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나의 영어는 this와 that, i am fine정도 였습니다. 나이 마흔 다섯에 이래저래 주위 잡다한 것들 하루 아침, 칼로 무우 자르듯하고 떠나기에 마음 먹기 따라 걸리는 것 많았습니다. 몸 부실했구요 인도라는 정보 전혀 없었습니다. 해외 여행 경험 전무였습니다. 아~ 하나 있구나. 그 한달전에 준 패키지로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북단 코타키나바루 다녀왔습니다. 이유는 제가 워낙 멀미가 심하여 비행기조차 불안하여 체크가 필요했습니다. 서울에서 제주, 부산 갈 때도 멀미를 합니다. 인터넷으로 신청한 인도 가이드 북은 떠나기 하루 전에 집으로 배달 되어 포장 뜯어 그 제목 겨우 읽고 배낭에 쑤셔 넣었습니다.
지금은 ?
씩씩합니다. 생존 영어도 쫴매 할 줄 압니다.
여행 자알 다녀 왔다 싶습니다. 작은 아이들이 나에게 인생을 물어 온다면 무조건 인도로 보낼 겁니다. ㅎㅎ
시시각각 벌어지는 수많은 경우의 수들과 부딛히고 싸우며 열심히 다녔습니다.길위에서, 한국 배낭족들은 말할 것 없고 수 많은 외국 젊은 배낭족들, 다섯발로 걷기도 하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 꼬맹이들... 참 많이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돌아와 거울 앞' 에 앉아 보니 2년전 인도 떠나기 전의 저가 생각납니다. 어딘가 훌쩍 가고 싶은데 마음처럼 몸이 따라 주지 않았었습니다. 여러가지 생각만 많고 용기가 나지 않으시는 분들 계신 것 같아 화이팅 하시고 용기 내시라고 저의 사진 몇장을 올려 봅니다.
* 초기 2개월정도와 중간 중간 여행 사진은 카메라 고장과 노트북 고장으로 흔적도 없답니다.
※ 참고 : 제가 리플 달아 놓은 내용을 쭈욱 훑어 보시면 인도여행 1년 경비며 팁들이 많이 있습니다.
쪽지 보내주시는 것에 대한 대답을 자세하게 못해드려 지송합니다 ^^*.
떠나기 몇일 전 엄니 산소에 찾아가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드리려 갔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진 그 고생이 있는 줄 꿈에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래도 맵시납니다.
여행 끝난 맨 밑 사진과 비교하면 완전 딴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
꼴까따라 그러기도 하고 켈커타 그러기도 한 곳을 떠나 동양인은 잘 가지 않는 동부 해변을 갔습니다.
이때 부터 한달 반 정도 서쪽 코친항까지 한국 사람은 커녕 동양인 한 사람을 못봤습니다만 딱 한번 뿌리에서 이 노무 바퀴벌레 한쌍을 만났습니다. 오토바이 두대 빌려서 주위 해변이라는 해변은 다 돌아 댕겼습니다. 그야 말로 구석구석. 달리는 길이 열대 우림을 지나다가 늪을 지나다가 해변을 쭈욱 따라 한 없이 달리다가.... 호텔로 돌아 오니 해는 벌써 뉘엇뉘엇, 오토바이 운전하느라 손이 부어 있었습니다.
참고로 오토바이 운전은 20여년만에 한 것입니다. ㅋㅋ 겁대가리 상실했던 거죠.
돌아 오는 길에 동부해변에 낙조에 매료되어 바이크를 세워 두고 둑에 앉아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저 언덕 넘어는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바다가 있습니다. 아쉽~
뿌리 해변도 걸었습니다.
신발은 벗어서 옆구리에 꿰차고 별짓을 다함서 놀았죠. 무료해지면 해변에 나가 가아끔 독서도 했지만 여기에 사진은 없습니다.
나의 호텔 '뿌네'입니다 크크~.
남인도 폰디체리라는 특구가 있는데 그 옆 오르빌 마을에 갔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름 난 공동체 숲 속 마을이죠. 모든 것이 공동생산 공동분배입니다. 정확한 시스템은 알 수 없으나 한달 용돈 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 정도를 받고 먹고 자고 놀고 애들 교육시키고. 소비되는 모든 생활비는 자치에서 100%부담합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꿈의 마을 같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부의 불균형으로 인한 생활의 질적차이 등 삐거득 거림이 엿보입니다. 퇴직금을 모조리 가지고 와서 대 저택을 지어 노년을 보내는 서양 노인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투자액이나 투자된 땅등은 나중에 전부 기부됩니다만 씁쓸해졌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강원도 너와집을 뜨올리게 하는 야자 잎으로 만든 '너트'에서 4일을 보냈습니다. 비도 간간히 와 주시고 모기도 날아 오시어 심심한 저를 귀찮게 물어 주시고. 날이 새면 자전거 빌려 온 숲 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자연 속에 사는 로빈크루소의 하루 하루, 바랄게 없었습니다.
이틀 정도 그러구 다녔더니 그기에 오신 다국적 여행객들이 다 친구가 되었습니다. ㅎㅎ
가자 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말만 듣고 야생 국립공원을 찾아 가는데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결국 때 놓쳐 차 놓쳐...... 이름 모를 시골로 들어 가게 되었고 날은 저물고 대 도시로 나가는 차는 이미 끊이고. 시골이다 보니 말은 더 안통합니다. 두려운 맘 안고 그곳 간이 버스터미널에서 후덕하게 생기신 꽃파는 아주머니 옆에서 쭈그려 앉아 판초 깔고 박스 깔고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얼굴은 함박 웃고 있지만 정말 낭패를 겪었던 하루.
누가 옆에서 엄마 보고 싶지? 한국 가고 싶지? 했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주루룩~
꼴람에서 알람뿌자까지 수로여행입니다. 위에 배는 하우스 보트이구요 제가 탔던 배는 현지인을 수송하는 작은 여객선이었습니다.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하루에 한번 오전 10시쯤 꼴람에서 알라뿌자로 갑니다. 수로를 뚫고 가며 주위를 구경하고 싶으면 사방이 확트인 2층으로 올라가고 쉬고 싶으면 1층으로 내려와 음악도 듣고 호수 물에 발 담그며 카드 놀이도 하면서 보냅니다. 죙일 배위에서 지냅니다.
바다 같은 넓은 호수를 지나기도 하고 야자 나무가 우거진 밀림숲을 지나기도 하고 수초가 아름답게 펼쳐진 늪도 지나면서 구석구석 화려하게 지어진 현지인 별장들을 감상하며 때로는 호수 주위에 있는 토속 마을에 내려 열대 과일이며 토속음식으로 궁것질도 합니다. 그러다 지치면 배위에서 책도 읽고 다국적 배낭족들과 정보 교환도하고....
배위에서 하루 종일 지내다 보니 해뜨고 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자수에 걸쳐진 태양은 뭐라고 할까 저에게는 '이국' 딱 그것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이쁜 산책길이 있다는 코다이카날 내 호수입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너무 편안해 먼저 떠난 이와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과 그리움에 무지 울었다는 기억.
하늘을 원망하며 '나가거든'을 듣고 또 듣고.
처음에는 현지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 길에 파는 이 구운 옥수수를 먹고 지냈습니다.
하나에 10루피 혹은 5루피 우리나라 150원 정도 됩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무나르 차 생산지 차밭입니다.
우리나라 보성 차밭은 여기에 비하면 한 집 농사거리 정도라고나 할까.
하루 종일 시골버스를 타고 들어 갔는데 해 질녘까지 그 끝이 안보이더군요.
걷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무나르에서 차 잎을 따 내는 아낙들과 한 때.
카메라를 보고는 너도 나도
찍어 달랍니다. ^^*
이 분들이 하루 종일(해 뜨서 질 때까지) 일해서 번돈은 100루피 정도, 우리나라 돈으로 2700원이랍니다.
입장료가 비싸서 문 밖에서 한컷한 남인도에 있는 마이소르 궁전.
멋있기는 하였지만 이 때는 제가 초기 여행에 너무 지쳐 쉬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기에 조용히 산책하면서 겉만 훑어 보았습니다.
남인도 사람들 특히 타밀라두주 사람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 알만한 사건을 이곳에서 겪었습니다. 오토릭샤를( 우리나라 경운기와 티코의 중간 정도로 생긴 인도 대중교통) 타고 영어로 마이소르 근처 언덕에 올라 가자( 그기서 마이소르가 한 눈에 보인다 함)하니까 자기는 영어 모르니 힌두어로 말하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인도 왔으면 힌두어로 하는 것 당연하지 않느냐며 배우라는 거였죠. 저는 쬐끔 당황. 왜냐면 북인도는 매일 듣는 말이 help me, give money...라는 손벌리는 일이 다반사 였고 영어로 대화를 하여 자기네들이 잘 못 알아 들으면 죄송하다 그러고 잽싸게 근처 능력자를 데리고 오거든요. 그리고 영어도 인도 전통언어는 아니지만 공용어이기도 하구요.
함피 힌두사원 안입니다.
어디를 가나 한국인 관광객은 환영을 받습니다.
한국인 배낭족 여학생 둘이 현지인들에게 둘러 싸여 싸인을 해 주고 있습니다. 저도 그 옆에서 마찬가지 였지만 한컷~!
사원이다 보니 모든 현지인들이 맨발로 다닙니다만 우리는 신발을 신고 다녔죠. 그들의 종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 개념과 정의하고 많이 다른듯합니다. 곧 하늘이고 삶의 전부이죠.
함피.
개인적으로 제 인도 여행 중에 처음으로 오랫동안 그곳에 눌러 앉아 한없이 쉬고 싶다 느꼈고 훗날 다시 찾는다면 그 곳에 가리라 맘 먹었던 폐허 도시. 사방을 둘러 보아도 돌 밖에 없었지만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자유를 만끽했죠.
세계적인 휴양지 고아 해변.
건너 뛸려다가 함께 동행했던 저 친구 덕택에 점만 찍으려 들어간 곳인데 4일 동안 평생 해변에서 할 일 다 한 것 같습니다.
해변에 파라솔 켜놓은 벤치에 비스듬히 누어 가져다 주는 미지근한 야자수를 마시기도 하고
시원한 맥주(고아는 인도에 세군데 있는 주세가 면세되는 지역 중에 하나라 각종 술이 많습니다.)에 밤마다 벌어지는 페스티벌이며 즉석 댄스파티, 라이버 뮤직, 파도타는 서핑보더, 수영, 너무나 맛나는 음식들...... 낮이면 한국과 너무 다른 자연 풍광에 젖고 밤이면 히피들의 밤 문화에 흠뻑젖었습니다.
석양을 바라보며 쌩쑈를 하고 놀고 있는데 한 컷을 했습니다.
아직 여행 초기라 그래도 내 몰골이 준수한편입니다.
하루에 100루피(한국 돈 2700정도)하는 싱글 룸을 잡아 놓고 원없이 이러구 놀았습니다.
덕택에, 책 한권 가지고 가지 않았지만 여행 중간 중간 이런 시간들이 있었서 몇 년동안 보지 못했던 책들을 다른 여행객들에게 구하여 참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산치. 불교 유적지 중에 하나 인데 스리랑카 신도들이 단체 관광을 와서 예배를 드리고 줄줄이 나옵니다. 하얗게 차려 입은 차림이 아름다왔습니다.
오르차인듯합니다.
어디를 가나 석양은 아름답습니다.
저녘나절에 산책을 하다가 고성을 배경으로 찍었습니다. 보기에는 정말 멋있지만 실제 저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 폐허가 되어있고 관리도 소홀하여 떵 무더기가 군데군데, 벽은 부스러지고... 아깝고 안타깝더군요. 관리하고 개조하여 사용한다면 문화 보고이고 대저택이 될 수있는데 인도는 워낙 저런 문화 유산이 많다 보니 그것을 특별히 관리한다는 것이 별로 인가 보더라구요. 허긴 큰 성 하나를 개조하여 게스트 하우스로 쓰는 곳도 있었습니다.
제일 아름다웠던 노을.
이 노을 저 노을 다 보았지만 우연히 찾아간 만두라는 산골 폐허 도시 어느 언덕.
정말 경이롭다는 말 밖에 형언할 말이 없었습니다.
인생사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가슴으로 팍팍 와 닿았습니다.
역시 만두인데...
만두는 그 옛날엔 거대한 도시였답니다.
그 도시가 통째로 폐허가 되다 보니 사방이 이런 저런 아늑한 아지트들이 많았습니다. 걷다 놀다 지치면 이런데 찾아 들어가 한 숨 자고 ^^* 마할입니다. 구지 설명을 덧 붙이자면 무덤이죠. 여기 옆 모습으로 그려진 친구는 마음에 짐으로 남겨졌습니다. 후~~ 생각하면 하늘아래 피할 곳이 없습니다.
함피. 두번째 갔었을 때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현지인들의 삶이 엿보이더군요.
이른 아침, 너댓살 됨직한 꼬마가 물통을 씻고 물을 받아 집으로 가는 모습입니다. 난 그 앞 짜이 가게에서 모닝 짜이 한잔 하고 있습니다만...
눈망울은 참 맑습니다.
함피. 일출입니다
일출이 너무 이뻐 한 장 카메라에 담을려고 나왔더니
나 같은이 또 있더군요. ㅎㅎ
디오라는 섬에도 갔었습니다.
그기서도 인도 전역 어디를 가나 여자들은 뻑세게 일하고 남자들은 대충 그늘에 앉아 요런 겜들을 즐기는 풍경이 포착 되었습니다.
여자인 제 입장에서는 쫌 얄미웠지만 짜이(인도 전통 차) 내기를 몇 겜 했습니다.
한 번도 못이기는 내기 겜입니다만 재미 있었습니다.
참고로 인도 남자들은 여자들을 보호 대상으로 여기는 듯했습니다. 굉장히 위해 주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고 엄청 부려 먹습니다.
한마디로 애완용 인간이라는 느낌강했거든요. 내가 보호해주니 니들은 내 맘대로 하겠노라 ... 뭐....이런 말씀.
담에 기회된다면 이에 대하여주욱 풀어 써 볼참입니다.
사막에도 갔습니다.
사막 도시 자이살메르. 갠 적으로 이곳에 갔을 때 몸도 맘도 너무 아파 온 입이 다 부르터 도망 나오듯이 그곳을 빠져 나왔지만 아름답게 기억 되는 도시,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점을 찍어 놓았습니다.
북인도 바라나시. 뿌자( 우리나라 제사 같은 행사)를 올렸습니다.
해가 질 때 쯤 매일 요란 뻑쩍지근하게 겐지스강 가에서 크고 작은 뿌자가 있습니다.
저도 작은 꽃배를 사서 불을 피우고 하늘에 대고 두어번 흔들고 그 물에 뛰워 보냈씁니다.
뒤에 저물,
음......... 시체도 뜨 다니고 바라나시의 온갖 쓰레기는 다 몰려 오는 듯한데 한 쪽에는 그 물이 신성하다하여 멱을 감고 기도를 올리고 퍼 마시기도 하고 항아리에 담아 고향 집으로 가져가기도 합니다.
건너편에서는 들개들이 흘러 내려온 시체를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다 뜯어 먹고 뼈만 앙상하고 어떤 넘은 팔하나 물고 저만치 따로 떨어져 독식하고 있고, 어떤 시체는 버린지 얼마 안되었는지 물에 퉁퉁 부어 눈갈 튀어 나오고 배 불룩하여 여러 마리 개들이 한꺼번에 둘러 서서 만찬을 즐기고. 우우웅~
동쪽 최 북단 시킴을 들어갔습니다.
중국과 접경지역이기도 하고 그 지역 특유의 정치 상황 때문에 사전에 허락을 받고 가야 하는 곳입니다.
밀림 속 풍광, 깍아 지른 절벽, 깊은 계곡 등등 끝내 줍니다.
가다가 너무 지쳐 간이 터미널에 쭈그려 앉았습니다.
아침에 다르질링에서 출발하여 차를 다섯번 정도 갈아 타고 1박 2일을 꼬빡 달린 것 같습니다.
손에 든 구름 과자가 날 유혹합니다 ㅎㅎ. 여행지의 자유스러움이랄까.... 뭐.... 그렇지만 인도는 금연금주 국가라 때 장소에 따라 조심을 해야합니다.
시킴에는 슬픈 애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산책을 하는 중에 여나무살 보이는 오누이가 나무를 한짐하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만났습니다.
여자 아이 것은 제가 받아 집까지 들어 다 주었습니다만 난 작은 특별한 경험을 했을 뿐이고 그 아이들은 늘 이렇게 살아야 된다 생각하니 가슴이.....
참 슬픈 애들이 또 있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길거리 돌아 댕기는 개 한마리와 무작정 오솔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찾아 든 낭떨어지에 터를 잡고 선 마을 한 귀퉁이 집안.
요놈 세 놈이 요렇게 오골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5년 전에 멀리 떠났다기리래 처음에는 도망 간 줄 알았더만 아파서 하늘 나라에 갔다고 마을 사람들이 말해 주었습니다.아마 짐작컨데 막내가 5살이니 막내를 놓다가 죽음을 맞이했나 싶더군요. 아저씨가 요 쫄망졸망한 애들을 건사하는데....
집이라고는 안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울 촌집 개집도 이보다 낫습니다.
이부자리 하나있는데 ... 그 모양이 헤지고 더럽혀지고 .... 맨땅(진짜 맨땅 흙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부엌에는 비 맞은 덩치큰 나무 두어개. 제가 오지랍을 좀 떨었습니다. 팔뚝 걷어 부치고 이놈들 다 씻기고 부엌 정리 다해 주고 통나무를 때기 좋게 낫으로 짤라 가지런히 하고 부엌도 방도 빗자루로 쓸어서 싹 정리하고.... ㅎㅎ
아이들이 내가 가져간 mp3기계를 가지고 놀고있습니다. 그 안에 애니메이션이 하나 들어 있었서 켜 주었거든요. 신기해 합니다.
돌아 오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히말라야 산에도 올랐습니다.
산에 올라 갈때 카메라 충전기를 가져 가지 않아 유일하게 살아 남은 사진입니다.
안나푸르나는 정말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사진 배경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이 안나푸르나 남봉입니다.
누가 나에게 어떻더냐고 물으오면 가보라는 말밖에 할말이 없습니다.
8박 9일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켐프 가는 길.
3일째 되는 날 크게 발을 삐어 동행했던 도반이 내 배낭을 지고 앞장서 걸어갑니다.
쉬엄쉬엄 어기적어기적. 참 미안했습니다. 할말은 있는데.......... 뭐라 말도 못하고..........헤어졌습니다.
골짜기 골짜기 변화무쌍한 자연은 아무리 좋은 사진기라도 표현을 못할겁니다. 옆에 네팔 국화 난리구라스가 붉게 피어있네요.
우박입니다.
포카라에서 세번 우박을 맞았는데 저 크기가 계란입니다. 정말 하늘에서 계란이 우두둑 떨어지는데 우산은 그 것을 못 막습니다. 의자를 씌고 다녔습니다. ㅎㅎ
네팔 수도 커투만두에서
숨은 사두(스승)를 만났습니다.
에베레스트 함께 떠나자는 제의를 아깝게 뿌려쳤습니다. 시간이 허락이 안되어 말입니다.
북인도 마날리라는 곳에서 레라는 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방이 풀 한포기 없는 삭막한 그곳에도 깊은 골로 들어가면 이렇게 물이 흐르고 풀이 있더군요.
처음에는 흙 밖에 없는 그 산에서 물이 흘러 내리니 신기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물었더니 저어멀리 설산이 녹아 구비구비 흘러내려 온다는 군요. 서른 시간을 넘게 터덜 거리며 가는 짚차에서 잠깐 내려 노상 방뇨도 하고 주위 구경도 하고....
판공초 호수를 갔습니다.
서쪽 최북단 레라는 라닥지방에 있는 거대한 호수입니다. 염호라 하여 물이 짭니다. 한반도 크기의 3배라고 알고 있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고 그 1/5이 인도 지역이고 나머지는 중국령이라고 합니다.
하룻밤 그기에서 세면서 밤에 별을 볼 수 있으면 하늘에 있는 듯 하답니다.
판공초.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꽉찬 모습입니다.
어디에 카메라를 두든 이런 모습 이상의 풍경이 잡힙니다.
누브라벨리라는 꽃의 계곡입니다.
이곳에는 조그만 사막도 형성되어 있는데 무채색 풍경이 우리와 너무 자알 어울립니다.
같이 들어갔던 저 동행자는 나이가 제 딸 수준이더군요. 꺼꾸로 지네 엄마가 저랑 나이가 같답니다.
그런데 언니 동생하면 한 보름이상을 원없이 돌아 댕기며 자연을 만끽했습니다.
라닥 할머니.
텐진갸초 달라이라마 티칭이 있어 곰파(절 같은 곳)로 가는 길에 제가 힘들어 하니 옆에서 다정스럽게 한말씁하십니다.
'힘들면 짤레짤레(천천히) 옴마니반메훔하며 가다 보면 어느새 다 와있다. 서둘지 마라 힘들기만 하단다.'
마음에 새기고 왔습니다.
디스킷입니다.
이곳은 옛날에 만년설이 녹아 내려 흐르는 거대한 계곡이었는데 여러가지 지구 생태계 파괴 이유로 그 흔적만 곳곳에 보이고 일부는 사막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행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짧은 낙타 사파리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남아 있는 물줄기따라 오아시스처럼 숲이 우거진 마을이 있었는데 첫날은 방이 없어 텐트에 자고 둘째날은 어렵게 방을 구하여 배낭을 풀고 사막 트레킹하자는 것을 포기하고 저녘 켐프파이어 준비 중입니ㅣ다. 이 날? 건실한 한국인 총각 두명을 만나 시원한 맥주도 급조 하고 시장에 가서 콩이며 감자를 구해서 그동안 고이고이 보물 다루듯 아껴 왔던 고추장도 꺼내고... 맛나게 먹었습니다.
뒤에 꼬맹이들은 우리가 이러구 있으니 신기했나봅니다. 동네 애들이 다 모이는 듯 나중에는 저 나무에 열매 맺듯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
현지인도 지상낙원이라고 불리는 파키스탄 국경지역 스리나가르에 있는 달 호수.
제가 들어 갈 때나 나올 때 한창 데모며 통행금지며 총격전이 있어 사람도 죽고 하였지만 연꽃이 만발하여 너무 좋았고
관광객이 들 오다 보니 주위 모든 풍광을 저만 홀로 즐겼습니다. ㅎㅎ
하우스 보트에서 본 노을. 역시 끝내 줍니다.
하우스 보트 내,
시종일관 아침부터 저녘까지 시중드는 분이 계셨습니다.
무수리배낭여행이 제 컨셉이었지만 이 때 만큼은 황후 대접을 받았습니다.
여행이 거의 끝날 무렵 내 모습.
참 많이도 변해 있습니다.
현지인들은 나더러 너무나 인도스럽다고 좋아했습니다.
특히 북인도 라닥지방 사람들과 뱅갈 사람들은 나를 보고 딱 자기네들과 같은 민족~!
제 노트북이 꾸져서 업로드 속도며 작업 여건이 386이라 제대로 정리를 못하고 대충 올립니다.
그러다 보니 오타 많고 문장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보시기에 눈 아프실까도 걱정스럽습니다.
돌아 다닐 당시에는 아프기도 많이하고 주저 앉고 싶은 시간 많았지만 꾹 참고 다니다 보니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이 추억으로 채곡채곡 쌓여 있습니다. 자연에 감사할 뿐입니다.
화이팅~ 횐님들 용기를 내세요.
암것도 필요없습니다. 무모하리 만치 용기를 내시면 됩니다.
첫댓글 에이~ 처음에 여혼사에 올렸던 글이라........ 편집하기가 영 불편. 다시 불려 왔습니다. 그곳은 지울려고 하는데...음......
반갑네요. 바람따라물따라공기따라 여기까지 ... ㅎㅎ(자동등업 위한 댓글 한 개)
지송~
회원 규정에 관한 것은 이곳 카페 특성 상 사실 필요없지만 회원님들의 성의 문제가 있다는 기존 횐님들과 운영위원의 강력한 주장으로 구별을 했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거듭 죄송합니다. 후후
아이고 별 말씀을... 당연한 절차입니다.
꼭 한번 도전 해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