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소서(2)-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1~26
요절:“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오늘 우리가 읽은 대목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한 대목입니다. 그러한 요청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주신 가르침, 곧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에서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주시기를 간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님을 간절히 달라고 청하라고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성령님을 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기에, 성령님을 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가장 좋은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동일한 인품 곧 거룩함과 의로움과 사랑과 긍휼을 가지신 분이시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성령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의 영이시요 지금도 만물을 늘 새롭게 하시는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힘입어서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삼십팔년이나 중풍병으로 시달리던 오랜 환자도 즉시 일으켜 건강하게 걷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도 여러 차례 살려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기적도 행하셨습니다.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광풍을 멈추게 하시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도록 풍성히 공급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이유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설명하기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놀라운 능력의 원천이 바로 성령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 다른 것을 구하기보다 가장 좋은 것 성령님을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가장 좋은 것입니다. 성령님은 좋은 것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의 삶에 무질서를 질서 있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삶에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져주시어 위로와 이길 힘을 얻게 해줍니다. 성령님은 팍팍하고 메마른 우리 삶에 웃음과 기쁨의 꽃이 피어나게 해주십니다. 지치고 낙심한 심령과 삶에 활력과 새 힘을 불어넣어줍니다. 죽어가는 영혼과 마음과 삶에 생명을 불어넣어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연약한 믿음에 할 수 있다는 담대함을 줍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인격과 생활을 변화시켜줍니다. 죄악과 불의에 매인 자가 그것들의 결박을 끊어버리고 성령님 안에서 자유를 얻게 해줍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을 더 닮아가게 만들어줍니다. 성령님은 창조의 영이요 성령님은 모든 자원을 가지신 부요의 영이시기에 성령님으로 사는 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으며 피할 길을 얻으며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좋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님을 찾으십시오. 무엇보다 성령님을 찾으십시오. 무엇보다 성령님의 임재와 그의 은사를 구하십시오. 이는 성령님이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보다 성령님을 구하라고 기도를 가르치신 이유를 더 알 수 있는 대목이 14절 이하에 나옵니다. 14절 이하에서 등장하는 내용은 성령님을 구하여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또 다른 확실한 이유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4절 이하에는 가장 좋으신 성령님과 달리 사람을 괴롭히고 망하게 만들고 무질서하게 만드는 악한 귀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등장한 귀신은 벙어리 귀신입니다. 이 귀신은 한 사람에게 들어가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입을 아예 열지 못하게 했거나 말을 해도 바바바바 더듬게 만들고 말이 통하지 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벙어리 귀신은 그 사람의 삶을 답답하게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기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게 막아버린 것입니다. 그의 삶을 망치고 불행하게 만들고 고립시키고 답답하여 속이 터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이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러자 놀랍게 그 말 못하던 벙어리가 입이 열려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을 열어 기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했던 마음이 뻥하니 뚫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집안에서 갇혀 살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에 나가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쭈볏거리지 않게 되고 누가 말을 걸어도 당당하게 대답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귀한 언어 구사의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이와 같이 악한 귀신에 잡혀 고통을 겪던 사람을 해방시킨 것입니다. 성령님의 자유케 하는 능력이 이 사람을 온전케 해준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처럼 이 세상에 가득한 부자유와 무질서, 혼돈과 고통, 슬픔과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령님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충만히 받아서 이렇게 매인 자를 풀어주며 갇힌 자를 놓아주며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며 슬픈 자를 위로하고 마음 상한 자를 치유하여 기쁘게 노래하게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7 말씀대로,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온갖 억압과 속박 곧 육신의 속박, 마음의 속박, 정신의 속박, 감정의 속박, 영적인 결박과 억압에서 성령님께서 자유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빛이 강하게 임하면 캄캄한 어둠이 순간 쑥 물러갑니다. 생명이 충만해지면 모든 약한 것과 병들이 도망칩니다. 축복과 은혜가 충만히 임하는 곳에 모든 저주의 결박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빛과 생명과 축복의 성령님이 충만한 곳에는 악하고 더럽고 귀신의 역사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령님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가 가는 곳에 귀신이 떠나가고 어둠이 떠나가고 무질서가 떠나가고 저주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듯이, 성령님이 강력하게 임하면 이러한 악한 영의 역사는 힘을 쓸 수 없고 떠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악한 영이 연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첫 사람 아담 이래로 모든 인간을 자기의 종으로 삼아 도적질해온 존재입니다. 그것들은 매우 체계적이고 집요하게 사람들을 공격하여 지배하는 악입니다. 한 두 마리의 귀신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수천, 수만 마리의 영물들로서 오랜 역사 속에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한번 지배한 후에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자손들까지 계속하여 물고 늘어집니다. 그것들은 한 민족에게 계속하여 역사하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21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귀신들은 강한 자입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소유를 강력하게 지킵니다. 마귀와 귀신이 이처럼 사람들을 꽉 붙잡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복수의 영이 지배한다고 합니다. 복음이 중국 사람들에게 전해졌을 때 그들이 주님의 가르침 중에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자기 부모를 해치고 괴롭힌 사람을 자식으로서 당연히 복수해야 한다고 믿고 자랍니다. 그것이 그들의 살아갈 목적으로 삼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지니까 원수를 사랑하고 원한을 풀고 용서해주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많이 울고 괴로워하곤 하더랍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충만히 받을 때 비로소 그러한 원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더 강한 자이신 성령님이 임하시니 복수의 악한 영이 떠나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시기 질투의 악한 영이 있어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남을 축복할 줄 모르고 헐뜯고 뒤에서 중상 모략합니다. 이런 점들은 다 마귀가 좋아하는 악한 본성들입니다. 또 분열의 영이 있어서 하나 되기 싫어합니다. 이념적 분열, 지역적 분열, 세대별 분열을 조장합니다. 이러한 악한 본성을 틈타서 마귀가 한 나라나 조직이나 개인을 자기 종으로 삼아 이리 저리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 본성과 마귀의 결박도 성령님이 충만히 임하면 그러한 죄의 줄이 끊어지고 악한 본성이 고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 되게 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면 거짓말, 중상 모략 시기 질투 대신에 서로 진실해지고 서로 축복해주며 하나 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더 강한 자이신 성령님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도 성령님을 더욱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도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아멘.
왜 우리가 성령님으로 계속하여 충만히 받기를 강력하게 구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영적인 세계에서는 중간 회색 지대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23절 말씀이 그러한 뜻입니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성령님 아니면 악령이요 천사 아니면 귀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이 아니면 마귀의 편이지, 하나님 편도 되고 마귀 편도 되는 이중 국적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돕는 자가 되지 아니하면 마귀를 돕는 자가 되는 것이요, 주님과 함께 동역하지 않으면 주님의 일을 방해하고 망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령님을 받아야 하고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만약 성령님을 모시지 않고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은 상태로 그냥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결국은 귀신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한 때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강한 자가 결박되어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 집은 빈집의 상태와 같이 됩니다. 그러면 한 때 귀신이 내쫓겨났다가도 그 귀신이 틈을 노리다가 더 강한 자 성령님께서 아니 계신 줄 알고 또 다시 자기보다 더 악하고 강한 귀신들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빛으로 충만했던 곳에 빛이 빠져나가니까 진공이 된 그 자리에 어둠이 곧 밀려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더 강한 자인 성령님이 우리 심령의 집에 늘 충만히 거하시도록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무리 강하고 간교하고 악한 귀신들일지라도 강히 틈타지 못하고 얼씬도 하지 못하고 멀리 멀리 도망쳐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의 간청을 듣고 가장 좋은 것인 성령님을 구하라고 가르쳐주신 주님의 말씀의 뜻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깨달은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는 것이 주님의 백성들로서 하나님께 간구하여 받을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두 성령님을 하나님께 구합시다.
어떻게 구할까요? 5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예로 들은 대로, 간청함으로 구합시다. 밤중에 갑작스레 찾아온 친구를 대접하기 위하여 자기 집에 대접할 빵이 없을 때, 이것을 얻으려고 가까운 데 사는 자기 친구 집의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처럼 간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문도 다 닫았고 아이들과 함께 침실에 잠옷으로 갈아입고 누워 있지만, 대문을 계속 두드리면서 빵을 세 덩이를 꾸어달라고 간청하는 그 친구를 거절할 수 없어서 결국 일어나 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친구라서 그렇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간청이 끈질기고 절박하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싫어도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식이 좋은 것을 달라고 하는데 나쁜 것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선 달라고 하는데 뱀을 자식에게 줄 자가 있겠습니까? 자식이 계란 달라고 하는데, 대신 전갈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악독한 사람일지라도 자식에게만큼은 좋은 것을 줄 줄 아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지극히 선하신 분이시거든 어찌 자기 자녀들이 좋은 것을 구할 때 나쁜 것을 주겠습니까? 좋은 것을 구할 때 어찌 못 들은 체하고 아니 주겠습니까? 그는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분명히 확실하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가 좋은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인 성령님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고, 그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반드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구할 것인가를 확실하게 가르쳐주셨으니, 우리 모두 이 가르침에 따릅시다.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님을 구합시다. 이 성령님을 충만 충만히 구합시다. 성령님의 임재, 성령님의 다스림, 성령님의 가르치심, 성령님님과 교제, 성령님의 인도하심, 성령님님의 각종 은사와 능력을 간절히 구하고 또 구합시다. 그리함으로써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어두움들을 몰아내고 결박들도 끊어지고 멍에들이 끊어지는 자유함을 누립시다.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우리의 악한 본성과 육신의 본성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의 성품을 내 안에 새 본성으로 뿌리내리게 합시다. 내 생활 속에 깃든 잘못된 생활 습관과 무질서와 혼돈들을 몰아냅시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져서 그 동안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 험담, 미움, 시기 질투의 말을 하게 만들고 긍정적이고 진실하고 생명이 깃든 복된 말을 막아 버린 벙어리 귀신을 내쫓아버리고, 항상 우리 말이 믿음, 소망, 사랑의 언어들이 되도록 합시다. 더 나아가 나 자신만이 아니라 내 곁에 이러한 어둠의 세력에 의하여 눌려 있는 사람들, 결박된 사람들, 그러한 어둠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어떤 공동체나 모임이나 단체들을 풀어 자유하게 만드는 빛의 용사들이 됩시다. 가는 곳마다 용서와 화해와 생명과 질서와 하나됨과 기쁨이 깃들게 만드는 평화의 일꾼들이 됩시다.
이러한 성령님을 달라는 기도는 한두번 하고 마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헬라어 동사는 계속적으로 행하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쉬지 말고 계속하여 끊이지 말고 성령님을 구하고 성령님을 찾고 성령님의 은사의 천국 창고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하겠습니다. 한두번 구하고 중단하지 말고 끊임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립시다. 그리할 때 반드시 필연적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은 구하는 만큼, 찾는 만큼, 두드리는 만큼 성령님을 풍성히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평생 이 놀라운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와 축복으로 우리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며 그의 뜻을 행하며 그의 영광을 드러내며 어둠과 저주와 속박들을 다 물리치며 빛과 생명과 축복을 흘러보내는 복된 사역 감당하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