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음악 사역자로서, 아니 어쩌면 그냥 크리스천 음악인으로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내가 교회 사역을 시작한 것은 어언 7년전 2003년의 일이다.
물론, 그 전에도 교회에서 찬양으로 봉사했었으나 교회 음악을 책임지고 목회자와 동역하는 관계의 사역자가
처음 된 것은 2003년 9월이다.
그 때 이후, 나의 정체성이나 모습은 내가 받은 비젼인 '작곡, 음반, 공연'이 아닌
목회자를 돕는 예배 인도자로서였다.
나의 작곡의 기본 방향이 예배인 것도, 그리고, 내 곡들 중 상당 수가 교회 예배에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 곡이 교회 사역에 쓰이는 것과 내가 교회 사역자가 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노래를 잘 한다고 다 가수가 될 필요가 없듯이, 내가 예배를 인도할 수 있고,
목회자와 동역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내 비젼이 교회 음악 목회자나 예배 사역자는 아니다.
나는 작곡자이다. 내가 쓰는 곡들이 예배에 쓰이든 안 쓰이든, 목회자들이 원하는 곡이든 아니든 말이다.
나는 단지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가운데 나오는 곡들을 쓸 뿐이다.
교회 사역자로서가 아니라, '평신도 작곡자'로 살 던 시절에는 생계로 힘들고,
주변에서 날 바라보는 시선이나 평가가 지금만큼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소명대로 살았기에 행복했다.
하지만, 2003년 이후부터는 어느새인가 교회에 속한 사역자가 되어 페이을 받으면서 사역하지 않으면
왠지 '백수'가 된 것 같이 느끼게 된 내 자신을 발견했다.
분명한 것은 음악 사역자에게 교회가 직장이 되면 안 된다.
교회는 음악 사역자들을 돕고 돌볼 의무가 있고, 음악 사역자들도 교회를 섬기고 도울 의무가 있다.
하지만,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인한 자원함이어야 한다.
서로의 이익 때문에 할 수 없이 서로를 억지로 참아가며 사역하는 것은 진정한 동역이 아니고,
단지 업무상의 계약 관계일 뿐이다.
내가 한 교회의 찬양 목회자(개인적으론 찬양목회자나 음악목회자란 명칭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음악이나 찬양은 목회 사역과는 다른 것이다. 비록 서로의 분야에 하나가 되어 동역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틀이나 예배 인도자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 교계에서 활동하거나 스스로를 타인에게 설명하기에는
참으로 쉽고 긍정적이다.
하지만, 내 길이 목회자나 인도자가 아니라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해서 음악으로 표현하기 원하는 크리스천 뮤지션이라면?
아마도 다시금 생계와 교계에서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느끼는 것은 내 길은 찬양 전도사나 예배 인도자로서 한 교회의 예배를 기획하거나
목회자의 목회를 단지 돕는 차원의 음악 사역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목회자나 회중들을 위한 곡을 쓰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주시는 대로의 감동을 따라서 내가 쓸 수 있는 곡들을 쓸 뿐이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내가 알려진 곡들의 작곡자가 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유명한 작곡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곡들을 최대한 많이,
최대한 정확하게 받아 적는 것이다. 그것만 할 수 있다면....
물론, 지금의 사역도 내겐 너무나 감사하다.
내가 누구길래, 찬양 전도사로서 한 교회의 예배를 책임지며, 예배 인도자 학교나 작편곡 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예배를 인도한단 말인가? 그러나, 백조가 물에 떠 있다고 물고기가 되지 않듯이
내가 지난 몇 년간 예배 인도 사역을 해 오면서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으며 생계의 일부를 해결해왔다고 해서,
계속 그 길로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작곡자로서 전념하면서, 편곡과 연주를 하면서 약간의 강의를 하는 것...
그것이 내가 돌아가야할 내 본 모습이다. 언제 어떻게 돌아가야 할까? 내 영은 이것을 놓고 날마다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