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슬픈 이야기
전선자/ 아이리스
뒤쪽으로는 향로산 봉우리가 읍을 감싸고, 앞으로는 남대천이 아름답게 흐르는 곳.
무주읍 중에 가장 인구가 빽빽한 동네가 우리 남천리이다. 계란으로 말하자면 노른자위인 셈이다. 무주읍의 한 중앙에 위치해 있으면서 분지의 정 중앙에 있다(무주읍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다).
나는 1997년도 가을에 <남천대로회> 회원 일동으로부터 공로패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어느 상보다도 소중한 상이기에 잘 간직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주민들이 돈을 갹출해서 만들어 준, 생각지도 못한 상이어서 고맙고 감사하기 그지없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다.
<남천대로>라면 무주의 전간 도로 중에서도 위쪽으로는 무주 군청을 기점으로 하고, 아래로는 구 양조장 골목까지 끊어서 그 사이에 있는 가게를 가지고 있는 큰 도로를 말한다. 그 도로를 둘러싼 주변이 우리 동네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동네 한 가정에 한 명씩만 나오게 해서 20여 가구가 한 달에 한 번씩 저녁 모임을 했다. 약간 반상회 모임의 성격이기는 해도 모두가 좋아서 하는 모임이라 한뜻으로 잘 이루어졌다. 나는 이 모임의 회장을 맡아 친목에 전념했고, 일 년에 봄, 가을로 야유회 겸 여행도 다니면서 즐겁게 진행했다. 모임 때마다 전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참고하되 ‘배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철저히 계획을 짜고, 예산은 절약하고, 결산을 투명하게 봐주니 불평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말 우리는 재미있고 보람되게 15년여 모임을 잘 해왔다.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쯤 만든 모임이었나 보다.
우리 모임 총무를 맡은 Q 여사는 사리분별력도 똑 떨어지는 데다가 유흥도 즐길 줄 알아서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춰 회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또 흥이 많아 회원들을 잘 다루고 봉사 정신이 투철하니 금상첨화였다.
그런데 왜 1997년, 그때쯤 모임이 끝이 났을까를 생각하니 사연이 있었다. 그 해 1997년도에 나이 드신 계원 두 분이 세상을 하직하셨고 한 분은 전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모임도 어수선했다, 아마 그 때문에 ‘이제 그만 모이는 것으로 하자’고 했을 것이다. 15년여 회장직을 맡아 수고했다고 준 공로패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보니 그렇게 똑똑하던 Q 여사가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심한 치매에 걸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사실 그 남편은 과거 우리 집에서 덤프트럭 기사로 있었기 때문에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안타깝기만 했다. 두 내외가 얼마나 처량한지 모르겠다. 남편도 알아보지 못한 채 “우리 집에 어느 남자가 와서 앉아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오가는 사람 붙들고 하소연하니 이거 ‘참 난감하기 짝이 없다’고들 얘기할 뿐 도저히 방책이 없다. 가진 재산이라도 좀 넉넉하면 병원에 보내 간병인이라도 두고 치료하면 좀 나을까 싶기도 하지만 “치매는 나랏님도 고쳐주기 힘들다”하니 ‘어찌하오리까’ 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정신분열증과 조울증으로 고생하였던 바 이혼하고 무주에 와서 몇 년을 살았다는데 어느날 실종되어 하루가 지나 찾은 곳이 남대천 아랫쪽 갈대밭이었다고. 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인가. 엄마는 이 사실도 모른채 살고 있고.
그렇게 가까이 지내던 분이 그 모든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 버리고 산 목숨이 아니게 살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힌다. 자식들도 다 제 살길 가기 바쁘다 보니 아저씨만 더욱 가여워진다.
우리 인간에게 어쩌면 저렇게 가혹한 형벌이 있을 수 있나? 우리 동네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첫댓글 글이라고 쓰다보니 자신이 우습네요. 무슨 보고서도 아니고요. 정말 글쓰기 힘듭니다.
숙제만 아니면 절필하고 싶은 생각이 절실합니다. 선생님! 전화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느 동네, 어느 모임에서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삶을 사시는 듯 합니다. 뵌 적은 없어도 많이 뵈어 이미 알고 지내는 분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친근감을 주시고 자신을 퍼 내어 주시는 아이리스님의 일상이 들어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억장 무너지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 맺으며 살아온 이이리스님의 삶을 엿볼 수 밌는 글입니다. 아름다운 무주 남천리 우리 동네에서 희노애락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나이들면서 문득 앞날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아이리스님처럼 잘 살아가자고 마음을 다져보게하는 글입니다.
그동네 이야기뿐이 아닙니다 사람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는 흔한일입니다 제 가까운 주변에도 나이들어 치매로 슬픈 사람들이 많아요
안타깝고 남일같지 않은 노후생활.
그러나 아이스리님 과 물푸레 꽂님들은 글 쓰느라 쉴새없이
뇌 운동을 하고있어 안심해도 될겁니다. 특히 울 이향아 교수님처럼 정신 세계가 하늘만큼 넓고깊은 스승님을 따르고 있으니 치매는 범접 조차 못하겠죠.
우리 뇌 운동이 되는 글쓰기 전진 합시다
화이팅🍏
요양병원이라도 가야 되는데 못 가니 정말 억장이 무너집니다. 아들도 너무 슬픕니다. 주위에 그런 집들이 있으니 더 슬픈 일입니다. 나이 들어도 자식들에게 폐는 끼치지 말아야지 생각이 듭니다. 공기 좋고 푸른 숲 속에 사시는 아이리스님 우리는 맑은 정신 갖고 잘 삽시다. 고맙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규합시키는 모임 회장을 하시고 켜켜히 사정들을 파악하고 계시니 더 힘드실 것 같습니다.
도움의 한계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Q여사와 그 아드님의 이야기는 너무 아픈 이야기입니다.
시골 동네의 사정은 너나없이 내일처럼 여기고 서로 돕고 사는 전통이 있어 그나마 훈훈한 일도 있지만 세월이 흘러 그마저도 이제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리스 선생님 건강을 먼저 챙기셨으면 합니다.
지난 번 모임때 다리를 절뚝이셨는데 지금은 좀 나아지셨는지 궁금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정말 슬픈 이야기네요. 제 주위에도 그런 친구도 있고 친구의 남편도 그렇고 듣기만해도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공기 좋은 무두에서 일어나니 더욱더 안타깝네요. 이제 건강 밖에는 그리 중요한 게 뭐가 있나 싶어요. 무주의 슬픈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물푸레숲 꽃님 여섯분 모두가 응원해 주시니 감격스럽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건강 지키면서 그냥 살아온대로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평안하시길 기원드려요~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