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구속(救贖)1 (시 130:7)
시편 130:7-8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8.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구속은 하늘로부터 전혀 희망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던 단어였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이 단어가 어찌 사용되었던지 간에, 영적인 암흑기를 견디어 나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이 단어는 실로 감미로운 선율처럼 포근히 와 닿았던 것입니다.
해적들이 극성스럽게 출몰하던 어두운 시대에 아프리카 연안에서는, 그곳에 살고 있던 우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걸핏하면 해적선에 나포되어 멀리 끌려가는 사태가 빈발했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상태에서 노예선에 태워져 죽도록 노를 저어야 했던, 그 가련한 영혼들에게 구속함을 입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빛이 비추어졌다면, 이는 참으로 기쁨 중의 기쁨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 여겨지지 않습니까?
물론 그들의 육신을 강제적으로 소유했던 잔혹한 주인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을 풀어주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는 노예들을 사서 그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거액의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는 소문도 들렸고, 또 어디에서는 어떤 거상이 자신의 재산을 몽땅 내놓고는 자기 동포를 해방시키려 한다는 풍문도 있었으며, 또 어디에서는 왕이 직접 나서서 포로들을 해방시켜 귀환케 하려 한다는 풍설도 떠돌았던 것입니다. 아무튼 "구속" 가능성에 대한 풍문이 그들의 귓전을 울린 이상, 그들을 엄습하고 있던 절망감이 그 이전과는 아예 비교가 아니 될 정도로 엄청나게 완화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 서인도(West India) 지역에서 노예 생활을 한 적이 있었던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구속이라고 하는 이 단어가 무한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노래와 같은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영국이 그들에 대한 구속 자금으로 이천만 파운드를 책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필경, 축혼 폭죽 소리를 들으며, 심히 감미로워하는 젊은 신랑과 같은 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껏 희망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이 지긋지긋한 족쇄가 풀리게 되리라. 그리되면 더 이상 농장에 나가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지 않아도 될 것이고, 더 이상 채찍에 맞지 않아도 될 것이며, 어느 누구도 내 신체를 구속할 수 없으리라. 내 몸은 이제 내 자신의 것이 될 것이며 아무도 내 몸을 소유할 수 없게 되리라.
아, 이제 우리가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선포되리라. 새로운, 그리고 복되고 찬란한 아침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고, 온 세상이 자유와 평화로 충만될 때 우리의 마음은 또한 얼마나 즐겁고 기쁘랴. 그들은 이런 상상을 하며 한 것 희망에 부풀었을 터인즉, "구속"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실로 수많은 소네트(sonnet)를 간직하고 있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유산을 값없이 팔아버렸던 자들이여,
사단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 그의 노예가 되었던 자들이여,
죄악의 족쇄를 차고 신음했던 자들이여,
법의 채찍을 맞으며 괴로워했던 자들이여,
이제 구속의 소식이 전해졌으니 그것이 그대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오늘 밤 생각해 볼지어다. 그것은 그대들의 심령을 기쁘고, 즐겁게 할 터인즉 특히 그것이 풍성함을 인하여 더욱더 그렇게 될 것이로다.
~"풍성한 구속"
오늘 밤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주제는 바로 구속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구속(救贖)이라고 하는 이 단어에 덧붙여져 있는 형용사 곧 "풍성한" 에 대해 주목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Ⅰ. 그럼 우선 구속(救贖)이라고 하는 주제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
나로서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구속하셨는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군요.
그리고 이 주제에 관한 나의 개인적인 견해가 어떤 것인지를 여러분들이 제대로 알게 하기 위해서, 내가 평소에 권위 있는 교의(敎義)라고 믿고 있는 바를 여기서 미리부터 확실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 교의(敎義)란?
교육(敎育)의 근본이 되는 취지 또는 종교의 본 뜻.
물론 그 교의는 상식과도 부합되고, 성경에서도 천명되어 있는 교의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떤 교의란 말이냐 하고 묻겠지요?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분은 그것을 아주 확실히 구속하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권위 있는 교의로 믿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분은 그것을 아주 확실히 구속하셨을 것이라는 교의, 이것을 나는 일종의 공리로 삼으면서 본 주제에 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되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서 죽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리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계시와는 더더욱 맞지 않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 구세주의 죽음이 헛된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그분을 모독하는 사람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에, 그분에 의해 의도되었던 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이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의도했던 바를 확실히 성취시키실 것이라는 것을, 하나의 진리로서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가 어떤 경우에든 좌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지를 나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여호와 하나님이 초월적인 존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분께서 일단 의도하신 일을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럼에도 어찌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피를 흘리셨다고 상상인들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죽기는 했으되 그것을 달성하지 못한 것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볼 수도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고난 받음에 대한 일종의 상급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뭔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죽으셨으되, 결국 아무런 상급을 받지 못한 것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 예수의 의도가 당연히 성취되게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 또한 무엇이었든지 간에, 반드시 그분이 의도하신 대로 진전되게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험이 하나님의 목적과 잘 부합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속량의 효험도 하나님께서 뜻하셨던 바 만큼 크다는 것을 믿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구속하셨던 것이 그분이 애시당초에 구속하고자 뜻하셨던 그대로이고, 또한 그분이 구속해야 한다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명하신 바 있었던 그대로라는 것도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인간의 속량 받음을 다루고 있는 구속 교리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자들이 꽤 있는가 하면, 어이없게도 이에 한술 더 떠서 그것이 계시 교리의 요체가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자들까지도 없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주장을 환영하는 사람들 역시 현실적으로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여기는 개인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어 있는 곳이 아닙니까?
따라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견해를 펴고 그것을 주장하는 데 대해 섣불리 제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런 자들을 향해 나의 신념을 엄숙히 밝히지 않으면 아니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런 자들은 본 문제에 대한 고찰을 냉정히 하지 않은 자들로 여겨집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교리를 채택하는 입장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구속 교리에 대해 일단 부정적인 입장에 선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갔다는, 불경스런 추론에 이르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이 죽음을 통해 획득하고자 했던 바를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건대 그런 답답한 사람들은 염호의 물을 마시며 살라고 하더라도 절망하지 아니할 사람들이고, 조롱이나 이성에 대해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을 경우에는 광신 및 경신이 판을 칠지도 모를 그런 어떤 지역에 들어가더라도 전혀 실망할 줄 모를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들에게, 성경과 건전한 교의를 좇아서 내가 확실히 믿고 있는 바를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질적으로 구속하였습니다. 당신의 구속은 아주 방대한 구속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많은 것들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영혼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육체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이 아담 안에서 상실했던 그 본래의 유산을 구속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세상을 구속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그분께서 마침내 소유하고 지배하시게 될 그런 의미의 세상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궁극적으로 구원받게 될 당신의 모든 백성들의 영혼을 구속하셨습니다.
캘빈주의자들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선민들을 구속하셨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되지 않는 한 그리스도의 선민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을 터인즉,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는 모든 영혼들을 구속하셨다는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셨던 영혼들은, 비단 그런 영혼들 뿐만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많이 있었을 것으로 나는 믿습니다. 창세 전부터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던 모든 사람들의 영혼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보이는 자들의 영혼들,
그리스도 예수를 영혼의 유일한 안식처로 여기면서 그분에게 온몸으로 매달리는 자들의 영혼들,
온갖 고난을 참고 견뎌내면서 천국에의 길을 악착같이 고집하는 사람들의 영혼들 등등,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영혼들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고 구속하셨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신 영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구속함을 입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구세주께서 가룟 유다에게 벌을 내렸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벌을 내렸다고 한다면 가룟 유다가 다시 응징을 받는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손을 통해 죄에 대한 응징을 이미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재차 그 죄에 대해 응징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저로서는 들지 않습니다. 저는 어느 한 순간도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피를 흘리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의 책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이 단지 지옥 불을 지피는 연료로 쓰일 수 있을 뿐이라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책을 남긴 자들의 생각에 전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 가당찮은 주장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차라리 가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워 그 책을 내던져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그런 주장이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했을지는 모릅니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뒷받침되거나, 지원을 받을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든 당신의 백성이 될 영혼들의 숫자는 많을 것이로되, 나는 여러분들이 모두 실질적으로 구속함을 입게 됨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사람들은, 간단히 말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구속함을 입게 됩니다.
우선 그들은 죄의식으로부터 구속함을 입게 됩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죄악의 응징으로부터 구속함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죄악의 권세로부터 구속함을 입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백성들의 영혼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구속함을 입을 때까지는 죄의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 구속함을 입게 되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죄악은 말끔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죄인마다 주를 믿는 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주를 믿는 순간,
당신의 보혈을 인하여
죄사함을 입을 것이요,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
우리의 죄악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함으로써 깨끗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죄악을 범했던지 간에,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죄악으로 인한 응징을 당하지 않게 될뿐더러, 그 죄악 자체가 우리로부터 온전히 사라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죄인이 아니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의롭다함을 입은 성도로 대우해 주시게 될 터인즉,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시구를 즐거운 마음으로 반복하여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 이제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마음껏 나다닐 수 있게 되었도다.
나의 구세주의 성결한 보혈이
나를 완전히 자유케 하였나니,
당신의 거룩한 발 아래
내 영혼을 편히 누일 수 있게 되었도다.
오, 구원함을 입은 죄인이여,
경의를 표할지어다, 경의를 표할지어다."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하심을 인하여 모든 성도들은 죄짐을 벗어 던질 수가 있습니다. 티끌만 한 죄악으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구속함을 입은 사람들은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죄악의 징벌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우리에게 죄가 없어지게 되면, 우리는 또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징벌 대상에서도 제외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결국 같은 내용을 중언부언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거기에는 다분히 강조적인 효과를 얻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그리스도를 인하여 구속함을 입은 자들은 절대로 정죄 당하지 아니합니다. 그들에게는 죄악 때문에 응징 당하는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이 받을 징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불의한 분이 아니라면, 그들이 두 번이나 벌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속죄에 해당하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일단 죽으신 이상, 그들까지 죽어야 할 이유는 달리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그들을 다스릴 이유는 달리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시되, 한 푼도 남김없이 아주 깨끗하게 갚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당신의 보혈을 흘리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이 정녕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사실이라면,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한 차례 벌 주었던 자들을 어찌 또다시 재응징하려 하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 3:18).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구속을 통해 일체의 죄악 및 죄악으로 인한 일체의 징벌들로부터 건져내어짐을 입게 됩니다.
한편, 그리스도 예수의 신실한 가족, 아니 더 나아가 그분의 구속 대상이 되었던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구속하심을 인하여 죄악의 권세로부터 아주 거뜬히 건져내어짐을 입게 될 것입니다.
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두 가지 사실들에 대해서는 금방 수긍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그리스도께서 죄악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신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선뜻 수긍하기 보다는 주저하는 경향이 오히려 더 강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바로 그 사실에 대해 더욱 주목하여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죄책감이나 죄악의 징벌로부터 구속함을 입을 수 있으려면, 죄악의 권세로부터도 건져내어짐을 입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스스로 죄악을 미워하게 되지 않는 자들은, 스스로 구속함을 입게 될 것이라고 믿을 권리가 없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죄악을 끝내 내던져버릴 줄 모르는 자들도, 스스로 구속함을 입게 될 것이라고 믿을 권리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악한 길을 나아가는 것에 대해 증오할 줄 모르거나, 살아 있는 성령의 권능을 믿으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스스로 구속함을 입게 될 것이라고 믿을 권리가 없는 자들이기는 매한가지일 것입니다.
오 사악한 죄인이여, 그대가 만일 아직도 정욕의 지배 아래에 놓여있다면, 스스로 하늘의 상속자라고 생각할 권리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만일 그대가 주정뱅이가 될 수 있다면,
만일 그대가 불경한 말을 할 수 있다면,
만일 그대가 하나님을 저주할 수 있다면,
만일 그대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만일 그대가 안식일을 모독할 수 있다면,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할 수 있다면,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할 수 있다면, 그때에는 지옥의 사단 못지않게 그대가 구속함을 입는다는 사실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을 권리가 그대에게는 주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구속함을 입은 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때가 되면 속박의 땅으로부터 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다 출애굽함을 입도록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죄라는 것이 얼마나 악독한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징벌을 당하게 하며, 또한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절망을 안겨주는 것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죄악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어짐을 입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극복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을 굴복시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그것에 굴복합니까?
그것이 여러분을 십자가에 못박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여러분이 살모사를 미워하듯 미워합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여러분이 뱀을 밟듯 밟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비록 죄가 있으되, 여러분들이 그 죄를 진정으로 미워하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적개심을 갖고 있는 한, 여러분들은 용기를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위로해도 좋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악 및 죄악의 징벌로부터 여러분을 구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악의 권세로부터도 여러분을 구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의 첫 번째 포인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다시금 내 말을 분명히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해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는 설교를 하되 항상 내 설교를 듣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게 되도록 하려고 애씁니다. 재강조하거니와, 여러분들은 내가 한 말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됩니다. 불필요하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죄책감과 죄로 인한 징벌 및 죄악의 권세로부터 구속함을 입거나 구속함을 입게 되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완전하게 구속함을 입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라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는데, 내 말이 의미하는 것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파멸되고 버림받은 영혼들도, 당연히 구세주의 보혈에 의해 씻기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나니, 그분께서 당신의 고귀한 피를 흘리신 것은 바로 그런 자들을 위해서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멘-
~~ 2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