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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기-8차시 합평작 (3월 27일 용)
1. 시공간 여행 차이점 / 서인수2
1 자연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시공간 여행을 취미로 즐기는 경우가 많다. 문화와 문명이 변화할 때마다 열정이 한창인 사람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므로 여행을 많이 한다. 문학계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회원들은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은 한 번이라도 선택하여 여행하니 재미가 있기도 하다. 가이드가 현장 설명해주는 내용을 보면 더욱더 실감이나 꼭 가고 싶어진다. 세계적인 전통 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아 관리되고 있는 곳은 전국 어디라도 가 볼 만한 풍경/풍물이 있어 또다시 보는 가치가 있다.
2 과거에는 정치문화가 발전하지 않아 수많은 전쟁으로 영토를 수호하고자 전쟁하는 것이 빈번하여 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멸종한 나라도 있었다. 국토가 갈리고 이념이 갈리는 원인이 여행함으로써 인과관계가 밝혀졌다. 인간의 생명은 존귀하므로 간첩 문화로 목숨을 함부로 빼앗을 수는 없는 것이라 평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였다. 구정치는 좌익이냐 우익이냐 하면서 인간의 심리를 분리하는 정책으로 해외여행을 제한하였다. 정치문화가 제대로 발전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많았다.
3 1989년도 노(盧)태우 시대에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되자 괌도에 친구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시작하였다. 바다 건너 해외에 있는 새 문화와 문명을 보고 듣고 감탄하는 시간이 되었다. 해외여행 자유화하기 이전에는 우리의 역사도 문화도 까막눈으로 배우고 있었다. 유럽 해외여행 이후에는 새로운 시각과 안목으로 세상 만물을 관찰하는 마음이 깃들게 되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풍습과 생활 태도를 보고 배울 점과 반성할 점 드러나 수십 개국을 여행하는 단체가 나와 문학계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4 나라마다 상호관계가 원만하고 명랑한 분위기라면 싸울 일도 없고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테마기행 영상을 보니 잘 먹고 사는 나라가 있는 반면에 못 먹고 굶는 나라도 있었다. 아마 이웃 나라가 배고프면 살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킨다고 보니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성도 보인다. 그러나 인권과 생명을 무시하는 나라라면 스스로 무너지도록 버려둘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나라는 구경할 필요성도 없으므로 선진국으로 발전한 역사를 배우는 쪽으로 여행을 한다.
5 여행은 재미있어 풍경과 풍습을 보고 듣는 일반인과 듣기만 하는 시각장애(盲)인과 보기만 하는 농(聾)인이 있다. 알기 쉽게 말하여 장애를 극복해온 시각장애인은 청각으로 들은 것만 말할 수 있고, 농인은 시각으로 본 것만 말할 수 있어 생각하는 표현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은 귀의 여행이며 농인은 눈의 여행이라 말할 수 있다. 여행담을 쓰는데도 차이점이 나타나고 있어 ‘수필은 보고 들은 것을 생각나는 대로 쓰고 저장하는 것’이라 일반인들은 여행담을 기술하면 재미있게 기술하는 것이다.
6 일반인은 보고들은 여행을 밑바탕으로 정서와 정감에 관한 내용을 여러모로 함양하여 종합적으로 기술할 수 있어 표현이 성숙하면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농인이나 시각장애인은 단독으로는 여행이 불가함으로 반드시 동행하는 일행을 따라가야 차질이 없다. 일행이나 도움이 없으면 낯선 곳으로 국내 여행이나 해외여행은 방황한다. 여행하다 길을 잃었을 때 갈팡질팡할까 봐서 할 수가 없는 것이라 그런 것 같다. 농인의 문화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시각장애인의 문화는 직감적이고 수동적이라 그렇다.
7 수녀님이 어린이학교 농인과 시각장애인을 교육하면서 보는 것과 듣는 것은 어떤 차이점 있는 것일까 조사하여보았단다. 결과는 놀랍게도 시각장애인보다 농인이 훨씬 답답하였다고 한다. 물론 그런 점도 있겠지만 실외로 산행한다면 농인보다 시각장애인이 훨씬 답답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실내에서 생활하면 시각장애인은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웃지만, 농인은 말이 없어진다. 꿈속에 낯선 곳 여행하기도 하지만 길도 방향도 알 수 없고 버스도 택시도 없어 오도 가도 못하여 후다닥 깨어날 때가 있다.
8 3급 이상 중증장애인은 답답한 삶이라 도와줄 필요성 있다. 중증장애인에 대한 평가는 장애가 상대적이라 행동하는 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반인이 도와주는 경우가 많아 명랑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주역이 되고 있다. 중증장애인을 도와주고 보람 느끼는 일반인은 가슴이 뿌듯하다 한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도록, 좋은 일이 수시로 생겨나도록 기도하는 마음이 있다. 농인은 명사가 대상 타는 동영상 보아도 느낌을 알아듣지 못해 말솜씨 배울 수 없어 답답하다.
9 시각장애인은 내외에 대상을 보지 못하는 장애가 있지만, 소리를 알아들어 분위기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하하하 웃으니 덜 답답하다고 말한다. 실내에서는 보이지 않아도 공간을 파악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실외에서는 시공간이 광대해 여행하는데 제약을 받아 차이점이 나타난다. 농인은 여행하는 풍경을 볼 수 있어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보다 행복한 삶이라 본다. 같은 시공간 속에 일하지만 종사하는 업종에 따라 답답한 차이가 나타나는 경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2. 걸어 욕망하고 건너 희망하는 두 다리 /금우동 2
1 “세상의 모든 아이는 어머니의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것이 분명하다.” 무궁화 박사 유달영 씨의 말이다. 그는 이 말이 진리임을 환갑이 되어서 불현듯 깨달았다고 했다.
‘리비도’는 다리의 교접을 욕망한다.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인간의 생존 욕망 중에서 가장 강력한 원천이 ‘리비도’임을 설파했다. 리비도 또는 에로스는 어머니의 다리와 아버지의 다리가 서로 교차하면서 유지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리로 사랑을 성취했다. 사랑의 오작교가 성취한 역사, 리비도를 통하여 욕망했던 다리의 역사다. 다리를 가진 인간은 다리를 통해 세상으로 나아간다. 두 다리로 세상과 이웃을 소통하고 연결하는 가교의 다리를 건너며 살아간다.
2 “너는 청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엄마는 지금도 너를 찾으며 청 다리 밑에서 울고 있을 거야.” 어렸을 때, 이웃 어르신들이 놀리며 하던 이야기다. 놀림을 당할 때마다 울면서 다리 밑에서 나를 기다릴 엄마 생각으로 애태웠던 기억이 새롭다.
청 다리 이야기는 소수서원과 관련이 있었다. 소수서원은 조선 중기 양반사회가 성숙해 갈 무렵 최고의 사액서원이었다. 전국의 내놓으라 하는 문벌의 명문가 자제들이 모여 수학했다. 명문가의 자제들도 혈기방장(血氣方壯)한 청년인지라 객지 생활에서 만난 동네 처녀들과 정분이 나는 경우가 잦았다. 처녀가 애를 낳으면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미혼모는 어쩔 수 없이 소수서원 옆 자그마한 개울의 청 다리 밑에, 강보에 싼 아기를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소식은 근처의 아기 못 낳은 여인들에게 반가운 구원의 소식이었다. 칠거지악이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애를 못 낳은 여인이 업어가서 본인이 직접 낳은 아이로 키웠다.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 명문가의 씨는 확실한 데다 건강한 청춘남녀의 출산이었다. 아이도 건강하고 비밀은 확실히 보장될 터였다. 소문이 나서 소수서원 주변 동네는 애 못 낳은 여인네나 그 가족이 진을 치고 기다리는 풍경을 연출했다. ‘청 다리’는 불임을 해결하는 장소이며 방법이었다. ‘청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고 놀리는 근거라니 아이러니하다.
3 그 다리 이름은 왜 ‘청 다리’인가? 여기에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었다. 소수서원을 휘돌아 흐르는 개울 건너편에는 아들 하나를 키우는 과수댁이 살았는데, 개울 건너편 장터에 있는 갖바치와 정분이 났다. 여름에는 다리를 걷고 물을 건넜다. 겨울에는 개울이 설 얼어서 밤에 건너다 빠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과수댁의 아들이 고을 원님에게 청을 하였다. 원님이 그의 청을 들어주어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래서 다리 이름이 ‘청 다리’가 되었다. ‘청 다리’의 다른 이름은 ‘효ㆍ불효 다리’이다. 어머니에게는 효도가 되지만 아버지께는 불효가 된다는 이유다. 예나 지금이나 ‘다리’는 사연이 많다. 인류사에는 다리가 만들어 낸 수많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4 모든 만남과 소통 그리고 사랑과 이별에는 두 다리로 함께 걷고 헤어지며, 단절을 극복하고 서로가 소통하는 가교의 다리를 놓고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단절과 분단과 분리와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두 다리로 직립 보행하며 만남과 소통과 화해와 일치와 통일을 위하여 가교의 다리를 연결하고 왕래해야 한다.
5 삼종지도, 칠거지악, 가부장 문화, 효도, 충신, 열녀, 삼강오륜의 일방적인 복종과 반상의 계층과 차별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청다리의 사랑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직도 페미니즘과 미투운동과 민권운동과 다양한 시민운동 등 존엄한 삶을 위한 집단지성의 공동체적 노력을 통하여 새로 한 단계 성숙한 화해와 일치의 가교를 놓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지 않는가?
6 다리의 수명이 다하면, 인공관절 수술도 하고 휠체어도 타고 하면서 차별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교의 다리는 징검다리, 놋 다리. 섶다리. 구름다리, 육교, 가교, 결국은 네트워크라는 슈퍼다리에서 가상현실, 증강현실까지 새로운 다리로 종횡무진이다.
7 초연결사회, 플랫폼 사회 또한 새로운 형태의 다리다. 우리는 네트워크라는 슈퍼다리가 변화시킨 문명의 전환기에 살고 있다. 다리는 단절의 벽을 허물고, 세계를 확장한다. 강을 건너고 바다를 연결하는 공간의 통합을 이루고, 그 사이의 벽을 소통으로 연결해 인간의 단합도 만든다. 다리를 통하여 교통수단을 급속하게 발달시키고 세상을 변화시켰다. 이와 더불어 세상의 다리는 다양하게 분화하고 발전한다. 초연결사회, 플랫폼 사회 또한 새로운 형태의 다리다. 우리는 네트워크라는 슈퍼다리가 변화시킨 문명의 전환기에 살고 있다. 리비도의 욕망과 타나토스의 본능을 건너 이어져 온 다리는 지금 나에게 어떤 다리를 놓을 것인지, 어떤 다리를 준비해야 할 것인지 묻는다. 답이 궁하다.
8 “당신이 이 험한 세상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줄게요.” ‘사이먼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곡의 제목이며 노랫말이다. 돌아보면, 편하게 웃어보지 못한 세월이었다. 젊은 시절도 도전과 호기가 허락되지 않았다. 아마도 유교 문화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한다. 그렇게 보면, 나의 삶은 근대와 현대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아직도 분단과 군사문화의 잔재는 남아있다. 계층과 세대 간의 갈등이 더욱 첨예하게 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양극화 문제 등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난제들에 이번엔 코로나 팬데믹 사태마저 겹쳤다. 세상은 변화와 소통을 위한 기회의 다리가 더욱 필요하다. 갈등을 넘고 화해와 일치를 위한 다리를 요구한다. 시대의 난제와 위기를 건너는 새로운 표준의 ‘뉴노멀 다리 - 이해와 사랑의 다리’가 필요한 시대이다. 인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리로 사랑을 성취했다. 그 결과로 태어난 생명을 탄생시키고, 문명의 역사를 성취했다. 사랑의 오작교가 성취한 역사, 리비도를 통하여 욕망했던 다리의 역사다.
9 본질적으로 생명은 다리의 역사다. 화해와 일치의 다리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기본적 권리, 보호, 기회, 의무와 사회적 이익을 가지는 사회정의가 선결 요건이다. 우리 시대의 난제와 위기를 건너는 뉴노멀 다리는 자격 부여, 향유, 자력화, 포용의 인권 보장을 기초로 하여 성립될 것이다. 셀리그먼에 의하면 긍정적 정서, 몰입, 의미, 관계, 성취가 있어야 행복한 세상이다. 게리 체프만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인 함께하는 시간, 인정하는 말, 선물, 신체접촉, 봉사라고 한다. 집단지성의 역사, 참여의 역사, 계승 세대와 함께 구축한 지속 가능한 역사는 네트워크라는 슈퍼다리로 플랫폼이라는 초연결 다리로 발전하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
3. 나는 정당하다/김병연2
사람마다 각자의 취미 생활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최고로 꼽는 취미가 있다면 당연 테니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테니스를 친지 무려 30여 년이나 되었으니까. 그 과정중에서는 별의별 사건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럼 여기에서 좀 특이한 경우 하나를 이야기 할려고 한다.
기본 테니스 동호회에 대해서 염증을 느끼고 있는 도중에 마친 초등학교 후배가 나에게 좋은 테니스 클럽이 가창 부근에 있으니 한 번 방문해서 가입 의사를 상담해 보라는 귀띔을 해주었다. 다음날 즉시 그곳에 찾아갔다. 클럽 회장과 면담하자마자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흔쾌히 가입을 받아 주었다.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리는 손간이었다.
회 규칙상 엄격하게 등급이 A, B, C, D조로 구분되어 진행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집행부의 배려하에 B조(두번째로 잘하는 조)에 속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점으로 떠오를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도 못하였다. 동년배되는 회원 한명이 사사건건 신입 회원이 건방지게도 가입하자마자 B조로 편성되어 있다고 하는 볼멘 소리를 해대기 시작한 것이다. 즉 B조 편성에 대해 부당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 회원은 농담삼아 한 말이었겠지만 그것도 한 두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번번이 투덜되며 공공연하게 뭇 회원들한테 불만을 터뜨려내니 나의 심기가 여간 불편하기 그지 없을 수밖에..
하여 답답해서 회 집행부 총무에게 여차여차해서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가 자꾸 야기되고 있으니 그것에 대해서 구체적인 해명을 해달라고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내용은 이러하였다. 어떤 신입회원이 가입하면 우선 그 사람의 구력 및 경기 능력 등을 감안해서 (나름대로 테스트를 거쳐) A, B, C, D 조로 나누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즉 무조건 실력 여하를 막론하고 D조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그 회원은 이런 점을 간과한 채 자기의 경기 능력은 인정하지 않고 (나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이다) 어쨌든 나를 기여코 D조로 끌어내리겠다는 안간 힘을 쓰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다.
테니스는 형식상 복식 조로 구성되어 있어서 파트너쉽이 요구되는 아주 까다롭고 예민한 운동이다. 그래서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조를 편성해서 경기해야만 재미있고 활력이 넘치는 경기를 할 수 있다. 반면 A, B조끼리 조 편성해서 게임을 할 수도 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 가지 기막힌 묘수가 떠올랐지 뭔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일대일 단식으로 단판에 승부를 내서 순위의 우열을 가리자로 제안했던 것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언제든지 나하고 맞붙을 자가 있으면 흔쾌히 도전에 응해 주겠느나라고 공공연히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효과는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접수가 되었다. 3명이 게임 신청을 하였는데, 대충 봐도 나보다 두 수 아래에 있는 회원임을 직감했다. 곧 이어 마침내 대진표가 작성되었다.
심판은 그곳에 있는 레슨 코치가 맡기로 하였다. 관심 있는 회원들은 참관해도 좋다는 내용을 단톡으로 공지하였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오전 10시에 시합을 진행하기로 서로 합의하였다. 2023년 2월 5일 이었다. 예상외로 참관 인원이 20명이나 되. 경기규칙은 5:5 타이브레이크 하기로 결정되었다.
첫 시합은 싱겁게 6:1로 끝나 버렸다. 그쪽에서도 깨끗이 승복하고 악수하고 헤어졌다. 참관 회원들도 축하해주었다. 일주일 후 2번 째 시합이 이루어졌다. 상대가 만만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채 경기에 임하였다. 결과는 6:4로 이겼다. 점점 자신이 생겨서 3번 째 주자에게 경기 날짜를 요청하였다. 그쪽에선 약간 망설이다가 할 수 없이 승락하는 듯 했다. 이미 약속된 경기였으므로.
마지막 경기인 만큼 서로가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관중도 이전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아마도 이 세기(?)의 대결을 보기 위해서 운집했으리라. 빡빡한 경기였다. 5:5 타이브레이크까지 가게 되었다. 경기 시간도 거의 50분이나 되었다. 체력이 거의 고갈되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숨소리가 거치게 들려왔다. 서로 사력을 다해서 랠리를 수십번 씩 주고 받곤 하는 고통의 순간이 잦아들었다. 6:5가 되었다. 서비스 하나만 잘 넣으면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찬스가 만들어졌다. 힘차게 공중으로 토스를 하자 난 신들린 듯 벼락같이 상대방 코트로 공을 내리 꽂아 버렸다.
아! 공은 상대의 라켓을 무참히 스친채 코트 밖으로 나가 버렸다. 결과는 7:5 승리였다.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땀으로 뒤범벅된 셔츠를 서로가 부둥켜 안고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후회도 회한도 없는 멋진 한 판이었다. 이른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우정어린 경기로 영원히 남게되었다고 후일담을 남긴다.
물론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음은 더 이상 부연설명할 필요도 없다. 정정당당하게 맞붙어서 3번이나 승리를 쟁취했으니 그들이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만 이 경기과정에서 한가지 얻은 교훈이 있다면 이러하다.
어떤 경우든 절대로 자기 잣대로 남을 평가하지 말 것이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을 함이 옳은 길임을 알게 되었다고. 집행부측과 나와의 그릇된 야합이 아니라 오직 실력으로써 나의 존재를 확실히 부각시켰노라고.
그래서 나는 정당하다.
4. 새해다 /이귀옥1
새해다. 새 날이 밝았다.
어린 시절에는 서기에다가 2333년을 보태어 단기 사천 이백 몇 년을 쓰기도 하였고
1970년 중학교 때는 세상의 종말이 1999년 년말에 온다고 해서 2천년이라는 날이 올 것 같지도 않았는데 새천년이라는 당도 생길 만큼 2천년도 되더라니 어느새 이십년도 훌쩍 넘겨 오늘은 드디어 2022년 새 날이 밝았다.
세상의 종말은 아니었지만 마치 종말보다 더 한 코로나로 마스크도 못 벗고 산 2년이었다. 정을 나누던 친구들도 전혀 못 만나고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형극의 시간을 인내하며 살았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 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권 지난 5년 대한의 암흑기였다.
새해에는 3월9일 선거로 새 정권을 만들어 지난 5년을 씻어내고 다시 중흥하는 대한민국이 우뚝 서는 것을 보아야 된다 그래야 우리 자손들의 앞날도 밝아질거라
해마다 송구영신한다고 어떤 이는 차를 타고 바닷가에 가서 일출을 보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산 위에서 뜨는 해를 보겠다고 등산도 가고 친구들과 모여 밤열두시를 카운트다운하면서 새해 덕담도 나누었는데 이런 소소한 일상이 커다란 소망이 되어버렸다
백살 넘게 산 사람들은 주변에 정을 나누는 친구들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더만 지난 2년 친구들과의 만남도 못 가지고 집콕하고 방콕하니 우울하기 짝이 없다
새해에는 그리운 사람들 만나고 싶다 나이도 금방 들어 일흔이 코앞이다. 새해에는 예순아홉, 2032년에는 일흔 아홉, 2042년에는 여든 아홉, 2052년에는 아흔 아홉. 건강하게 2050년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서른아홉에 죽을거라고 생각했던 열 네살 사춘기 때는 인생이 이렇게 질긴 줄을 몰랐다
결혼하면 행복할 줄 알았더니 친정에서 부모님 품안에 살았던 27년 그 시절이 행복이었더라. 결혼해서 나락으로 떨어져 살았던 시절에는 아이들 다 키우면 이혼할거라 생각했다
어둡고 암울했던 결혼 생활 변할거 같지 않던 남편도 친정 살던 27년보다 훨씬 더 길게
40년도 넘게 같이 살다보니 어느 순간 나이드니 늦게라도 철들어서 지금은 남편이 없어질까 두렵다. 언젠가 먼저 보내고 그 무덤까지 내가 지켜보다가 죽게 되기를 소망한다
2022년 1월1일
5. 버즘나무/이연희 2
가까운 영천으로 하루 여행길에 올랐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임고초등학교에 갔다. 큰 버즘나무 여러 그루가 운동장에 자리 잡은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키 큰 나무가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처럼 둥치도 엄청났다. 수령이 학교 역사와 비슷하대도 과연 100년 만에 이 정도 자랄 수 있을까? 싶었다. 나무는 미끄럼틀이랑 정글짐에 그늘을 드리우고 풍성한 자태를 뽐내며 의연하게 서 있었다. 연초록빛 초등학생과 거대한 고목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버즘나무는 멋없이 키만 삐죽하게 크는 나무가 아니다. 보기 좋게 가지가 옆으로 벌어지는 특성을 보이는 나무라고 한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가지가 절로 부러져 지나치게 옆으로 벌어지지 않도록 조절한다고 한다. 부러진 가지로 인해 상처 난 껍질은 안으로 오므려서 자력으로 매끄럽게 성형한다니 자연의 신비가 놀랍기만 하다. 본래 그 모양이었던 것처럼 가지 부러진 표시가 나지 않게 매끈히 아물었다.
버즘나무는 속을 적당히 비우고 포기해야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진리를 터득한 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에서 오묘한 하늘의 섭리뿐 아니라 노철학자의 가르침까지 느껴졌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과연 나무보다 나은 게 무엇이 있나 싶다. 사람처럼 ‘나 잘 났다’고 으스대지 않고 말없이 우뚝 선 나무의 가르침에 경외심마저 들었다.
버즘나무는 심오한 철학자이며 성형외과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성형과 자가 치료까지 한다. 솜씨도 야무져서 아문 곳이 젊은 여인네 가슴 같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손이 갈 뻔했다.
텅 빈 시골 학교 운동장에 서니 여러 생각에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아렸다. 봄방학이라 빈 학교인데도 재잘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편안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종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언제부턴가 초등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간질간질 가슴도 간지러워진다.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 그런가. 지나온 육십여 년 너머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릴 때 할머니 집에 잠시 맡겨진 적 있었다. 떠나간 엄마가 보고 싶어 구석에서 웅크리고 울곤 하였다. 이를 아신 아버지한테 회초리 줄이 생기도록 혼이 났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 이후로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고 살았다. 그시절 집 앞 냇가에 버즘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해거름에 커다란 나뭇가지 사이로 넘어가는 해를 보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할머니도 나를 보듬어 안고 같이 우셨다.
"우야꼬. 우야꼬. 불쌍해서 우야꼬."
결코 지워지지 않는, 아련한 아픈 기억이다. 늘그막에 이르기까지 버즘나무만 보면 외롭고 슬퍼져 울고 싶은 까닭이다.
속 터놓을 사람이 없어 외로웠다. 엄마 없는 삶에 곪아 터지다 못해 문드러지는 속을 혼자 삭이게 되었다. 내 속을 내비치면 집안의 평화가 깨어지니 스스로 삭여야만 했다. 치유가 잘 된 버즘나무 둥치처럼 내 상처를 혼자서 아우르고 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이 결혼 후 평탄한 길만 걸어 온 삶은 아니었다. 에움길도 있었고 가풀막도 거쳐 온 삶이었다. 적당하게 포기하고 비운 덕분에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다. 이웃들로부터 고생해 본 적이 있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속내도 모르고 참 기가 찬다. 엄마 속이 밀알처럼 썩어 옥토가 된 덕분에 잘 컸다는 자식들 보는 낙으로 지금에 이르렀는데 말이다.
버즘나무처럼 적당히 비우고 버리며 스스로 치유하면 우리 삶이 좀 더 풍요롭지 않을까? 품이 너른 버즘나무 가지 사이로 석양빛이 참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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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9차시 합평작(예정)
김도형: 맏이의 출생과 책임
이원규: 북경공항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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