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2.9.11) 말씀 : 고전 3:12-13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고전 3: 12-13 )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과중한 업무와 연구, 그리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삶이 정말 힘들고 무거운 것은 수고 자체가 아니라 수고한 만큼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수고를 해도 열매가 있고 보람이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땀 흘리며 수고할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 직장생활, 교회생활 하면서도 제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수고하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도 세상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에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책망만 듣는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요? 우리는 믿고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는 인생이 되어야 되는줄 믿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라고 합니다. 오늘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반석을 터로 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건축에 있어서 터는 기초입니다. 기초가 잘못되면 아무리 아름답게 건물을 세워도 무너져 쓸모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손실은 대단히 큽니다. 대한 민국에서 어떤 건물이 가장 높지요? 롯데타워입니다(세계 6위). 기초공사로 건물 전체 무게(75만t)를 지탱하기 위하여 지하 38m 깊이로 터를 파고 암반층에 길이 30m, 지름 1m의 쇠기둥 108개를 박아 암반을 보강한 다음, 그 위에 4200t의 철근과 8만t의 고강도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가로세로 72m, 높이 6.5m의 거대한 매트를 깔았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554m 건물을 지탱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7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면, 그 무너짐이 심하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휘어잡는 권력을 누리고, 떵떵거리는 부를 누리고, 명성을 한 몸에 누려도 그런 것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려 참혹한 결과를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칼을 의지하는 사람은 칼로 망하고, 돈을 의지하는 사람은 돈으로 망하고, 명예를 의지하는 사람은 그 명예 때문에 망하고, 자기 의를 의지하는 사람은 그 의 때문에 망합니다. 이유는 돈, 권력, 명예, 초등 학문 등, 이런 것들은 든든한 기초가 아니라 모래와 같기 때문입니다. 잠시 세상살이가 잘 나가고 행복한 것처럼 보여도 인생길에 바람이 불고, 질병의 창수, 사업 실패의 창수, 죽음의 창수가 나면 모레 위에 지은 집은 다 무너집니다. 어떤 사람도 이런 창수를 견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집을 지으려면 반석 위에 든든하게 집을 지어야 합니다. 이 반석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시편 62장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건물에 기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실제 공사의 50%라고 하니다. 기초공사를 잘 하면 거의 반은 지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주님을 기초로 인생을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를 지나가시다가 주님이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람들은 선지가 세례요한이라 대답하였지만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 구원자 시라고 분명히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시몬을 칭찬하시며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요 그리스도 이십니다.” 라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기초가 되자 예수님은 너는 반석이라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고백이 누구나의 인생 기초가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고백을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하기까지 평생이 걸리기도 하고, 이 고백을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이 이성,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오래 교회를 다녀도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염려, 근심. 두려움, 의심. 미움. 시기, 질투,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를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아직도 기초가 부실하다는 증거입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집을 지어도 삶의 본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초를 든든히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의 기초공사는 말씀으로 다져지는 길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약하면 구원도 흔들리고 그 위에 집을 짓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 믿음의 터가 견고하게 다져져서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됩니다. 마태복음 7:24-25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지난 주 화요일 날 새벽 큐티 말씀 일 주년이 되었습니다. 수요일 독서모임에서는 케익도 자르고 천권사님 떡도 해 오셔서 축하 파티도 했습니다. 카스에 큐티를 시작한 동기를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서든, 일이든, 글을 쓰던, 먹고 마시는 모든 일들 다 좋다. 그러나 기초가 말씀이 되어야 하고, 모든 삶은 말씀으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볍게 시작하자고 시작했는데 시작해보니 실제는 365일 깨어 긴장해야 했습니다. 매일 4시 50분 기상하여 취침하기까지 손에서 성경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새벽 말씀에 우주교회 성도들 가운데 삶과 신앙의 터가 굳게 세워져 가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멀리 계신 선교사님들도 매일 말씀과 동역자들의 댓글 고백을 통해 힘을 얻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유숙영 선교사님은 이렇게 ㅎㅁ께 배울 수 있음이 감사라고 하며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감사의 눈물이 난다 하였습니다. 서울에 장영효 형제도 영이 죽어 헤메이던 저를 성령과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셨다고 하고, 정대영 형제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많은 은혜를 받고 가슴 한켠이 든든했다고 소감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도 언젠가 우주교회 성도들과 딱을 데며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올 것을 기대한다고 하였습니다. 장산도 낙지 박사님도 매일 아멘으로 말씀을 받으며 섬 생활을 시작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슈트트가르트 이 은정 선교사님은 그동안 가족들 가운데 이루신 말씀 역사를 긴 댓글 소감으로 보냈습니다. 가족들 단톡에 계속 말씀을 올렸는데 가족들 가운데 변화의 역사가 있었다는 간증 이었습니다. 둘째 오빠는 예수님을 믿는자들이(교회에 다시는 사람들이) 나쁜 짓은 더 많이 해서 교회에 안 나가신다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일매일의 말씀이 이 분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되어서 말씀이 올라오지 않으면 왜 오늘은 말씀을 안 올리냐며 기다리시고, 오빠의 일상은 일어나자 마자 큐티 말씀을 보고 유산소 운동을 하시면서 하루가 시작 된다고 합니다. 너무 은혜스러워서 마침 수요 독서모임 365 축하 모임에서 읽어드리고, 카스 글을 작성해서 온 세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큐티 365일 축하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주님 하신 일 이었습니다. 저는 신명기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지난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말씀을 먹도록 인도하신 의미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과 같은 것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길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내리시고 매일 같이 일정 양의 만나를 가두도록 하셨는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호 멜씩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육체가 된 이들의 체질을 영으로 바꾸시고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떡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알게 하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도록 훈련하신 것 이었습니다. 육체가 되면 우리는 육의 소욕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이 되면 가장 좋고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은 말씀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 따라가는 광야길이 거칠어도 행복이고 삶의 축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무엇입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반석이신 예수로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로 사는 사람들은 어떤 광풍이 불어도 삶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 터위에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둘째,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건축에서 기초 공사가 끝나면 다음은 건물을 올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어떤 모양과 어떤 재질로 짓느냐에 따라서 건물의 가치가 드러나고 설계자와 건축자의 공력이 드러나게 됩니다. 어떤 건물은 세계적인 명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떤 건물은 부실 공사라는 수치가 따르기도 합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폴리갑 선교사님 말로는 건축할 때 재료비에서 이윤을 남기는데 무려 1-20까지 차이가 심하다고 합니다. 자칫 부실 공사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집은 태풍 불 때 지붕도 날라가고, 건물 외벽도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집을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전 3:12-13을 보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집을 지을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짓는 사람과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사람입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짓는 것은 자기 의를 기초로 성의 없이 값싸게 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력은 나중에 불시험을 견디지 못해 타버립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서도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의는 자기 영광만 될 뿐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런 공력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소자를 중히 여기고 어린 한 생명을 중히 여기는 역사이지만 어는 것 하나도 작이 것이 없습니다. 어느 하나도 공들이지 않고 대충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소중하고 마음을 들이고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일을 자기 의를 기초로하여 짓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것은 최고의 가치로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은 변치 않습니다. 보석은 가장 값진 것을 상징합니다. 과거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은 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었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언약궤도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왕 되신 주님께 황금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곧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가치의 재료를 쓴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사랑, 주님의 긍휼, 주님의 지혜, 주님의 능력, 성령을 의지하여 주님의 것으로 짓는 것입니다. 이런 집은 불시험을 받을 때 타지 않습니다. 영원한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공력이 인정됩니다. 섬기는 일도, 기부하는 일도, 봉사도, 전도도, 기도하는 것도 내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하여 인정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작은 일이라도 주님 의로 할 때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유다서 1장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베드로전서 4장 11절로 주님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미국 산호세에 존슨이라는 분이 건축회사에서 현장감독으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은퇴를 몇 개월 앞두고 있었는데 하루는 사장님이 자신을 호출하더니 마지막으로 집 한 채를 짓고 은퇴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경치 좋은 바닷가에 방 다섯 개, 화장실 네 개, 차량 네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층집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정원도 멋있게 꾸미고 대리석은 이태리제, 주방기구는 독일제 등 최고급 품질의 자재를 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화가 너무 났습니다. 아니 은퇴를 앞둔 마당에 휴가는 안 주고 무슨 일을 잔뜩 시키냐....심술이 잔뜩 난 이 사람은 집을 대충 지었습니다. 기초도 대충 하고, 목재도 싸구려를 사용하고, 대리석도, 주방 기구도 싸구려로 채워버렸습니다. 건축을 대충 마친 뒤 열쇠를 가지고 사장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이 전 임원을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존슨 감독이 이제 은퇴합니다. 그래서 은퇴 선물로 집을 한 채 주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은 이 집을 선물로 드립니다” 이 사람은 기가 막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장님 말씀대로 최고의 자재를 써서 정성을 들여 짓는 것인데...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고전3:15) 아무리 작은 일도 대출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일은 작은 일 하나 하나 기도하고 주님을 위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게 곧 자기를 위한 일입니다. 주인을 위한 일, 주님을 위한 일이 곧 우리 자신을 위한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하면 공력이 불타지 않고 수고와 헌신이 헛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내 생각대로 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하려는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으로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나서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 영광 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꾀를 부려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제일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잘 살아보려하는데 내가 제일 방해꾼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 왕자 책에 보면 여러 별나라에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어린 왕자가 자기 별을 떠나 첫 번째 다른 별에 왔을 때 거기에 왕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위엄있는 왕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별에 혼자 있으면서 왕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찾아오면 누구든지 다 자신의 신민이었습니다. 명령하고 다스리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다스리려하는지 어린 왕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을 떠났습니다. 두 번째 별에는 허풍쟁이가 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찬미를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왜 모자를 쓰고 있느냐고 물으니 찬미를 받으면 답례를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누군가의 찬미를 받지 안 되는 이 사람은 어린 왕자에게도 자신을 찬미하고 숭배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왕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는 혼자 아닌가 그런데 숭배를 받아서 그게 어떻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곱 번째 지구라는 별에왔을 거기에는 왕이 11명, 지질학자 7천명, 사업가 90만명, 술주정뱅이 750만명, 허영쟁이가 3억 1천 1백만 명 모두 합쳐서 어른들이 20억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거의 독불장군 왕이었고 허영쟁 이였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찬미 받고 싶고 숭배받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허영심과 어리석음이 영적인 세계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주님은 자기 의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르니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십니다(마태복음 7장 22-23). 믿음으로 살았다고 하면서 그렇게 책망을 받으면 어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는 내가 했다는 의식이 없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내 안에서 주님이 하심을 인정하며, 주님으로 살아야 합니다. 작은 일 하나라도 주님 대하듯이 사랑으로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는 일들이 주님의 영광이 되고, 공력이 들어나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마태 21:25)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우주 교회를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입니다. 내가 세운 교회, 내가 전도해서 키운 양, 내가 이룬 역사가 아니라 주님이 부르시고, 주님이 키우시고 주님이 세우신 교회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자 함입니다. 이런 우주교회 방식은 사랑과 섬김입니다.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것 네 것 없이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주님의 종들을 섬기고 주의 양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으로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결과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영혼들이 국경 인종을 넘어서 생명의 결실을 얻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 말씀하시는 인정받는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