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 =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재활의 의미를 일깨우는 자전적 기록. 전편인 '실종일기'는 저자인 일본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가 오랜 방황과 침체를 딛고 재기하는데 기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2005년 주요 만화상을 휩쓸며 재기의 발판을 다진 히데오는 스스로 알코올 중독을 치유하는 과정을 재구성해 8년만에 다시 후속작으로 내놓았다.
의존증 환자의 생생한 투병의 기록이 담겨 있다. 출간기획자는 "몰락의 끝에 서서야 그간 수많은 유혹에 밀려 외면해온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340쪽. 1만5천원.
매일 밤 술에 취해 자던 습관 때문에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들고, 그래도 술을 마시는 꿈을 꿀 정도로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상태다. 한마디로 ‘평생 도망칠 수 없는 성가신 숙명’이다. 이 숙명을 거스르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아즈마 히데오는 1969년에 데뷔해 SF, 코미디, 미소녀 만화 등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발하게 활동한 만화가다. 만화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은 없지만, 일본에서는 부조리 개그나 미소녀 분야의 선구적 작품을 출간한 작가로 유명하다. 197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우울증이 나타나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1989년 11월 술을 마시다 산에 들어가 나무에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노숙을 시작한다. 이듬해인 1990년 2월 경찰에 발견돼 집으로 돌아가지만, 1992년 4월 다시 가출해 8월까지 두 번째 노숙을 한다. 우울증과 가출, 노숙으로 이어지는 생활을 끌어간 건 음주였다. 그렇게 술을 마시다가 가족에게 끌려 알코올 중독 병동으로 들어가던 1998년에는 잘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취해 있는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 두 번의 실종(가출과 노숙을 작가는 실종이라 부른다. 의도적으로 집을 나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라는 의미로 해석된다)과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2005년도에 출간한(우리나라는 2011년 출간) <실종일기>다.
입원치료 3개월 동안의 일상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이하 알코올 병동)은 제목처럼 <실종일기>에서 이어지는 작품으로, 3개월간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해 있던 경험을 그렸다. 작가는 인트로에 자신의 중독상태를 설명한다. 아침에 일어나 숙취를 달래기 위해 소주를 마시고, 점심에는 일본주 다섯 팩을 사 거리와 공원을 돌아다니며 마시고, 집에 들어올 때는 1.8ℓ짜리 소주 팩을 사서 밤새 마시다가 취해 쓰러지는 생활이 반복됐다. 숙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고, 토하고, 힘들어서 또 마시고, 토하고. 결국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듣기에 이른다. 극심한 공포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쓰러지고, 자살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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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 히데오 작가의 만화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의 한 장면. / 세미콜론 제공 |
아픈 시대에 아픈 이들을 위한 만화
작가는 도리 미키와의 대담에서 “그때 좀 우울증 상태였기에, 가능한 한 밝은 느낌으로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알코올 의존증과 우울증 같은 어두운 정서상태를 개그만화처럼 밝게 풀어낸 역설은 역설적으로 세부의 진실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만약 <알코올 병동>이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만화의 스타일이었다면, 알코올 병동에서 함께하는 여러 의존증 환자들이나 간호사, 의사, 외부의 도우미 등이 지금처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감정이야 극한대로 표현됐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알코올 병동>에는 흔히 이야기하는 우정, 노력, 승리라는 왕도의 공식은 없다. 대신 알코올에 빠져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졌던 구체적 개인 ‘아즈마 히데오’가 있고, 그와 함께 좁은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여러 인물들 각각의 사연이 있다.
만화의 구조는 단순하다. 3개월 동안 입원치료한 과정을 보여주는데, 병원에 입원해 약을 먹고, 경험을 나누는 단순한 삶이 반복된다. 극한 감동 대신 일상이 있다. 일상이란 매일 밤 술에 취해 자던 습관 때문에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들고, 그래도 술을 마시는 꿈을 꿀 정도로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상태다. 한마디로 ‘평생 도망칠 수 없는 성가신 숙명’이다. 이 숙명을 거스르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일어나서 침대를 정리하고, 밥을 먹고, 자신의 음주 경험을 나누고, 단주회 등 외부 단체와 교류하는 생활의 반복이다. 알코올 병동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외부 외출시간이 주어진다. 닫힌 공간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작가는 전체 페이지를 활용해 주변의 풍광을 그려넣는다.
퇴원하는 날, 아내와 두 아이가 병원에 찾아온다. 함께 수속을 마치고 식당에서 스파게티를 먹는다. 아내와 두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고 아즈마 히데오만 버스를 탄다. 버스를 갈아타려 내린 시내에서의 장면이 연속 3쪽에 걸쳐 풀페이지로 나온다. 사람들 속에 섞여 담배를 피는 아즈마 히데오를 하이앵글로 2쪽에서 잡은 뒤, 마지막 장면만 로앵글이다. 아즈마 히데오가 말한다.
“불안하네. 괜찮은 건가? 나….”
만화가 끝난다. 무려 8년 동안 연재 없이 혼자 완성한 이 만화는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공평하게 보여준다. 책을 덮고 나면, 마치 내가 알코올 병동에 머무르다 온 것 같다. 아픈 시대에 아픈 이들을 위한 만화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치료모임 주도하던 사람이 연락두절되면 술마시고 병원간거란 부분에서 알콜중독이 진짜 무섭구나 하는걸 깨달았음
섬뜩했던 부분이 작가가 '나도 가족만 없었으면 술 마셨을텐데 부럽읍니다' 이렇게 써놓고 자판기 앞에서 식은땀 흘리면서 가족 생각하고 버티는거
ㄹㅇ 이런류 에세이만화는 징징댄다는 느낌을 줘서 읽기 싫은 부류가 많은데, 개막장인데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표현한점이 대단함.
첫댓글 '가족만 없었으면...' 보다 더 넓게 생각해야 할 듯 합니다.
다른 사람이 없었다면-으로...
타인에 대한 존중을 우리는 좀더 크게 생각해야 할 듯해요.
술먹고 흥청거리는 모습은 내 가족이 아닌 느군가는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