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에게 꽃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디자인과 색채, 미적감각을 입힌 예술작품이다. <오윤지씨 제공>
한국 제철 꽃으로도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 초상화 작품을 홀란드 플라워카운실로부터 의뢰받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앤디워홀의 스케치 위에 새하얀 백합 8,000송이를 수놓았는데 세계적으로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영국 유학파 플로리스트 오윤지씨(32)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정통 플로리스트다. 그는 오랫동안 런던 유명 플라워 숍들의 매니져와 수석디자이너로 일했다. 마돈나, 케이트모스등 유명 스타들의 꽃은 물론 칸, 트라이베카 영화제 등 굵직굵직한 행사의 파티꽃 디자인과 유럽 5성급 호텔들의 플라워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플라워숍을 차렸다. 세계적인 플로리스트 반열에 오르던 그가 귀국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윤지씨가 플로리스트를 꿈꾸며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2000년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그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영국으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꽃집 앞에 멈춰섰다.
“꽃이 너무 예뻤습니다. 한국에선 이름도 생소한 플로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지요.” 그는 곧바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지만 언어소통이 어려웠고 무엇보다 동양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힘들었다.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수습 직원으로 받아주는 꽃집도 없었다. 포기할까 싶었지만 끝까지 해보자고 마음먹었고 마침내 영국 서더 대학에 입학, 플라워 & 가든 디자인을 전공했다.
“꽃에 대한 기본 지식과 정보는 물론 미적 감각과 색채 감각도 익혀야 해요. 나만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려면 창의력도 필요하지요. 만들기를 좋아하는 꼼꼼하고 정교한 손동작도 요구됩니다. 화분을 지고 나르려면 건강한 체력은 필수이지요.”
그가 한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것은 2013년 말이다. “영국으로 유학오는 한국 학생들이 갈수록 늘어나더라구요. 영국 현지 플라워숍에서 단기 코스 강좌를 듣는 데 한 달에 1,000만원이 넘게 듭니다. 모든 강의를 외국산 꽃으로 배우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같은 디자인을 선보이려면 수입 꽃을 써야 하지요. 영어학원에 생활비를 더하면 많은 유학비용이 필요하구요."
그는 “한국에서 나오는 제철 꽃들로도 얼마든지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이론과 실습을 겸한 세계적인 꽃 장식을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플로리스트 오윤지씨.
유럽과 미국 · 일본에서 각광받는 전문직
플로리스트(florist)는 꽃을 뜻하는 라틴어 플로스(flos)와 전문인 또는 예술가를 나타내는 접미사 이스트(ist)의 합성어이다.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은 영국과 프랑스 등의 유럽을 비롯해 미국, 일본에서 각광받고 있는 전문 직종이다.
플로리스트는 단순히 꽃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뿐 아니라 꽃 장식품의 경제적 효용가치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꽃의 재배, 유통, 소재 개발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미적 감각과 장식기술은 기본이고 식물의 학명과 꽃의 종류, 꽃말 등 폭넓은 원예 지식이 요구된다.
플로리스트라는 직업명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무렵이다. 한글로 풀어 쓰면 꽃, 잎, 나무 등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화훼장식가에 가깝다. 최근 유명 여자 가수, 탤런트들의 개성 넘치는 ‘부케’가 주목 받으면서 플로리스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졌고, 모 개그맨의 아내 직업이 플로리스트로 알려지면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플로리스트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전국적으로 꽃집이 4만~5만개인 점을 감안하면 4만~5만명 정도의 플로리스트가 활동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남자 플로리스트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의 10%정도로 4,000~5,000명 정도의 남성 플로리스트가 일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예식장의 꽃장식 모습. <롯데호텔 제공>
단순 꽃꽂이를 넘어 대형 파티와 이벤트 총괄하는 사령탑
플로리스트는 꽃 등 화훼류를 여러 가지 목적에 따라 보기 좋게 꾸미는 일을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꽃집들은 식물의 특징이나 생태적인 면을 고려하기 보다는 화려한 포장지로 치장하는 데만 주안점을 둬왔다. 단기간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쉽게 꽃집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꽃 소비가 연 평균 20%이상 증가하면서 꽃집과 꽃꽂이, 플로리스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플로리스트는 화훼가 시들지 않도록 적정 온도와 습도를 갖춰 잘 보관하는 것은 물론 고객요구에 맞게 꽃을 멋스럽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또 경조화환, 꽃바구니, 꽃다발 등 상품 위주에서 벗어나 테이블 데코레이션, 파티와 이벤트 연출 및 장식 등 갈수록 높아지는 소비자들의 안목을 따라잡아야 한다. 각종 행사와 이벤트에 맞게 사전 기획은 물론 꽃의 소재를 고르고, 디자인·장식하고 사후관리까지도 책임져야 한다. 단순히 꽃꽂이를 하는 것이 아닌 대형 프로젝트를 총괄 책임지는 사령탑이 플로리스트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예식장 테이블 위의 꽃장식. <롯데호텔 제공>
월 평균수입 150만~200만원…실력 따라 천차만별
플로리스트라는 명함을 들고 전문 직업인으로 일하려면 최소 5년 이상은 실력을 쌓아야 한다. 대학에서 2년 또는 4년동안 화훼분야를 전공했다고 해도 사회에 나와 처음 받는 월급은 100만원 선이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일반 꽃집에 직원으로 채용되면 월 평균 150만~200만원 정도를 받는다.
물론 실력에 따라 연봉이 5,0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경쟁이 치열한 유명 호텔과 웨딩숍, 백화점 플라워숍 등에 근무할 경우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웨딩이나 파티를 프로젝트로 도맡을 경우 건당 1,000만원씩도 벌 수 있다.
플로리스트협회 이진호이사장(48)은 “식물은 손으로 직접 만지고 보살피지 않으면 바로 죽기 때문에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한다”면서 “5~10년 경력을 쌓은 뒤 직접 플라워 숍을 차릴 경우 연 5000만원 정도는 벌 수 있다”고 말했다.
호텔·백화점 인테리어숍이나 화훼 경매시장 등에서 활동
예전에는 도·소매 꽃가게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꽃집이 전문화, 대형화되면서 일하는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플로리스트는 일반 꽃집은 물론 호텔과 백화점 인테리어숍과 조경회사, 화훼 종묘·육묘회사, 화훼경매시장 등에서 일한다. 또 꽃꽂이 학원을 경영하거나 화훼 관련 기능경기대회 관리 및 심사위원 등 교육기관의 강사로도 활동할 수 있다. 웨딩 플래너와 디스플레이 전문가, 사이버플라워 디자이너 등 활동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기도 하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정미숙 실장은 “요즘 신랑·신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꽃의 종류와 디자인을 직접 요구 한다”면서 “가격대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만큼 고객만족을 위해서는 전문가다운 실력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플로리스트라면 이론을 기반으로 예술성과 상업성까지도 갖춰야 하는 만큼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신 경향과 이론을 익혀 작품화하고 부가가치를 높일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이 분야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꽃장식을 배울 수 있다. <오윤지씨 제공>
대학 또는 일반 학원의 정규과정 이수해야
플로리스트가 되려면 대학과 일반 학원을 통하는 방법이 있다. 플라워 디자인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대학은 신구대와 계원예술대 등 5개 전문대와 나사렛대학 등 4년제 대학 3곳이 있다. 식물 생리학, 화훼학 등 10개 전공과목 이론을 배운다. 관련 학과로는 원예과, 원예학과가 있다.
전공자가 아닐 경우 일반 학원에서 플로리스트 과정을 이수하거나 자격증을 따면 된다. 직업훈련 사설학원과 직업전문학교가 있는데 국내 유명 학원에서 가르치는 프로그램은 6개월~2년까지 다양하다. 교육과정을 1년 정도 밟은 뒤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해외로 6개월 정도 유학을 가기도 한다.
주의할 점은 대학이 아닌 경우 믿을만한 학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관리공단, 농림부 등 정부지원을 받는 학원인 지, 커리큘럼은 어떤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터무니없이 비싼 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
고용노동부 서울 강남지청 손성협 주무관은 “직업능력지식포털(HRD.go.kr)”로 들어가 해당 학원의 자료를 검색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에 등록된 학원인 지, 수강료 환급은 되는지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자격증을 꼭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쁠 것도 없다. 최근 노동부는 국가 공인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 제도에 관한 시행령을 발표했고 (사)대한플로리스트협회와 공예협회 등 30여 개의 민간 법인은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내주고 있다. 해외 플로리스트 자격증은 미국의 AIFD, 독일의 FDF가 대표적이다.
신구대 왕경희 원예디자인과 교수는 “국내 자격증을 따고 실무경력을 5~10년 정도 쌓은 뒤 해외에서 추가로 자격증을 얻는 게 좋다.”며 “비전공자의 경우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학원을 찾으면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