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愭 文學의 動物形象과 寓意
金秉建*
1. 서론 尹愭(1741∼1826년)의 문학은 ‘史家的 안목으로 진실을 추구하고자, 吟風弄月을 지양하고 지배층을 諷刺하는 詩文으로 시정의 세태를 警戒하는 風謠’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윤기의 문학에서 동물을 소재로 한 시문의 양상과 의미는 여하한지 살펴본다. 먼저 윤기의 문학에 그려진 다양한 동물형상에 대하여 기존의 연구에서 우언산문으로서 주목하여 상당한 관심과 연구가 진행되었다. 특히 윤주필 교수는 ‘한국고전문헌의 寓言目錄 201편’을 선정하는데 윤기의 작품 15편을 편입하였다. 아울러 윤기를 중요한 우언의 작가 22명 가운데 한명으로 꼽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이규보․고상안․이광정과 윤기를 동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가장 많이 쓴 작가로 보았다. 윤승준 또한 윤기를 중요한 우언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윤기의 문집을 일별해 보면 제목에 직접 나타나거나 동물을 소재로 쓰인 작품이 약 66편 정도로 파악 된다. 이 가운데 연작시나 잡설 같은 경우에는 제목은 하나이지만 작품 내부로 들어가 살피면 편수가 더 늘어날 것이다. 개략적으로 보아도 70편 이상의 시문에서 동물을 주제나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 등장 동물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말, 소, 닭, 살쾡이, 오리, 개, 백로, 참새, 꾀꼬리, 백구, 비둘기, 매, 쥐, 고양이, 호랑이, 뱀, 모기, 파리, 벼룩, 빈대, 자라, 여우, 거미, 벌, 매미, 사마귀, 쉬파리, 풀벌레, 물고기, 까치, 게, 고래, 제비, 나비, 원추새’ 등으로 매우 다양한 편폭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언급 된 동물은 ‘닭’과 ‘말’로 그 빈도수가 약 10여 번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닭은 큰 의미 없는 소재로 사용된 경우도 있다. 반면에 말은 작품의 주제로 쓰이거나 매우 중요한 제재로 쓰인 경우가 다수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하게 다룬 동물은 단연 말이라고 하겠다. 그 다음으로는 개가 4번 정도이고 나머지는 갈매기, 고양이, 모기, 벼룩, 참새 등의 순서이다. 선행 연구에서 말은 ‘불우한 인재의 상징,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윤기가 형상한 말도 이 정의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보다 한층 다층적인 함의로 사용하고 있다. 즉 윤기는 한 동물을 동일한 상징이나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징물과 제재로 쓰기도 하고, 단순한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윤기의 작품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몇 편의 우언산문 외에는 개략적인 연구에서 작자 선정차원이나 다른 작품을 분석하는데 참고자료로 사용된 정도이다. 본고에서는 다음의 몇 가지에 주안을 두어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윤기의 시문에 동물형상이 여하히 표현되고 있는지 관련 작품을 예시하여 그 실상을 알리고자 한다. 둘째, 기존에 다소의 연구가 이뤄진 우언산문에 대하여는 좀 더 구체적인 분석을 하고자 한다. 셋째, 산문에 비하여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운문에 나타난 다양한 동물형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넷째, 시문에 묘사하고 있는 다양한 동물의 의미망이 단순하지 않으며 특히 한 동물에 대해서 동일한 의미로만 쓰이지 않고 동일 동물내부에서 분화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다섯째, 동물의 형상화를 통하여 만들어낸 寓意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찰한다. 이를 통하여 그의 우언 작가로서 특징과 작품의 品格을 밝히고자 한다.
2. 동물 상징의 분화 윤승준은 개․쥐․고양이․호랑이․말을 대상으로 하여 그 상징하는 바를 논하였다. 그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사례를 들어 그 상징의 내용을 제시하였다. 윤승준의 논의대로 각 동물이 상징하는 특성을 각 동물마다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윤기는 이러한 동물을 통한 상징을 형상화함에 있어 약간의 발전된 분화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동일한 동물도 단순히 ‘말’이나 ‘소’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상으로 나누어 묘사하고 있다. 말의 예를 들어 보면 ‘말, 사냥 말, 둔마, 병든 말, 누른 말, 늙은 말’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한 동물만을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된 동물을 같이 다룬 것이 많다. 예컨대 ‘모기와 등에, 빈대와 벼룩, 닭과 개, 게와 고래, 쥐와 원추새, 매미와 사마귀와 참새, 닭과 참새, 닭과 들오리, 닭과 살쾡이, 닭과 비둘기, 매와 개, 모기와 벼룩, 쥐와 참새, 말과 소, 거미와 벌, 강아지와 늙은 개’ 등으로 유사한 점을 나타내거나 서로 상대적인 역할을 하거나 다양한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장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동물들을 그려낸 작자의 의도와 그 의미가 여하히 분화하고 있는지 분석해본다.
(1) 동물 상징의 수용 우수한 동물 우언은 ‘동물의 특징을 그려내는 위에다가 이성과 어떤 부류의 사람들의 특징을 부여하여, 양자를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형체와 정신을 겸비하게끔 해야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았을 때 윤기 역시 기존의 동물 특징을 대체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우의는 단순하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느낌의 차이를 주면서 형상하고 있다. 아래에서 간단히 예시해 본다. 먼저 「白鷺詞」를 살펴본다.
하늘을 날아가는 한 쌍의 백로야一雙白鷺飛靑天 어느 산 어느 물로 가려 하느냐意在何山何水邊 한가로움 지극할 젠 권태로운 듯하더니優閑之極仍似倦 먼 하늘 아득히 날 젠 무척 초연하구나長空杳杳殊超然 숲속의 허다한 날짐승들 내려다보니下視林薄多羽族 작은 새들 아웅다웅 다투니 가련하구나翾飛小爭還可憐
윤기는 白鷺와 白鷗를 각각 2번 정도 소재로 쓰고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동물적 특성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백로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라는 의미와 같이 ‘고결한 인품을 상징하는 동물’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에 白鷗는 이른바 ‘伴鷗’의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贈白鷗」에서 ‘모래톱서 나날이 놀며 지내니, 은둔하잔 맹약은 할 것도 없네[沙渚日遊戱 磯盟亦不煩].’라고 하여 한가로이 벗할 상대로 삼고 있다. 하늘 높이 우아하게 나는 백로의 정처 없는 듯이 나는 모습을 세사에 초연한 성품으로 보았다. 끝 두 구에서는 백로의 시선으로 덤 풀 속의 작은 새들이 서로 자그마한 일로 아등바등 싸우는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형상이다. 마치 莊子 「秋水」의 ‘鵷鶵가 날아가자 썩은 쥐를 물고 있던 올빼미가 쥐를 빼앗길까 원추새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다음은 정조가 1792년(정조 16년) 4월에 春塘臺에 나아가 초계문신에게 ‘小苑城邊獵騎回’의 시제로 친시를 보인데 대하여 윤기가 의작한 시이다. 「소원성을 끼고 돌아오는 사냥말[小苑城邊獵騎回] -초계문신 응제 의작이다[抄製擬作]-」그가 그린 말의 형상을 본다.
부용원 밖으로 성 모퉁이 끼고芙蓉苑外夾城隈 사냥 말이 줄지어 석양에 돌아오네獵騎斜懸夕照回 세 네 살짜리 많은 짐승 모조리 사냥하였고肩牡獸多空蹴踏 구레나룻 멋있으며 방울과 고리 찼어라鬈偲人美擁環鋂 소란스런 말울음 청산에서 멀어지고蕭蕭響自靑山遠 또렷한 그림자 성가퀴를 지나오네歷歷影過粉堞來 新豐의 봄 경치가 그림과 같으매春樹新豐渾似畫 칼집 차고 의기롭게 잠시 배회하네橫鞘意氣蹔徘徊
‘小苑’은 長安 동쪽에 있던 동산이다. ‘新豐’은 漢 髙祖가 자신의 고향인 豐縣을 驪山 아래로 옮겨 새로 건립한 고을이므로 여기서는 正祖가 아버지를 추모하며 오갔던 水原을 가리키는 듯하다. 사냥을 갔다 돌아오는 사냥 말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다. 말은 일반적으로 ‘人才’를 의미하는 동물이다. 특히 사냥 말은 인재 가운데서도 전도가 양양한 젊은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다. 여기서 형상한 사냥말의 모습도 매우 용맹하고 활기차며 진취적인 모습이다. 일반적인 말의 상징에 더하여 사냥의 이미지 까지 수용하고 있다. 이 시의 심층 의미를 고찰해 보면 이 말의 우의는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다. 하나는 문과에 갓 급제한 전도유망한 抄啓文臣이겠고, 또 하나는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젊은 군주인 正祖로 볼 수 있다. 詩題를 출제한 의도를 이렇게 파악하고 말을 형상한 것이다. 일반적인 동물의 상징을 그대로 수용한 시는 70여 편의 시문에서 예상과는 달리 많지 않은 편이다. 운문에서는 더욱이 많지 않다.
(2) 동물 상징의 變用 동물의 상징은 典型性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 전형성을 부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歷史人物을 인용하는 것으로 반증할 수 있다. 윤기는 특정 동물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성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변화시키거나 오히려 반대로 형상한 경우가 다수 있다. 어떤 동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旣成觀念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세밀한 묘사를 통하여 새로운 상징을 만들고 변용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인물에 적용하면 세상의 權威를 인정받은 名士의 본색을 밝혀내어 그 진상을 파헤치는 일과 유사한 것이다. 윤기라는 인물은 젊어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문, 재산, 학연, 지연 등의 여러 가지로 차별을 당하고 산다는 피해의식이 있었고 실제로 소외당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문장의 평가를 논하는 자리에서 ‘이쯤 되고 보면 이것은 단순히 문장의 好惡를 평가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양심과 관련된 문제로까지 보인다.’고하여 불공평한 세태를 고발하였다. 그의 이런 갈망은 동물의 상징에 대해서 마저 새로운 관점으로 보고자 한 것이다. 앞에 거론한 것과 꼭 같이 백로를 노래한 「白鷺歌」 한 편을 더 보고 앞의 「白鷺詞」와 비교해 본다.
새는, 새는 백로라는 이름의 새는有鳥有鳥名白鷺 눈처럼 희고 명주마냥 희지如雪之白如素素 아침이면 목멱산 자락 구름 속을 날고朝飛木覔山邊雲 밤이면 경복궁 가운데 나무에 자네夜宿景福宮中樹 물어보자 궁중 나무 가지가 얼마나 되느냐借問宮樹枝幾許 수천 가지 수백 가지 헤일 수 없어라枝枝千百不知數 初平이 채찍질한 흰 양인가 했더니疑是初平亂石鞭 漢王이 거느린 三軍같이 희구나又如漢王三軍聚 멀리서 볼 땐 머리와 꼬리 분간 할 수 없더니遠望不能辨頭尾 가까이서 살피니 비로소 깃과 털 보이는구나近看始覺翩毛羽 吳宮의 북소리에 날아들겠고吳宮皷懸飛應隨 陸子의 부채와 희기를 다투노라陸子扇㓗色相妬 비낀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마을 연기 가르고 斜風任他割村烟 가랑비에도 의연하게 산야의 정취 내는구나細雨依然生野趣 누가 篁棲叟란 이름으로 불렀나阿誰喚作篁棲號 때때로 한가로이 와 碧溪(繼)翁걸음 걷네有時閑引碧溪步 오랜 세월 앉고 밟아 나무 말라죽으면歲久踏着枝穢枯 다시 자리 옮겨 다른 나무에 가서 사네也更移占他樹住 아침 햇살에 날아가는 몇 그림자 흩어지고流影幾點散初暾 저녁노을 속에 정연히 무리지어 우는구나整隊羣聲喧日暮 겉만 희고 속은 검다 말하지 마라莫言外㓗心非仁 원래 고운 옷 입은 미인이 간악한 심보인 법鮮衣妙人猶奸蠧 물 가득한 연못에 백로 날아오는 뜻 알겠나니解道屬玉水滿塘 오래도록 옛사람 시구 생각게 하네令人長憶昔人句
표현에 있어 평소의 윤기의 시에 비하여 다양한 고사를 구사하고 있는데 이것도 衒學的인 태도를 취하는 문인학자를 諷刺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수 있겠다. 앞의 「白鷺詞」에서는 백로의 이미지가 ‘고결한 인품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백로는 완전히 상반된 형상으로 극히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라는 느낌이다. 이때는 尹愭의 나이 54세(1794년) 정조18년 되는 해이다. 52세의 늦은 나이지만 대과에 급제하고 벼슬도 宗簿寺主簿가 되어 차츰 본인이나 가정의 상황이 호전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 해에 次男 心培가 사망하여 크게 낙심 하고 있을 시기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처음 白鷺라는 이름을 강조하고 그 모습이 희다는 것을 말하고는, 바로 아침에 목멱산의 흐린 구름 속을 지나 저녁에는 궁중에서 잠드는 백로에게 궁궐의 나뭇가지가 얼마나 되느냐 묻고는 수천 수백 가지라고 자답하고 있다. 온갖 구름 속을 헤치고 온 겉만 흰 백로 같은 벼슬아치가 수없이 모여 있는 곳이 궁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백로의 행색은 겨우 색깔만 희게 보여 양인지 상복 입은 사람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궁궐에 기척만 있으면 달려가고 밖에 나와서는 신선보다 더 孤高한 척 누가 더 흰지 경쟁한다. 좋은 곳은 오랜 세월 누리다가 그곳이 황폐해지면, 헌신짝처럼 버려두고 또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優雅하게 나는 것 같으나 실상은 利害를 찾아서 떼 지어 시끄럽게 악악거린다. 겉이 희면서 속이 검다는 말은 애초에 맞지 않는 말이니, 원래 겉을 아름답게 꾸미는 사람은 心性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이 가득한 연못에 몰려드는 백로는 애초에 이해를 찾아서 몰려오는 거짓 君子일 뿐이라는 말이다. 이 시를 통해서 윤기가 풍자하고자 했던 실상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백로의 상징은 완전히 앞의 백로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백로의 본질을 꿰뚫어 형상하여 時代의 病弊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고난에 찬 시인의 눈에 당세의 고고한 모습의 학자나 관인의 치부가 역겹게 눈에 거슬린 것인 듯하다.
다음은 까치를 주제로 읊은 시를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까치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희소식을 전해주는 吉鳥로 인식되어왔다. 특히 까마귀나 부엉이와 비교대상으로서 영험한 새로까지 알려져 왔다. 예를 들것도 없지만 李奎報가 자신의 仕宦이 늦어져 고민하던 중에 까치가 주위에 집을 짓는 것을 보고 반색을 하며 지은 「까치집[鵲巢]」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 영특한 새가 집 지음을 보고見此靈鳥栖 기쁜 빛이 눈썹 가에 나타나 喜色見眉宇 초조하게 집짓기를 기다리며 汲汲望巢成 눈을 들어 높은 나무 우러른다 擡眼仰高樹
라고 하여 마치 까치가 바로 벼슬이라도 줄 것처럼 반겨하는 마음이 절실히 표현되어 있다. 윤기의 문집에도 나이 70세에 지은 「雜謠」4수의 첫 수에 다시 까치가 등장한다. 그 이야기는 옛말에 ‘까치집 남쪽은 길하고 북쪽은 흉하다.’는 말이 있어 까치집의 북쪽 사람이 몰래 까치집을 부순 이야기이다. 끝에, ‘까치야 네가 지혜롭지 못하구나, 어찌 사람 없는 넓은 들에 집을 짓지 않았느냐?[鵲乎爾不智, 何不巢廣漠之野無人域]’라고 동정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까치를 꾸짖다[嗔鵲]」를 보자.
까치의 날개 매우 반짝이고鵲羽甚鮮耀 날쌔게 날며 까악 까악 우네飛聲喳喳 하늘에서 울면 돌아오는 소식 있고噪乾歸期占 나무에서 울면 기쁜 소식 있으니鳴樹喜報誇 미운 부엉이에 대랴寧似惡鴟鴞 더러운 까마귀와도 다르지殊異唾烏鵶 하지만 사람에게 해로우니然有害於人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則我不汝嘉
…… 그중 가장 큰 골칫거리는最是大患在 딱한 이 초가집이라네哀此草爲家
…… 내가 네게 무슨 잘못했기에吾何負於汝 나의 삶을 망쳐놓느냐而使壞生涯 무너뜨리는 게 어찌 이치리오傾覆豈其理 묵묵히 생각하다 다시 장탄식하네默念還長嗟 미운 건 이런 것만이 아니니所惡非似是 모습과 행실이 아주 달라貌行有殊差 영조요 길조라는 이름 차지하고占取靈吉名 겨울나무에 앉아 정답게 우네軟語坐寒楂 사람으로 말하자면 겉은 훤칠한데譬如人脩㓗 속마음은 실제로 음흉하여其中實憸邪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니流害及無辜 헛된 명예요 참 아름다움 아니네虛譽非眞姱 아이들아 잘 대해주지 말고兒曹莫相饒 활로 쏘고 막대로 때리거라弓彈更杖撾
이 시는 전편이 60구나되는 장편고시이다. ‘까치’를 주제로 하여 읊은 시치고는 꽤 할 말이 많아 일필휘지 읊은 것이다. 윤기는 기존의 일반적인 까치의 이미지에 반하여 2가지 관점에서 매우 부정적 시각으로 읊고 있다. 첫째는 그의 惡行이고, 둘째는 虛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미워한다. 내용을 보면 그의 이미지는 까마귀나 부엉이와는 전혀 다르다고 하지만 자신은 그의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가 구구절절 자세히 묘사한 까치의 개략적 행적은 ‘행동은 한가로워 못된 짓 잘 숨기고, 모습은 깨끗하나 욕심 외려 지나치네[行閑跡易潛 貌㓗欲反奢]’이다. 그 실상을 보면 병아리 해치고 호박 쪼기, 고기 훔치고 된장 채어가기이다. 그 보다 큰 문제는 굼벵이를 찾느라 초가지붕을 온통 망쳐놓아 끝내는 집이 무너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 행적이 마치 놀부의 하는 양과 비슷하다. 그래서 시인은 그 해독은 물여우 같고 포악하기는 귀차보다 심하다고 꾸짖는다. 그러나 시인이 이런 것보다 더 미워하는 건 吉鳥라는 이름을 차지하고 의연히 울어대는 假飾的인 모습이다. 이렇게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였던지 끝내는 직접 사람에 비유하였다. 겉은 뻔지르르하고 속은 음흉하여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헛된 명예[虛譽]’를 가진 ‘아름답지 못한[非眞姱]’ 사람이라고 혐오하고 있다. 그 결론은 자신이 까치를 잡거나 쫒지 못하여 장탄식을 하고는, 아이들에게 ‘잘 대하지 말고 활로 쏘고 막대로 때리라.’고 부탁하고 있다. 까치의 惡行과 虛名을 고발하고, 자신만이 아니라 남의 동의를 얻어 같이 공격하여 그 악행과 명성을 타파하고 싶어 한 것이다. 주목하는 바는 앞의 백로 같은 경우는 원래 긍정과 부정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동물이지만 까치는 거의 긍정적 이미지의 동물임에도 그 이미지를 완전히 부정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시의 세태, 즉 겉으로는 명성을 추구하고 뒤로는 이익을 탐하는 인간군상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징치하고자 한 것이다. 까치를 그린 한 편의 시를 통하여, 항상 史家的 자세로 시대의 문제를 기록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고자 노력한 윤기의 作家精神을 엿볼 수 있다. 그 표현 방법을 보면, 이 시는 운문으로 형상되어 있지만 ‘동물을 주제로 하여 이야기와 곁들이는 내용이 있는 寓言詩’의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는 두 편의 시를 통하여 일반적인 동물의 특성[이미지]을 변용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白鷺와 까치 같이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로 사용한 경우도 있고, 다소의 비틀기를 통하여 새로운 상징이나 反轉의 효과를 내고 있는 시들도 상당수가 있다.
(3) 동종 동물의 대립 대부분의 동물 소재 시문에서 동물은 특정한 상징체로 사용된다. 예컨대 개는 ‘忠直한 신하’ 쥐는 ‘腐敗한 관료’ 말은 ‘人才의 상징’ 등의 典型的인 역할을 맡게 된다. 특히 동일한 이야기 안에서는 한 동물의 상징은 동일하게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반하여 윤기는 같은 동물이 서로 다투거나 동일 동물의 행동과 전형적 특성이 서로 相異하게 分化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한 이야기 속에서 동일 동물이 여러 마리 등장하여 각각의 특성이 전혀 다른 경우를 보자. 윤기의 「잡다한 이야기 세 가지[雜說三]」의 두 번째 이야기인 고양이 이야기를 살펴본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고양이 두세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 중 한 마리는 낮이면 잠만 자고 밤이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쥐를 잡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고양이가 쥐 잡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고양이는 無能하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고양이는 밤이면 사람 곁에서 잠만 자고 낮에 이따금 쥐를 잡으면 반드시 사람 앞에 물고 와서 쥐를 가지고 놀며 사람들을 재미나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런 행동을 기특하게 여겼다. 그래서 비록 습관적으로 음식을 훔치고 닭을 물어뜯어도 꾸짖지 않았다. 쥐들이 밤에 사냥하는 고양이 때문에 죽지 않은 놈들은 모두 멀리 달아났다. 그리하여 마침내 집 안에서 쥐가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것이 나머지 고양이의 공이라 생각하고 밤에 사냥하는 고양이를 매질하여 내쫓았다. 그러자 쥐들이 다시 떼 지어 몰려들어 다시는 어쩔 수가 없게 되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선택하게 한다면 내쫓긴 한 마리를 키우려 할까, 아니면 나머지 고양이를 키우려 할까?
윤승준은 고양이의 상징을 “부패의 척결, 교활한 술수의 이중성”이라고 하였다. 대개 고양이는 쥐나 개와 상대적인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丁若鏞의 「貍奴行」 같은 경우에도 쥐와 고양이가 같이 등장하고 있다. 반면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은 고양이 세 마리이다. 두세 마리의 고양이 가운데 밤에 쥐를 잡는 한 마리와 나머지 고양이가 선과 악의 상대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상징으로 말하자면 쥐를 잡는 고양이는 ‘부패 척결’에 해당할 것이고 쥐를 잡지 않고 술수를 부리는 고양이는 ‘교활한 술수의 이중성’에 부합한다. 동일한 동물이 한 이야기 속에 두 개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아닌 듯하다. 이 대립구조의 고양이는 일반적으로 다른 동물이 해야 할 역할을 같은 동물이 분화하여 맡은 것이라 하겠다. 이 이야기에 대하여 윤주필은, “사람을 알아보고 앞날을 내다본다는 게 만만치 않음을 말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임완혁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매몰된 판단은 객관적 진실과 거리가 멀다.”라고 하였다. 寓言 형식을 빌렸지만 그 寓意는 평소에 尹愭가 집착하였던 문제를 말하고자 함이다. 그는 ‘세상의 판단이 여러 외형적인 요소에 끌리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한탄’하였던 것이다. 문집에 이러한 일에 관련된 사례와 주장이 산재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매사에 진실과 시시비비가 무엇이며, 그것이 올바르게 評價되고 있는가에 대한 批判的 視覺이 역사나 당세 현실을 보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라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잡다한 이야기 세 가지[雜說三]」의 세 번째 이야기인 「老狗陰恨」의 상황도 앞의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있다. 그 내용은 ‘주인이 강아지를 얻어와 키우자, 늙은 개가 사람이 볼 때는 강아지에게 잘 해 주다가 몰래 물어 죽인 이야기’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는 일반적으로 ‘충직한 신하, 간악한 권신, 속물적 인간’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늙은 개는 여기서 간신이나 속물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고 강아지는 전혀 성격이 드러나지 못하는 소품 정도의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하지만 동종의 동물이라는 점에서는 분화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은 「닭과 참새 이야기[雞雀行]-반드시 의도가 있어 지은 것이다.[必有爲而作]-」을 살펴본다. 여기서는 닭과 참새가 섞여있을 때 닭이 참새는 두고 동류인 닭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지은 시이다.
닭들이 모이 두고 다투고 공격해衆雞得食爭且逼 쪼고 할퀴며 힘을 겨룰 때觜啄距逐唯其力 참새 떼 재잘대며 달려와有雀羣飛噪而踔 닭들 틈에서 맘껏 쪼아 먹네來雜雞中恣意食 닭들 외려 참새와는 잘 어울려雞反與之同周旋 시기도 질투도 전혀 없구나無惡無忌如不識 동류끼리는 약한 놈 괴롭히더니同類自相強蔑弱 이류에겐 사랑하는 듯 덕을 베푸네異類更若愛施德 관대함과 야박함이 너무 고르지 않고所厚所薄太不均 이놈 걸 빼앗아 저놈 주다니 참 의혹스럽다奪此與彼良可惑 닭아 저 참새는 왜 쪼지 않느냐問雞胡不啄彼雀 닭은 답을 못 하고 참새는 날아가네雞不能對雀鼓翼
먼저 副題에 있는 ‘반드시 의도가 있어 지은 것이다.[必有爲而作]’라는 말은 과연 작자 자신이 한 말인지, 후세에 붙인 말인지 의문이 간다. 아마 후세에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원본의 상태를 보면 필사한 글자의 상태가 본문을 썼던 먹의 상태와 확연히 다르고 오히려 圈點에 사용한 붓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또 하나는 그 표현에 있어 어감이 작자 자신이 쓴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 이야기는 일단의 닭들과 참새 사이에 있는 사소한 이야기를 보고 지은 시이다.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옆에서 구경하다 보니 닭들이 서로 모이를 경쟁하는데 정작 동류인 닭들끼리는 서로 다투면서 정작 참새와는 싸우지 않는 것을 보고 감회를 푼 것이다. 이 해는 1799년 정조 23년으로 윤기가 59세 되는 해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건대 아마 南人의 執權 後半期로 같은 당색 내부에서 분파가 일어나고 알력이 심해진 시기일 것이다. 닭들끼리 다투는 모습에서 시대의 모습을 투영해 본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유사한 주제를 가진 것으로 「만흥 20수[謾興 二十首]」의 두 번째 시에서도 보인다.
닭들이 뜰의 모이 쪼고 있는데羣雞食庭中 폴짝폴짝 참새들 다가오네踔踔來衆雀 닭들은 참새들은 쪼지 않고雞不啄其雀 저희 중 약한 놈만 쪼누나但啄雞之弱
이 시의 부제에서 보듯이 세상을 풍자하는 정서를 담고 있다. 앞의 고양이나 개는 등장 동물이 同種의 동물이고 이들이 상호 적대적인 행동을 한다. 반면에 이 이야기에서는 異類가 있음에도 동류끼리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즉 동물의 상징의 측면에서 보면 또 다른 분화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3. 운문에 나타난 동물형상 기존의 우언 연구에서는 윤기의 산문과 달리 운문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동물을 형상화한 작품은 사실 詩歌體나 散文體에 관계없이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기존의 연구자가 전혀 다루지 않았던 것은 주로 寓言의 측면을 연구의 주제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르의 성격으로 볼 때 오히려 운문이 생생한 형상의 묘사를 통하여 우언으로서의 문학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윤기는 詩歌에 대하여 “吟風弄月을 지양하고 진실을 기록하고 諷刺와 警戒를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시가를 통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려고 하였다. 마치 우언의 寓意와 유사하게 생각한 것이다. 실제 그는 동양역사와 우리 歷史를 1000여 편의 장편 연작시로 형상화거나 成均館의 실상을 220여 편의 연작시로 묘사하여 살아 숨 쉬는 역사로 그려내고 있다. 소위 寓言의 특징을 ‘작자가 곁들이는 이야기가 있는 이야기’라고 할 때 윤기 운문의 작법은 우언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또 굳이 우언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그의 동물을 소재로 한 다양한 운문들은 나름의 寓意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윤기 운문에 나타난 다양한 동물형상을 살펴 그 형상화의 양상과 특징을 밝히고자 한다. 동물 가운데 말을 소재로 한 것이 가장 많으므로 그중 2편을 감상해 본다. 「병든 말을 타고 가며 재미로 읊다[騎病馬戱吟]」
노둔한 말이 병들어 병든 내 몸 같으니駑馬玄黃類病翁 타노라면 구멍 난 배에 앉은 것 같네騎來如坐弊船中 전전긍긍 도무지 마음을 놓지 못하니戰兢不敢斯須忘 마치 임심리박의 공부를 돕는 듯似助臨深履薄工
그리고 「그대의 말은 황색[君馬黃]」을 연이어 본다.
그대의 말은 황색 나의 말은 자줏빛君馬黃我馬紫 나의 말은 느린데 그대 말은 쏜살같네我馬遲君馬駛 아침에 바닷가 산모퉁이에서 출발하여朝發海山隅 채찍을 휘날리며 나란히 달리고자 하였지만振策擬並轡 그대 말은 사뿐사뿐 어느덧 앞서 있고君馬冉冉倏在前 나의 말은 절뚝절뚝 서로 피하려는 듯하네我馬蹙蹙如相避 한 걸음 두 걸음 점점 멀어지니一步二步漸相遠 산길을 돌고 보니 간 곳을 놓쳐버렸네路轉山回迷所至 준마 말굽 따가닥 따가닥 뒤도 보지 않고 떠나가고 霜蹄騰踏去不顧 나의 駑馬 비웃으며 길 가운데 남겨두네欺我駑駘中道棄 마부 멈추어 서서 애꿎은 말에게 채찍질을 하지만 僕奴却立鞭馬首 해는 지고 길은 멀어 부질없이 탄식만 한다네日暮途遠空歎喟 아, 세간의 모든 일 기약할 수 없는 것嗚呼世間萬事不可期 그댄 보지 못했나, 새옹 아들 낙마해 넓적다리 부러진 것 君不見塞翁之子墮折臂
두 시는 말을 주제로 한 시이다. 말의 상징은 ‘불우한 인재,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이고 老馬는 ‘삶의 지혜와 경륜을 갖춘 인재, 버려진 인물’이다. 등장한 말이 하나는 병든 말이고 하나는 노둔한 말이다. 그 말의 상징은 ‘불우한 인재’나 ‘버려진 인물’ 그리고 ‘불안한 정치 현실’에 부합한다. ‘병든 말은 자신과 같다’고 하였고, 「君馬黃」에서는 마부가 화풀이 하듯 말을 때릴 때 말과 자신이 동일시되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사실적 묘사를 통하여 말과 사람의 형상을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하고 있다. 마부가 가난한 주인을 힐난 하듯이 애꿎은 말을 채찍질할 때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십분 동감이 간다. 그래도 마음수양에 도움이 된다고 하며, 塞翁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비애를 웃음으로 위안하고 있다. 이 말들의 형상은 늘 病馬처럼 위태롭고, 잘난 말들에게 뒤처지는 駑馬처럼 인정받지 못하며 無名子로 살아가야 했던 尹愭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의 이상과 이성은 그런 대우를 받을 만큼 나약하지도 않았고 양심에 거슬리는 타협도 하지 않았다. 悲哀를 안고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문필에 종사하며 눈을 부릅뜨고 시대의 흐름을 지켜보고 정의를 밝히고 記錄하였던 참 지식인이었다.
다음은 「닭과 삽살개[雞尨行]」라는 시를 보자. 세상의 시비 판단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시이다.
조는 삽살개 귓속의 벼룩을 닭이 쪼니雞啄睡尨耳中蚤 삽살개 화가 나 컹컹 짖으며 물려고하네尨怒狺然欲噬雞 닭이 놀라 달아났다 다시 돌아오자雞驚而走還復來 삽살개 다시 쫓아, 닭이 홰에 올랐네尨輒逐去雞上棲 해충 없애주려다 외려 물릴 뻔 하였으니爲爾除害反遭噬 닭이 멈추지 않았다면 가루가 되었으리雞若不止已粉虀 닭과 삽살개 득실을 따지기 어려우니雞尨得失難具論 세상만사 아득하여 봄꿈처럼 아련해라萬事茫茫春夢迷
이 시에서는 닭과 삽살개의 행동을 실제 동물의 생태에 정확히 일치 시키면서 그 이야기를 통하여 시인의 우의를 담고 있다. 닭은 삽살개를 위하여 벼룩을 쪼았으나 개는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고 닭을 공격한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몰라서 쫒고 쫒기는 상황이 된 것이다. 크게 보면 애초에 닭과 개의 관계는 항상 쫒고 쫒기는 사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보면 그 득실을 따지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설정인 셈이다. 결론은 득실을 따지기 어렵다고 하였다. 굳이 득실을 따지자면, 닭의 선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격하는 개의 잘못일 것이다. 개는 어떤 이유로 공격을 하는 것인가? 그것은 이 상황이 닭의 순수한 선의만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즉 닭이 벼룩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까지 가서 생각해 보면 시비의 판단이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남을 도와준다는 것이 진정으로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는 행동이긴 쉽지 않다는 사실에까지 시인의 우의가 미친 것이리라. 앞마당에서 늘 일어나는 닭과 개의 사소한 소란에서 이런 이야기 거리를 찾아낸 시인의 감각이 재미있다.
다음은 「만흥 20수[謾興 二十首]」를 통해 동물을 통해 읊은 세상의 모습을 본다.
3 닭이 벌레 쪼는 즐거움에 빠져啄蟲雞甚樂 옆에서 고양이가 노리는 줄도 모르네不知猫傍伺 개는 또 고양이에게 뜻을 두고狗又意在猫 사나운 기세로 이빨을 갈고 있네磨牙勢方鷙
6 천금으로 준마를 사서千金買駿馬 대도를 의기양양하게 달리다가大道意氣馳 갑자기 놀라 한 번 날뛰니忽然驚一躍 길 가는 사람들 모두 혀를 차며 동정하네路人共嗟悲
11 부귀가 말들은 곡식과 콩을 질리도록 먹지만富馬厭粟豆 가난한 집의 말들은 질긴 쑥대나 씹지貧馬齕菣蒿 부귀가 말들은 열병으로 죽었지만富馬發熱斃 가난한 집의 말들은 아직 구유에 건재하네貧馬猶在槽
이 시는 전편이 오언절구 20수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 동물을 소재로 한 것은 앞에 인용한 ‘2 羣雞食庭中∼’을 포함하여 모두 4수이다. 동물들은 닭-참새, 벌레-닭-고양이-개, 준마, 富馬-貧馬로 되어있다. 尹愭가 왕성하게 詩作을 하고 특히 동물소재 시를 가장 많이 짓던 시기인 65세(1805년, 순조5) 때의 작품이다. 숫자는 20수의 차서로 참고로 붙인 것이다. 앞에 인용하였던 羣雞∼는 닭과 참새가 같이 있으며 닭끼리 공격하는 이야기였다. 3의 이야기는 벌레, 닭, 고양이, 개가 서로 먹이 사슬로 얽혀 있으면서 자신의 먹이만을 생각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포식자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용하고 이용당하며 잡고 잡히면서 자신의 면전의 상황에 매몰되어 큰 시야로 보지 못하는 愚夫愚婦의 삶과 너무도 닮은 모습이다. 6의 시에는 駿馬만 등장한다. 겉으로는 준마 홀로 등장 하지만 그의 뒤에는 늘 駑馬나 鈍馬가 있기 마련이다. 이 시에는 준마가 등장 하지만, 실제의 주인공은 준마를 타는 사람이다. 천금을 들여 좋은 말을 사서 그 준마를 타고 의기양양하게 세상을 내달리다가 그 말이 놀라 한 번 뛰어오르자 落馬하여 죽거나 크게 부상을 당한 것이다. 자신이 눈 아래로 보던 길가 사람들의 동정을 받게 된 것이다. 굳이 말을 人才의 상징이라 하지 않더라도 이 이야기기의 주인공은 고관대작의 인물이거나 군왕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세상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로 주목 받던 사람의 이야기일 수 있겠다. 당시에 인재를 犬馬로 부리며 세상을 호령하다가 일순간에 落馬하던 고관대작의 모습이 그려진다. 시인의 우의는 아마도 이런 시대의 문제를 鈍馬나 路人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리다. 11은 貧富와 壽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좋은 음식만 먹고 살찐 부잣집 말은 병들어 요절하고 거친 쑥대 먹고 굶주리던 가난한 집 말은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내용이다. 反轉의 묘미를 가진 다소 諧謔的인 시이다. 늘 빈한했던 시인이 부러워하던 부귀가의 비만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 병들어 죽고 자신은 여전히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실을 깨닫고 헛웃음을 날리는 모습이다. 본고에는 인용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시들은 주로 당시에 利害打算에 따라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겉으로는 君子然 하는 세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이 4수를 포함하여 20수 전편에서 시인이 말하고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시 조선사회는 안동김씨의 勢道政治가 막 시작되는 초기이다. 세도가가 나라를 좌우하고 그 세력을 따라 먹이사슬 같이 얽혀서 서로의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세태를 직간접적인 형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앞에서 닭과 참새가 같이 있으면서 오히려 같은 닭끼리 다투는 것도 어렵지 않게 설명이 되는 바이다. 20수 전체 작품을 品格의 측면으로 보면 이렇게 동물을 소재로 한 것은 그 의미를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형상화의 기법이나 주제의 전달 측면에서 용이한 것으로 보인다.
4. 우언산문과 그 寓意 이 장에서는 윤기의 동물우언과 그 우의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본다. 서문에서 밝힌 것과 같이 선행연구에서 윤주필, 윤승준, 임완혁 등이 윤기의 작품들 가운데 일부를 이미 동물우언으로 평가하고 그를 중요한 우언작가로 선정해놓았다. 그 가운데서도 동물우언은 「蛛蜂見敗」 「笞猫放之」 「老狗陰恨」 「害人之才」 「狐蛇之報恩」의 5편이다. 선행연구는 우언산문에 대하여 그 작품자체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그 우의를 깊이 고구하였다. 윤기는 ‘문학이라는 것은 그 사람과 관련이 깊은 산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 그의 우언작품도 작자의 철학이나 세계관을 도외시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존 연구는 작품자체의 분석이 잘 되어있는 반면에, 윤기라는 인물의 특징적 면모의 반영이 다소 부족한 듯이 보인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그의 우의에 대한 논의에 약간의 첨언을 하고자 한다. 「蛛蜂見敗」 「笞猫放之」 「老狗陰恨」의 세 작품은 「雜說 三」에 들어있다. 이 세 작품은 편폭이 길지 않으므로 실어본다. 「笞猫放之」는 ‘동일 동물의 대립’ 부분에서 이미 제시했으므로 나머지 2편을 본다.
거미는 공중에 그물을 쳐서 날것들이 걸리기를 기다리는데, 몸집이 작은 모기․파리로부터 몸집이 큰 매미․제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거미줄로 잡아서 배를 채운다. 한번은 벌이 거미줄에 걸렸다. 그런데 거미가 그 벌을 급히 거미줄로 휘감다가 갑자기 땅에 떨어져 배가 터져 죽었다. 벌침에 쏘인 것이다. 어떤 아이가 벌이 거미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보고 손으로 풀어 주려고 하는데 벌이 또 침을 쏘았다. 그러자 아이는 화가 나서 벌을 발로 밟아 뭉개 버렸다. 아, 거미는 날아다니는 온갖 것을 다 거미줄로 잡는 솜씨만 믿고 벌이 침을 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하였고, 벌은 침 쏘는 것만을 능사로 여겨 자신을 헤치려는 사람과 구해 주려는 사람을 막론하고 만나는 족족 예외 없이 쏘는 바람에 구해 주려던 사람이 도리어 해치게 만들었다. 아이는 거미가 낭패한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 벌의 나쁜 점은 생각지 못하였고, 벌이 곤경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랄 뿐 벌침의 독이 사람을 해칠 수 있음은 헤아리지 못하였다. 천하의 일이 어찌 이와 같을 뿐이겠는가?
어떤 사람이 남에게서 강아지를 얻어 와 키우기 시작했는데, 강아지가 어리고 또 새로 왔기 때문에 먹이를 자주 주고 늘 어여삐 어루만져 주었다. 그 집에는 본디 늙은 개가 있었는데, 속으로는 새로 온 강아지를 질투하면서도 겉으로는 아껴 주어 볼 때마다 핥아 주고 보듬어 주고 벼룩과 파리를 물어내 주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주인은 늙은 개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에 늙은 개가 마침내 주인이 곤히 잠든 밤을 틈타 강아지의 목을 물어 죽이고 대문 밖에 물어다 놓았다. 이튿날 주인이 일어나자 늙은 개는 주인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나가서 슬피 울며 강아지를 가리켜 보였다. 저 늙은 개는 속으로는 죽이고 싶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끼는 시늉을 하여 주인이 의심하지 않게 만들고, 악독한 계획을 실행한 뒤에는 또 강아지가 자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닌 것처럼 꾸몄으니 참으로 교활하다. 개도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이랴?
「蛛蜂見敗」은 앞의 「雞尨行」과 매우 흡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윤주필은 “상대적인 관계의 균형을 잡기위한 중심점은 알기 어렵다.”라고 하였고, 임완혁은 “주관적 오류에 빠진 신념”이라고 하였다. 다소 심층적인 차원의 우의 분석이다. 세상의 돌아가는 바는 겉으로 들어난 시혜라는 것이 결국 자신을 犧牲하는 차원까지는 이르지 못한 모양새다. 주관적 신념이란 것이 결국 얕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에 얽혀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이해로 각축하다가 서로 죽고 죽이는 世事를 풍자하는 듯하다. 더구나 너무도 좁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한탄하는 것이다. 섣부른 도움을 주는 아이 역시도 어쩌면 ‘자신이 선행을 베푼다는 無形의 利益’을 얻고자 하다가 그것이 실패하자 화를 내고 벌을 죽인 것일 수 있다. 윤기는 세상의 돌아가는 형세를 史家의 눈으로 종횡으로 巨視的으로 보고 脈絡을 찾고자 노력하였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老狗陰恨」에 대하여 윤주필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마음”이라고 하고, 임완혁은 “권모술수를 자행하는 인간사에 대한 부정과 회의”라고 하였다. 그 시대 역시 내면으로는 온갖 이해관계로 수없는 모략을 행하고는 겉으로는 성인군자를 자처하는 二重的 행태의 인물이 너무도 많았다. 이러한 시대의 병폐를 개의 모습으로 보여준 것이다. 3편의 잡설에서 말하려던 우의는 과연 무엇인가? 표층의 우의는 겉만을 보고 판단하는 判斷의 未熟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 심층의 우의는 조선후기의 시대 분위기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面前의 利害關係에 따라 無道를 자행하는 세태를 풍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눈앞에 보이는 데 따라 움직이는 세상의 문제는 무엇인가? 윤기는 인간세계가 모든 면에서 명성에 따라 眞假를 판단하고 세속적 지위나 재물을 추종하는 현실에 대하여 환멸과 우려를 하였다. 겉에 드러나는 현상밖에 볼 줄 모르는 세상에 대하여 ‘제발 그 裏面의 眞實을 알아보라.’는 한 맺힌 절규를 동물들의 이야기로 태연히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害人之才」로서 ‘객 중에 好事家가 있어 나에게 옛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寓言이었다. 아래는 이를 기록한 것이다[客有好事者 爲余談古 蓋寓言也 因記之]’라는 말로 시작하는 우언이다. 그 편폭이 길어 줄거리만 살펴본다. 호랑이가 뱀․모기․파리․벼룩 등과 서로 사람을 해치는 능력을 자랑 한다. 끝에 가서는 이러다 결국에는 제 명에 죽지 못하겠다고 걱정하면서도 “어찌 한창 신날 때 천성에 따를 즐거움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는 끝난다. 이 이야기의 우의는 자신의 천성대로 사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표층의 우의는 모두가 각자의 주어진 상황에서 백성을 수탈하고 착취하면서 그것이 잘하는 일 인양 자랑하는 당시의 관료나 지배층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잃으면서도 자신의 타고난 本性에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의 인간군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것이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自我의 限界를 적시한 것이다. 끝으로 「狐蛇之報恩」는 「客有談古事者 聊記之」라는 이름으로 3편의 우언산문이 실려 있는데 그 중 동물우언이다. 이 이야기는 편폭이 크고 내용도 다소 복잡하다. 그 줄거리를 요약해본다. ‘어떤 사람[주인]이 자라를 키우다 놓아주었더니 사람이 되어 돌아와서 큰 홍수가 날 것이므로 피하자고 하여 함께 배를 타고 간다. 이때 여우와 뱀 그리고 사람을 구해준다. 훗날 여우가 은항아리를 찾아 주어 주인이 큰 부자가 되었으나, 구해준 사람이 배신을 하여 모든 것을 잃고 오히려 감옥에 갇힌다. 뱀의 도움과 왕의 올바른 판단으로 다시 회복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 이다. 중요한 두 부분을 살펴본다.
주인은 관아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혹심한 고문을 받고서 구입한 재산을 모두 팔고 본래의 가산까지 보태서 갚았는데, 그 숫자에 미치지 못하자 더욱 매섭게 독촉을 당하였다. 주인은 옥중에서 죽게 되리라 생각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내가 은을 얻지 못했다면 어찌 이런 화가 닥쳤으랴. 財[재물]은 災[재앙]이고, 貨[재화]는 禍[앙화]이고, 仕[벼슬]은 死[죽음]이고, 宦[관직]은 患[환란]이다. 세상 사람들이 財貨로 인해 災禍를 당하고, 仕宦으로 인해 死患[사망의 환란]에 걸리는 것은 본래 이치가 그런 것이다. 내가 명분 없는 재물을 보고 취하였으니 죄에 얽힘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아, 여우는 요사하고 뱀은 독이 있으면서도 은덕에 반드시 보답을 하였는데, 사람은 그만 못하고 또 해코지하려고 하였으니, 은혜를 잊은 것이 아니라 욕망이 시킨 일이다. 자라가 신명스럽다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은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自責을 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최악의 상황에 도달한 사람은 대부분 자책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윤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處世이고 自己 合理化이며 세상과 和合해가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여우가 주인 없는 재물을 가져왔을 때 거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 상황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런 자책도 없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낭패를 당하고 보면 지난 일을 되짚어 보기를 반복하며 그 시발이 무엇이었으며 상대와 나의 행동에서 시비를 반성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그 사람의 성향이 드러난다. 어떤 이는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을 것이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았다. 이른 바 反求諸己를 떠올리지 않아도 이는 단아한 성품을 가진 사람의 처사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의 결말은, 사람이 부정적 상징인 요사한 여우나 독을 가진 뱀만도 못하고 신명한 자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惡漢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애초에 주인의 재산을 빼앗고 주인에게 해를 끼칠 목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의 행적을 보면 땅에 닿고부터 생명을 구해준 주인을 위하여 성심을 다하여 마치 형제보다 가깝게 된다. 그러다 주인이 우연히 부자가 되고 난 후에 배신을 하게 된다. 왜 이렇게 된 것인가? 물욕에 빠져서 그랬을 것이다. 이 우의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物慾을 비롯한 不義의 심성을 警戒하고 다스려야 함을 보여준 것이다. 결코 사람을 비하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5. 결론 결론을 대신하여 서론에서 제기 하였던 윤기의 寓言文學으로서의 특징과 品格을 살펴본다. 먼저 윤기의 동물형상 운문과 산문우언의 표현상의 특징을 정리해본다. 첫째, 동물 형상을 서술할 때 매우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로 생동감을 살리고 있다. 예컨대 「嗔鵲」이나 논의 하지 않았던 장편의「蚤虫賦」 같은 경우는 그 묘사가 매우 핍진하여 그 형상이 선명히 그려진다. 둘째, 그 동물의 생물학적 특성을 거슬리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가령 茶山의 「貍奴行」에서 쥐가 고양이와 어울리고 뇌물을 준다는 설정 같이 실제 생태와는 지나치게 역행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雞尨行」「雞雀行」같은 경우에 실제 이들의 행동과 매우 흡사하게 서술하고 있다. 셋째, 동물의 형상이 전형적인 인물의 특징을 나타내어 우의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논의한 말[馬]들의 예 같은 경우를 보면 그 동물이 우의하는 人物의 特性을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넷째, 그가 그려낸 이야기에는 해학과 골계가 풍부하다. 특히 자신을 빗대어 표현한 이야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윤기의 문학세계는 시문을 통하여 세태를 諷戒하고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기록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우언의 특성과 일치하는 바가 있다. 요컨대 그가 그려낸 동물형상의 운문과 산문우언은 대체로 대상을 묘사할 때 典型性을 확보하고 한 역사 시기의 特殊한 情神 現狀을 반영함으로써 상당한 品格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 그의 우언문학의 품격이 제대로 평가 받기를 기대한다. 본고에서는 기획주제의 특성상 동물관련 작품만을 다루었다. 다음 기회에 여타의 우언작품도 논의해볼 것을 과제로 남겨둔다.
◆ 참고문헌 尹 愭, 無名子集. 韓國文集叢刊 256, 民族文化推進會, 2000.
김병건, 無名子 尹愭의 思想과 文學, 학위논문(박사), 성균관대학교, 2004. 김병건, 「無名子 尹愭 한시의 時代槪括과 諷戒的 성격」, 한문학보 제12집, 우리한문학회, 2005. 김병건, 「尹愭 文學의 美意識」, 동방한문학 제49집, 동방한문학회, 2011. 김병건, 무명자 윤기 연구,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2. 김재환, 韓國寓話小說硏究, 집문당, 1994. 윤승준, 「한중 우언의 동물 상징」, 동방학지 137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7. 윤주필, 틈새의 미학, 집문당, 2003. 윤주필, 「한국 우언산문에 나타난 자연물 모방의 경향과 특징」, 한국고전연구 통권 18집, 한국고전연구학회, 2008. 임완혁, 「無名子와 그의 寓言」, 문헌과 해석, 문헌과 해석사, 2005. 임완혁, 「無名子 尹愭의 散文世界」, 한문학보 19권, 우리한문학회, 2008. 첸푸칭 저, 윤주필 역, 세계의 우언과 알레고리, 지식산업사, 2010.
투고일 2015.
Abstract
Description of animals and its essence in Yoon Ki’s Literature
Kim, Byoung-geon
Perspective in Yoon Ki(尹愭)’s literature is known to be as follows: The purpose of poems and writings is not to entertain readers with description of the nature such as bright full moon but to satirize the upper echelons of society by recording the reality as it appears. Instead of criticizing the upper class directly, Yoon Ki made his pieces with animals, figurative characters. To understand his intentions, we’ll look through how animals in Yoon Ki’s literature are described and what they stand for. First, for those animals in Yoon Ki’s literatures, many researches focused on a fable prose(寓言散文). In fact, when looking into a collection of Yoon Ki’s works, approximately 66 works are considered to be shown in the title directly or use animal as the subject. In the cases of serial poetry(連作詩) or idle talk(雜說), they show a single title but develop into several different topics, as it goes deeper. Roughly, there are more than seventy works of poetry that address animal as a subject matter or the subject itself. This dissertation discusses the description and the meaning of animals in Yoon Ki’s literature in this follows: First, Took examples of poetry that address animal description and Looked into how Yoon Ki described them. Second, Analyzed concretely a fable prose which had been studied to a certain degree. Third, Looked into various animal description that was neglected for discussion. Fourth, Demonstrated that animals’ network of meaning is not simple as it may seem, especially, the meaning of certain animal could be varied accordance with situation. Fifth, Delved into the emblem(寓意) rooted from the embodiment of animals. Through these steps, I’d like to demonstrate Yoon Ki’s ability to write a fable and his literary grace. Yoon Ki’s literary tendency corresponds with that of a fable(寓言). For the conclusion, he tends to accord typicality to animals described in his chinese poem, and a fable prose; moreover, he regularly shows certain mental phenomenon on specific period of time. Wish discussion develops further, lightening the true value of his literary grace in fable literature.
Keyword Yoon Ki(尹愭), animal, animal shape, emblem(寓意), alert(警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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