신들은 당쟁에만 눈이 어두워서 주변 강국들과의 관계를 잘못 처리한 결과 그 화는 백성들에게 덮씌워졌다. 이중, 삼중의 압박과 수탈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자기들을 구해줄 구세주의 출현을 고대했고 상류층의 선비들 가운데는 유교보다도 풍수지리설에 현혹되여 새로운 군주의 탄생을 예언하는데 신경을 썼다.
명당자리에서라야 위인이 나온다고 확신한 그들은 조선팔도를 메주 밟듯이 찾아다녔고 두만강기슭의 산들도 샅샅이 훑으면서 신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선비들 중에는 도선이라는 청년도 있었다. 학문이 깊고 음양학설에 밝은 그는 어느 하루 두만강북안의 백금으로부터 시작하여 동북방향으로 반나절 걸으니 그다지 깊지 않은 골짜기가 나타났다. 골짜기 왼쪽켠은 바위우에 소나무가 서있는 벼랑이 이어지고 바른쪽은 완만한 경사가 파도쳐내린 혼성림지대였다.
내처 6리쯤 걸으니 배가 고프고 다리가 후둘거렸다. 그래서 그는 구멍이 숭숭 뚫린 흑석우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잠시 다리쉼을 하기로 하였다. 그가 고개를 들고 무심중 맞은켠 산을 바라보았다.
운무속에 감춰졌던 다섯 개의 바위가 서서히 웅자를 드러내고있었는데 책을 많이 보아서 시력이 나빠진 탓인지 똑똑히 보려고 한껏 눈살을 쪼프릴수록 잘 보이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다섯개바위는 빙빙 도는 수레바퀴처럼 도선의 머리를 아찔하게 만들었다. 눈을 쉬우려고 그는 잠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알수 없는 기흐림이 몰려들며 그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였다. 삽시간에 겹쳤던 피로는 싹 가셔지고 무아몽중의 세계에 잠겨있던 그는 어디선가 날아오는 자귀밥에 옆이마를 얻어맞고 번쩍 눈을 떴다.
도선이 머리를 돌리니 안개 낀 낮다란 언덕우에서 웬 사람이 너덜너덜 해진 장삼을 입은채 자귀로 큰 나무통을 다듬고있었다. 도선은 얼얼해진 옆이마를 손으로 어루쓸며 《장삼》한테로 다가갔다. 그는 화풀이가 급하다보니 잡담 제하고 본론부터 꺼내였다.
《도대체 뭘 만드시길래 과객을 불편하게 만드시우?》
자귀를 들고 나무통을 깎던 《장삼》은 퉁명한 어조로 대꾸했다.
《눈을 뒀다 어따 쓰시오? 난 지금 목등()을 만들고있던 참이외다.》 석등()이란 말은 들어봐도 목등이란 말은 금시초문이다. 게다가 사찰도 있는데 목등을 해서 어쩌자고 저럴가?
도선의 심중을 빤히 알고있는듯 《장삼》은 손을 쫙 펴서 안개를 가리켰다. 그러자 자욱한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도선의 눈앞에 꽤 아담진 사찰이 나타났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있는 도선의 관상을 유심히 뜯어보던 《장삼》은 불현듯 정중히 합장배례하고나서 자기가 기거하고있는 선실로 안내했다.
통나무로 만든 차탁에 마주 앉아 그들은 마치 구면이라도 된듯 금강인동쌍화()를 들면서 허물없이 자신의 신상담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장삼》은 어려서 쌍친을 잃고 사찰의 동자중으로 전전하다가 나이가 들자 어깨너머로 배운 불학에 더 정진하고저 자신을 이름도 없다는 뜻으로 무명()스님이라고 칭하고 이 자그마한 사찰을 짓게 되었다고 했다.
도선도 자기의 지나온 경력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본래부터 위가 좋지 않던 그가 속이 더욱 트직해나서 련속 트림을 하였다.
《아차, 내가 그만 잊었구려. 이 쌍화차는 명목()하는데는 그저 그만이지만 많이 마시면 소화가 잘 되지 않지유.》
무명스님은 인차 도선의 손목을 끌고 사찰뒤쪽의 계곡으로 향했다. 음달진 곳에는 잎이 심장모양으로 생기고 가장자리가 잔톱니처럼 된 넙적한 잎사귀들이 바람에 흐느적거리고있었다. 무명스님은 비교적 애어린 잎사귀를 여나문개 뜯어가지고 도선한테 씹어 삼키라고 일러주었다. 도선은 배가 몹시 덧뿌룩한지라 시키는대로 하였다. 씁쓰레 하면서도 향이 짙은 잎사귀를 삼키니 뒤맛이 개운해졌다. 그래서 몇잎사귀를 더 먹었더니 트직하던 배가 시원해나며 트림도 없어지는것이였다. 도선이 의아해하며 무명스님한테 잎사귀의 이름을 물었다.
《이건 말이지유. 천불지산에서 나는 곰취라 하는데 비장과 위를 튼튼히 하는데는 그 어떤 약물보다 효험이 대단하지유.》
무명스님의 말은 사실 그대로였다. 며칠이 지나자 도선의 위는 믿기 어려울만치 좋아져서 질기고 딴딴한 음식물도 거침없이 소화해낼수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마시는 쌍화차덕분에 침침하던 눈도 밝아져 혜남동중턱에 있는 자연경관들이 또렷하게 안겨왔다.
이에 감격한 도선은 자기가 지니고 다니던 불교명전 한질을 선물로 드리고 무명스님을 도와 목등을 세운 뒤 혜남동의 풍우에 대해 아는대로 소견을 피력하였다.
《이 혜남동 산골짜기는 명당자리가 틀림없습니다. 좌쪽은 느슨한 산맥이 굽이쳐 내려오고 초목이 울창하여 청룡의 상이요, 우쪽은 험준한 벼랑우에 로송이 뿌리박았으니 백호의 기백인데 저 남쪽의 날아갈듯이 련이어진 산봉우리를 보십시유. 전설에 나오는 주작이 비천하는것 같고 저 뒤쪽의 산은 똑마치 거북이 이 골짜기전체를 안고있는것 같지유. 그런데 이 산골짜기의 지맥과 수맥이 합쳐진 곳에 이 사찰이 들어섰으니 그야말로 명당이 분명하지유. 앞으로 사찰이 향객들로 붐빌것이외다.》
도선의 거침없는 말에 무명스님은 그의 박식과 혜안에 깊이 탄복하면서 앞으로 이 사찰이 무사해지자면 어디에다 어떤 탑을 세워야 하는가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도선은 인차 대답해주었다.
《자고로 수맥은 급한것보다 완만한것이 좋다고 했은즉 이 산골짜기의 개울물이 흐르는 곳에 몇개의 소()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놓고 개울물이 크게 굽이를 트는곳에 평지가 있으면 탑을 세우는게 좋을것이외다. 그러면 이곳의 지기()가 쇠하지 않게 수기()가 보완해주어 이 사찰이 오래갈수 있지유.》
무명스님은 리치가 정연한 그의 말에 박수까지 쳐가면서 수긍을 표시했다. 불가에서는 풍수지리설을 사찰의 위치를 정하고 지키는데만 사용할뿐 그 무슨 위인이거나 성현의 출생과 련계시키지 않는다. 이 점이 무명스님과 도선의 다른점이였다. 무명스님은 자기가 창건한 사찰을 도솔사라 이름짓기로 하였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도솔천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도솔천은 육계육천()의 넷째하늘인데 속세를 떠난 혼령이 극락정토에 이르는 하나의 관문이다.
도선은 무명스님의 고안하고있는 사찰이름을 듣고서 초라한 절에 비하여 이름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내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눈치 빠른 무명스님은 도선이 자기와 함께 있는 동안 줄곧 도솔사란 말을 입밖에 내지 않는것을 보고 사찰현판에 아무런 글자도 새기지 않은채 공백으로 놔두었다.
한달나마 도선과 함께 세상 돌아가는 형편과 학문이야기로 밤을 새우던 무명스님은 도선이 비범한 사람임을 느꼈다. 앞으로 큰일을 해낼것이 분명한데 그의 몸이 허약한게 무척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하루는 도선과 함께 천불지산의 서리골로 약재캐러 떠났다.
여러 가지 약재를 캔 그들이 소나무와 봇나무가 들어선 산릉선을 따라 내려올 때 무명스님은 불현듯 걸음을 멈추고 딴딴한 고로쇠나무가지를 주어들더니 로송잎의 풀밭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좀 지나서 그는 풀밭속에서 갈색무늬가 있는 버섯 한송이를 캐여들고 도선한테로 다가왔다. 무명스님은 버섯을 쭉쭉 찢어서 도선의 입에 넣어주었다. 버섯은 쫄깃쫄깃한 고기를 씹는듯 하고 입안에서는 청신한 송향()이 감돌았다. 도선이 버섯맛에 못내 감탄하자 무명스님은 그제야 이 버섯은 천불지산의 보배인 송이버섯인데 이 버섯만 많이 먹으면 몸이 보양되고 정력이 샘솟게 된다고 알려주었다. 이로부터 도선은 여가가 있으면 늘 송이버섯을 캐여 먹군 하였다. 거퍼 반달이 되기도전에 그의 피기없던 얼굴에는 도화색이 피여나고 온몸이 날것처럼 가벼워나서 몇십리 산발을 오르내려도 힘든줄 모르게 되었다. 그래서 도선은 무명스님한테
《뭐, 신선이 따로 없는가 봅니다. 내가 바로 신선이 아닐가유?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구화산에서 고행하던 지장법사는 99세에 입적했다는데 만약 이대로라면 나는 그이보다 더 장수할것 같은데유.》라고 익살을 부렸다.
그러나 무명스님은 도선의 말을 정식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학문과 통찰력, 사람됨됨이를 모두어 생각하면 일세를 풍미할 인물인것이 틀림없는데 이제 천불지산에서 나는 금강인쌍화차와 곰취 그리고 귀중한 송이버섯까지 먹어 몸이 튼튼해졌으니 이제 이름을 떨칠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닌게 아니라 무명스님의 판단은 적중했다. 도선은 천불지산의 도솔사를 떠나서 내지로 간뒤 몇 년이 안되여 풍수지리설과 도참()설의 대가로 되었다. 이른바 도참이란 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고 길흉()을 따지는 술법을 말한다. 도선이 대성할것이라는것을 미리 예감한 무명스님은 그가 떠날 림박이 되자 조심스레 사찰이름을 짓는 문제를 꺼내였다. 머리를 갸우뚱하고 한참 생각하던 도선은 공손히 지필묵을 받아들고 아래와 같은 글귀를 남겼다.
천불지산수고송하위<>
두만강수수심사상류<>
그 뜻인즉 사찰이름이 크다해서 다 큰게 아니고 자기는 높지도 그리 낮지도 않은 사람이니 무명스님이 알아서 이름을 지으라는것이였다.
그리하여 무명스님은 사찰이름을 도솔사 대신 도선사로 지었다가 도선의 의중이 그런게 아니라고 다시 도설사로 짓는 등 여러번 반복된 고민을 하다가 아예 사찰의 현판을 공백으로 만들었다.
이리하여 천불지산 서쪽 산비탈에 있던 사찰은 한시기 도솔사와 도선사란 두가지 이름을 함께 쓰는 괴이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학섬 수집정리
두만강이 낳은 룡 리성계
지장보살이 천불로 화하여 두만강 북안의 어느 산꼭대기에 현신했다는 소문이 떠돈지 몇 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저녁무렵이였다.
먹장구름이 낮게 드리워 금시라도 대줄기같은 소낙비라도 내리퍼붓으려는 어느 침침한 저녁 검푸른 두만강 가운데로부터 날랜 룡 한 마리가 출렁하고 솟아올랐다.
연후 그 룡은 강언덕 벌판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마을우에서 빙빙 돌더니 미을 한복판을 향하여 내리꼰지더니 오간데없이 사라졌다.
(저 룡은 뉘집에 내려갔을가? 아마도 내 집으로 내려온것이 아닐가? 과연 세상에 괴이한 일이로고.)
이런 광경을 보고난 한 사나이가 이렇게 하늘을 우러러 되뇌이였다.
이윽고 마을 한가운데 고래등마냥 덩실하게 자리잡은 기와집으로부터 《응아-응아-》하는 자리러진 어린애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야무지고 웅글진 그 울음소리는 음침하게 흐려져있는 먹장구름을 헤가르며 하늘가에 서서히 흩어져갔다.
《음- 끝내 낳았구나, 울음이 저렇게 큰걸 보니 아마 이번에도 사내놈이 아닐가? 아마도 사내놈일거야.》
울음소리를 듣고난 사나이는 입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며 금방 집에 들어서서 바장이고있는데 마당으로부터 하인의 급촉한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나으리, 이젠 마음을 놓으세요. 댁의 부인님께선 이번에도 첫애처럼 두다리어간에 고추가 대롱대롱 달려있는 사내애를 낳았습지요.》
《아마도 내 아들은 저 두만강의 룡의 후손이라고 깨우쳐 알려주던 고승의 가르침은 틀림없어!》
이렇게 대답한 사나이는 관가에서 일을 보고있던 전주리씨 리자춘인데 리성계의 아버지이다.
이날저녁, 배가 만삭이 된 부인께서 몸을 풀것이란 짐작이든 리자춘은 일부러 마을주위를 돌던중 두만강물에서 룡 한 마리가 마을 한복판에서 돌다가 어느집으로 인가 내리꼰지는것을 낱낱이 보아온 그이였으니 아들이 룡의 후손이라는 확신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부인이 태기가 있자마자 매일 드바삐 보낸 리자춘은 저녁에 곤하여 잠자리에 누우면 집에 불이 달리는 꿈을 꾸지 않으면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그 속에 들어있는 꿈이였다.
(꿈도 과연 스산한 꿈이로다. 왜서 번마다 불속에서 헤매는 그런 꿈밖에 없단말인가? 아다도 내가 불에 타 죽을 꿈이 아닌가? 그나저나 해몽을 해봐야지.)
리자춘은 꿈해몽을 한다 하는 도사나 스님들을 조용히 찾아가 해몽해 보았다. 회령땅에 있는 오봉산의 사찰스님한테 해몽을 해봤고 칠보산 운주사에 있다는 스님한테도 해몽을 해봤다.
대개 해몽한 이들의 말은 저마다 제나름인데 재산이 늘어간다는 말도 있고 식솔이 늘어간다는 설도 있었다. 여하튼간에 흉몽이 아니고 길몽임이 틀림없었다.
(안사람이 아이를 배였으니 틀림없이 자식이 불어나겠지. 허나 이번에 애는 계집애일가? 사내놈일가? 사내놈이라면 우리 집안이 대를 물려받을 장수감이 되어야겠는데. 혹시 그 무슨 방도라도 없을가?)
날마다 불어가는 안해의 배를 보는 리자춘은 이렇게 속궁리를 해봤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때가 되어 대문밖에 년로한 스님이 나타났다. 아마도 동냥하러온 스님이라독 생각한 리자춘은 하인을 불러 분부를 내렸다.
《보매 찾아온 스님은 동냥하러 온것 같으니 밉든 곱든간 웃는 낯으로 그한테 쌀이나 푼푼히 떠주되 동냥주머니가 넘쳐나게 주도록 하게나.》
민간풍속에는 이른다면 집안에 새로운 생명이 태여날 때 도사나 스님이 찾아오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말고 시주를 푼푼히 하여 돌려보내야만 태여나는 자식이나 후손이 앞길이 틔인다는 말이 있기에 리자춘은 풍속을 어기지 않았다.
헌데 로승은 쌀을 받지 않고 곧추 리자춘이 있는 집안으로 곧추 들어올줄이야.
(이거 초면에 함부로 집에 들어오다니?)
리자춘은 이렇게 내키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 무슨 연고라도 있을것이라 짐작하며 로승을 맞았다.
《불면목인 스님께서 루추한 댁으로 찾아드시니 실로 감격할지어옵니다.》
미운놈한테 떡 한 개를 더 주랬다고 리자춘은 나오지 않는 웃음이였지만 그래도 례의는 소홀이 하지 않았다.
《로승은 민가에 돌아다니는 몸이라도 동냥하러 다니는것은 아니이니 고깝게 생각지 마소이다. 실은 이 마을에 와 살펴보니 대인님 댁에서 나라 기둥감이 태여날것이니 그간 마음을 바로잡고 기도라도 올리세유. 이것이야말로 자식에 대한 기대로서 제일 좋은 방토라고 하옵지유.》
로승의 뜻밖의 권고에 눈물이 날 지경으로 고마운 리자춘은 로승한테 절을 올리고 엎드리는데 로승은 그를 일으키며 한마디 덧부쳤다.
《로승은 강건너에 있는 천불지산에서 수도하고있는데 대인께서 천불지산을 향하여 기도를 올리면 만사가 대길할것이옵지유. 비록 청불지산을 여느 산보다 우뚝 유표하게 높지는 않아도 명산으로 전해지고있으오니 먼발치에 있는 보살님만 령험한가 하시지 마시고 코앞에 있는 보살님도 령험하다는것을 념두에 두세유.》
듣고보니 리차준이 일부러 먼곳에 있는 절에만 찾아가 기도를 올린것을 로승은 빤히 알고있는 모양이다.
리자춘이 상세한것을 묻기도전에 로승은 쌀도 받지 않고 결연히 자리를 떴다.
《천불지산의 로승께서 손수 찾아까지 와 깨우쳐주시다니. 실로 로승의 가르쳐준 그 은해 난망이옵니다.》
리자춘은 이미 떠나간 로승의 뒤에 대고 이렇게 사의를 올렸다.
아마도 천불지산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것인지 똑똑히 알고저 리자춘은 하인을 강건너에 보내여 알아보았다. 하인은 여러 고장을 돌아다니던중 끝내 천불지산이 두만강북쪽안에 있다는것을 알아내였다.
(자식에게 큰 기대를 두려면 방토를 하라고 하였으니 그 로승의 뜻에 따를것도 바쁜일이 아닐것이로다.)
천불지산의 로승이 깨우쳐준 그후부터 리자춘은 매일 이른 아침마다 일어나 두만강건너에 있는 천불지산을 향해 단정한 몸매로 마음을 다잡고 곧 태여날 자식을 위해 일심으로 기도를 올렸다.
드디여 두만강변의 마을 종성에서 둘째아들 리성계(다른 일설에는 영흥에서 태여났다고 함)가 태여나자 리자춘은 종성을 떠나 영흥에 와서 상방도만호벼슬에 올랐다.
리성계가 자라난 곳은 함경남도의 군청이 자리잡은 살기좋은 고장 영흥이다.
《얘야, 너는 두만강룡이 나한테 보내준 자식이란걸 천불지산의 고승께서 가르쳐준것이니 너도 컸으니 이런걸 알아야 한다.》
리자춘은 늘 건실하게 자라는 둘째를 보고 이렇게 타이르군 했다.
말그대로 리성계는 아이쩍부터 궁술에 대해 흥미가 아주 컸다. 그는 아버지가 밖에 나간뒤면 벽에 걸려있는 아버지 활과 화살을 가지고 야외에 나가 부지런히 궁술을 익혔다.
어느 한번 궁술을 익혀가느라 정신없었는데 갑자기 하늘공중에서 부터 보라매 한 마리가 급작스레 아래로 내리꼰지고 있었다.
(옳지, 네가 꿩고기를 먹으려고? 내가 먼저 네 고기를 먹을테다.)
이렇게 생각한 리성계는 보라매를 향해 화살 한 대를 쏘았다. 하지만 화살은 화살대로 날아갔고 보라매는 보라매대로 제갈곳을 가고말았다.
이에 마음이 몹시 상한 리성계는 남은 두세대의 화살을 몽착 꺾어버린뒤 활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리성계는 제또래 아리들을 데리고 편을 짜서 그렇게 즐겨놀던 군대놀이에도 나가지 않았다. 군대놀이를 놀라치면 리성계는 언제나 장군이 되어 누구나 자기 령에 고분고분 해야지 거역해 나서는 애만 있으면 그애한테 군률을 단속한다며 사정없이 벌을 내렸는데 어떤 때에는 회초리를 가지고 마구 때리기까지 했다. 하여 그이 또래 아이들은 리성계앞에서 고분고분 령을 받들었다.
《얘야, 궁술이란 수월하게 익히는것이 아니다. 장수란 모든 무예를 배속에서부터 익혀가지고 나오는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평소에 땀동이나 흠썩 쏟아가며 손수 익혀야만 하는것이란다. 네가 대체 며칠간이나 활궁을 다루어보고 벌써 상심하는거냐? 그러하니 조급해말고 계속 익혀봐라.》
아버지는 이렇게 아들 리성계에게 가르쳐주었다.
실상 리성계의 아버지는 아들이 몰래 활을 다루는것을 못본척 했디만 그는 아들의 거동을 낱낱이 알고있을줄이야.
아버지의 타이름을 듣고난 리성계는 더는 제또래 아이들과 전쟁놀음이나 군대놀음에 몰두하지 않고 또다시 활을 다루는 궁술을 익혀갔다. 일부러 산속에 다니며 사냥을 하면서 사슴을 만나면 사슴을 쏘았고 노루나 토끼, 꿩이나 매를 만나면 꼭 쏴서 잡았는데 그의 궁술은 날따라 늘어갔다.
그는 승마술도 부지런히 익혔는데 집에는 그의 마음에 드는 말이 없었다. 여러모로 생각하던 끝에 리성계는 아버지앞에 나섰다.
《아버님, 날랜 룡마 한필을 사주세요.》
《금방 승마술을 익히는가 했더니 갑자기 룡마는 웬 룡마란 말이냐? 있는 말등에 오르면 될거지.》
리성계의 아버지는 도리머리를 떨었다.
《아버님, 저의 궁술을 보세요. 그저 궁술만 익숙하고 승마술이 서투르면 그게 무슨 장수인가요? 소자한테 변변한 룡마마저 없는것이 그래 무슨 장수감인가요. 인제 룡마가 없으면 소자는 문밖출입을 금지하겠사옵니다.》 끝날같은 아들의 장래를 바라보는 리자춘은 마음이 동하지 않을수가 있으랴.
그때 리자춘의 큰 아들은 사냥에 몰두하다보니 그만 사냥하러 깉은 산속에 들어갔다가 날랜 범을 만나 곡경을 치르었기에 둘째한테 말을 사주지 않으려고 저어했던것이다.
허나 불같은 둘째아들의 성화에 누군들 감히 견디여 낼까.
《그럼 좋다, 네가 마음에 드는 룡마를 골라라.》
리성계가 하도 룡마타령을 하는통에 더는 못견디게된 아버지는 끝내 아들한테 색갈이 좋고 아주 날랜 룡마 한필을 사주었다.
승마술을 제대로 익숙하게 익힌 리성계는 매일 화살을 쏜뒤 말더러 따라잡으라고 말의 속도를 재촉하며 부지런히 훈련시켜갔다.
어느날 리성계가 산속으로 사냥을 갔다가 밤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데 고요한 동리의 한집에는 유표하게 등불이 환하게 켜져있었다. 어인일이냐 호기심이 부쩍 동한 리성계는 살금살금 그 집에 다가서서 살펴보니 웬 선비가 등불을 켜놓고 골똘히 책을 읽으며 한참 공부를 하고있었다.
(내가 귀신처럼 궁술로 저 등불을 꺼버릴수 없을가? 아니 아직은 백발백중할 솜씨는 못된다. 자칫하면 인명사고라도 나면 어쩔라구. 아서라.)
리성계는 이렇게 궁리해보니 얼마전에 보리매를 헛쏜 일이 떠오르는지라 그저 몇번인가 빈황만 만월처럼 늘구었다가 말았다.
하건만 그냥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똑바로 앉은채로 있는 선비는 선비나름대로 열심히 글공부에 집념하고있지 않는가. 나도 저 선비처럼 열심히 궁술을 익여야겠군.
그런 일이 있은후 리성계는 매일 궁술을 익히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모들이 일부로 사준 백룡마를 타고 야산이나 깊숙한 산속으로 마구 쏘다니며 사냥으로 궁술을 익혔다.
한동안 궁술을 로련하게 익힌 리성계는 끝내 그 선비가 켜놓은 등불을 활을 쏘아 몇 번이나 꺼놓았지만 그 선비는 도깨비작간으로 여기고 다시는 불을 켜지 않고 글공부를 하였다.
리성계는 룡마를 타고 함경도지방의 깊은 산속을 동네집 나들듯이 다녔는데 어떤 때에는 그는 하루에 400여리씩 달리군 하였다. 그는 기이한 바위를 보면 재치있게 화살을 쏘아 표적을 남겨놓았다.
리성계는 수창궁에서 열린 무예비기기에서 승마술이나 궁술은 물론 십팔반무예까지 그 누구보다 으뜸이였다.
그후 어엿한 나라의 장수가 된 리성계는 아버지를 따라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와 고려변방을 소란하는 홍건적을 물리치는 판갈이싸움에서 선두에 서서 용맹을 떨쳤다.
유명한 증산싸움에서 용맹을 떨쳤고 박달천이란 무서운 적수를 쳐없애 나라에 큰 공을 세웠는데 매번 싸움마다 앞장에 선 리성계는 언제 한번도 싸움에 진적이 없다보니 마침내 그는 고려조정에까지 떳떳히 이름을 떨쳤다.
어느해 여름 두만강하구에 있는 적섬()에는 흉악하고도 날랜 해적무리가 조산부근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구 로략질하고있었다. 큰배를 가지고있는 해적무리들은 수효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아주 교활하여 대낮에는 몸을 숨기고있다가 어두운 밤중이되면 어김없이 민가에 달려들어 마구 털었는데 지방의 관청의 군사도 이 해적무리를 감히 어쩌지 못하였다.
하여 두만강 하구의 백성들의 원성은 날마다 높아져갔고 해적무리들은 제딴에 기세가 도고해졌다.
나라조정에서는 함경북도 도청에다 령을 내려 안하무인으로 략탈하고있는 해적무리를 잡아치우도록 하였다.
나라조정에서는 함경북도병마사로 있었던 리성계의 아버지 리자춘은 이 해적무리들을 쳐없애버리려고 조정에 품하여 아들을 적섬에 보냈다.
《고약한 해적무리놈들을 몽땅 잡아야지.》
적섬주위에 있는 마을에 닿은 리성계는 어두운 밤을 타서 주이가 험악한 적섬에 오른 뒤 해적무리들을 들이쳤다.
나어린 장수 리성계는 앞성에 나서서 지혜를 떨치며 병사들을 지휘하였는데 그가 뽑아든 피파검은 그의 손에서 윙-윙- 소리를 내여 해적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한차례 가렬한 싸움에서 리성계는 해적을 한놈도 놓치지 않고 몽땅 없애버려 조산마을의 화근을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그뒤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리성계는 북도병사 겸 삭방도만호라는 벼슬에 올라 나라의 변방을 굳건히 지켜냈다.
어느날, 리성계는 비몽사몽간에 꿈을 꾸었는데 실로 알수 없는 꿈이였다.
(참으로 괴이한 꿈이로군. 꿈 해몽을 해보자면 고승을 찾아가야 할터인데 천불지산의 고승이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찾아가련만 누구를 찾아가보면 좋을런지.)
리성계가 북도병사란 벼슬에 오르기 일찍 전에 천불지산에 은거했던 고승은 이미 저 세상에 갔다는것을 뒤늦게 들었다.
(나를 알아주고 방토까지 하라고 마음을 베푼 고승이 저 세상에 갔으니 어떻게 한담?)
여러모로 궁리하던중 리성계는 그 꿈을 해몽하고저 깊은 설봉산속에 있다는 명승인 무학스님을 찾아갔다. 그때까지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않은 무학스님인지라 리성계는 별로 신심이 없었다.
그때 무학스님은 작은 산굴속에 은거해 있었다.
《스님, 소자는 스님께서 해몽하는데 조언이 있으시다 하기에 이렇겡 일부러 찾아왔소이다. 사양마시고 해몽을 해주소이다.》
례를 마친 리성계는 무학스님한테 청을 올렸다.
《하기사 로부가 무얼 안다고 멀고도 먼길을 마다하고 이렇게 찾아오셨는지요? 그럼 왔다봐 하고는 무슨 기이한 꿈이야기인지 어서 터놓으시우다.》
《스님, 소자는 두만강가에 나갔다가 한곳에 이르니 괴암절벽이 기이한게 선바위아래에 소용돌이가 세기에 물속에 무엇이 있느냐고 검푸른 물속에다 화살을 쏘았더니 두만강물속에서 세 마리 룡이 피를 흘리며 황급히 하늘로 치달아 날아올라갔소이다.》
무학스님은 대답없이 리성계의 관상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스님이 말이 없자 리성계는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였다.
《그에 놀라서인지 소자는 그날 저녁 꿈을 꾸었는데 웬일인지 동리집 닭들이 일시에 홰를 치며 울어댔고 소자는 허물어져가는 초가집에서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지고 겨우 빠져나왔소이다. 헌데 웬 일인가 밖에 나와보니 동리의 다듬이 소리가 동시에 울리고 내가에 피였던 꽃들이 시들어갔고 몸에 지녔던 거울이 떨어졌소이다.》
《만가의 닭소리와 천가의 다듬이 소리는 고귀한 지위를 부른것이요. 거울이 떨어진 그것은 높은 자리에 오르겠는데 아마도 푱 세 마리를 제거하고 서까래 세 개를 지고있었다니 틀림없는 대길()할 몽이구려. 공의 상()을 보니 아마도 왕위에 오를 상이웨다. 한마디 덧붙힌다면 공은 세 마리 룡을 쫓아버렸으니 모든 일이 뜻대로 성사될것이외다. 허나 지금은 이런 말을 절대 입밖에 내선 아니될것이니 모든 것을 꾹 참고있으며 시기를 기다리면서 이곳에다 절을 지으세유. 그래야만 공의 앞길은 창창할것이웨다.》
고승 무학스님의 이런 해몽에 리성계의 심정은 무척 기뻤다.
나라의 떳떳한 장수로 있었던 리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저선이란 나라를 세운뒤 나라의 왕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한 이야기에 따라 천불지산에다 큰 절을 세울수가 있을가? 여러모로 생각을 굴리여봤다.
하지만 두만강북안에 솟아있는 천불지산에다 절을 세운다는것은 이웃나라 명나라의 땅이니 응당 명나라의 허락을 걸쳐야만 될것이다. 비록 명나라와 사이좋게 지내고있었지만 그래도 그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여서 수월히 될 일이 아니임을 느꼈다.
(에라, 모르겠다. 그렇다고 남의 나라 땅에다 함부로 절을 짓는다는것도 될 일이 아니오니 우선 무학수님의 뜻에 좇고 볼판이다. 설봉산에다 먼저 절을 짓자 아마 훗날을 위해서.)
이렇게 맘먹은 리성계는 무학스님의 부탁한대로 설봉산에다 큰 절을 짓고 길주의 천불사에서 일부러 오백라한을 여기에 다 옮기고 왕의 꿈을 풀었다는 뜻에서 이 절 이름을 석왕사()라고 달았는데 이것은 리성계가 왕이 된후의 이야기다.
한정춘 수집정리
불광을 본 김종서
한정춘
함경북도 항간에는 지금도 훗날 리씨조선에서 좌의정이란 높은 벼슬에까지 올라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는 김종서에 대한 구수한 설화나 이야기가 여러갈래로 나뉘여져있다.
그속에는 김종서가 두만강안에 있는 천불지산 주위를 돌아봤다는 전설이 전해지고있었는데 그가 어이하여 후세에다 이런 전설을 남기게 되었는가?
그것은 1433년(계축년) 김종서가 함길도관찰사란 벼슬에 오른뒤 두만강안을 돌아다닐 때 있었던 그때 이야기였다.
김종서는 두만강하류 경흥에서부터 시작하여 물길을 거슬러 올라왔는데 그가 바로 회령을 찾아오니 이 고을의 부사나 목사들은 다 있었지만 오직 두만강안을 돌아보려고 나간 이 고을의 군수만이 없었다.
《군수나으리께서 어저께 돌아오게 되었는데 어인 연고로인지 여직 돌아오지 않았소옵니다.》
《그런가? 그럼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볼테니.》
아전의 말에 김종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편 두만강안의 지세를 돌아보고저 몇몇 군졸들을 앞세우고 두만강상류에 나간 회령군수는 돌아오는 길에 험산준령을 넘다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푹 흐린 날씨인데다 안개까지 끼다보니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동행한 군졸들은 모두 길을 걷느라 이미 기진맥진한 상황이라 계속 앞으로 걸어나갈수는 없었다.
《게있는냐! 방법을 대서라도 길을 찾도록 하라.》
《예이, 소관은 알겠소이다.》
령을 받은 길잡이였던 아전은 두 군졸을 데리고 고을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내려고 애를 무척 썼지만 길이라고 찾으면 마치도 연자방아를 돌리는듯이 제곳으로 돌아오고 하는통에 길을 찾아낼수 없었다.
(인젠 할수없이 여기 산속에서 하루밤을 지내야 할것 같군.)
이렇게 생각한 군수는 군졸들을 쉬게 하고 자신은 두 군졸을 데리고 동쪽이라 짐작되는 방향으로 걸어나갔다.
《누구나 함부로 다니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휴식하라.》
모두들 기진맥진한데다 진작 시장기까지 들이닥쳐있어서 군수의 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제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코밑에다 홍두깨를 들이밀어도 보아낼수 없는 캄캄한 밤이여서 사위는 온통 나무뿐 어디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아낼수 없었다.
얼마동안 걸으니 앞에는 산이 나타는지라 군수일행은 산꼭대기에 올라섰다. 그러자 북쪽 하늘가에는 알수 없는 환한 빛이 아래로 내리비추고있었다.
《저건 도대체 무슨 빛인데? 아마도 저 빛이 있는곳에 가야할지어다.》
이렇게 령을 내린 군수는 군졸과 함께 빛이 번뜩이는 그곳을 바라고 길을 걸었다.
(아니, 저것이 무엇일까? 혹시라도 하늘의 신선이 내려오고있는것일가?)
웬일인지 앞도 보이지 않게 내렸던 젖빛안개는 오간데 없었고 하늘가에서 내리뿜는 빛은 산봉우리와 두만강물까지 내리비추고있었다.
《어이쿠! 살았구나. 우리는 끝내 두만강을 찾아냈구나!》
군수는 그만 기쁨에 넘쳐 웨쳤다.
두군졸은 군수와 함께 두만강가에 달려가 물을 실컷 마시니 정신이 돌았다. 이윽고 뒤에 있던 군졸들도 모두 달려와 두만강물을 시원히 마셨다.
《우리는 끝내 돌아가는 길을 찾아냈구나. 여기서 다리쉼을 하고 고을로 돌아가도록 하세.》
군수가 군돌들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은 너무도 신기하였다.그렇게 많은 산봉우리에 왜서 유독 한 산봉우리에만 빛이 있는지? 그것도 빛이 내리는 곳에는 안개가 재빨리 사라지고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인것일까? 군수와 군졸들은 넋을 잃고 그저 빛을 바라볼뿐이다.
《우리는 오늘 하늘의 신선이 보내주신 빛의 도움으로 고생을 덜었으니 이렇게 고마운 일이 어디에 있을고.》
이렇게 말을 나누며 이들 일행은 무사히 고을로 돌아왔다.
고을에 돌아온 군수는 기다리고있는 관찰사 김종서를 만났다.
《대감님께서 두만강안을 돌아본다는 소식을 소관은 진작 들었소이다. 이번에 대감님께서 손수 험악한 산세와 지세까지 돌아본다니 로고가 많으실터이라 지레 짐작하여 소관은 두만강안을 한바퀴 돌아보고 오다나니 이렇게 늦게 돌아왔소이다.》
《아무렴 고을을 다스리는 웃사람이나 직책을 잊지 말고 모든 일을 해나가야 하지유. 비록 회령고을의 관할하에 있는 지역에는 야만인무리들의 소란이 크게 없다지만 그래도 일이란 터지기전에 미리 살펴보고 소홀함이 없이 방비에 나선다면야 두려울 일이 없는 법이지유.》
군수의 말에 김종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호가 절제로서 순천에서 태여난 김종서는 머리가 남달리 총명하여 15세에 나라에서 치르는 문과에 급제하여 29세때 사간원우정언()이란 벼슬에 있다가 43세때 함길도관찰사가 된 그는 언제나 말은 중임에 좀시라도 게으름이 없는 깐깐한 사람이였다.
이번에도 야만인무리들이 두만강량안에서 마구 소란을 피우는것을 막기위하여 6진을 세우라는 조정의 칙지를 받은 뒤 만사를 재쳐놓고 두만강안의 지세를 손수 돌아보는중이였다.
이튿날, 군수의 안내하에 김종서는 두만강상류를 돌아보게 되었다.
김종서와 군수일행이 한나절 걸려서 어느덧 한곳에 이르니 강넌너의 대안에는 높지 않은 산이 유표하게 시야에 안겨왔다.
한동안 먼길을 달린 이들 일행은 다리쉼을 하려고 서둘렀다.
바로 이때 난데없었던 인기척이 들려오더니 두만강물로부터 소나무떼목이 유유히 물길을 따라 떠내려 오더니 남쪽대안에 와 멈추었다. 떼목우에 잇던 몇몇 사람들은 이 근방에 사는 떼군들이였는데 그들은 떼목을 단단히 동여매고 강안에 내리더니 간단한 음식상을 차려놓고 북쪽에 있는 산을 향해 절을 올리고있었다.
그들은 산에다 제를 지내고있었다. 떼군들이 제를 지내는것을 멀리에서 보게 된 김종서일행은 적이 신기했다.
《저 산봉우리에 지기가 유유히 감돌고있는것을 보니 산은 산이라지만 일반산과는 다른 산이로군.》
김종서가 두만강건너 산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김종서가 가리키는 그 산봉우리를 넉없이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 산봉우리 상공으로부터 솜덩이같은 구름이 마구 감돌더니 과연 한줄기 빛이 산봉우리를 내리비추었다.
신비로운 빛이 내리비추는 그 장면은 실로 가관이였다.
《관찰사대감님께서 곧잘 보아댔사옵니다. 며칠전 소관이 여기로 나왔다가 그만 길을 잃었을 때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신기한 빛이 내리 비추기에 두만강을 용케 찾아내였소옵니다.》
고을군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김종서는 이 신비로운 빛이 내리비쳤다는 산이 도대체 무슨 산이인지 알고싶던차라 군졸을 불러 늙은 떼군을 불러왔다.
《로인장님은 이 고장에 사시는 분이시옵니까?》
《예이, 이 고장의 태생이온데 한뉘 이 고장에서 살았소이다.》
군수의 물음에 로인은 허리를 굽석이며 대답했다.
《살펴보니 저 산은 여느 산보다 높지 않소으나 어인 연고로 하늘의 신기한 빛이 유독 저 산봉우리에만 내리비추는지 로인님께선 알고있으신지유?》
군수는 신비로운 빛을 받고있던 그 산봉우리를 가르켰다.
(알고보니 그런 연고로 불렀군.)
그제야 로인은 관가의 군사들이 왜서 자신을 불렀는가를 알았다는데서 그 산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예이, 저산은 비로 여느 산봉우리보다 우뚝뚝 높지는 않으나 이름은 천불지산이라고 부르옵지유. 소인은 어렷을적 로인들한테서 듣자니 먼 옛날에 저 산꼭대기에는 하늘로부터 세상의 모든 재난을 덜어주는 천불()이 내려왔다갔다기에 민가에서는 저 산을 천불지산이라고 불러왔습지유. 하여 사람들은 자주 저 산을 향해 제를 올리며 빌기도 하옵지유.》
《그게 참말이시우?》
김종서는 로인을 보며 물었다.
《그건 말할나위가 없지유. 재난을 면해달라고 제를 올리거나 기도를 올리기도 하옵지유. 소인들은 떼목이 순리롭게 물길따라 내려가도록 여기서 기도를 올린 뒤 다시 아래로 내려가옵지유.》
《그러하니 산은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니 명산이고 물이 깊지 않아도 룡이 있으면 령험하더더니 과시 틀린말이 아니군.》
로인의 말을 듣고난 김종서는 이렇게 감탄했다.
《여기 명산곁까지 왔으니 천불님의 덕분에 일후 일이 잘 풀리도록 말들한테 물이나 먹이고 말들이 날래지게 깨끗이 목욕을 시키도록 하라.》
말을 마친 김종서는 앞장서서 두만강에다 말을 씻었다.
그러자 함께 동행한 군수와 군졸들도 저마다 맑은 두만강물에 들어가 말을 씻고 목욕을 하면서 떠들어댔다.
김종서가 두만강안을 돌아보며 천불지산봉우리에 내리비춘 불광을 본 이야기는 오늘까지 민간에 구구히 전해져왔다.
나라의 중임을 맡은 김종서는 두만강안의 지세를 다 돌아보고 소란을 막을 만한 요지에다 륙진()까지 세운 뒤 그는 함경도땅을 떠났다.
나의 정치가이자 문인인 김종서는 재상벼슬에 오른 뒤 많은 시를 써서 후세에 남겼는데 그중 두만강안을 돌아본 정경을 회억하며 격정에 넘치는 시조 한수를 읊조렸다고 하였다.
그 시구는 이러했다.
장백산에 기를 꽂고 두만강에 말 씻기니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희야
어떻다 릉연각에 뉘 얼굴을 그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