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있는 첫계명(엡 6장 1-3절) 240512 주일설교
바울은 본문에 X인의 상호 복종에 대한 교훈,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태도를 명한다. 바울은 가정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해야 함을 명령한다.
부모 공경은 G이 세우신 영원한 계명이다. 자녀들은 마땅히 부모를 섬겨야. G이 세우신 부모 공경의 계명은 시대가 변해도 폐지될 수 없다. 당시 교인들 가운데는 교회를 섬긴다는 구실로 부모 봉양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
바울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다” ‘옳다’는 헬 ‘디카이오스’ 바르고 정당하다는 뜻. 곧 그렇게 함이 마치 바르고 넓은 길을 가듯 평탄하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순종하다’의 본래 의미는 ‘귀를 기울이다’ 순종은 바른 경청에서 비롯돼서 바른 경청을 지혜라고도 한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다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라고 기도, G께서는 그 기도를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라고 받아들이셨다. 곧 왕으로서 재판을 잘할 수 있는 지혜는, 곧 백성들의 송사를 경청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명령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계명을 잘 지키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된다는 복이 약속으로 주어져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약속 있는 첫(prōtē, 프로테) 계명’ 표현을 통해 부모에 대한 효도야말로 자녀들이 마땅히 행 할 계명이라면서, 부모공경하는 자녀들은 잘되고 이 땅에서 장수에 약속이 있다.
탈무드는 부모 공경은 무척 어려운 계명이라면서 그 이유를 IS이 출애굽한 후 홍해를 건너고, 곧 그들은 시내산에서 십계명 받는데, 당시 IS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았는데, 만나와 메추라기를 얻기 위해 부모님들이 특별히 한 일이 있었다. 어린 자녀들도 누구나 매일 아침 밖에 나가 거둘 수 있었다. 부모님의 특별한 도움 없이도 광야 40년을 지낼 수 있었다. 부모공경의 계명은 부모가 능력이 있건 없건 공경해야 한다고 명한다.
바울이 “약속 있는 첫 계명” 많은 주석가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어떤 의미에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며, 어떻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장수하는가? 여러 학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 베스트는 일반적으로 순차적인 방식에서 “첫 번째”로 번역되는 ‘프로테’(prōtē)가 중요성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흔하지 않은 입장을 진전시킨다. 따라서 그는 에베소서 6:2가 “탁월한 계명”언급이며, 이유는 그것이 십계명에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Ephesians 6:2, 3” ICC: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Ephesians
● 아놀드는 ‘프로테’(prōtē)에 대한 베스트의 해석을 거부, 이 견해에 따르면 10계명 중 어떤 것도 “첫 번째”로(중요하게)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이 약속이 첨부된 첫 계명임을 ‘프로테’(prōtē)가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그는 번영의 약속을 오로지 영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지나치게 영적으로 해석에 대해 경고하는데, 왜냐하면 바울이 “땅에”(엡 6:3)라는 문구를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Ephesians 6:2–3” ZECNT: Ephesians
● 클라인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이 약속과 함께 오는 첫 계명이라 지적한다(출 20:4–6) ‘프로테’(prōtē)가 이 계명이 “가장 힘든”이라는 의미에서 혹 “가장 좋은” 보상을 약속한다는 의미에서 “최초”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클라인은 바울이 의도한 바를 확실하게 결론 내릴 수 없다. “Ephesians 6:2”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Volume 12: Ephesians—Philemon (Revised Edition)
● 링컨은 출 20:4–6을 약속 있는 첫 번째 계명으로 밝히는 일부 주석가들의 입장에 반대해서, 부모 공경 계명만 실제적 약속을 포함한다고 주장. 다른 신약에 이 명령을 언급한 반면(예, 마 15:4; 19:19; 막 7:10; 눅 18:20) 엡 6:2–3만 약속이 첨부된다고. 링컨 그 약속이 “땅에서의 안녕과 장수”를 제공한다. “Ephesians 6:2–3” WBC: Ephesians
● 오브라이언은 출 20장의 원래 계명에 주목, 그것은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IS)땅에서 길고 좋은 삶을 약속했다. 그는 IS땅에 대한 언급이 없음은, 바울이 명령을 X인들에게 적용 그 개념을 보편화. “Ephesians 6:2–3” PNTC: The Letter to the Ephesians
● 슈나켄부르크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가장 어려운 계명이라는 유대인의 해석을 일축. 오히려 그는 이 계명이 십계명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것을 규정하는 첫 번째 계명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라고 제안한다. “Ephesians 6:2–3” The Epistle to the Ephesians: A Commentary
첫 계명이란 첫 번째 계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약속 있는 유일한 계명이라는 뜻.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계명들인 십계명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마땅히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유일하게 제5계명인 부모 공경에 대해서 만큼은 땅의 복과 장수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이것은 부모 공경은 반드시 지켜야 할 그 이상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복의 인센티브를 주면서까지 부모 공경의 계명을 지키도록 강력하게 요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모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통하여 공경을 받게 함으로써, 수고를 보상하시겠다는 것이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녀들에게는 땅에서 잘 되는 복과 장수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 자체도, 엄밀하게는 부모에게 주어지는 복이기도 하다. 자녀가 잘 되는 것은 모든 부모들이 바라는 제1순위 기도제목이기 때문이다.
손흥민 손웅정
요즘 주목받는 아버지상으로 축구국가대표 선수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춘천 유소년 축구팀 감독). 손 감독은 서울영광교회(상도동) 성도이며 아들을 위해 늘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그는 손흥민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축구를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엄격한 훈련을 시작했다. 추석이고 설이고 하루도 안 빼놓고 하루에 2시간씩 볼을 잘 다루고 볼을 통제하는 기본 훈련을 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기본기는 무시하고 경기를 하게 한다. 그래, 경기를 해도 좋다. 그런데 성적을 내게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성적인가. 어려서 너무 혹사당하다보니까 프로에 입단해야 하는 18살 정도가 되면 문제가 생겨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흥민이는 슈팅 연습을 18살 이후 지나서야 했다.” 그는 아직 관절과 근육이 성장 중인 어린 선수들에겐 공을 멀리 강하게 차는 것을 절대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녀들에게 영재 스포츠 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들을 위한 충고를 했다. “인무원려 필유근우다. 멀리 보지 않으면 근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손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은 항상 기본기를 강조하고 오른발, 왼발 슈팅연습도 강조하여 경기전 양발 500회씩 연습하게 한다. 늘 겸손, 성실을 강조해 왔다.
손웅정 감독은 “흥민이가 그래도 잘 이해해 준다. ‘잘하고 못 하고를 초월하라’고 말하면 흥민이가 ‘네, 아빠’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유대 문학에 나오는 한 가지 이야기.
아바후라는 랍비가 아들에게 물을 떠 오라고 했습니다. 아들도 랍비인데 물을 떠 오니 그새 아버지가 잠이 드셨습니다. 아들은 그냥 아버지 옆에 물컵을 든 채 아버지가 깰 때까지 기다립니다. 아버지가 다시 물 떠 오라고 말하지 않게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아버지 옆에서 물을 들고 서 있는 동안 그동안 씨름하고 있던 신학적 이슈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경전의 어느 구절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고려대학교 총장을 지낸 홍일식 교수 일화.
그는 효도 운동을 벌이는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한번은 미국을 방문하여 한인 식당에 갔는데 손님이 많은 것을 보고 주인에게 덕담을 건넸습니다. “장사가 잘되시죠?”그런데 주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장사가 잘되면 무엇합니까?”
왜 그런지 물었더니 사연을 말합니다. “이틀이 멀다하고 동네에 사는 흑인 불량배들이 몰려와 행패를 부려 죽을 지경입니다.” 홍총장이 묘안을 알려주었습니다. “특별한 날을 정해 이벤트를 하세요. 흑인들에게 부모를 모시고 오면 원하는 대로 음식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며 그들에게 부모 공경을 가르쳐 보세요.” 그 말을 들은 주인은 시큰둥한 표정이었습니다.
수년 후 홍총장이 식당에 다시 갔는데 주인이 몹시 반가워하며 말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그 말씀을 듣고 솔직히 시큰둥했습니다. 그러나 딱히 대안이 없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포스터를 붙이고 광고했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온 흑인들에게 음식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흑인들도 부모들도 모두 좋아하더군요. 그러면서 점차 흑인들의 행패가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다른 동네 불량배들이 행패를 부리면 동네 흑인들이 달려와 보호해 줍니다. 이제 장사할 만합니다.”
부모 공경은 인륜의 기본. 부모공경은 가정, 나아가 사회, 국가의 질서가 잡힌다.
교회에서는 5월의 두 번째 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키고 있다. 어버이주일을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자녀들로 하여금 어버이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그 은덕을 기리도록 가르쳐야 하겠지만, 동시에 어버이 된 어른들이 스스로 과연 어버이로서 어떤 사명과 직임을 하나님께 받았는가를 점검해 보면서, 하나님과 자녀들을 향하여 어떤 마음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모는 가정이라는 작은 교회들을 책임 맡은, 가정의 제사장들이다. 사도 바울은 부모에게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엡6:4). 이것은 가정이 단순한 가족들을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는 사회적 단위로서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작은 성전, 곧 가정교회라는 점을 보여준다.
히브리어로 가정을 ‘바이트’라고 하는데, 이것은 가정과 함께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가정이 하나님의 작은 성전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될 때, 그 가정은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세워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어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며 무슨 재능교육을 더 시킬 것인가 관심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이 작은 교회로서 가정이 갖는 우선적인 기능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5세가 되기 전에 신앙과 인생의 기본적 개념들이 정립된다고 보았다. 이것이 가정교육의 가장 큰 전제이다. 어릴 때 배운 것이 평생 동안 간직되면서 중요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도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의 거짓 없는 순수한 신앙이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에게 전수받은 것(딤후 1:5)임을 칭찬하면서, 그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워 잘 알고 있었다는 것과 긴밀하게 관계됨을 지적하였다(딤후 3:15).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상관적 관계에 있다. 계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의 논쟁처럼, 어느 하나에 치우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하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0-21)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이야기는 룻기를 꼽을 수 있다. 룻기의 주인공인 룻은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소망도 없는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이국 땅 베들레헴으로 이민을 왔다. 그곳에서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정성껏 공경하였다. 비록 보리 이삭을 주워서 생계를 꾸려야 할 만큼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의 한 여인이었지만, 부유한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됨으로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왕인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복을 받았다.
과연 룻기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단순히 룻이라는 한 여인의 신앙인격과 성실성에 의한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룻기의 내용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면, 룻의 고국을 떠나 이스라엘로 이민 오겠다는 결단과 그 이후 시어머니를 위한 효성스러운 행동은 오히려 시어머니 나오미의 깊은 신앙과 배려에서 연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오미는 룻에게 본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앞길이 창창한 젊은 아낙네 룻에 대한 나오미의 사려 깊은 충고였다. 또한 보아스를 만나는 과정에서도 나오미는 모든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세워, 룻으로 하여금 적절하게 대처하게 하였다. 그 결과로 룻은 보아스와 결혼할 수가 있었다.
나오미 역시 과부의 입장에서 그런 배려와 아량을 베풀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기 며느리를 돕기 위하여 사랑으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룻기의 아름다운 가정 이야기는 깊은 신앙과 인격을 소유한 나오미가 이방 여인이었던 며느리 룻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런 점에서 룻의 극진한 효성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와 이루어낸 합작품이 아닐 수 없다.
자녀들이 부모 공경의 미덕을 지켜나가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잘 되는 복과 장수하는 건강의 복을 누리는 모두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것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는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데서 시작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모들이 자신의 사명과 위치를 지키려는 진지한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자녀들에게 부모 공경을 명령하면서 동시에 부모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명령한 것도 그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상호 긴장감을 갖고 피차 간 진지한 노력으로 유지할 인격적 관계이다.
부모는 하나님의 생명인 자녀를 위탁받은 청지기들이다. 이기적인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맡았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여야 하며, 인생의 올바른 길을 걷도록 사랑으로 도와주며, 또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가정목회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여야 한다.
그런 신앙의 자세를 갖게 될 때, 자녀들은 부모를 순종하며 공경할 것이고, 그것을 통하여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의 기름진 복과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녀들이 누리는 복이면서 또한 부모가 누리는 복이기도 하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가장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세우시는 분이시지만, 우리도 가정을 세우는 일에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과 더불어 “세우는 자의 수고”가 강조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집을 세우는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쳐 놓고 독단적으로 집을 세우는 분이 아니심을 보여준다. 곧 우리가 우리의 집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세워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헛되도다”(시 127:1)
일제 강점기에 이흥렬(李興烈)이라는 음악에 재능이 많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음악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피아노가 없으면 음악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피아노가 없어서 음악 공부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음악에는 피아노가 필수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소자는 음악 공부를 접고 귀국하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혼자 몸으로 유학을 떠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가진 것도 없었지만, 조금씩 늘어난 빚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동네 근처의 산이란 산을 모조리 뒤져 솔방울을 긁어모았습니다. 불쏘시개로 화력이 좋은 솔방울을 팔아 거금 400원(1930년대 쌀 한 가마는 13원)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습니다. 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 돈으로 피아노를 샀습니다. 그리고 이흥렬이 처음으로 작곡한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시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이흥렬 곡 양주동 사)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 없어라.
칼럼니스트 최효섭 목사 “어머니는 누구인가”
어머니는 백과사전이다. 아이들의 질문에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해가 지면 밤은 어디에 가 있는지, 제트기가 어떻게 날아가는지, 한국의 수출품이 무엇인지, 고양이 새끼가 어디서 나왔는지 척척 대답한다.
어머니는 일류 수리공이다. 자전거 체인에 말려든 한쪽 바짓가랑이를 찢지 않고 꺼낸다. 셀로판테이프와 머리핀만 가지고 대부분의 고장은 다 수리한다.
어머니는 배관공이다. 목욕탕에 물이 안 내려가는 곳에 휴지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안 보고도 안다.
어머니는 간호원이다. 새의 날개가 부러진 것을 치료할 줄 알고, 흔들리는 이를 아프지 않게 빼낼 줄 알며, 한밤중에도 아픈 귀를 고칠 줄 수 있다. 어머니는 위대한 탐정이다. 행방불명된 내 양말짝을 용케도 찾아낸다. 어머니는 피곤할 줄 모르는 재봉사다. 각종 배지를 달고 청바지에 붙일 괴상한 장식을 고안해 낸다. 날마다 잃어버린 단추를 달아 놓는다.
어머니는 최선의 교육자이다. 대부분 좋은 것은 어머니의 무릎에서 배웠고, 대부분 나쁜 것은 적어도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웠다. 어머니의 교수법은 아주 우수해서 무릎 교실에서는 한 명도 낙제하는 일이 없다. 어머니의 교육만큼 오래가는 것이 없다. 아기의 침대에서 시작한 것이 무덤까지 간다.
어머니는 애인이다. 모든 인간의 첫사랑은 어머니이다. 처음 주택은 어머니의 가슴이다. 처음 침대는 어머니의 팔이다. 어머니의 무릎에서 처음 기도를 배워 그것이 인간의 처음 예배당이 된다. 어머니는 고향이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그 마음은 어머니께로 돌아간다. 외로워도 슬퍼도 그 마음은 어머니를 찾는다. 아버지를 찾으며 우는 아이는 어딘가 잘못됐다. 고향이 주는 그리움과 평화와 안심이 모두 어머니에게 있다.
어머니는 아이의 하나님이다. 아이가 이 우주 속에서 어머니만큼 믿는 대상은 없다. 어머니만큼 의지하는 대상도 없다. 어머니만 곁에 있으면 아빠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이 없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눈에 안 보여도 어디 있는지 알고 말을 안 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어머니는 눈치 면에서 천재이다. 어머니는 관상가이다. 아이의 얼굴에 실수와 성공, 걱정과 희망을 모두 읽는다.
어머니는 십자가에 달린 순교자이다. 어머니의 인내는 치약의 튜브 같다. 다 쓴 것 같아도 짜면 아직 남아 있다. 어머니는 희생이란 것을 생각조차 안 하고 희생한다. 아픔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고려장(高麗葬) 풍습이 있던 고구려 시대 박정승의 일화.
박정승은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노모는 가면서 지게 위에서 나뭇가지를 뚝뚝 부러뜨렸습니다. 깊은 산속에 도착한 박정승이 눈물로 절을 올리자 노모는 “나라의 법을 어길 수는 없다. 날이 어둡기 전에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길을 잃을까 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해두었다”고 말합니다. 박정승은 그 상황에도 자식을 생각하는 노모를 차마 버리고 갈 수 없어 다시 모시고 내려와 국밥을 어기고 몰래 봉양했습니다.
그 무렵 중국 수나라 사신이 똑같이 생긴 말 두 마리를 끌고 와 어느 쪽이 어미이고 어느 쪽이 새끼인지 알아내라고 문제를 냈습니다. 맞추지 못하면 조공을 받겠다고 말합니다. 왕과 신하들이 모여 회의를 했지만 해답을 찾지 못하여 나라가 곤경에 처하였습니다. 이 문제로 박정승이 고민하는 것을 보고 노모가 말합니다. “그게 무슨 걱정이냐. 나이 먹은 부모라면 누구나 다 안다. 말을 굶긴 후에 여물을 주거라.먼저 먹는 놈이 새끼다. 새끼를 배불리 먹이고 나중에 먹는 놈이 어미이다.” 박정승은 사신 앞에서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사신은 고구려인의 지혜에 탄복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박정승은 해답을 가르쳐준 노모의 현명함을 임금께 설명하고 고려장의 철폐를 진언했습니다. 그때부터 고려장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숙종 때의 문학가 김만중(소설 구운몽의 저자)의 일화.
그는 태어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한 유복자였습니다. 가난했던 어머니 윤씨 부인은 베를 짜서 살림을 살면서도 어린 만중에게 “사람이 걸을 가장 큰 길은 효도이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김만중은 어머니의 교훈을 받아 열심히 공부하여 스물 아홉 살 때 과거에 장원 급제했습니다. 아들이 장원급제하자 남편을 잃었을 때도 울지 않던 어머니가 기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동네에 잔치를 벌이기로 하였습니다. 김만중은 형과 함께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기쁘시게 할까’ 해서 ‘색동옷을 입고 어머니 앞에서 춤을 추자’고 의논했습니다. 다음날 잔치를 벌일 때 형과 함께 김만중은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 같이 춤을 추었습니다. 김만중의 효도 춤은 잔치에 모인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회갑잔치 때마다 김만중의 본을 따라 자식들이 부모 앞에서 춤을 추는 일들이 많았다고.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이야기.
어느 날,제자 맹무백(孟武伯)이 공자에게 효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의 병을 걱정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효가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동문서답과 같은 대답이라고 여겨지지만, 효는 부모가 자식의 병을 걱정하듯 자식이 부모를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효는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그 마음처럼 자녀들이 부모님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물질을 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나폴레옹 황제가 폴란드를 점령한 후에 부자 영주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나폴레옹은 신하들과 더불어 영주의 집을 찾아갔다. 그곳에 손님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폴레옹이 첫째가는 손님이었다. 그러나 영주는 상석이 아닌 세 번째 자리로 나폴레옹을 인도하였다. 상석이 아니라 불쾌하게 여기는 나폴레옹의 표정을 보고 신하들이 따지듯이 영주에게 물었다. “나폴레옹 황제의 말 한마디면 이곳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됩니다. 황제에게 잘 보여야 하는 상황에 상석이 아니라니 후환이 두렵지 않소?” 그러자 영주는 신하들과 나폴레옹을 보며 말했습니다. “저 상석의 두 자리는 곧 나오실 부모님의 자리입니다. 두 분이 연로하셔서 거동이 늦으십니다. 황제 폐하가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분인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저의 부모님이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두 분에게 상석을 준비했습니다.” 영주의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마음에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프랑스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국민들에게 효성이 지극한 폴란드 영주를 소개하고 전 국민이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호소했다.
흑인 여자 가수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은 ‘100년에 나올까 말까 한 가수’라고 극찬받은 세계 최고의 알토 가수다. 97세로 G 품에 안겼다. 그녀가 불러 심금을 울렸던 흑인영가 중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 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 내용이 그녀의 생애를 고백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감동.
앤더슨은 당대 최고의 성악가였지만 가난과 인종차별과 싸워야 했다. 자신이 섬기던 교회 성가대서 모아 준 돈으로 첫 성악 레슨 받고 1939년 성악가로서 명성 얻었으나 피부색 때문에 워싱턴 D.C 컨스티튜션 홀에서 노래 부를 수 없었다. 시민들은 규제에 대한 항의 표시로 링컨 기념관에서 연주회 열었다. 7만 5천 명 인파가 열광하며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한번은 오페라 공연 후 기자가 앤더슨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앤더슨은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기립 박수 받으면 곧잘 눈물을 흘렸기에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대답을 기대하였으나 앤더슨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공연을 마친 후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 이제 더 이상 남의 빨래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하고 부둥켜안고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등을 비벼 드릴 때였다.” 마리안 앤더슨의 성공 뒤에 딸을 위해 쉼 없이 남의 빨래하며 손이 부르튼 어머니의 사랑과 그 어머니의 뒤 바라지를 잊지 못하는 앤더슨의 효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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