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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7장, 28장
바울의 로마 호송, 배가 파산함, 멜리데에서 복음 전도, 로마에서 복음 전도
로마에서의 전도, 사도행전의 마지막 두 장은 주로 바울이 로마로 가는 여행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로마에서 바울은 유대인부터 먼저 전도한 다음, 찾아와서 자신의 메세지를 들으려 하는 모든 이들을 전도하는 통상적인 패턴을 따랐습니다. 바울이 바다로 로마까지 이동합니다. 로마로 가는 여정이 그 당시 그 지역에서의 항해에 대해 다른 자료들을 통해 알려진 바와 일치하게 매우 상세하고 놀랄만큼 정확하게 제시돼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기본 바탕은 특별히 로마에서의 전도를 위해 바울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누가는 복음이 땅끝을 향해 나아갈 때 로마로 가는 여행이 얼마나 멀고 힘든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4절~26절
27: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이 바람은 '광풍'으로 묘사되며 이 광풍은 헬라어로 '유라킬른'이라고 불립니다. 그와 같은 북동풍은 이 지역에서는 극히 위험하며 서로 반대 방향의 기류들이 만나서 발생하는 격렬히 소용돌이치는 바람과 함께 갑자기 나타납니다(14절).
'가우다'는 오늘날 '고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거루'(배에서 육지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데 사용되는 더 작은 배)는 아마도 물이 가득차서 선체를 끌어올리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16절)
고대의 배들은 폭풍이 몰려올 때 때때로 배의 양 끝에 둘러감거나 배의 중앙부 아래로 가로질러 묶은 줄로 보호되었습니다. 어떤 연장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배의 나아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한 중간 돛이거나 해묘였을 것입니다. '스르디스'는 배들의 묘지라는 악명이 높은 북아프리카 해안 근처로 모래톱이었습니다(17절).
나침반이 출현하기 이전에 뱃사공들은 방향 파악을 위해 '해'와 '별'에 의존했는데 그마저도 폭풍우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20절).'내 말을 듣고', 이는 아마도 거만하고 비판적인 말이 아니라 오히려 선원들에게 하나님이 계시하신 어떤 지침을 내리도록 준비된 자로서의 바울의 신뢰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의도된 말이었을 것입니다(21절).
미항에서 바울은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 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단지 잠재적인 위험 수준을 반영하는, 이미 세 번이나 파산한 적이 있는 산전수전 다 겪은 한 여행자로서의 의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22절).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바울이 구조된 궁극적인 이유는 로마에서의 복음 증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배 위에서의 요나의 존재는 모든 사람을 파괴시킬 위험을 가져온 반면(욘 1:12), 바울의 존재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보장했습니다(24절).
27절~44절
27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42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그들은 육지가 가까워지는 것을 알고 그 배의 유일한 작은 거루를 타고 자기들만 안전하게 해안에 상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 그 배에는 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남지않아 많은 인명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백부장에게 사공들의 계획을 알려주었고, 백부장은 사공들을 제지했습니다. 바울의 행동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양립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시겠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시행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수단으로서의 인간행동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30절).
구조는 날이 밝으면 시작될 예정이었고 최대한 힘을 내려면 모두에게 음식이 필요했습니다(33절).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바울이 축사하고 떡을 뗀 것은 성찬을 거행한 것이 아니라 곧 그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증거한 것이었습니다(33~35절).
바울의 로마 호송 여행 경로
276명이라는 승객 수는 길이가 3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곡물 수송선의 크기에 비하면 그리 많은 인원이 아니었습니다(37절). 사공들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동안에는 배의 키를 물 밖으로 잡아당겨 묶어놓았다가 이제는 배를 몰기 위해 다시 물속으로 풀어놓았습니다. 돛은 배의 방향을 잡기 위한 뱃머리에있는 작은 돛이였습니다(40절).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의 의미는 모래톱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물은 거기에 부딪쳐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고물'('배 후미')은 '큰 물결'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41절).
28:1~10절
28: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바울이 멜리데에서 전도함, 파산한 항해자들은 나머지 겨울을 이 섬에서 보냅니다. 바울이 그곳에 머문 기간은 독사에게 물렸으나 상하지 않고(1~6절), 그 섬의 가장 높은 사람의 아버지를 고치는(7~10절)일로 특정지어 집니다.
'멜리데'는 무라(27:5)에서 로마까지 가는 주요 경로 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을 폭풍우 속으로 끌고 갔다가 다시 제 갈길로 돌아오게 했습니다(1절). 헬라어에서 '원주민들'은 야만인('바르바르)' 이라고 불리는데 이 말은 부정적인 뜻을 지닌 말이 아니라 단지 일반적으로 헬라어를 말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입니다(2절).
그리스- 로마의 민간 전승에서는 난파선에서 탈출한 도망자는 결국 독사에 물려 죽게 된다고 했습니다(4절).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을 신으로 여겼을 때 바울은 이에 맹렬히 항의했습니다. 여기서는 바울을 예배하려는 어떤 시도도 언급되지 않으므로 그때와는(14:14) 상황이 다릅니다. 사도행전 전체에 걸쳐 기적은 복음 선포의 기회를 제공하며 아마도 바울 역시 멜리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6절)
'보블리오'는 이 섬의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이 말은 멜리데의 비문들에게 발견되었고 아마도 공식적인 호칭이었을 것입니다(7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렸다는 묘사는 '몰타열'이라고 불리는 염소 젓에 의해 발생하는 전염병의 증상과 유사합니다. 이 지역 전체 병자들이 몰려온 사실은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뒤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눅 4:38~41). (8절).
고대에 배를 타는 여행객들은 자기가 먹을 음식을 스스로 조달해야 했습니다. 친절한 멜리데 사람들은 바울과 같은 배를탄 일행에게 남은 항해 기간 동안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주었습니다(10절).
11절~16절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바울이 로마에 도착함, 이 구절들은 바울의 여행이 마지막 목적지와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석 달 후에', 이는 아마도 겨울이 지나고 지중해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게 되는 때인 3월(주후 60년경)을 가리킬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 배'는 아마도 '곡물' 수송선이었을 것입니다(11절).
'보디올'에 있는 '형제들'은 이 시기에(주후 60년경) 기독교가 로마에만 전파된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안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라는 누가의 말은 성급해 보일 수도 있지만(로마는 아직도 209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로마에 이른 과정을 보여주는 요약적 진술 역할을 하는 말일 것입니다(17~18절).
바울 일행은 로마로 가는 길에 두 군데, 즉 로마에서 약 64킬로 떨어진 '압비오 광장'과 거기서 19킬로미터 더 간 곳에 있는 '트레이스 타베르네' 에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과 만났습니다. 바울은 3년 전에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고 개인적으로 로마를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로마서말미(롬 16:1~16)에 나오는 문안 인사는 바울이 이미 로마 교회에 많은 지인이 두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15절)
17절~31절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29 (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이 로마에서 유대인들에게 전도함, 직접 회당을 방문할 수 없었던 바울은 로마의 유대인들이 자기에게 찾아오도록 초대했습니다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은 아마도 회당 지도자들이었을 것이고 로마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에서 바울의 주된 목적은 자신이 로마에 와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떤 유대인의 율법도 범한 적이 없음을 밝혔습니다(17~18절).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바울은 자신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발과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어떤 잘못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을 고발하기를 거부한 점에 있어서도 충성스러운 유대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부활을 통해 입증된 바와 같은 메시아의 오심입니다(19~20절).
바울에 메시지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의 성취를 나타냅니다(23절).
여기서 인용된 이사야 6:9~10은 예수님도 유대인들이 전체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셨습니다(마 13:14~15). 그들은 '볼' 눈과 '들을' 귀가 있었지만 '마음'- 생각하고 뜻하고 결정하는 기관-이 반응하지 않았습니다(26~27절).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전도 대상을 전환하는 바울의 패턴은 로마에서도 반복되었지만 바울이 이 시점에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을 포기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28절).
바울이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일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이 상황은 '온 이태' 동안 계속되었고(주후 60~62년) 누가의 기록은 이 시점에서 끝납니다.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한 정보는 성경이 위의 자료와 바울의 몇몇 마지막 편지들 속에 담긴 암시에서 나옵니다. 교회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주후 325년에 글을 쓰면서 바울이 감금에서 풀려나서 2차 투옥으로 체포되어 갇힐 때까지 사역을 계속하다가 2차 투옥 때 순교했다는 전승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바울이 옥에 갇힌 시간은 낭비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쓴 때는 바로 로마에서 투옥된 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1차 투옥(60년대 중반)에서 석방된 이후의 시간은 바울이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쓴 때일 것입니다. 바울은 아마도 2차 투옥 기간에 처형을 기다리면서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후서를 썼을 것입니다(참조, 딤후 4:6~8). (30~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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