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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안명수 칼럼집 <낙동강>을 읽고
- 성찰과 해학 그리고 박학이 여과된 정론의 칼날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한국 수필문단에서 博識하기로 소문난 수필가 안명수 선생이 『낙동강』이란 칼럼집을 도서출판 한길에서 내었다. 필자는 그가 경북신문 <낙동강>이란 칼럼 코너의 집필을 맡아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에세이문예>지에도 그와 같은 깊이 있는 글을 발표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한 바 있다. 수필가에서 시인으로 이제는 칼럼리스트로서 말과 글로 세상을 바꾸어보겠다고 나선 안명수 선생의 참여 정신을 비평가로서 필자는 높게 사지 않을 수 없다. 신비화되어버린 문학의 자리를 현실로 끌어내려 물화된 세태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비판적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칼럼리스트로 변신한 안명수의 ‘보이지 않는다의 눈’은 비판적 현실인식의 힘 있는 통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칼럼수필이라 명명했지만 이 책의 글들은 정확히 말하면 사실 칼럼이다. 칼럼은 비문학적 에세이에 속한다. 칼럼에는 "재야에서 마음에 느낀 것을 사실 그대로 적어 신문고처럼 만천하에 고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사회상을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파헤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까닭에 종종 문학의 영역에서 제외되곤 한다. 이것은 칼럼이 정서적 감화보다는 본질적으로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글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II.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안명수 칼럼은 다른 칼럼과 마찬가지로 현실비판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설득을 글의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이 책 <낙동강>에 담긴 칼럼은 언론인이 쓰는 비평적이고 이론적인 글과는 달리 서정적이고 에세이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정서적 감동을 주는 것이 특색이다. 산문가적 감수성의 섬세한 공명에도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견고한 문학적 수사 장치와 비유를 동반하면서 비판의 ‘거침’을 ‘풍자’와 ‘해학’으로 버무려 ‘순화’시키는 솜씨야말로 안명수의 문학적 저력을 확인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재미가 있다. 머리도 즐겁게 하고, 가슴도 즐겁게 해준다. 해설을 쓰기 위해 『낙동강』이란 칼럼집 원고를 건네받고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몽테뉴의 말이었는데, 몽테뉴는 ‘나는 단지 재미를 보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말을 한 바가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다양하다. 그러나 한 가지 독자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 읽는 책이 재미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비록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 독서를 해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재미가 있어야 금상 첨화다. 지루하거나 무미건조한 글은 독자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책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안명수 칼럼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허심탄회하게 풀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기에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는 어떻게든 이야기는 해야겠는데 수필로 풀어내기는 어려운 것들, 이를테면 지적인 통찰이 필요한 재료들을 칼럼이라는 포괄적이고 부드러운 틀 안에서 잘 녹여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안명수 선생의 『낙동강』이란 칼럼집은 독자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성으로의 감동과 감성으로의 감동을 동시에 겨냥한 전략적 글쓰기 때문이다. 경북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코너 명을 따서 제목을 ‘낙동강’으로 정한 것도 좋았다. 낙동강은 영남의 젖줄로 민족사의 애환을 고스란히 안고 유유히 흐르면서 경상도 정신을 상징한다. 김용택이 전라도 섬진강의 시인이라면, 이제 안명수는 낙동강의 수필가다.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얻은 찬란한 지적 배경과 교육자로서 교육에 헌신했던 경험, 작가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풍성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가슴을 움직이게 하고 머리를 유들유들하게 하는 유익하고 재미있는 에세이적인 칼럼집을 내기로 결정한 것은 지적 갈증에 메마른 현대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측면에서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그에게 있어 ‘칼럼’이라는 매게는 단순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 민중을 이끄는 등불로서 하나의 관점을 제공해 준다. ‘칼럼’ 이외의 다른 범주들과는 구분되며 ‘칼럼’만이 가능하게 해주는 관점의 존재, 그 관점의 의의에 대한 작가의 높은 평가 내지 신뢰가 언표되고 있어 이 책은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이 책이 일반 수필집보다 더 재미있게 읽히는 요인은 뭘까?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안명수 선생은 다방면에 박식한 식견을 가진 지성적인 교양인이라는 점이고, 둘째 이유는 그의 글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실의 글이기 때문이고, 셋째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이고 해학적이라는 데 있다. 억지로 웃기려고 꾸민 허구가 아니라 진실을 나름의 독특한 시각으로 참신하게 풀어내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글이 예민한 감각과 신경에 호소하면서도 결국에 가서는 이성과 정서를 끌어들여서 독자를 흐뭇한 감동으로 이끄는 것은 수필을 쓰면서 닦은 탁월한 서술적 기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문학정신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2005년 경북신문 창간호에 쓴 저자 자신의 얘기를 들어보면 더욱 극명해진다 하겠다. “시사성과 문학성을 적적히 배합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게 하는 글쓰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촌철살인, 천의무봉, 이런 말들이 항상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칼럼형 수필의 창작은 개인의 신변잡기일지라도 일반화되어야 하고, 체험은 보편성을 유지해야 하며, 공동체 의식이 문학적, 윤리적 형이상학을 지향하지 않으면 아니 되기 때문이다”라는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항상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작가의 모습이 신성한 구도자처럼 느껴진다. 그가 문학 창작의 영역을 수필에서 시로, 다시 운문에서 칼럼으로 전환하면서 외연을 확대해 나가는 것은 세계와 맞서 싸우려는 결연한 자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경외감마저 든다.
저자 자신이 직접 집필 의도를 밝혔듯이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출간을 앞두고 행하는 다음과 같은 진술이다. “시사칼럼은 제때에 출간하지 않으면 시국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져 출판에 대한 기대효과가 반감되기 쉽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이번에 칼럼을 우선 출간하고 수필은 다음 기회에 상재하기로 하였다” ‘제때’라는 말은 시의성을 잃으면 생명을 잃어버리는 칼럼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말로 보인다. 작품집의 출간은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칼럼이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하고 있다. 교육자로서 문필가로서 살아오면서 느끼고 체득한 지성을 바탕으로 해서 ‘솜씨 좋은 주부 채 썰듯이 쌈박한 칼날 글로 부정한 시정에 매서운 바람을 날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시사칼럼은 논리 정연한 서슬 퍼런 논설문이나, 올곧은 선비가 도끼를 들고 왕 앞에 나아가 목살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던 상소문처럼 펄펄 살아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칼럼관에서 서늘한 감동마저 느끼게 된다. 이 칼럼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47편의 칼럼이 소개되어 있다. 최근에 신문과 방송에 발표한 작품들이니만큼 접근성이 양호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안명수 선생의 해박한 지식과 다방면으로 높고 깊은 식견을 쌓고 있어, 특유의 예리한 감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생활 주변에 스며있는 민감한 소재를 멋스런 해학으로 승화시켜 놓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풍자 속에 은근히 담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칼럼의 제목만 봐도 지적 기반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전문 용어들이 즐비하다. 그러므로 이 칼럼집은 ‘it's different'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안명수 선생의 예리한 현실감각에는 하나하나에 따사로운 눈빛과 높은 교양이 깔려 있어,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 빨려들어 가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칼럼은 ’칼날처럼 매섭고, 죽음을 각오하고 올리는 상소문처럼 펄펄 살아있어야 한다‘고 저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이러한 칼럼관을 소홀히 다루지 않으면서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일화를 시원스럽게 터치하고 있는 것이다. 안명수 선생이 수집하는 칼럼 소재는 교육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생활 주변 등 전방위적으로 폭넓게 산재해 있다. 특히 작품마다 강한 비판의 메시지와 철학이 담겨 있어 눈맛이 독특하다. 철학은 고상한 철학자들의 사상에만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다. 보잘 것 없는 미물의 몸짓에도, 이름 없는 잡초에도 짓궂게 던지는 농담 한 마디에도 예리한 철학이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쌈박한 칼날 글이 바른 세상을 만든다는 지론으로 독자들의 뇌리에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쉽게 전달하는 방법이 뭘까 연구하다가 이런 유의 글을 구상했을지도 모른다.
칼럼 글은 무엇보다도 푹 찌르는 맛이 있어야 하고, 톡 쏘는 맛이 있어야 한다. 정보적 가치가 있어야 하고, 지적 욕구도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글이다. 많은 사람에게 읽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안명수의 글은 위에서 말한 대로 칼럼 글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어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뜨겁게 하는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준다. 그의 책에 나타나 있는 메시지는 현실에 대한 강한 직시와 적발의 모습을 띠고 있다. 특히 다양한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너무 많아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받아 내리라 본다. 이 책의 출간 효과는 설득이나 감동을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은 수필가나 고급독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신의 짧은 지식에 자괴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안명수 선생은 글을 통해서 부조리한 시정을 파헤치되 자신의 철학을 독자들에게 주입시키려하지 않는다. 설득하려 들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 칼럼식 글에 문학적 향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은 역시 계간지 「수필문학」 천료 작가로서, 수필문학상에 빛나는 역량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어떤 수필가에게서 이처럼 치열한 작가정신을 찾을 수 있었던가. ‘손가락 단상’이란 작품은 해학이 극치를 이룰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따가운 비판이 칼날과도 같이 번쩍임을 볼 수 있다. 영문학에 대한 작가의 높은 식견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안명수 선생은 주흥을 즐기면서도 항상 문학의 제재와 의미를 찾으며, 문학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순수해지는 분이다. 문학평론가 강석호로부터 “그는 수필 창작에 천부적 소질의 타고났다. 가히 수필창작의 수재라 할 정도로 언어 표현과 형상화에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두뇌는 수필의 은행이요, 그의 창작기법은 술사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무슨 제재든 그의 두뇌를 거쳐 창작되면 신선하고 깔깔한 새 지폐 같은 새로운 감각과 의미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의 칼럼은 칼럼이 가져야 할 운치로운 매력의 문장, 톡 쏘는 풍자, 역설의 상큼한 맛, 찍고, 자르고, 깎고 트는 함축의 맛, 많은 여운에 곁들이는 음영 등의 매력적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 안명수의 글이 훌륭한 것은 강석호의 지적처럼 기본적으로 타고난 문학적 소질에 그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명상과 사색으로 얻은 언어의 영상을 메모해두는 습관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아마도 이런 여러 요인들로 인하여 그는 박학을 기반으로 성찰과 해학에 빛나는 칼날 같은 정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비평이든지 비평가는 비평의 대상이 되는 저술물에 관해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면을 애써 적시해내려고 하는 법이다. 이러한 방식이 상투적인 구색 갖추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로서도 안명수 선생의 수필집이 지닌 전반적인 인상으로서의 의미 있는 점과 지엽적인 아쉬움을 동시에 밝힐 수밖에 없다. 책의 제목을 수필집이면 수필집이지, 내용적으로는 어울릴 것 같지만 형식적인 차원에서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칼럼’과 ‘수필’이란 용어를 한데 모아 ‘칼럼수필집’이라고 한 것이 아쉬움을 준다. 왜냐하면 수필을 퓨전적으로 쓸 수는 있지만, 퓨전한 것을 하나의 새로운 양식으로 내어놓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칼럼’은 비문학적 에세이에 속하는 양식이고, ‘수필’은 문학적 에세이의 양식으로서 각자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 글쓰기 방식이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차원에서도 ‘칼럼수필집’이란 용어는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 하겠다. 어쨌거나 고도의 세련된 지적 성찰이 깔린 이 멋진 수필집을 며칠 만에 읽고 북리뷰를 쓰는 대학 후배의 입장에서 지엽적이지만 아쉬운 면을 건드리니 실로 송구스럽다.
III.
안명수 선생의 「낙동강」은 범지구적 소재를 저자의 인품이 감싸 안으면서 고차원의 품위를 지니고 있어, 일반 시중에 나도는 유명인의 거친 칼럼집과는 근본적으로 달리 부드럽다. 러. 콕 스테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의 날카로운 인식이 빛나는 해학은 인생에 돋아나 있는 천태 만상의 부조리를 웃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쓴 글들이 단순한 생활의 반성이나 느낌의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하는 인생의 본질, 시대 정신 등을 관통하고 있기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세상의 모순을 깊은 통찰을 통해 바로 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이 글들은 여느 책과도 차별화된다. 쉽게 말해 인생의 모습과 우리 사회의 다양한 풍경을 지성인의 눈으로 보고 적은 글이라서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정서적 감화까지 맛보게 한다는 데서 다른 칼럼집과는 색다름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칼럼집의 가치는 빛난다 하겠다. 그가 낸 이번 칼럼집 <낙동강>은 오늘날 불투명한 한국 사회 일면과 갈팡질팡하는 인생의 진로를 명쾌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 획기적으로 기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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