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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지맥 6구간
2009.02.22 (일)
산길 : 싸리치~대치~남대봉
거리 : 12.2km
구간거리
남대봉(1180)~3.1~대치~2.5~△999~6.6~싸리치......12.2km
(남대봉~5.3~성남리 : 6.0km)....18.2km
Cartographic Length = 19.37km / Total Time: 06:35
(999봉 남쪽은 트랙이 동쪽으로 밀렸음...원인불명. 붉은선이 정상임)
(Vantage Point)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성남리(城南里)는 치악산성의 남쪽에 있다고 성남리인데 오늘 구간은 성남리를 감싸는 능선을 에두르는 형태다. 지난차 치악산 구간과 마찬가지로 북진을 했는데, 이 구간은 날씨도 그렇긴했지만 도무지 조망이 없어 북진이나 남진이나 별다른 차이점은 없겠다. 다만 고도차에 있어 초장 싸리재에서 응봉산 분기봉까지 오르고 나면 사지가 후들거린다. 남진의 경우는 후반부의 긴 내리막이 되므로 신세의 고달픔에서는 그 차이가 천지이겠다.
신림면 성림초등학교 남쪽에 천연기념물인 성황림(城隍林 또는 당숲)이 있는데 이 성황림을 신(神)적인 수림(樹林)이라 생각해서 신림(神林)이라 하였고 이것이 확대되어 마을 이름으로, 면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황림은 우리나라 온대림의 일부로 보존되어 있는데 신갈나무, 털피나무, 느릅나무 등 고산식물에서부터 야산식물에 이르기까지 50여종의 목본식물과 습지식물이 함께 서식하고 있어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하고 있다. 이 숲은 역사적으로 볼 때 오래전부터 이곳에 정착하고 살던 사람들이 치악산의 성황신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섬기던 서낭숲이기도 하다. 서낭당 옆에는 높이 30m의 큰 전나무와 여러 그루의 노목이 있다.
(시간표)
10:12 싸리치
11:15 ×1064 응봉산 분기봉
12:10 △999 (안흥463)
13:08 △963.6 (303복구)
13:23 대치
14:15 ×1111
14:42 남대봉
15:10 상원사
16:46 성남동 버스주차장
10:00 석기동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비포장 임도에 눈이 살짝 깔려있어 25인승 기사는 더 이상 차를 넣기가 겁이 나는 모양이다. 긴시간 자다깨다를 반복하고 시골길 이리저리 빙빙돌다보니 차에서 내리고는 방향감각이 없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어문 방향으로 몇사람 올라간다마는 GPS 화면을 보니 왼쪽이 싸리재다.
오는 차안에서도 어느 독도전문가(자칭)가 독도법의 중요성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하면서, GPS의 불필요성 내지 무용론을 침 튀겨가며 역설 했다마는, 암만 독도 전문가라 하더라도 어느지점에 불시에 떨어졌을 때, 현위치 찾기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정확한 독도를 위해서는 자신의 이동경로를 계속 추적하면서 도상에서 읽어나가야 하는데 졸지에 어느지점에서 버스 밖으로 나서면, 더구나 조망이 막힌 골짜기 안쪽이라면 그야말로 독도 귀신이라 하더라도 헤매지 않을 수 있나. 이럴 때 GPS란 참으로 신통한 물건이 된다. 깜깜밤중에 들머리 찾는일도 GPS만 있으면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다.
10:12 싸리치 (596m)
임도따라 10분 오르니 싸리치다. 웬만하면 여기까지 25인승 버스 정도는 올라오겠다마는, 석기동 마을에서 멀지 않으므로 준비운동삼아 걷는것도 괜찮겠다. 버스도 돌릴만한 충분한 공간에 지붕달린 쉼터가 있고 “싸리치” 제목의 시가 새겨진 멋진 표석이 있다.
▲싸리재 [고개]
성남에서 황둔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싸리나무가 많다 하여 싸리재, 싸리치재, 싸리고개라고 한다. 신림터널이 생기고 난 후 싸리재는 거의 폐쇄되어 기존의 도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신림터널 [굴]
축치동과 황둔리 창촌을 잇는 싸리재에 있는 길이 620m의 터널을 말한다. 이 터널이 생기기 전까지는 언골을 지나 석기동으로 넘어가는 싸리재를 넘어 다녔다.
주위를 제대로 둘러볼 겨를도 없이 선두가 비탈로 올라붙는거는 대다수 안내산악회의 특성이랄 수 있다. 어디서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풀어놓은 강세이 마냥 뒤도 안돌아보고 내뺀다. 나도 그 대열의 중간쯤에 끼어 오름짓을 한다. 열명도 채 안되는 인원에 B조까지 있으니 나는 A조의 후미가 되겠다.
비나 눈이 오겠다는 예보는 아직은 실행되지 않고 그냥 우중충한 하늘이다. 어제 부산날씨는 참으로 맑았다. 구덕산에서 송도 천마산으로 가는 능선길 내내 선명한 바다를 내려다보며 걸었다. 결과적으로 오늘 부산에는 많은 비가 내렸고 이곳은 비 한방울 안내렸으니 이번주는 신통하게 비를 피해다니며 산행하게 된 셈이다.
첫 오름이 다하고 평탄하게 숨고르기 하는 능선길에서 우측 아래로 신림터널 입구가 보인다. 잠깐씩 호흡조절을 하고는 다시 올려친다. 저만치 보이는 응봉산분기봉까지는 한참이나 오를 태세라 미리 웃옷을 벗어 넣었다. 박새 한마리가 사정권 내로 접근해도 피하지 않는다.
남으로 기울어진 비탈이라 눈은 없고 낙엽만 밟힌다. 하염없는 오름이 이어진다. 이대로 계속 오르다가는 구름위로 올라가고 말지 싶을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시간 넘게 오름을 계속하고서야 그 오름의 끝봉에 선다.
11:15 ×1064
별 특징은 없이 흔히 응봉산 분기봉이라 하는데, 최신 지형도에 동쪽의 △1093봉은 응봉산이라는 표기가 없고, 북동쪽으로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응봉(鷹峰 △852)이 보인다. 우측으로도 뚜렷한 길과 리본들이 걸려있다. 지맥은 왼쪽 내림길이다. 북진하는 사람은 입에 단내가 날 지경이지만 남진하는 사람은 여기부터는 굴러가도 싸리재다.
11:30 ×978
×1064봉에서는 방향이 북으로 바뀌며 내려간다. 먼 능선을 보면 한참 꺼졌다가 다시 솟구치는 그림이다. 저 끝에 보이는 능선에서 서쪽으로 꺾이는 모양이다. 북사면에는 잔설이 남아있어 아이젠 찰까 하다가 꺼내기 싫어 그냥 간다. 남대봉쪽은 뿌연 하늘이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드문드문 겨우살이가 달려있다.
11:51 길재
×922봉 넘어 10분쯤 거리에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은 희미한 흔적만 남았고 왼쪽 하산길은 정면 지맥길보다 더 뚜렷하다. 성남리 높은다리로 내려가는 길인데, 오늘 우리가 남대봉을 거쳐 내려갈 곳이기도 하다. 배는 진작부터 고파왔다만 앞서간 이사장 일행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혼자 쭈그려 앉아 청승떠는거 보다야 둘이라도 마주 앉아야 밥맛이 나는 법이다.
▲길재(고개) : 전불에서 수주면 두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전불(典佛)마을 높은다리 동쪽 계곡 안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999)
12:10 △999 (안흥463)
서너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에 삼각점이 있다. 횡성군 영월군 원주시의 꼭지점인 삼군봉으로 우측 능선따라 영월과 횡성의 군계가 간다. 봉우리라고 올라서봐야 지나온 ×1064(응봉산분기봉)도 그렇고 능선에서도 조망이 없다. 나무가 빽빽하고 대기마저 뿌옇게 흐려 도무지 보이는게 없다. 셋이서 둘러앉아 점심을 다 먹으니 후미가 올라온다. 자연스레 방이 빠지고 새사람들이 자리를 잡는다. (~12:30 점심)
방향이 서쪽으로 전환이 되었다. 999봉 오름에 잠깐 햇살이 비치기도 했지만 다시 꾸무리 모드로 돌아갔다. 평소 같으면 그림자를 보고 진행방향을 눈치 챌 수도 있지만 오늘은 방향 구분없이 우중충한 대기이고 조망은 역시나 보여주지를 않는다. 카메라 꺼낼 일 없어 좋긴 하다만 뭔가 보이는게 있어야 산행에 흥이 나는 법이다.
지도상 ‘선바위’ 표기를 보고 발딱 선 바위가 있나하고 유심히 둘러보았지만 비슷한 그림도 보이지 않는다. 999봉에서 40분쯤 진행 후 앞쪽 봉우리를 피해 우측사면으로 급하게 꺼진 부분이 있었는데, 아마 그 봉우리에 무슨 바위가 있었던지는 모르겠다. 남대봉에서 싸리치까지의 유일한 조망대라 했는데, 아쉽게 되었다. 물론 그 지점에서 혹시나 싶은 생각은 가졌지만 하늘이 너무 흐려 조망이 트여도, 그러려니 싶었던 것이다. 급하게 떨어진 안부에서는 다시 왼쪽 높은다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보인다. 지형도상 선바위를 마을유래에는 섬바우로 기재했다.
▲섬바우 : 전불 북서쪽 골짜기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곡식낟가리인 섬을 쌓아놓은 것 같다 하여 섬바우라 한다. 섬바위가 있는 골짜기를 섬바우골 이라하며 섬바우골을 넘어가면 횡성 강림이 나온다.
13:08 △963.6 (303복구)
종씨 이사장과 오운환. 이 두 친구는 얼마나 달라빼는지 이들과 보조를 맞추다가는 내풀에 내가 자빠질거 같아 뒤로 빠졌다. 둘이 앞서 보내고 뒷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대열속에 ‘나홀로’가 된다. 군중속의 고독이라 했나. 그렇다고 고독까지 할거야 없고 오히려 호젓한 산길이고 보니 혼자가 더 좋다. 77.7건설부 303복구 삼각점봉도 그냥 봉우리일 뿐 별무신통이다. 왼쪽으로 꺾어 내리다가 다시 우측으로 내려간다. 전방 남대봉까지는 도중에 푹 꺼졌다가 다시 솟구치는 그림이다.
13:23 대치 (825m)
고개로 보이지도 않는 그냥 펑퍼짐한 안부이고, 좌우 어디로도 사람이 밟은 자국은 거의 없다만 지도를 보면 상원골에서 북쪽 부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임에는 분명하다. 지나쳐 올라서면 억새 수북한 묵은 헬기장이다.
▲대치(大峙)
상원골에서 샘골이나 작은무대치골을 거쳐 부곡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높이는 약 849m이며 상원사 동쪽 줄기에 있다.
13:42 잔잔한 산죽밭
대치를 바닥으로 다시 산길은 고개를 든다. 지긋한 오름길은 남대봉까지 이어질 것이다. 해발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잔잔한 산죽밭이 나온다. 무릎높이도 안되는 산죽이 이파리도 부드러워 보인다. ×1,056봉 역시 잡목으로 둘러싸인 볼품없는 봉우리고 이어지는 봉우리 역시 다 마찬가지다. 꾸준히 올라가는 산길은 초장 싸리치에서 오르는 장면과 비슷하다.
14:15 ×1,111
나무사이로 언뜻언뜻 상원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중충한 하늘이라 눈을 덮어쓴 하얀지붕을 보고 상원사인줄 알아챈다. 우측으로 흐르는 치악주능과 왼쪽의 시명봉도 나타난다. 잔잔한 산죽밭 사이로 난 눈길에는 아직 한뼘되는 눈이 깔려있어 먼저 찍어놓은 발자국에 내 발을 맞춰 넣는다. 오늘 구간은 컨디션 탓인지는 몰라도 힘이 더 드는거 같다. 조망도 없이 지루한 숲길이다. 그나마 새 숲이 들어차면 그야말로 눈뜬장님이 될 길이다.
상원사가 조금씩 당겨오더니 대웅전과 범종루까지 알아보겠다. 남대봉에서 고함치는 사람소리도 들린다. 남대봉이 머리위로 올려다 보인다.
(남대봉)
14:42 남대봉 (1,180m △안흥27)
남대봉에 올라서니 산불 감시초소인지 사람 감시초소인지 바로 그 아래 헬기장 구석 공터로 올라서게 된다. 지난구간 앉아서 밥먹은 곳인데 그때는 여기로 지맥길이 이어지는줄도 몰랐다. 비온다는 예보가 있어서인지 사람은 없다. 넓은 헬기장엔 박새들이 모여 먹이를 쪼고 있다. 이사장이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니 휑하니 날아가 버린다. 아직 사람의 손은 안탄거 같다. 2등삼각점은 초소 위쪽 길가에 있다.
▲남대봉(南大峰) → 남태봉
상원골 위에 있는 높이 1181.5m의 산을 말한다. 남태봉, 만경대, 망경대라고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이곳에서 남쪽에 있는 1187m의 봉을 남대봉이라 부르기도 하여 혼동되고 있다. 이곳을 남대봉이라 부르고 1187m의 봉을 시명봉이라 부른다.
14:54 아들바위
이제 지맥마루금 잇기는 여기서 끝이고 하산할 일만 남았다. 헬기장을 가로질러 남으로 향하면 이 길은 백운지맥이 된다. 남대봉에서 5분거리에 우측으로 돌출한 조망바위가 있는데 그리 나가보면 서쪽 영원사로 뻗어내리는 능선상에 우뚝선 물체가 있다. 어떤 설명이나 아는 바도 없지만 지도상 표기된 아들바위가 아니겠나 싶다. 푹 꺼진 골짜기 아래로 영원사도 보인다.
▲아들바위 [바위]
영원골 영원사 위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영원산성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다. 이 바위에서 득남하기를 빌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아들바위라 한다.
14:57 상원사 영원사 갈림길 [상원사0.4 영원사2.5km]
사거리 안부다. 왼쪽은 상원사, 정면은 백운산으로 가는 백운지맥이다. 백운지맥을 잠시 들여다보면, 1.2km 거리의 시명봉(1,196m)은 남대봉보다 더 높아 혹자는 시명봉을 남대봉으로 부르기도 한다만 근거없는 얘기이고, 다시 5km 정도 더 간 거리에 특이한 이름의 가리파고개가 있다. 치악재라 하기도 하는데, 치악재는 중앙고속도로(치악휴게소) 상의 고개이고, 5번국도가 넘는 고개는 ‘가리파재’이다.
언뜻 들으면 외래어 같기도 하다만 순우리말이다. 특히 ‘가리’라는 말은 우리같이 마루금을 추종하는 이들에게는 더 가까이 해야만 할 단어이다. 물가름. 곧 분수령을 말하며, ‘파’는 백두산의 서파 북파 할 때의 그 ‘파(坡)’ 다. 고갯마루에는 신림면에서 세운 ‘가리파재’ 표석이 있고, 치악터널 앞에는 가리파호텔이 있는데, 그 뜻을 제대로 알고 묵어가는 이가 있을까.
가리파고개
금대리와 신림 사이에 있는 고개. 가리+파 → 가리파가 되었다. '가리'는 물, 물가, 분기를 뜻하는 '갈'에서 파생된 것으로 물가 마을에 많이 붙는 지명인데 '가리'가 들어간 산 이름에는 산줄기가 갈린 목, 또는 고장을 가른 산에 주로 쓰인다. '파'는 언덕, 고개를 뜻하므로 가리파는 산줄기가 갈린 고개나 언덕, 또는 고장이 갈라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아마 원주와 신림을 가르는 고개라서 가리파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구을파(仇乙破面)는 '굴파'라고도 하는데 언덕에 굴이 있어서 유래된 것이며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구을+파→구을파가 되었다고도 하고 '굽다'의 뜻인 '구을'을 음차한 것이라고도 한다.
15:04 치악산상원사 일주문
이정표가 가리키는 [상원사]를 따라 돌면 산죽밭 사이로 뚜렷한 길이 나있다. 남대봉에서 직선거리로는 얼마 안되어 보이는데 급사면이라 빙 돌아가는 형태다. 경사없는 사면길을 5분 따라가면 성남리에서 올라온 길에 내려서고 왼쪽에 [雉岳山上院寺]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다.
절마당으로 올라서니 하얀개 한 마리가 여느 절집과 달리 꼬리를 치며 다가온다. 입구에 안내문이 있는데 선재와 돈수라는 개 두 마리가 있는데 너무 순해 곧잘 등산객을 따라 내려가니 혹 따라오면 절로 쫒아 달라는 문구다. 범종루로 가 꿩이 부딪혔던 곳이 어딜까 살펴봤지만 웬만한 머리로는 박아도 끄떡도 안할 쇠종이다.
상원사 (上院寺 1,079m)
상원사는 치악산 남대봉 아래에 있는 절인데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선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은 이 절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도하게 하였다. 6 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화 되었던 것을 1968년 복구하였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란히 쌍탑이 있는데, 이러한 쌍탑이 등장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삼국통일 이후로서 왕성한 국력에 의하여 전국도처에 유행하게 되었다. 이 석탑은 신라 석탑의 정형을 따른 2중기단 위에 3층옥개를 형성하였으며, 상부 상륜부는 둥글게 연꽃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무착선사가 도를 닦는 중에 큰 뱀에게 잡아먹히게 된 꿩을 구해주었더니 한밤중에 종이 울리지 않으면 무착선사가 죽게 되는 위급한 상황에서 꿩이 은혜를 갚기 위해 자기 몸을 부딪쳐 종을 울리고 죽으므로 생명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산의 명칭도 적악산(赤岳山)이던 것을 꿩치(雉)자로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상원사를 지키는 '돈수' (절에서 표시한 안내문에는 골덴레트리버종이라 했으나 진도개로 보임)
이름께나 유명한 절이지만 스님은 있는지 없는지 고요하기만 하고 개 두 마리만 이리저리 사람을 따라 다닌다. 대웅전에 삼배 올리고 일주문으로 돌아 나온다. 절 마당의 샘터는 바짝 말랐다.
길을 따라 제법 내려와 돌탑 옆에 배낭내리고 쉬노라니 문득 개가 꼬리를 친다. 언제 따라왔는지 안내문 글귀 그대로다. 일어서니 아예 지가 앞장을 선다. 마치 안내라도 하겠다는 듯이. 앞장선 놈을 겨우 붙잡아 스틱으로 위협하니 별수 없었던지 돌아간다. 마음만 먹으면 집에까지 데려가도 되겠다.
15:18 샘터
등로 우측으로 [샘터]를 가리키는 팻말이 있다. 여기는 좀 더 낮은 곳인지 물이 졸졸 흘러나온다. 이 샘물이 영월지맥을 울타리로 해 충주호로 흘러가는 제천천의 발원샘쯤 되겠다. 특이하게 샘을 만든이가 한국도로공사로 되어 있다.
남쪽 사면이라 안심했지만 깊은 골짜기라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고 꽁꽁 얼어붙은 빙판을 두어번 건너기도 한다. 성남리 일반등산로라 쇠다리도 여러곳에 설치되어 있다. 샘터에서 50분 걸려 임도를 만난다. 임도에는 잔설이 깔려 있긴해도 4륜구동 한대 올라와 있다.
임도로 5분 더 내려오니 성남관리초소가 있다. 국립공원의 통제소쯤 되는 모양이다. 지루한 시멘트길로 10분 더 내려가니 민박집이 나오기 시작하나 아직도 주차장은 한참이다. 도중 민박집에 먼저 내려오신 회장님과 총무가 막걸리 한잔 부어놓고 앉아 있다.
16:46 버스주차장 (높은다리)
원주시내버스가 들어오는 버스종점이면서 대형 주차장이다. 날씨가 그래서 그런지 손님은 우리 외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주차장 한켠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라면 끓이고 과매기 잘라 간단한 뒤풀이를 한다.
▲높은다리 [마을]
윗성남 북쪽, 상원골 아래 높은다리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옛날에 다리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주막집이 있었다고 한다. 이 주막집은 봇짐장수나, 사냥꾼, 과객등이 쉬다가는 주막집으로 다리를 건너면 치악산의 산세가 너무 험하여 다음 마을까지 가는 길이 험하였다고 한다. 밤에는 더욱 재를 넘어갈 수 없어 오후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대가 구성되어 다음날이 되면 출발하였는데 팔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먹고, 자고 쉬어서 산을 넘어 갔다하여 놀던 다리, 놀다가던 자리, 즉 노들다리, 노들자리가 되고 현재는 높은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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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 잘 하고 하산합니다. 편안한 산행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