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꿈 중 하나는 패션디자이너였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몇 년 전에도 관련 학원을 6개월간 다닌 적이 있다. 영광에서 광주까지 다닌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고 늘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이론은 여전히 어려웠고 수업시간도 부족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1년 과정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작년에 광주로 이사를 왔다.
그만큼 했으면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기고 옷 한 벌쯤 만들어 낼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나마 한 가지 수확이라면 운 좋게 양장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일일 것이다. 한번 떨어지고 두 번째 시험에서 접수를 망설였었다. 자신도 없었고 그 즈음 애들 아빠 계모임에서 해외여행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영부영 일주일이란시간을 보내고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희정씨 이번에 실기시험 접수 안하실 거예요.”
“자신이 없어요. 연습을 전혀 못했거든요.”
“할 때 해야지 나중에는 못해요. 접수해놓을 테니 오늘 학원에 한번 나오세요.”
얼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학원에 나갔더니 시험 볼 사람들이모두 나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씨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언니 이번에 시험 볼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없는데 선생님이 접수해 놓겠다고 해서 왔어.”
“방금 전에 접수 마감 되었데요. ○○씨도 접수 하려다 못했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상관없어 일단 약속은 했으니 선생님을 만나봐야지 뭐.”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사무실로 갔다.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선생님 접수 마감됐다던데 사실이에요?”
“네, 몇 분전에 마감 되었어요. 하지만 희정씨는 접수 했어요.”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시험5일 남겨놓고 다시 학원에 나와 연습을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패턴을 뜨고 재단해서 옷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나마 첫 시험 때는 졸업 전이었고 선생님이 옆에 있어서 물어보기도 수월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접수비만 날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차츰 마음을 비우게 되었다.
‘접수 하지 않았다면 그냥 낮잠이나 자고 뒹굴 거렸을 텐데 이렇게라도 나와 연습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일요일 아침 시험장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 명의 감독관이 주의 할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랩스커트였다. 어찌 보면 가장 쉬운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패턴을 뜨는 데서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뒷 트임 부분을 반대로 그리기도 하고 오려내는 데서도 실수연발 이였다. 어찌어찌 해서 재단한 천을 갖고 봉재실로 들어갔다.
뒤에서 두 번째로 들어선 봉재 실에선 요란한 재봉틀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재봉틀을 돌리고 중간 중간 다리미로 다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리미로 다린 옷을 가져와 재봉틀을 돌리려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여긴 제 자리 인데요.”
“네!”
주변을 둘러보니 내 자리는 바로 옆이었다.
“죄송합니다.”
짧은 사과의 말을 남기고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다리미로 옷을 다리는 과정에 허리 부분에 검은 자욱이 생겨버렸다.
“선생님, 옷에 얼룩이 생겨버렸는데 어쩌죠?”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반영되지 않습니다.”
한숨 돌리고 다음 과정을 하기 위해 공구함을 뒤지고 있는데 누군가 나와 똑 같은 말을 했다.
“선생님, 옷에 얼룩이 생겨버렸어요.”
‘어이구, 저 사람도 나랑 똑 같은 실수를 했나구나’
생각하는 찰나에 내가 만들고 있던 옷이 보이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옷과 내 옷이 순간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며 옷을 갖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럴 수 있죠 뭐”
나 역시 방금 전에 남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일이 기억나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단추를 달고 있는데 감독관이 말했다.
“이제 5분 남았습니다. 마무리 해주십시오.”
2분가량 남기고 마무리를 했다.
이번에 시험 본 사람은 3명 이었다.
시험장을 나오는데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모범생 ○○○씨가 받았다.
“네, 우리 세 명 다 완성은 했어요.”
점심이라도 같이 먹을까 했더니 각자 볼일 있다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버스를 기다리다 마트에 들려 아이스크림을 세 개나 사서 먹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아이스크림 먹는 내가 이상한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봤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라면도 끓였다.
식탁에 앉아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뜨끈한 라면을 먹는데 참으로 행복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번경험으로 얻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용기 있는 자는 무엇이든 얻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사실 양장기능사 자격증 하나 땄다고 삶이 크게 달라지는것은 없다. 그 윗단계인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이 분야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관련 직업을 얻는 것 조차 쉽지 않고 그 작업 환경 또한 열악하기 때문에 취업 했다가도그만 두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내겐 이 자격증이 의미가 있다.
난 앞으로도 완벽하지 않아도 시도하고 도전할 것이다.
지난 삶을 돌아 볼 때 수줍어 뒤로 숨고 부족함에 망설였던 일들은 어느 것도 이루어 진 것이 없다.
이번 일도 용기 내어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얻은 자격증 이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2016년3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