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ST Fan Fiction : B2S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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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하염없이 앞으로 전진만 하고 있는 시곗바늘의 뒤를 동그란 두 눈이 바쁘게 쫓았다. 째깍, 째깍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이런 시끄러운 장소에서 들릴 리가 만무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소리가 귓가에서 아른거리고 있는 듯했다. 몇 분 동안이나 같은 자리에 서서 까만 바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요섭은 바늘의 끝이 기어코 6을 넘어버리는 걸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약속시간이 지나버린 지 벌써 2시간이 되어버렸다. 약속시간에 늦는 상대방을 기다리는 것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만큼이나 지루한 일이었다.
요섭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 이내 생각을 접곤 습관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저야 한가해서 약속시간을 칼같이 지킬 수 있다지만, 그는 아니니까. 요즈음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말에 일체 망설임도 없이 윤두준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바빴다. 그것도 매우.
“확실히 잘생기긴 했단 말이야…….”
커다란 화면에 가득 잡히는 그의 얼굴을 본 요섭의 표정이 묘해졌다. 저렇게 잘생기고 대단하고 잘난 사람이, 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저 자신에게 연락처를 물어보았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와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통화를 하고, 몇 십 개, 아니 수백 개의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아도 실감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이제 저와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한 것인지, 전보다는 저를 편하게 대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었다. 왜? 그에게 그랬다가는 죄를 저지르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솔직히 말하자면 저와 같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린 상태가 아닌가. 엄청난 등록금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 대학생은 많고도 많다. 그 중에서, 저에게 이런 기회가 찾아온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기회를 기가 막히게 잘 잡은 저도 아주 기특하다고 생각했고. 딱히 두준에게 말해봤자 좋을 게 없다 싶어 제 속마음을 말하진 않았지만, 요섭은 요즘 땡잡았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자취방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또 시급이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예인이 바글바글한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 것이 이 기회의 발판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였으니, 말은 다 한 것이었다.
새삼스러운 흐뭇함에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시선을 돌린 요섭은 아까보다 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가 안절부절 못 하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짧은 시간, 채 5초도 되지 않았을 시간 동안 몇 번이고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급기야 문이 열리기도 전에 문으로 달려들어 문에 이마를 찧는, 꽤나 바보스러운 모습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엄청나게 큰 무대를 설 때에도 완벽함을 보인다는 기사들이 판을 치고 있었으나 저런 모습을 보면 그 기사들이 모두 거짓말은 아닌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문에 이마를 찧을 리가 있나. 그것도 조금만 기다리면 열린다는 엘리베이터 문에.
아픈지 이마를 문지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두준은 또 고개를 홱홱 돌려대며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누군가가 저일 것이라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 상황이었고, 두준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묻어있어 여기 있다고 손이라고 들어야 할 판이었지만 그가 허둥지둥 서두르는 모습이 웬만한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웃겨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 게 문제였다. 키도 꽤 훤칠한 그가 우왕좌왕거리며 서두르는 모습은 정말이지….
키득키득 남몰래 웃으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요섭이 헉 숨을 들이켰다. 누군가가 지나가다 버린 페트병을 밟고, 두준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넘어진 탓이었다. 그가 우당탕 엄청난 소리를 내며 넘어져서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그를 지켜보았는데,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또 홱홱 고개를 돌려댔다. 저를 찾는 것 같은데……. 이쯤이면 아는 척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요섭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흔들었다. 두준 씨, 여기… 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으나 뱉어지지는 못했다. 절 발견하자마자 해맑게 웃으며 손을 번쩍 치켜들곤 요섭 씨~!라고 외치는 두준 때문이었다.
아… 세상에. 너무 해맑아서 얼굴이 붉어지고, 창피할 정도다.
제가 창피해하고 있다는 걸 알 리가 없는 두준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제게 뛰어왔다. 긴 다리 덕분인지 금세 요섭의 앞에 도착한 두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무언가에 많이 놀란 사람처럼, 안 그래도 큰 눈을 크게 뜬 그는 어버버 말을 잇지 못하며 손가락으로 요섭의 옷을 가리켰다. 두준의 손을 따라 얼떨결에 제 옷으로 시선을 돌린 요섭은 이어지는 두준의 질문에 어이없다는 뜻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중증 바보라고 생각했기에, 그 생각을 좀 떨쳐내려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편의점 유니폼이 아니네요?”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이 편의점이 아니니까요. 바깥에 나오는데 편의점 옷을 입고 나올 순 없잖아요.”
“아아… 그렇죠, 참. 여긴 편의점이 아니죠.”
사실을 일깨워주자 그의 눈꼬리가 휘고,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졌다. 이렇게 멀쩡하게 웃는 걸 보면 바보는 아닌 거 같은데. 두준이 웃는 모습을 보던 요섭은 에라 모르겠다하며 저도 웃어버렸다.
두준과 알고 지낸 지 거의 두 달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두준은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바보 같긴 해도 착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제게 뭐든지 해주려고 했고, 날마다 편의점에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또 가끔은 일을 도와주기도 했던 것이다. 각종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윤두준이라는 사람은 쉴 틈 없이 바쁘다는 말들이 거짓말로 느껴질 만큼 그는 저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가끔 그것이, 꼭 왕족이 서민 체험을 하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문제될 게 없었다.
“그래서 영화표는요? 공짜 영화표 있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영화예요?”
“그런 거 없어요!”
“…네? 아니, 어제는 분명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새 잃어버리기라도 하신 거예요?”
“아뇨! 처음부터 없었는데요? 그냥 요섭 씨를 만나고 싶어서 거짓말 한 거예요. 분명 제가 영화 보여준다고 하거나, 밥 사준다고 하면 요섭 씨는 싫다고 할 게 분명하니까.”
음…, 뭘까. 이 솔직한 거짓말쟁이는. 두준의 말엔 틀린 게 없었다. 요섭은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음료수를 두준이 사준다고 해도 단호한 얼굴로 한사코 거절했으며, 밥을 사주겠다고 만나자는 날에는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이상 만나지 않겠다며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막말로, 돈을 잘 버는 두준에게 한 번쯤 신세를 져도 문제될 건 없을 텐데 말이다. 하여튼 이런 성격 때문에, 요섭과 두준은 편의점 밖에서 사적으로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황당함이 가득한 눈으로 두준을 올려다보던 요섭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영화표를 사주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는 모양새가 두준을 대신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네! 너에게 영화표를 사주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겁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 꿈에도 몰랐지? 라고.
“…됐어요, 전. 영화표 각자 결제하고 봐요.”
“저, 저기, 요섭 씨. 생각해봐요. 제가 약속시간에 2시간 늦었잖아요? 그럼 요섭 씨에게 신세진 게 맞죠? 요섭 씨의 시간을 허투루 낭비한 꼴이 되니까요.”
“…….”
요섭은 곰곰이 생각했다. 두준의 말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판가름하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과연 뒷말을 어떻게 이어나갈지, 또 제가 수락할 수밖에 없는 말을 어떻게 늘어놓을지, 그걸 생각한 거였다.
커다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두준은 요섭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귀를 붉혔다.
“그럼 제가 신세진 걸 갚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그렇긴 하지만…”
“당장 신세를 갚고 싶은데요? 가요, 얼른!”
“저, 이 손…….”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요섭은 손을 놔달라고 말하려다, 지나치게 반짝이고 있는 두준의 눈을 보고선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눈을 하고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냐고. 왠지 모르게 억울해지고 만 요섭이었다.
두준만을 보던 요섭은 주위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영화관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두준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긴 두준처럼 유명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이상한 거겠지만. 게다가 시선만 느껴지는 거라면 신경을 쓰지 않고 제 고집을 이어갈 수 있겠는데, 두준이 남자와 손을 잡고 있다는 걸 이상하게 보는 듯한, 그런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더 이상 고집을 피우거나 제 주장을 펼치면, 두준은 꼼짝없이 일반인 남자와의 스캔들이 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 하느니, 차라리 제가 눈 한 번 딱 감고 밥을 얻어먹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을 내린 요섭은 제 옷에 달린 모자를 휙 뒤집어쓰곤 두준을 이끌었다. 일단 이 장소를 벗어나는 게 상책인 듯했다.
극도로 커진 긴장감에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는 제 뱃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준은 그저 해맑게 웃으며 저와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유치원생이 소풍을 가서, 신난 마음에 짝꿍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흔드는 것처럼 말이다.
“요섭 씨,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제가 다 사줄게요.”
“…먹고 싶은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빨리 걸어요.”
요섭은 원체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혼자 있으면 투덜거리기 일쑤였고, 텔레비전을, 그리고 신문을 볼 때마다 불퉁하게 볼을 부풀리며 욕을 곱씹는 게 취미이자 특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제 눈엔 그저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것만 같은 세상과 사람들의 일에 불만이 너무나도 많은 저였지만, 이상하게도 두준의 앞에 서면 그런 투덜거림이나 불만을 뱉어낼 수가 없었다. 남들에게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처럼 두준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 수가 없었다. 뭐랄까, 세상의 이치를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그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요섭 씨, 한식 좋아해요? 아니면 일식?”
“저기요, 윤두준 씨.”
“네, 요섭 씨.”
주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이지도 않는 것인지, 해맑은 얼굴을 여전히 유지하며 말을 이어가는 두준은 철없게만 느껴졌다. 누구보다도 대중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할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거리가 된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거야?
두준에게 뭐라고 쏘아붙이기 위해 걸음을 멈춘 요섭은 순수하게 반짝이고 있는 두준의 눈을 마주하고선 할 말을 잃었다. 저 순수한 눈망울을 보아라. 저 눈을 마주하고서도 뭐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아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혈한뿐일 거다.
“…전 양식이 좋은데요.”
“양식이요? 그럼 얼른 가요!”
할 말을 목 너머로 삼키고 마른세수를 한 요섭은 이젠 앞장서가는 두준을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중증 바보에게 코가 꿰인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 * * * *
훤칠한 웨이터가 자리를 안내해주는 대로 앉은 요섭은 레스토랑 내부를 둘러보며 제 옷을 벗어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야 했다. 이렇게 으리으리한 레스토랑에, 이딴 후드 티와 청바지를 입고 오는 이는 저밖에 없을 것이다. 실상 웨이터고 웨이트리스고 손님들이 어떤 옷차림을 하건 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게다가 내부에 앉아있는 몇몇 손님들 중에선 저와 같은 캐주얼한 차림을 한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와 일행인 두준도 겉보기엔 캐주얼한 옷을 입은 것 같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슈트를 입고 있었으니까.
하필 데리고 와도 왜 이런 곳… 두준을 원망하려던 요섭은 마음을 고쳐먹고 과거의 자신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냥 얌전히 한식이나 먹자고 하지, 왜 양식이라고 그랬니. 그런데 또 생각을 해보니 한식을 골랐다고 하더라도 이런 곳에 갔을 게 뻔했다. 물론 이곳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겠지만. 으리으리한 레스토랑이 아닌,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보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요섭 씨가 먹고 싶은 걸로 골라요.”
“예에…….”
내부부터가 장난이 아니니, 가격은 또 얼마나 비쌀까. 배에 들어가면 거기서 거긴데…. 왠지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메뉴판을 펼친 요섭은 눈이 튀어나갈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니, 뭐 이렇게 비싸? 음식 하나에… 일, 십, 백, 천, 만, 십만… 30만?! 기본으로 30만원대를 웃도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메뉴판을 훑어보던 요섭은 다급한 손길로 메뉴판을 넘겨보았다. 코스 메뉴는 기본으로 80만원……. 아무리 시간이 금이라고는 하지만, 약속시간에 2시간 늦은 걸 가지고 이렇게 비싼 걸 얻어먹어도 되는 건가?
메뉴를 휙휙 넘기며 고민을 하던 요섭이 결국 한숨과 함께 메뉴판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두준이 제게 신세를 졌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비싼 음식을 얻어먹는 것은 도에 지나치는 것 같았다. 사주는 당사자가 괜찮다고 해도 말이다. 메뉴판을 곱게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두준을 본 요섭은 방금까지 인상을 찌푸리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미 메뉴를 고른 것인지 메뉴판을 내려놓고, 두준이 손으로 턱을 받치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부터 눈이 붉게 충혈 되어있어 피곤한 모양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꽤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인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쓰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얌전히 내려앉은 두 눈꺼풀에는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요즘, 뉴욕에 CRAZY GUYS 외국 지사를 낸다는 말이 인터넷에 나돌더니, 정말로 그걸 준비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텔레비전이나 길거리 광고판에 비추어지는 CRAZY GUYS의 상품 광고들의 수도 확실히 늘었다. 전문 모델을 쓸 수도 있고,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채택하여 쓸 수도 있겠지만 두준은 일절 유명 모델이나 연예인의 힘을 빌리지 않는 듯했다. 모든 광고에 두준이 혼자 등장했으니까. 그래도 파급력은 유명 모델과 연예인의 것, 그 이상이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동경하는 대상이니까.
“난 그런 사람과 지금 밥을 먹고 있는 거고…, 그 사람은 지금 내 앞에서 졸고 있고.”
양요섭 인생 폈네, 폈어. 유일한 인맥 줄이 이렇게 황금 줄일 줄이야.
키득키득 웃으며, 테이블에 머리를 박을 듯이 위태롭게 꾸벅거리는 두준의 머리를 보던 요섭은 손을 뻗어 두준을 깨우려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굳어버렸다. 꽝!! 두준의 이마가 테이블에 수직 하강하면서 난 소리였다. 소리로 봐서는 세게 부딪친 듯한데, 기절이라도 한 듯 미동조차 하지 않는 두준을 보니 공포심이 밀려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혹, 혹시 기절한 건가? 너무 아파서? 요섭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수 명의 웨이터와 웨이트리스가 두준과 요섭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뛰어오고 있었다.
“손님, 괜찮으세요?”
“두준 씨, 일어나 봐요! 괜찮아요?”
요섭은 거두려고 했던 손을 뻗어 두준의 어깨를 살살 흔들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인지 뭔지, 두준은 몸을 움찔 떨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리고 그런 두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관이었다.
“아…함. 잘 잤다. 응?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왜 다들 여기에….”
“…….”
두준의 태연한 한 마디에 할 말을 잃은 웨이터들과 웨이트리스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고, 요섭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준의 어깨를 흔들던 손을 거두었다. 훤히 드러낸 두준의 이마는 방금 전 테이블에 부딪쳐서인지 혹이 조그맣게 나있었다.
“많이 피곤하세요?”
“요즘 일이 조금 바빠져서 정신이 없거든요. 잘 시간도 부족하고….”
“피곤하시면 안 만나도 되는데… 잘 시간도 부족한데, 왜 만나자고 하셨어요. 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주무시지.”
“잠 잘 시간은 없어도, 요섭 씨 볼 시간은 있어요. 괜찮아요.”
담백하고 간단한 두준의 말은 요섭의 마음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두준의 말에 물을 마시려던 요섭이 잠시 행동을 멈추고 두준을 보았고, 두준은 그런 요섭의 시선을 마주하곤 웃어주었다. 요섭 앞에서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 등 창피한 모습을 보여 부끄러운 듯 볼과 귀가 붉어진 채로.
그 뒤엔 둘 사이에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아니, 서로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는 게 더 옳은 것일지도. 가격에 불만을 품던 요섭도 두준이 주문한 대로 음식이 나오자 아무런 불만 없이 음식을 잘 먹었고, 두준도 그런 요섭의 모습을 흐뭇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반은 코로, 반은 입으로 먹는 등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을 간간이 보여주긴 했지만 말이다.
매너가 좋기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두준이 작게 썰어준 고기를 입에 욱여넣으며, 요섭은 고민했다. 두준이 과연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두준의 행동으로 봐선 두준은 절 평범한 대학생으로 여기는 게 아닌 듯했다. 보통 평범한 남자는 같은 남자 앞에서 볼을 붉히거나 귀를 붉히거나, 또는 뒷목이 새빨개져서 말을 더듬지는 않는다. 매우 어려운 상대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에게 어려운 존재일 리는 없었다. 저는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고, 그는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패션 디자이너이지 않은가. 그 같은 사람이 저를 어려워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제가 어려워한다면 모를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같은 남자에게서 핸드폰 번호를 따는 등의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다. 이성적… 그러니까, 연애적인 감정을 품지 않은 이상. 물론 예외도 있을 테지만, 무튼.
정갈하게 자른 고기를 입에 넣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가 설사 제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저에게 본심을 드러내기까지는 십 수 년이 걸릴지도 몰랐다. 소심함이 하늘을 찌를 듯한, 소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확실하지도 않은 그의 마음을 저울질하고, 만일 그가 확실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걸 먼저 밝혀버리는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두준은, 여자 친구 같은 애인 따위에 관심이 일절 없던 저에게 두준 같은 애인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었고. 겉으로의 화려함이 다가 아닌, 알고 보면 꽤나 순박한 사람. 두준을 알고 지낸 두 달 남짓 동안 개나리가 지고, 벚꽃이 지고, 계절은 슬슬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준을 생각하는 요섭의 방식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두준 씨.”
“네?”
침묵을 깨뜨린 요섭의 부름에, 두준이 눈을 크게 뜨고 제 앞을 보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입에 고기를 묵묵히 욱여넣던 요섭은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며 침을 삼킨 두준은 갑작스레 목이 타는 느낌에 물이 담긴 컵을 꼭 쥐었다.
“우리는 무슨 사이예요?”
“무슨… 사이라뇨?”
“하루에 카톡 메시지를 수백 개씩 주고받고, 전화도 한 번 했다 하면 2시간씩은 하고. 두 달 동안 편의점에서 거의 맨날 보고….”
그, 그래서 싫다는 건가? 눈치를 엿과 바꿔먹은 두준은 묘하게 불만스러워 보이는 요섭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다. 요섭 씨는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영화도 같이 보고, 종종 같이 식사도 하잖아요. 물론… 편의점에서 야식을 먹은 게 전부지만요.”
“그, 그런데요…?”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라고 생각해요, 두준 씨는?”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묘한 저와 요섭의 사이에, 두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사이인 걸까. 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는 더더욱 아니고…. 컵을 쥐고 있던 손을 들어 올려 입가에 가져다댄 두준은 물을 입에 머금었다. 물을 삼키고서 진심이 200% 담긴 말을 농담처럼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짐을 실현시키기도 전에,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삼키려던 두준은 요섭이 하는 말에 놀라 그만…
“두준 씨. 우리 사귈래요?”
“…….”
그대로 테이블에 뱉어버리는 불상사를 만들고 말았다. 더럽기 그지없는 두준의 행동에 요섭의 미간이 구겨졌고, 두준은 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물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요섭만을 응시했다. 지, 지금 요섭 씨 뭐라고 한 거예요…?
“요, 요섭 씨. 그 말…”
“일단 닦아요. 더러워요.”
“…네.”
요섭이 신경질적으로 건넨 냅킨을 받아들고 제 바지를 적신 물을 열심히 닦아내며, 두준은 입에 지퍼를 채웠다. 오늘 밤은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백만 번쯤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안녕하세요, 청춘도로시입니다.
느와르물을 연재하기 전,
가볍게 연재하자! 라고 마음먹었던 글이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굉장히 부끄럽네요 ㅇ)-(...
올리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살펴보고 올릴 걸,
조금 후회했습니다. ㅋㅋㅋ
CRAZY GUYS는 자유연재입니다.
03화가 언제 올라올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ㅎㅎ
01화에 댓글 달아주신
tender님, Dream님, 도담도담님, 두뿌님, 비스트꼽사리님, 뚜잇님, Rosee님, 계속함께하자님, 사랑훼이님,
마루나무님, 요링요링님, 로즈봉이야기님, 솔퍼리노님, 아이고두야님, 양메인보컬님, 벗뜨ILOVEYOU님, 어쨋든님,
말랑이님, 민됴님, 건방진붕어님
이 외의 비밀댓글 여섯 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중증 바보 윤 사장을 좋아해주시니 저 또한 좋으네요!
우리 귀여운 토끼 윤 사장님과, 시크도도 여우 양 학생(?)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
업로드 알림 쪽지 문구 : [토끼]
질문 및 소통은 트위터 계정 @Youth_do 로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토끼] 아 어쩜좋아요 ㅠㅠ 두준이는 날이 갈수록 귀여워지는것같아요 .. 요섭이는 어쩜저리 시크한지 박력있네요 아주 이 조합 저는 찬성입니다! 잘읽었습니다 ~:)
[토끼] 진짜 잘보구가요 두준이가 귀엽게 느껴지는건 저뿐만이 아니겠죠?? 담편이기대됩니당!!!
ㅋㅋㅋㅋ두준이나 요섭이나 정말ㅋㅋㅋ 잘어울려요ㅋㅋ 잠잘시간을 쪼개가며 요섭을 만나는 두준이가 참 멋있는거 같아요. 또 사귀자고 먼저 말한 요섭이도 당당해보여서 좋구요. 다음편에서 또 뵈어용
멍한 모습을 보니 요즘 그녀는 예뻤다 라는 드라마 지부편 생각이 솔솔 나네요ㅋㅋㅋㅋ 그나저나 그 타이밍에 물을 뱉어버린 ㄷㅜ준이라니..! 요섭이가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ㅎㅅㅎ 요섭에게 헌신(?) 하는 두준이가 너무 귀엽습니다ㅎㅎㅎ 잘 읽고가요 작가님!
아놔 넘 귀엽... 그리고 사귈래요? 라뇨.. 크학... 제가 다 심큥.... 잘봤어요!
아ㅜㅠ 중증바보 두준이 너무 귀여운 거 아닌가요!ㅠㅠㅠㅠ
뭔가 소녀감성을 가진 거 같이 잘 부끄러워하기도하고
그런 두준이랑은 다르게 요섭이는 되게 당당하고 그런 이미지 같은데!
그래서 사귀자고 딱 말해버리고! ㅋㅋㅋㅋ
반대라서 더 끌리는 건가요 ㅋㅋㅋㅋ무튼 이번화도 너무 귀엽네요! 다음편 기대할게요, 작가님♡
다시봐도 저 귀여운 중증바보를 어찌하면 좋을꼬ㅋㅋㅋ 소녀소녀한 감성에 사귀자는 요섭이 말에 마시던걸 그대로 뱉어버리고 저거 보니까 그 유명한 짤이 생각나네요ㅋㅋㅋㅋ 근데 또 저 모습이 요섭이에게서만 보여진 모습이여서(소근소근) 어쨋든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손잡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 두준을 나쁘게 안 좋게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것 같았는데 당당하게 두준이에게 고백을 하는거 보면 세상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 같기도 하구요ㅎㅎ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ㅋㅋㅋㅋㅋ 역시 요섭이, 이런 모습 좋아요-! 그래도 가끔~씩 특히 중요한 순간에 두준이가 남자답게 딱-! 리드를 하겠죠? ㅎㅎ 바보바보 귀여운 두준이 ㅎㅎㅎ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
단호한 요섭이 너무 설레요ㅠㅠ 이와중에 놀라서 물 뱉은 두준이는 졸귀ㅠㅠ 다음편 기대할게요~~!
흐흐흐흐흐~~나참 두준이 넘 귀여워 미치겠네요 오히려 요섭이 리드하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중증바보 컨셉은 요섭이한테만 보여주는 모습이겠죠~그래서 더 매력있습니다~다음편 빨리 보고싶어용ㅜㅜ
정말 두준이 캐릭터 너무 웃기네요 ㅎㅎ 바보같지만 답답한게 아니라 정말 너무 순수해보여서 귀엽고 사랑스럽고 저 사람을 어쩌면 좋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거다 저렇게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양여우를 만났으니 그 대비가 너무 재밌네요. 뭔가 불만도 많고 관심사도 많지않고 전체적으로 사는것에 크게 흥미가 없는 요섭이에게 예측불가하고 어디서도 보지 못할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는 두준이의 존재감이 엄청 큰가봐요. 근데 오늘은 일단 너무 더럽게 반응을 했으니... ㅎㅎ 그래도 잘 됐으면 좋겠네요.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헐 취향저격이네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이런거좋아하는건 또 어떻게 아시구ㅎㅎ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11 14:59
두준이 정말 순수한것같아요ㅎㅎ중증 바보라지만 왠지 요섭이한테만 그러는것같고 일 할때는 정말 멋있을것같다능ㅎㅎ마지막 물 흘리는 장면은 두준이 순수함을 그대로 보여준듯ㅋㅋ담편 기다릴게여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11 17:52
지짜ㅜㅠㅠㅠㅠㅠ너무귀여워요 두준이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너무 귀엽다 다음편도 기대항께요ㅠㅠㅠ
[토끼] 이런 캐릭터의 두준이는 처음보는거 같아요!! 덤벙대며 순수바보같은??ㅎㅎ 요섭이가 저렇게 고백?통보?를 할줄은 상상도못했네요 ㅎㅎ3편이 기다려집니다 ㅋㅋ
[토끼] 가볍게 연재하자고 올리신거 치고는 너무 재미있어요
순수한 두준이를 보는 맛이랄까 ㅋㅋㅋ
요섭이가 좀더 적극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만 ㅋㅋㅋㅋ
일빼고는 요섭이 앞에서는 덤벙덤벙되는게 아주 귀여워 보여요!!!ㅎㅎ잘 보고갑니다!
진짜 요섭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두준이가 유명인사이고 칼같은??사람이라는게 믿기지가 않네욬ㅋㅋㅋㅋ 역시 사랑의 힘이라뉴ㅠㅠㅠㅠㅠㅠ 잘보고가요 작가님! 담편 기다리고있을게요!!
잌ㅋㅋㅋ귀여워옄ㅋㅋㅋㅋㅋㅋ두준이 요섭이 한정 호구 아닙니까. 하. 너무 좋아요. 이런거ㅋㅋㅋㅋㅋㅋ너무너무 귀엽고 요섭이가 눈치 빠르고 먼저 감정 정리 딱 해서 입장 정리도 딱 하니 좀 느리지만 크게크게 다가오는 두준이한테 아주 딱이다 싶어서.. 하.. 저러면서 또 일은 기가막히게 잘 하겠죠? 요섭이 한정 바보다. 바보!! 너무 좋아요ㅋㅋㅋ 사귑시다. 얼른!
요섭오빠가 두준오빠에게 먼저 고백을 했네요^^ 당황하는 두준오빠의 모습 너무 귀엽네요~^^ 둘이 이제 사귀겠지요?^^ 둘의 이야기가더 듣고 싶네요^^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너무재밌어요!!! 잘보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