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에 흐르는 눈물 (3)
윤연모
맑고 높고 푸른 가을하늘을 온몸으로 느끼며 환도산성에서 내려와 압록강 상류에서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갔다. 평생 말로만 듣던 압록강에서 배를 탄다고 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름이 압록강(鴨綠江)이므로 푸른 강물에 오리가 많이 헤엄치고 있을 것 같은데,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강변에 현대식 아파트만 눈에 띄었다. 북한이 보이는 곳에서 모터보트를 탔는데, 경치가 아름답고 초록빛 물살 위에서 배가 흔들흔들하니, 하늘의 흰 구름을 보며 그저 기분이 좋았다. 압록강 하구로 내려가 유람선도 타고 끊어진 압록강 단교(斷橋)도 보고 관광을 위하여 꾸며놓은 압록강 철교도 거닐어 보았다. 민족 분단의 흔적을 눈앞에서 보며 이리도 가슴이 아릴 수 있을까.
압록강이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며 두 나라의 공동 수역이다. 지척에서 건너편 북한지역의 주민과 군인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인 철조망도 보이고 초소 군인이 국방색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주민이 서너 명 있는데, 불을 피워 무엇인가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반갑게 외쳐도 그들이 가끔 이런 상황과 만나는지 멀뚱멀뚱 쳐다만 보며 반응하지 않았다. 모터보트 기사가 배를 좌우로 이쪽저쪽 기울이며 승객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그 마음이 고마워 배에서 내릴 때 천 원짜리 한 장 살짝 건네주니, 기분 좋게 “쎄쎄!”를 외친다. 순박한 청년이다.
길림성 집안시(市)에서 버스를 타고 압록강을 따라 내려오는데, 북한 마을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자꾸 고개가 돌려졌다. 마을도 보이고 작은 규모의 신식 건물도 보였다. 잘린 한반도의 반토막을 이토록 궁금해하고 아련하게 바라보며 그리워하다니, 어서 평화 통일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인 듯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의 행렬! 이리 봐도 옥수수밭, 저리 봐도 옥수수밭, 산간 지역에도 옥수수밭, 강가에도 옥수수밭이다. 옥수수가 익어서 머리는 갈색이고 허리는 푸르다. 광활하게 펼쳐진 옥수수가 똑같은 키에 갈색 머리를 하고 있어서 꽃밭처럼 보였다. 가끔 중화인민공화국의 붉은 국기가 옥수수밭 근처에 있는 민가 대문에 게양되어 한가롭게 휘날리고 있어서 나그네의 눈길을 끌었다.
먼 길을 버스로 달려오는 동안, 오후 햇살도 누그러지고 심신이 지칠 즈음에 압록강 하구의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유람선을 타니, 피로가 가시고 흔들흔들 기분이 좋아졌다. 건너편이 이북의 청수군(郡)이란다. 병영과 병원 건물 등이 작고 낡아 시골에 오래 방치된 건물처럼 보였다. 보초 서는 군인이 초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대여섯 명이 일렬로 행진하고 있었다. 배 위에서 손을 흔들며 “반가워요!”라고 힘껏 외쳤는데,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뭐라고 소리를 짧게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잘 들어 보니, ‘반동, 반동!’이라고 외쳤다. 주위를 의식하는 것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상 교육을 오래 받으면, 검은 것을 희다고 하면 하얘지고 흰 것도 검다고 하면 검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같은 민족이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세월 둘로 나뉘어 대치해야 하는 극한 상황이 슬펐다.
유람선을 타고 한참 가니, 전쟁 때 끊어진 다리가 눈앞에 클로즈업되었다. 갑자기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먹먹하였다. 이 다리가 끊어져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을바람에 낙엽처럼 강물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던가. 오, 강물에 고스란히 남은 동족상잔의 흔적, 민족 분단의 뼈아픈 흔적! 남한 사람이 이곳에 와서 끊어진 다리를 코앞에서 보고 무어라 말을 하겠는가. 이곳에서 가족을 잃지 않았더라도 그저 한반도의 아픈 역사적 흔적에 가슴으로 울었다. 압록강 물이 백두산 천지 호수에서 발원(發源)하여 흐른다지만, 혹시 다리가 폭파되어 죽은 영혼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아 압록강물로 계속 흐르는 것이 아닐까? ‘압록강의 눈물’이란 시 한 편으로 내 마음을 달래보았다.
푸르른 압록강에서 배를 탄 채
이산가족인 양 북한을 마냥 바라본다
붉은 해가 서녘에 기우는데
울분을 삼키고 있는 끊긴 압록강 철교를 보며
내내 가슴이 아리다
압록강에 통한의 눈물이 흘러
민족적 비극에 숨이 막힐 듯하다
압록강이 추풍낙엽에 얼마나 울었을까?
슬픈 영혼들을 위해 눈을 감는다
압록강아!
한을 품고 흐르는 압록강아!
끊어진 철교가 언제쯤 이어질지 알려다오
저녁을 먹고 10km나 된다는 압록강 공원을 산책하였다. 중국 시민들이 저녁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압록강 강변에 중국인이 많이 나와서 쉬고 여기저기에서 단체로 춤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2006년 여름 한낮에 북경의 천단(天壇)공원에서 많은 사람이 여기저기에서 단체로 무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주로 노인들이 왈츠, 칼춤, 쿵후 등으로 열심히 체력 단련하는 것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런데 지금 어둡고 혼잡한 압록강 공원에서 남의 시선 따위 무시하고 모여서 춤추니, 다소 낯설게 보였다.
압록강에 위화도 섬이 있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재미있게 공부했던 ‘위화도 회군(回軍)’이 생각난다. 중국의 원, 명 교체기에 고려 우왕과 최영 장군이 명나라의 요동 지방을 공격하려고 하였지만, 이성계가 그 의견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이성계가 우왕의 공격 명령에 따라 군대를 이끌고 떠났을지라도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정권을 잡는 실마리가 되고,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 건국의 계기가 된, 조선의 엄청난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우리나라 역사가 압록강에 이렇게 숨 쉬고 있는데, 중국의 행정구역이 된 이곳에 와서 분단된 민족의 회한을 달래다니 참으로 씁쓸하였다.
불빛이 찬란한 압록강 대교를 산책하였다. 온통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밤을 밝히는 대교! 북한 쪽의 압록강 다리가 폭파되어 한민족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정작 중국이 지금 이 다리를 꾸며 버젓이 관광업으로 돈을 번다. 다리 위에 중국어로 안내방송이 계속되는데, 내용도 모르고 그저 시끄러울 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리가 손 놓고 그저 따라야만 할지, 그저 지나간 이야기로 사극(史劇)에서나마 향수를 달래는 정도로 남겨두어도 될 것인지 마음이 착잡하였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라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지라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앞을 내다보고 무엇인가 착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행이란 인생의 여정과 같다. 여행 후 최소한 6개월 동안 기쁨을 누리고 그 이후, 여행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가슴에 오롯이 자리하여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여행이란 우리에게 소박한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고마운 것이다. 압록강을 뒤로 하고 내일 새벽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귀향 또한 새로운 기쁨의 시작이다.
자료사진
1) 끊어진 압록강 단교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