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궁 전력으로 보는 조선군 vs 여진군.
여진족은 신강성,감숙성을 기반으로 하는 건주 여진과
감숙성 란주시를 기반으로 하는 란주 여진으로 나뉜다.
란주 여진은 금나라 말기 란주시에서 서하국 등을 세우고 살며 몽골을 식민 지배하다가
징기즈칸(성길사한)의 아들 툴루이의 장남 뭉케 황제(몽고 제4대 황제 다얀 칸)와 툴루이의 차남
쿠빌라이[몽고 제5대 황제/ 원나라 초대 황제 세조/ 홀필열한 (고필열한)]로부터
동만주 연해주 일대로 밀려난다.
연해주에서 동하국(東夏国)을 세워 재기를 노렸으나, 몽골, 동진, 고려 연합군과 이성계에 밀려
일본 동경으로 들어가 전국시대를 열어 일본을 통일하고 임진왜란(1592년 4월 13일)과
정유재란(1597년)을 일으키며, 고구려, 발해 망인계를 동북(도호쿠) 지방으로 밀어내고
일본을 차지한다. [후쿠시마 원전 터진 곳. 동경(도쿄) 동북 이바라키현~미야기(궁성)현]
건주 여진은 흑룡강성으로 달아나 생여진[수렵 생활]이 되고 란주 여진은 길림성 두만강 유역에 살며
숙여진이 되어, 문명생활을 영위하였으나 몽골, 동진, 고려 연합군에 쫓겨 흩어진다.
숙 여진(란주 여진)은 고려말, 조선초 조선의 토벌로 일본 동경으로 들어가고
누르하치의 생여진족(건주 여진)은 완안 아골타의 금나라(金太祖 完顔阿骨打,1068년~1123년)를 이어
요녕성 무순시(푸순시) 신빈에서 조명, 예허 연합군을 물리치고 신빈>심양에서 후금을 건국한데 이어,
카사르의 후예 외몽골 8기군과 함께 1627년 1월 한윤을 앞세워 정묘호란을 일으키고,
1636년 12월 병자호란을 일으켜 북경을 점령하며, 조선을 형제의 나라로 만들고 청을 숭상하게 만들었다.
여진의 각궁.
여진의 각궁은 활줄을 거는 고자 부분이 크고 길다.
크고 길기 때문에 화살의 속도는 느리지만 멀리까지 날아가는 장점이 있다.
화살이 느린 이유는 먼 거리의 목표물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느리게 만든다.
그 만큼 무거운 화살을 쏘아 목표물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고자 부분이 크고 두텁게 만들고
또 길게 만들었다.
만주각궁.
만주 각궁은 가운데 손잡이(줌통) 위에 화살 촉을 올려 놓는 부분(출전피)이 약간 홈이 들어가 있다.
화살촉을 올려 놓는 부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활줄(현/스트링)과
화살촉을 올려 놓는 부분(출전피)위에 화살을 얹어 놓으면 직각이 되어 습사를 하였을 때
오조준이 없이 직사로 나간다는 말이다.
그만큼 더 과학적인 활이라는 사실이다.
여진족은 야크 뿔로 각궁을 만들었다.
만주 여진족들은 대개 서양식 습사를 한다.
양궁식 습사를 하게 되니 더 과학적인 활 시위를 당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활은 내궁사, 외궁사를 하는데 만주 여진족은 내궁사(안궁사/양궁식 사격)를 하였다.
조선군이 대규모 사수 부대를 배치하여 숫적 우위가 되지 않으면 이기기 어려운 전쟁이었다.
1583년 숙여진족 니탕개의 난 때는 궁수부대전과 기마전에서 조선군이 우위를 차지하여 승리하였다.
왜로 이주하지 않고 연해주에 남은 동하국 잔당인 니탕개의 난을 평정하는 주역들인 신립 휘하의
정담, 황박, 김경로, 이복남, 황진, 송상현, 선거이,이순신 등 임진왜란, 정유재란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장수들 이기도 하였다.
조선의 활보다는 탄성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여 멀리 쏘아 맞추기 위해
고자 부분이 두툼하고 길었던 이유이다.
습사 방식은 서양의 양궁 방식으로 조선보다 더 과학적이었다.
흑각궁(물소 뿔 각궁).백각궁(황소 뿔 각궁/향각 궁/삼각 궁).
조선 주력군이 사용한 활은 흑각 궁이었다.(물소 뿔이 검기 때문).
조선의 각궁은 크게 두 종류로 출시된다.
고자 부분이 짧고 가는 각궁과 약간 더 넓고 긴 각궁으로 나뉜다.
짧은 각궁은 빠르게 날아가고 더 넓고 긴 각궁은 느리게 날아간다.
전자는 단거리, 중거리 용으로 적합하고 후자는 장거리 표적 사격을 하여
목표물을 정확히 맞추려는데 사용한다.
원래 편전통에 애기살을 넣어 빨리 쏘기 위해 외궁사(바깥사격)를 한 것인데,
장살 역시 바깥쏘기를 하여 비과학적인 사격을 하게 되었다.
엄지에 깍지를 끼우고 그 사이로 검지를 이용해서 화살 시위를 메기는 것은 정확도가 높고 빠르지만
장력(파운드)이 높은 활 시위는 당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조선군은 그래서 활의 탄성이 여진족보다도 더 우월해야만 승산이 있었던 것이다.
활의 탄성은 조선이 앞서 있었다.
모 영화의 한 장면에서 화살을 부러뜨리고 깃 부분이 있는 화살대를 애깃살로 깍아
사용하는 장면은 잘못된 것이다.
촉 부분이 있는 화살대를 사용하고 깃을 떼어 옷에서 실을 풀어 묶고 쏘았어야 정상적인 상황인데,
그 반대로 하였기 때문에 아주 잘못된 사격을 한 것이다.
아니면 촉을 뽑아 깃 부분 쪽에 연결하여 묶고 깃을 약간 잘라서 쏘았어야 한다.
화살 촉이 없이 깃 부분의 애깃살로는 무게가 없어 결코 쉽게 몸을 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목표물까지 비행하지도 못한다.
짧은 애깃살은 패러독스없이 비행하기 때문이고, 무게가 낮으면 낮을수록 깃을 더 짧게 쳐내야만 한다.
(패러독스가 짧게 걸려 휘어짐이 없이 날아가 바람의 영향을 약하게 받아 장거리 적이나 숲속에서
부상을 입히는 용도)-[또 외궁사는 옆으로 누워쏘기가 가능].
애깃살을 쏘는 이유는 먼거리에 있는 적에게 화살을 넘겨 주지 않기 위한 용도와 숲속에서 교전을 벌일 때
장살은 패러독스 현상으로 인해 휘어져 나뭇잎에 깃 부분이 걸리면 방향이 틀어져 맞추지 못하게 된다.
애깃살로 작게 만들어 쏘면 직선으로 패러독스 없이 뚫고 나가 표적을 맞춰 부상을 입히기 용이하므로
편전을 사용하는 이유이다.
여진족의 경우 125 파운드~165 파운드까지 당기는 사수들이 있었으므로
이 파운드를 감당하려면 조선의 활은 70 파운드가 되어야 날아가는 속도가 비슷해진다.
실험 결과를 보니 만주각궁 135 파운드의 속도는 조선 흑각궁 70파운드와 속력이 거의 같았다.
단지 멀리나가는 것은 파운드가 높은 것이 멀리 나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대 사거리는 600미터를 상회하였다.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위력시위전 용도로 유용하고 살상 교전용으로는 부적합함.
교전용 활로 주워쏘면 탄성이 강화된 화살이라 패러독스가 먹지않아 제대로 날지못하고 뚝 떨어짐.
조선 각궁은 탄성이 좋아 그 탄성력으로 발생하는 패러독스로 관통력을 극복].
높은 곳을 선점하여 200미터 거리에서 50 파운드에 간신히 맞는 B급 화살로 교전을 시작하고
적이 146 미터에 도착했을 때 A급 회수용 화살로 집중사격을 가하며
300여 미터에서 저격수 간 전투를 벌이기 때문에 높은 파운드는 힘만 들뿐 무의미하였다.
평지전에서는 45도각으로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으면 항상 같은 지점에 떨어지는 최대 유효사거리까지
접근하여 교전을 시작한다.
적과의 대치시, 본 전투에 들어가기 전까지 본진을 보호하기 위해 적 저격수의 화살이
닿지 않는 곳까지 아측의 저격수들이 적진 앞으로 나아가 위력 시위전을 벌이며
적 저격수를 상대하게 되는데,
저격수 간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활시위를 당기고 나서 아직 당기지 않은 것처럼
품새를 그대로 유지해야만 상대 저격수가 속아 넘어간다.
상대방의 활시위를 당긴 품새를 보고 좌, 우로 몇 발자국 움직여서 피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거짓 품새에 속아서 당한다.
상대 저격수가 자신을 향해 쏘았을 때 바로 뒤이어 적을 향해 쏘면서 적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몇 발자국 옮겨가려는 행동을 취하며 아직 쏘지 않은 것처럼 거짓 품새를 취했을 때
적이 속아 넘어간다.
적 저격수가 활을 쏜 동시에 눈을 한번 깜박거리는데 그 순간에 동시에 화살을 날려 상대를 기만하고
자신은 적 저격수의 화살을 피하며 옆으로 몇 발자국 옮겨가면서 아직 활시위를 당기지 않은 것처럼
위장해야 적이 속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적 저격수를 향해 쏘았을 때 절대 눈을 깜박거려서는 아니 되고
옆으로 옮겨갈 때 똑같은 패턴으로 옮겨가면 적 저격수는 미리 옮겨 가는 예상 지점에 쏘게 되므로
변칙적으로 옮겨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눈을 깜박거려 적 저격수의 행동을 읽지 못해 시야를 잃어버렸을 때는 옆으로 엎드려서
적의 화살이 앞에 꽂히거나 뒤로 넘어가게 하여 살아 남는다.
[한마디로 좌로 4, 좌로 4 가다가 우로 4로 가면 바로 전사당함.
활시위를 당기고 좌우로 옮겨가는 보폭수가 적보다도 많으면 많을수록 적의 기세에 눌린 것이고
심리전에서도 이미 패한 것임.
교전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적 저격수와의 싸움에서 이미 패할 확률도 높아짐.
그래서 상대 저격수가 조급해져서 먼저 쏘게 끔 유도하는 심리전이 중요하고 심리전에서 이기면
그 짧은 순간에 적 저격수가 활을 쏘고 옮겨 가려는 예상지점을 미리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임.
고수중의 고수는 적이 활을 쏘면 옆으로 몇발자국 옮겨가는 도중에 활을 쏘고, 쏘지않은 것처럼
위장하며 몇발자국 옮겨간후 도착해서 쏠것처럼 기만함.
그러면 적이 활을 쏘고 옮겨가려는 예상지점에서 화살을 맞게 되는 것임].
속설에는 저격수 7년차때 적의 신예세력에 당할 염려가 커서 가장 큰 두려움을 느끼는 시기여서
저격수 사수를 기피했다고 전해진다.
[더 넓고 길며 느리게 날아가는 각궁으로 저격수간 전투를 벌이는 이유는 더 무거운 화살로 쏘았을때
목표물에 정확히 떨어지는지를 유관으로 보이게 끔 하기 위함이며 먼저 빨리 확인하는 쪽이
전투에서 이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음].
조선군 궁수들은 50~60 파운드를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
서양 양궁식 습사를 하는 후금/ 청군에 조선군의 습사 방식은 파운드(장력)면에서는 극복할 수 있었으나,
저격수간의 전투와 사격하는 각도 면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었고 여진군보다 부족한 10~20파운드의 장력만큼
조선군은 잘 만들어진 각궁의 탄성과 오래 쏠수 있는 지구전을 최대한 이용해야만 하였다.
각궁은
물소 뿔,산뽕나무(고자부분), 대나무, 참나무 (손잡이/줌통), 화피(벗나무 껍질), 소심줄(오금 부분),
민어부레풀(아교), 명주실, 옻칠 등으로 마무리하여 만들어진다.
장궁 흑각궁은 대나무에 물소 뿔을 납짝하게 잘라 활 전체 앞뒤로 오금에 대고 민어부레풀로 붙이는데
손잡이(줌통) 바로 위아래 오금부분에 소심줄을 바르면서 물소 뿔 가루를 함께 바른다.
마르면 반복해서 바르고 칠하면서 명주실로 촘촘히 단단하게 감아 가면서 여러 날에 걸쳐 반복하여
탄성을 극대화시킨다.
화피를 바르기전 다시 실과 물소 뿔 가루를 민어부레풀로 바른후 마지막으로 옻칠을 하여
습기가 차고 빗물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여 민어부레풀이 벗겨지는 것을 막았다.
장궁 흑각궁은 물소 뿔이 앞뒤로 총4개가 들어가고 자투리 물소 뿔 가루가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탄성이 높았다.
실로 감고 화피를 바르고 옻칠하여 탄성을 극대화시켜 비나 습기에 대비하기도 하였지만,
흑각궁 사수들이 빨아 먹지 못하도록 이중 안전장치를 하려는 의미도 있었던 듯하다.
물소 뿔 가루는 코뿔소 뿔 가루와 마찬가지로 피로 자라기 때문에
신경안정제, 정신안정제, 소염제 등으로 사용되는 마약성분이 들어가있다.
전시에 소염제 기능을 하며 모르핀 대용으로도 사용된다.
왕족, 귀족들은 뿔 잔이나 물소빗, 물소/ 코뿔소 뿔 향냥주머니 등 괄사제품으로 만들어
혈행을 개선하는데 사용한 사치품이었다.
술을 물소 뿔잔(서각잔), 코뿔소 뿔잔(오서각잔)에 따라 마시면 마약 성분이 우러나서 왕족,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각광을 받았고, 궁중 여인들은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기도 하였다.
전시에 비가와서 습기로 각궁에 상처가 나서 민어부레풀이 풀어지기 일쑤였는데,
궁수들이 풀어진 각궁을 빨며 허기와 두려움을 극복하는데도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물소 뿔은 당하관으로 갈수록 사용량이 줄어들게 된다.
정3품 당상관 이상만 올 예맥각궁(장궁)을 사용하고 당하관으로 가면서 부터는
물소 뿔 사용량을 줄여 보급하였다. (전투용 각궁이 유물로 발견되지 않는 이유임).
말단 궁수들은 향각궁 (황소 뿔 각궁/백각궁)이나 교자궁 또는 죽궁에 고등어, 과메기 심줄을
바른 궁을 3년간에 걸쳐 완성한 활로 싸웠기 때문에 높은 고지에 올라가 선점하는 전략이
가장 중요하였다.
(교자궁은 대나무에 저리갈나무, 철, 뿔 등을 묶어서 만든 활로 흑각궁, 향각궁 예비활로
비바람이 칠때 사용함.)
조선 각궁은 비가 오거나 습기가 많은 날에는 현격히 위력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각궁에 상처가 있고 그 사이로 빗물이 베어 들면 위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민어부레풀이 풀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화살이 원하는 방향으로 비행을 하지 못하고 목표물에 제대로 맞추지를 못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과학적으로 극복하였어야만 하였다.
조선 궁수들도 내궁사를 기본으로 하고 양궁식 사격을 하였더라면
더 높은 장력을가진 사격을 할수있어 정확도를 더 높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화살촉 얹는 부분에 홈을 파서 화살이 목표물과 직각이 되게 하여 정확도를 높였더라면
훨씬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양궁처럼 활을 수직으로 세워 직사 방식으로 사격을 해야 패러독스 현상으로 인해
바람의 영향을 덜 받고 바람을 가르고 나가며 정확도가 더 올라간다.
실전용 올 예맥 각궁은
물소 뿔 가루를 제대로 잘 발라야 탄성이 강한 활이 된다.
민어부레풀[아교]을 바르고 그 윗면에 물소 뿔 가루를 골고루 바른후 마르고 나면
다시 민어부레풀을 바르고 접착시켜서 탄성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고려시대는 신강성,감숙성에서 사는 야크 뿔을 이용하여 고려 각궁을 만들었고
북송을 거쳐 고려로 수입해야만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생여진(건주여진)과의 마찰로 명나라를 거쳐
동남아시아산 물소 뿔을 이용하여 조선 각궁을 만들었다.
명나라 장수 유정이 버마(미얀마)를 침공하여 영토를 넓히는 것도 물소 뿔 수입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
왜는 임진왜란 전 중국으로 사신을 보내 조선이 생여진과 손을 잡고 명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며 이간질시켜
물소 뿔 수입량이 한해 50개 이내로 제한되는 통제를 받게 되어 조선 주력군의 전력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전투용 화살은 보통 37.5 그램(1냥) 이상을 사용한다.(1돈(전)=3.75g)
화살의 길이는 2자9치(88센티)에 화살촉과 오늬(화살꽂이/노크)를 더하면 약 90센티가 되는 화살을
전장터에서 사용해야 전술이 최대로 극대화된다.
고구려 광개토가 승전한 원인도 바로 이런 장살을 사용하였기 때문이었다.
화살을 최대한 당겼을때 10센티 이상이 남아 화살촉 부분이 가늠쇠 역활을 하고
활 시위를 당긴 절피 부분이 가늠자 역활을 하여 목표물에 정확히 맞추게 된다.
또 촉이 가늠쇠 역활을 하기 때문에 목표물을 발견하고 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적진 정찰시 1발 장전하고 적 정찰병과의 돌발 근접조우 때, 순간적으로 활 시위를 당겼다가 놓게 되는데,
적보다 빨라야 살아남음으로 2자 9치는 명중률이 높아 필수적이었다.
짧은 화살은 당황해서 손잡이 절피 부분을 뒤로 넘기는 현상으로 자기 손가락 또는
손등에 쏘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활시위를 제대로 당기지 못한 상태에서 발사하여 적의 갑옷을 뚫고
살짝 박혀 치명상을 주지못해 자신이 당하고 만다.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대첩(익산 황등 황산~남원 운봉 황산)에서 아시발도를 잡을 때
짧은 화살을 날려 투구끈을 맞히고, 동시에 이지란이 2자 9치를 입안에 날려 잡았다고 전함.
짧은 화살과 2자 9치를 동시에 쏘면 2자 9치 화살은 더 길기 때문에 짧은 화살보다 더 높이 들어 올려서
쏘아야 하므로 짧은 화살이 먼저 날아가 맞추고 나면 그 뒤를 이어서 2자 9치가
다음 타겟을 맞추게 되는 것임]
조선군 vs 여진 후금 간의 궁수전에서 여진군은 서양식 궁사법을 사용하였고,
조선군은 그 반대의 전통 궁사법을 사용하여 패전한 것이다.
청나라군은 1636년 12월 병자호란 때 홍의포(紅衣砲/홍이포)를 들여와 남한산성을 쉽게 굴복시켰지만,
후금당시 1627년1월 정묘호란 때 궁수전만 제대로 서양식 궁사법으로 사용하여 널리 보급하였더라면
조선군 3천이 쉽게 격파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양궁식 궁사법은 핑거탭[슈팅장갑]을 사용하여 10~20 파운드 이상을 더 높인 장력으로
강한 힘을 이용하여 사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45 도각을 사용해서 쏠 필요 없이 약간 15~30도각 이내로 들어서 쏘게 되므로
명중률이 훨씬 높아져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레저용/경기용으로 사용하는 화살 길이는 활 시위를 최대한 당겼을 때 약 3센티 정도 남는 것을 사용한다.
조선 각궁은 가볍고 탄성이 높아 빠르다는 장점이 있으나 쏘는 방식은 비과학적이었다.
서양의 리커브 활은 정확도는 아주 높으나 무겁다는 단점이 있어 전투용으로는 제로이다.
활줄(현/스트링)이 쉽게 망가져 새로 미리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컴파운드 보우는 보기에는 멋있고 호감도가 가지만 막상 손에 넣으면 실망하기 일쑤이다.
활 값보다 부가비용이 더 들어가고 무거우며 빈 활을 쏘거나 오늬(노크)가 부서지면
캠(도르레)이 부서지는 단점이 있으며 매장으로 보내 캠을 교체하거나 수리받아야 하고
기다려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일부 기종은 자가 수리가 가능하지만, 자주하면 캠에 기스가 나거나 휘어 무리가 간다.
릴리즈(활시위를 당기는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당기는 손맛이 없고 활시위를 풀 때
미끄러지지 않아 직선으로 날아간다는 장점은 있으나 비바람이 불때 장거리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궁,리커브 활은 손에서 미끄러지는 탄력에 의해 뱀처럼 날아가기 때문에 바람을 가르면서 활강한다.
-(패러독스)
비바람이 불어칠 때 각궁의 전통사법보다 훨씬 유리한 사법이었다.
핑거탭에서 바람의 세기에 따라 얼마나 더 미끄러지게 튕기면서 놓느냐에 따라
패러독스를 조절할수가 있다는 장점이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북관식 사법을 이용하여 핑거탭을 더욱 미끄러지게 튕겨 놓으면서
활줄에서 손을 뒤로 잡아당기듯이 빼면 바람을 가르고 극복하며 활강하여 목표물을 적중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양궁식 사법으로 싸우는 군대는 오히려 바람이 부는 날을 택해 공격하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는 것이다.(평지 전,해전에서 유리)
[핑거탭으로 활줄을 잡아당길때 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시계 방향으로 꼬이며 돌려지게 되는데,
활줄이 꼬아지게 돌리거나, 얼마나 더 미끄러지게 튕겨놓느냐에 따라 패러독스의 힘이 결정된다.
- 이것을 패러독스라고 함.
활을 쏘기 직전 활줄을 약간 더 뒤로 잡아당기면서 놓으면 활줄이 한번 더 돌려지고 감기거나,
핑거탭으로 미끄러지게 튕겨놓게 되면 더욱 강한 패러독스를 일으켜, 화살이 S자 또는 상하로
평소보다 강하게 휘어지면서 뱀처럼 날아가는 현상을 북관식 사법이라고 하는 것임.
-비바람이 세차게 칠때 주로 사용하거나 활의 수명이 오래되어 줄이 느슨해졌을때 사용함.
즉, 활줄에 회전력을 걸어주면 활줄이 풀리면서 그 힘을 노크에 전달해주고 노크는 화살대의 구멍안으로
회전력을 그대로 전달해 주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크와 화살대의 힘은 화살촉과 인서트에 막혀
멈추려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에너지 힘이 다시 노크 쪽으로 되돌아오면서
활이 S자, 상하로 휘어지며 패러독스 힘 에너지가 걸리게 되고, 그 에너지 힘이 화살촉과 노크 사이를
왔다갔다 반복하면서 에너지의 힘이 죽을 때까지 뱀처럼 날아가는 현상을 패러독스라고 함.
좋은 화살은 S자로 패러독스가 걸리고 화살대의 힘이 균일하지 않은 화살이 상하로 휘어짐].
각궁의 깍지 사법은 비바람의 영향을 더 받을 수밖에 없는 전투 사법이었다.
대표적인 실례가 이괄의 난인데 승기를 다 잡은 이괄 군이 1만 대군을 2군으로 나눠 인왕산으로 들어간
도원수 장만,영의정 이원익 도체찰사 중앙군 5천을 협공하려다가 바람이 역풍이 부는 바람에 패하고 만다.
장만,이원익 중앙군은 높은 곳을 선점하고 있다가 바람의 도움으로 이괄 군을 물리치게 되는데
바로 바람을 역이용하여 승리하는 것이 대표적인 궁수대전이었다.
깍지를 이용하는 전통 사법으로 북관식 사법을 구사해 봐야 큰 도움이 안되고,
차라리 비틀어 쏘는 방법으로 패러독스 현상을 일으켜 비바람을 극복하는 것이 더 나은 사법이다.
바람을 가르며 극복하고 목표물에 강하게 적중시키려는 북관식 사법은 핑거탭을 이용하는
양궁식 사법을 구사해야 패러독스 현상을 강하게 일으켜 큰 효과를 볼 수가 있고
목표물에 강하게 꽂히게 된다. [비틀어 쏘면 활의 수명단축과 탄착점이 멀어지는 단점이 있음].
장거리 사격시 목표물 도착시에 패러독스가 풀리면 갑옷에 힘없이 맞고 튕겨난다.
북관식 사법은 평지 전,해전 등 비바람이 부는 전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좌우 패러독스는 활의 파운드보다 화살이 강하면 화살 앞에서부터 패러독스가 발생하여 제대로 비행하며,
화살보다 당기는 활의 파운드가 강하면 화살 뒤쪽에서 패러독스가 발생하여
화살 뒤쪽이 좌우로 비행하거나 부러진다.
상하 패러독스는 화살 촉을 올려놓는 출전 피보다 오늬를 활시위 정중앙 위쪽 또는 아래쪽에 꽂아
발사할때 발생하는 패러독스이다.
높은 고지에서 아래로 쏠때는 약간 위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쏠때는
약간 아래쪽에 꽂아 놓고 쏘아 바람의 영향을 패러독스로 극복하며 날리면 된다.
높은 고지와 낮은 고지를 두고 교전할 때 주로 사용한다.
컴파운드보우는 릴리즈로 쏘기 때문에 뱀처럼 날지 않고 직선으로 날아간다.
그래서 장거리로 갈수록 비바람이 몰아칠 때는 바람의 영향을 더 받을 수밖에 없는 사법이다.
날카로운 삼각촉이나 튀어나온 피싱용 촉으로 쏘면 30미터만 벗어나면 표적을 이탈하여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단점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뱀처럼 날아가는 패러독스 활강 능력이 없어 비바람의 영향을 더 받을 수밖에 없다.
또 무게 때문에 장시간 많은 습사를 해볼수가 없는 문제점도 있다.
컴파운드보우 화살은 최대 길이가 31~32인치(78~81센티)밖에 나오지 않는다.
결국 컴파운드보우, 양궁과 리커브 활[결합형 활]로 갔다가
마지막으로 개량각궁[일체형활/베어보우]으로 종착역에 도착하게 된다.
개량 각궁은 아주 가벼우며 부가 비용이 들어가지 않아 가장 합리적인 각궁으로 판단된다.
개량 각궁은 카본재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개량 각궁 역시 비나 습기에 약간의 영향을 받지만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양궁 습사 방식으로 핑거탭(화살꽂이/오늬/노크를 걸때 사용하는 가죽장비)을 사용하면
전통사법보다 10~20 파운드 이상을 더 쏠수가 있고,70파운드도 충분히 소화해 낼수가 있어 좋다.
실전용 2자 9치(88센티/35인치)화살로 조선 궁수들이 몽골,거란,여진,왜군과 전투를 벌였던 느낌을 가지고
습사해 볼 수도 있다.
2자 9치(35인치)의 화살이 안겨다 주는 승리의 원동력은 과학과 유사 과학의 차이 만큼이나
그 간격의 차가 크다.
실전용 2자 9치 이하는 레저용, 경기용, 놀이용 등으로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2자 9치는 화살을 제대로 쏘지 못하는 사람도 얹어 놓고 발사하기만 하면
목표물에 제대로 맞출 수 있는 활의 과학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실전용 2자 9치는 과거부터 판매되지 않은 이유였다.
현재도 양궁, 리커브 활용, 컴파운드 보우용은 2자 9치가 판매되지 않는다.
각궁용으로도 2자 9치는 판매되지 않다가 플라스틱 FRP계열의 연습용으로만 판매되고 있다.
[최근 카본살 판매]
2자 9치는 유효 사정권 안에 들어오면 쏘는 속도가 아주 빠르고 대충 날려도
목표물에 적중시킬 수가 있다.
실전용 2자 9치 화살은 적에게 단 한번의 모든 힘을 화살에 실어 날리기 때문에
적이 주워서 쏘면 조직이 와해되어 부러지기 쉽상이고, 활에 손상을 주어
적의 궁수전력을 약화시키기도 하며 깊이 박혀 쉽게 뽑지 못하고 촉부분이 빠지거나 부서져
당장 재사용이 불가능하여 아군 전력을 극대화시킬 수가 있다.
이런 화살을 많이 보유한 쪽이 승리할 확률이 아주 높았던 것이다.
고구려 유물중에 이런 장살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한때 중원을 재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화살에 있었던 것이다.
가장 원거리에서는 편전을 쏘는 방법이 있고,
장력이 높은 파운드 활은 짧은 화살을 날리고 다가올수록 중간 화살을 날리다가
140미터 근접점에 도달하면 장살을 날려 전술을 극대화시킨다.
[미리 사격 지점을 표시해놓고 습사 해본 후 돌입]
고대 전투에서 북방 민족과 싸울 때는 50 파운드에 간신히 맞는 화살대를 사용하여
장력이 높은 북방 민족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 기마군으로 돌진해오는 적에게
장거리 사격용으로 사용하였다.
적이 주워 쏘면 화살대가 약해 부러지거나 활에 손상을 주어 적의 궁수 전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여진족은 160 파운드(장력/72.5kg)를 당기는 사수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 세조 4년 120근(72kg)을 당기는 사수를 뽑아 호위하도록 병조에서 올리는 기록이 나온다.
165 파운드를 당기는 여진족 비디오를 보니 오늬는 잡지 않고 손 전체로 활줄 중간을 잡아 당겨서 발사한다.
이렇게 잡아 당기면 멀리 나가기는 하지만 손과 화살 오늬가 분리되어 발사시키기 때문에
그 만큼 화살의 위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올 예맥 흑각 장궁 70 파운드의 속도와 비슷해지게 되는 것이다.
(물소뿔 4개를 앞뒤로 붙이고 물소 뿔 가루와 명주실로 마감한 전투용 활)
패러독스가 덜 걸려 목표물 도착 지점에서 패러독스가 거의 풀려 위력이 현격히 떨어진다.
유효사거리에서 교전에 들어가면 흑각 궁이 훨씬 유리해지고 유효사거리를 벗어나면
흑각 궁이 불리해진다.
90미터 이내로 돌진해오는 적은 정량궁/ 육량궁 사수조가 조준 사격으로 한방에 쓰러뜨린다.
장기 대치전으로 들어가면 125~165 파운드를 사용하는 여진 저격수에 의해
희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선 궁수는 높은 곳을 선점하여 70 파운드 이상의 흑각 장궁으로 맞대응하여
여진 저격수를 잡아줘야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려면 전통 사법을 버리고 10~20 파운드를 올려 더 강한 활 시위를 당길 수 있는 양궁 사법으로
상대했어야 승산이 있는 전투였다.
1627년 1월 정묘호란 때 높은 곳을 선점하여 잘 버텨 냈으나 활의 위력 전에서는
조선군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결국 지원군이 도착한 여진의 홍이포에 무너지게 되었다.
[폴란드 등 동유럽 실크로드 무역으로 얻은 홍이포/ 홍의포>동유럽 폴란드 초원의길 무역으로
몽골이 들여와 건주여진(후금/청)에 전수함]
여진의 지원군이 도착하기전에 궁수 전에서 승부를 걸어 이겼어야 하는데 실패하여 패전하게 된 것이다.
p/s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각궁은 물소뿔이 2개만 들어가고 물소 뿔 가루도 바르지 않은 연습용이고
실전용 각궁은 만들거나 판매되지 않는다.
실전용 각궁은 개량각궁인 현ㅇ궁 보다도 더욱 무겁다.
화살꽂이(오늬)에 낚시찌용 LED전구를 사용하여 오늬 안에 넣고 쏘면
야간에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낙시찌용 LED등을 깃부분에 묶어서 쏘면 더욱 밝음]
장타를 쏠때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화살은 파운드에 맞게 부러지지 않고 제대로 패러독스가 잘 걸리느냐에 따라 좋은 화살로 결정된다.
좋은 화살은 시위를 놓는 순간 앞에서부터 패러독스가 걸리면서 손잡이 출전 피 부분을
한번 치고 나가면서 비행하다가 15~20여 미터 지점에서 패러독스가 강하게 한번 더 걸려
S자 또는 상하로 휘었다가 쭈욱 펴지면서 이중 탄력을 받아 속도가 빨라지며 날아간다.
[진짜 좋은 활과 화살은 20여 미터 지나면서 순간 이동한 것처럼 순간적으로 사라짐]
패러독스가 살아있는 화살에 맞아야 뚫고 나가거나 깊숙히 박히게 된다.
[활을 쏠 때 수직 상태에서 옆으로 눕혀 쏘면 쏠수록 패러독스가 약화되며 날아감.
각궁은 천상 자연스럽게 팔을 뻗는 각도만큼 약간 눕혀서 감각 능력으로 발사하는 궁임.
6냥[225그램]까지 쏠수있는 활을 육량궁/정량궁(유효사거리 90미터)이라고함].
궁수부 대전은 항상 높은 곳을 선점해야만 유리하기 때문에 유능한 장수들은 활을 배울 때
항상 높은 산 정상에서 화살 종류별로 24시간 최대 사거리를 계절별로 날려보면서 연습한다.
계절마다 오전과 낮, 저녁과 심야마다 바람이 바뀌는 시간대를 제대로 측정하고 시간대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때 불어오는 꽃가루, 먼지, 습기, 수증기에 머금은 미생물, 흙내음, 풀내음,
물(강, 바다)내음만으로도 언제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화살을 날리면서
바람의 성질과 흐름을 미리 파악하여 전략전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최영이 홍성 용봉산 최고봉 아래에서 최대 사거리를 날려보면서 습사한 연유도 이런 이유였다.
궁수들은 대개 어릴 때부터 숲 속에 있는 일자로 뻗은 나무에 대고 쏘면서 돌아다니며 연습하므로
나무처럼 수직으로 뻗은 사람 모양은 손 쉽게 맞추지만, 실전에서 순간적으로 옆으로 누워있는 표적은
거리감으로 인해 앞에 맞추거나 뒤로 넘기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람처럼 일자로 뻗은 나무가 가늠쇠 역활을 해주므로 가늠쇠를 나무에 가깝게 임의 설정해줄수록
먼 거리에서도 백발백중으로 맞출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외궁 사법은 언덕 등에서 엄폐, 은폐물을 이용하여 옆으로 엎드려 쏘기 위해 나왔고,
또 옆으로 좌로 엎드려 누워 쏘기를 쉽게 하기 위해 우궁사법으로 편전 쏘기를 익힌 것이었다.
고려, 조선시대 전투용 활은 직업군인 이외에 동원되는 병력은
자신이 직접 무기와 방호구를 구해야만 하였다.
형편이 나은 집은 어미가 소문난 곳을 찾아 먼길을 소달구지를 타고 구해다 주기도 하였다.
특히 방호구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는데 한지에 소심줄을 여러 겹 교차하여
눌러 붙인 방호구가 좋다고 소문이 나자, 한지를 잘 만드는 지방을 찾아
여러 달에 걸쳐 구해다가 주었다고한다.
닥나무로 만드는 한지를 여러 겹 교차시켜 눌러 붙이면 철판보다 더 강했다.
전주 지방에는 아직까지도 구전 전승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흥선대원군때 서양의 총에 대비하여 솜으로 만든 방탄복도 전주에서 만들어 올려 사람을 상대로 시험해 본 것임]
활은 황소 뿔로 만든 백각궁(황 각궁/삼 각궁)을 구해도 화살을 다량 보유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연습할 수가 없었다.
가마니에 대고 습사해도 뚫고 나가 촉이 부러지거나 깃이 자주 나가므로,
줄을 메달아 강가로 가서 깊은 강물 쪽에 대고 연습 사격을 하며 화살을 아껴야만 하였다.
지상에서 줄을 메달아 연습하면 패러독스 현상 때문에 뒤로 튕겨 나서 다치거나
주변 사람의 눈이 상할 수 있어 강물로 나가 습사하는 방법이 최고였다.
활이라도 구해야 궁수부대로 배치되고 활을 잘 쏘지 못하면 장인들이 만든 규격품 화살이라도
다량 보유하고 나가 궁수부대로 편제되어 보병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