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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4장 화엄종의 실천문
3) 화엄종(華嚴宗)의 실천문(實踐門)
(1) 법계관문(法界觀門)
두순화상(杜順和尙)이 세웠다고 하는데 진공관(眞空觀)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 주변함용관(周邊含容觀)의 삼관이다. 이 삼관에 대한 해설은 청량 징관 대사(淸凉澄觀大師)의 저술인 법계현경(法界玄鏡)과 법계관문(法界觀門)에 상세히 밝혀져 있다.
(가)진공관(眞空觀)은 네 가지 문으로 관 한다. 회색귀공관(會色歸空觀)은 색상 그 자체가 실유가 아니라 인연생(因緣生)의 가유(假有)이므로 곧 공(空)인 것을 관함이다. 또 명공즉색관(明空卽色觀)은 공이 곧 색인 줄을 관하는 것이다. 공색무애관(空色無碍觀)은 공이 곧 색이요 색이 곧 공일 진데 공과 색이 서로 걸림 없는 것이니 이런 이치를 직관함이다. 민절무기관(泯絶無寄觀)은 진공이 색이니 색이 아니니 하는 모양과 생각을 다 꺼버린 무념무상의 절대경이다. 이것은 이른바 이것이다. 아니다, 그렇다 안 그렇다 하는 대립된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이 론과 심상(心想)이 끊어진 경계이기 때문이다.
(나)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은 평등한 진리의 체가 이(理)가 되고 유위(有爲)의 형상이 사(事)가 된다. 이(理)는 물과 같고 사는 파도와 같다. 즉 차별 있는 사법(事法)과 평등한 이법은 분명하게 존재하면서도 서로 융합하는 것임을 관하는 것이다.
(다)주변함용관(周邊含用觀)은 이사(理事)가 이미 무애할진대 사가 곧 이와 같이 원융무애하게 된다. 이것도 십문으로 밝혔다.
(2) 망진환원관(妄盡還源觀)
이관은 화엄종 제3조 법장화상(法藏和尙)이 지은 것으로 본래는 수화엄오지망진환원관(修華嚴奧旨妄盡還源觀)이라고 한다. 화엄종의 관법을 기록하여 마음의 본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 서문에 병이 생기므로 약이 생기듯이 망(妄)이 일어나므로 지(智)가 서게 되었다. 병이 망이라면 약도 망인 것이니 백비(百非 , 모든 것을 부정함)로 그 반연심을 쉬이고 사구(四句)에 그 증감을 끊으면 약과 병이 함께 없어지며 정(靜=定)과 난(亂=散心)이 모두 녹아서 능(能=마음), 소(所=경계)가 다 없이 현종(玄宗)에 들어가며 성(性), 상(相)을 꺼버리고 법계에 들어가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일체(一切), 이용(二容), 삼편(三遍), 사덕(四德), 오지(五止), 육관(六觀)을 밝혔다.
(3) 삼성원융관(三聖圓融觀)
이 법문은 청량대사(淸凉大師)가 설한 것이다. 삼성이란 비로자나불(毘 盧遮那佛),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을 가르킨다 .
문수의 이지(理智)로 비로자나법계를 사무쳐 보고 보현의 사행(事行)으로 비로자나법계를 실증하는 것을 교지로 하였으니 비로자나, 문수, 보현의 삼성의 삼이 곧 일이요 일이 곧 삼이다.
그러므로 화엄행자는 먼저 심경이 다 공적한 견지로 일심의 본원을 관조하고 보현행으로 염념이 끊임없이 일행이 곧 일체행이요 일체행이 곧 일행인 법계원행을 닦아 나가는데 있다 그러므로 심 불 중생의 차별 없이 염념에 늘 부처가 정각을 이루게 되나니 이렇게 수행하여 일생에 마치지 못하면 삼생에 반드시 원만하리라는 요지이다.
(4) 기타의 행문
두순화상의 보현행과 현수대사의 유심법계관 화엄삼매관 화장세계관 보현관 등이 실천문의 지침이다.
3. 진언종(眞言宗)
진언종(眞言宗)은 다라니종(陀羅尼宗)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문두루종(文豆婁宗), 총지종(摠持宗) 또는 밀교(密敎)라고도 한다.
진언(眞言)은 만트라의 번역인데 주(呪), 밀주(密呪), 명(明)등으로 의역한다. 참된 말, 비밀된 말, 지명(智名), 밀문(密文)등의 뜻이 있다. 문두루란 말은 만트라의 방언이거나 만트라의 음역이다. 다라니는 총지(摠持) 또는 능지(能持), 능차(能遮)라고 의역한다. 한 자 한 구 가운데 넓고 깊은 뜻을 담겨 잡아 지녔다는 뜻이며, 또는 모든 나쁜 법을 버리고 온갖 좋은 법을 지닌다는 뜻이다.
이러한 진언 다라니를 지녀고 외우며 수행하므로 한량없는 죄장을 소멸하고 무한한 공덕을 성취하여 속히 성불한다는 것이다.
금강정분별성위경(金剛頂分別聖位經)에 진실다라니종(眞實陀羅尼宗)이란 것은 일체(一切) 여래(如來) 비오(秘奧)의 교임에 자각증지(自覺證智)로 수성(修成)하는 법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여래비밀의 교라 하여 비밀교(秘密敎) 또는 밀교(密敎)라고 한다.
1) 진언종(眞言宗)의 소의경전(所依經典)
대일경(大日經) 7권 선무외(善無畏) 역
금강정유가경(金剛頂瑜伽經) 2권 불공(不空) 역
소실지경(蘇悉地經) 3권 선무외(善無畏) 역
금강정요약념송법(金剛頂要略念誦法) 1권 금강지(金剛智) 역
금강봉루각유기경(金剛峰樓閣瑜祗經) 1권 금강지(金剛智) 역
이상을 진언종의 오부비경(五部秘經)이라고 한다.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자수용(自受用) 법락(法樂)의 법문으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한 현교(顯敎)의 제 경과 근본적으로 다른 일체여래 비오의 교라고 한다.
2) 진언종(眞言宗)의 유서(由緖)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 등의 비밀경전은 대일여래의 설법으로서 일체 현교의 근기는 듣지 못한 것인데 상수제자인 금강살타(金剛薩埵)가 편집하여 남천축의 어느 철탑 속에 간직하였던 것을 불멸후 800년 경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철탑을 열고 금강살타(金剛薩埵)와 함께 그 비결을 받아서 그 제자 용지(龍智)에게 전하므로 비로소 비밀교의(秘密敎義)가 세상에 유행되었다.
용지(龍智)는 제자 금강지(金剛智)에게 전하고 그는 또 제자 불공(不空)과 함께 중국에 건너 왔다. 용지(龍智)의 제자 선무외(善無畏)도 중국에 들어와서 진언종(眞言宗)이 성립하게 되었다.
3) 진언종(眞言宗)의 교판(敎判)
중국의 진언종(眞言宗)은 실천에 주력하였고 교판 등의 이론에는 치중하지 않았다. 이 종파는 불공(不空)의 제자 혜과화상(惠果 和尙)이 있고 혜과에게서 법을 이어 받은 일본의 홍법대사(弘法大師)가 있다.
밀교의 교판은 홍법의 판현밀이교론(辦顯密二敎論), 십주심론(十住心論)이 있는데 이것이 금강지와 불공으로부터 전수해온 교의일 것이다.
현밀 두 교의 구별로서는 현교의 극치인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인분(因分) 곧 보살의 인행(因行)에 대한 부분을 말할 수 있지만 과분(果分) 곧 불과佛果)의 경계는 말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진언밀교에서는 진언밀어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교에서는 법신은 이체(理體)로서 무형(無形) 무색(無色), 무설(無說)이라고 하였는데 밀교에서는 교주가 바로 법신불로서 유형(有形) 유색(有色), 유설(有說)이라고 한다.
현교에서는 삼무수겁(三無數劫)을 닦아서 비로소 성불한다고 하지만 밀교에서는 일념내지 일생에 성불한다고 한다.
현교에서는 삼장교전의 언어 문자에 의존하지만 밀교에서는 신 구 의의 비밀의궤(秘密儀軌)를 주로 한 밀주를 지송하여 죄장을 소멸하므로 성불 한다고 한다.
현교는 타의(他意)에 따라서 방편으로 설법하지만 밀교는 자의(自意)에 따라 설한 진실설이라고 주장한다.
비장보약(秘藏寶鑰)에는 불교 교의를 얕은 곳에서부터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열 가지 주심(住心) 곧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대승 법상 삼론 천태 화엄의 9개 주심을 지나서 제 10비밀화엄심이 곧 밀교인데 신구의(身口意) 삼밀로서 대일여래의 증득한바 본구의 공덕을 장엄하는 무상의 진리라고 하였다.
4) 육대연기의 (六大緣起義)
본체(本體) 만유(萬有)의 실재를 하나의 인격적인 구현으로서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는 광명이 널리 비친다(光明邊照)는 뜻인데 이것을 대일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 불신의 본체는 지, 수, 화, 풍, 공, 식, 의 6대가 그대로 불신이다.
불과 중생이 같은 육대로 이룩된 대일여래의 법신이며 일체 국토가 그대로 밀엄정토(密嚴淨土)이다. 그러므로 우주만유는 대일여래 법신의 당체로서 육대가 인연에 응하여 우주 만유로 전개된 하나의 법신구현(法身具現)이라고 본다.
우리의 육신은 대일여래의 법신이지만 무시겁(無始劫) 전부터 망정에 가리어 스스로 법신의 덕용을 나타내지 못하니 만일 삼밀이 서로 응하는 가지행(加持行)을 닦으면 육신 그대로 정묘법신(淨妙法身)을 증득한다고 한다.
5) 육대무애의 (六大無碍義)
불, 중생, 국토가 육대(六大)로 이룩된 존재로서 육성(六性) 육용(六用) 이 갖추어져 있다.
그 육대가 서로 화합하여 만유를 이룩할 적에 그 자체가 어떤 일대가 주체가 되면 다른 오대는 그것을 따라 이룩하여 서로 인(因) 연(緣) 인(因)과 인과(因果)의 관계를 맺고 나가는 것도 하나의 무애의 덕용이지만 그 보다 나아가서 동류무애(同類無碍), 이류무애(異類無碍)를 말한다.
동류무애는 갑 을 이류로서 존재하는 육대를 바라보아 각자의 육대가 피(彼) 차(此) 동류(同類)임을 말함이니 불(佛), 중생(衆生), 국토(國土)가 그 이룩된 모습은 다른데 그 이룩하여 준 원소는 같은 육대이니 그 육대를 보아서는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위로 불계(佛界)에서 아래로 지옥에 이르기 까지 그 육대의 체성은 동일한 것이다.
이류무애(異類無碍)는 육대가 각기 남은 오대의 덕성 업용을 갖추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일대가 주(主)가 되면 다른 것이 반(伴)이 되어 주반이 중중무진하여 서로 의지하고 서로 이루어 주대 각기 제 성질을 바꿈 없이 상즉상입하는 묘용을 말한다. 그리고 또 이(理), 지(智), 불이(不二)의 무애가 있어 태장계의 오대와 금강계의 식대(識大)가 색심불이(色心不二)의 무애이다. 또는 법상무애(法相無碍)로 보는데 육대는 불생불멸의 성인데 그것이 인연따라 만유로 연기되어 연기의 현상이 된다.
육대의 체성과 둘이 아니다. 현상은 곧 실상이다. 이것이 성상무애(性相無碍)이다.
6) 사종만다라(四種曼茶羅)
육대를 체(體)라고하면 사종의 만다라는 그 상(相)이 된다. 육대로 이룩된 우주만유는 각기 네 가지의 만다라를 갖추고 있다. 만다라는 윤원구족 (輪圓具足)의 뜻으로 만유가 서로 원만구비한 덕용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네 가지의 만다라는 대만다라, 삼마야(三摩耶)만다라, 법(法)만다라, 카르마만다라 등이다.
대만다라는 신형 전체를 가러 켜 대라고 하고 신상(身相)이 오대를 갖추었으므로 대라고 한다. 삼마야 만다라는 본서(本誓)라고 번역되고 불 보살의 본원(本願)을 표시한 것이다. 혹은 서원한 일을 성취하기위한 표현으로서 칼을 잡아 사(邪)를 항복받는 모습을 나타내고 혹은 연화(蓮花)를 가지어 번뇌와 흙탕물에 물들지 않음을 표시하는 것과 같이 혹은 윤보(輪寶)를 혹은 여의주(如意珠)를 혹은 보탑(寶塔)을 혹은 금강저(金剛杵)등의 기물을 가지거나 또는 수지(手指)를 결인(結印)하는 그런 상을 표시 한다. 법만다라의 법은 궤범(軌範)의 뜻으로 불 보살의 명호 종자(種子) 진언 현밀경전론(顯密經典論)의 문의(文意)로 기타 언어 문자 등 이다.
카르마만다라의 카르마는 위의(威儀) 작업(作業)이라는 뜻으로 불 보살의 행(行) 주(住) 좌(坐) 와(臥) 취(取) 사(捨) 굴(屈) 신(伸)등의 위의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타내는 동작과 주소조각(鑄塑彫刻)등의 상이 그것이다. 사사물물(事事物物)이 모두 이 사만다라를 갖추고 있는 것이 된다.
7) 삼밀까지(三密加持)
육대의 체성은 평등하지만 사만(四曼)의 상은 십계의 업상(業相)이 같지 않다. 사만의 차별은 삼밀가지의 차별에 의한다. 삼밀은 밀교적 수행법을 뜻한다. 신밀(身密), 구밀(口密), 의밀(意密)을 말하는 것으로서 불계(佛界) 상의 묘용(妙用)으로 신비적 의의를 갖춘 미묘한 작용으로 등각(等覺), 십지보살(十地菩薩)도 알기 어렵다고 한다. 불의 삼밀은 삼종의 부사의한 자 재묘용(自在妙用)을 말하고 중생은 손으로 인계(印契)를 맺고 입으로 진언을 외우고 마음으로 본존(本尊)의 삼마지(三摩地)에 들어가는 것이다. 가지(加持)는 여래의 대비력과 중생의 신심이 합치되는 것이다. 삼밀가지행은 본종의 수행 상 가장 근본적인 비법이다.
8)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
육대무애의 체성에 의하여 우주만유 곧 대일여래의 법신인 이치를 직관하고 그 대일여래의 상으로서 사만다라의 실상에 머물러서 삼밀가지의 묘행을 닦으므로 대일여래는 나의 몸속에 들어오고 나는 대일여래의 몸속에 들어가서 능가(能加) 소가(所加)와 능지(能持) 소지(所持)가 일체가 되므로 부모의 소생인 이 육신 그대로 불격(佛格)을 구현 한다는 것이다.
삼종의 성불을 말하는데 중생 본구의 불성은 대일여래와 같으니 이것을 이구성불(理具成佛)이라고 하고 삼밀가지행(三密加持行)으로 불(佛)과 아(我)가 상응함을 가지성불(加持成佛)이라고 한다. 이렇게 수행하여 불덕을 구현함을 현득성불(顯得成佛)이라고 한다.
9) 양대부만다라(兩大部曼茶羅)
만다라는 단(壇) 도량(道場) 또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 번역한다. 또한 만덕구족(萬德具足)의 뜻도 된다. 바퀴의 여러 살대가 속 바퀴로 모여 하나의 둥근 수레바퀴를 이루듯이 하나의 법 가운데 모두가 구족한 것을 뜻한다. 다시 말 하면 만덕구족이니 만덕장엄이니 하는 뜻이 된다.
이 진언종에서는 불 보살과 제천(諸天) 선신(善神)등을 한 곳에 그려 모시는 족자를 만다라라고 하는데 그것을 교의상 두 가지로 나누어 태장계 만다라(胎藏界曼茶羅)와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多羅)라고 한다.
태장계(胎藏界)는 어머니의 태장 속에 새로운 인체가 소장되어 있다는 뜻으로 아자본불생(阿字本不生)의 이(理)를 싸고 있는 덕성본각(德性本覺)의 이치를 표시한다.
금강계는 굳고 날카로워서 능히 결단(決斷)하는 용(用)을 가진 것이니 여래의 지혜와 9식을 나타낸다. 또 태장은 인(因)이고 금강은 과(果)이며 태장은 오대(五大), 금강은 식대(識大)이며 태장은 본각(本覺), 금강은 시각(始覺)등으로 배속 된다.
胎藏界ㅡ理ㅡ平等ㅡ本有ㅡ本覺ㅡ因ㅡ東ㅡ五大
金剛界ㅡ智ㅡ差別ㅡ修顯ㅡ始覺ㅡ果ㅡ西ㅡ識大
이 양부 만다라는 서로 체와 용(用)이 상즉(相卽)되어 걸림이 없다. 이러한 만다라는 하나의 도상으로 표현하는데 금강계를 불부(佛部) 금강부(金剛部) 연화부(蓮花部) 갈마부(鞨摩部) 보부(寶部)로 나누고 태장계를 불부(佛部) 연화부(蓮花部) 금강부(金剛部)로 한다.
그리고 금강계에 9회 태장계에 13원의 만다라가 있다.
4. 선종(禪宗)
1) 선종(禪宗)의 명의(名義)
선종(禪宗)을 불심종(佛心宗) 또는 달마종(達摩宗)이라고도 한다. 선(禪)은 정려(靜慮), 사유수(思惟修), 또는 정(定)이라고 의역한다. 대승에서는 육바라밀(六波羅密)의 하나인 선나바라밀(禪那波羅密)로서 중국에 와서 하나의 특수한 수행법으로 선종(禪宗)이 독립된 것이다.
당(唐)의 규봉선사(圭峰禪師)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銓集道序)에 선문(禪門)에도 깊고 얕은 계급의 등별이 있다. 다른 계교를 지니고 상계(범천 이상)에 나기를 구하여 닦는 것은 외도선(外道禪)이요. 바로 인과(因果)를 믿으면서 또한 상계로 향상하기를 구하고 하계를 여의려고 닦는 것은 범부선(凡夫禪)이요. 아공(我空)의 이치를 깨닫고 닦는 것은 소승선(小乘禪)이요. 아(我)와 법(法)이 공한 이치를 깨닫고 닦는 것은 대승선(大乘禪)이다. 이상 네 가지는 사선(四禪=색계), 사공(四空=무색계)의 선이다.
자심이 본래로 청정하여 원래 번뇌가 없고 무루(無漏=생사가 없는) 지성이 본래로 구족하여 이 마음이 곧 부처라 끝내 다름이 없다는 이치를 깨닫고 이 이치에 의하여 닦는 것을 최상승선(最上乘禪) 또는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 하며 또는 일행삼매(一行三昧), 진여삼매(眞如三昧)라고 한다. 이것이 온갖 삼매의 근본이니 만일 이 삼매를 간단없이 닦으면 절로 백천삼매(百千三昧)를 얻게 되나니 달마(達摩) 문하에서 서로 받아 전한 것이 이 것이다.
달마가 오기 전에 제가의 견해가 다 시선(四禪), 입정(入定)이며 여러 고승들이 닦아서 다 공능(功能)을 얻었다. 남악(南岳)의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삼제(三諦)의 이치에 의하여 삼지(三止) 삼관(三觀)을 닦게 하였으니 그 교의가 매우 원묘하지만 그러나 닦아 들어가는 문호는 또한 달마 이전 선법(禪法)이다. 오직 달마가 전한 것은 바로 불체(佛體)와 같아서 모든 문호가 특이 하다 고 하였다. 달마선 이전에 중국 안세고(安世高)의 수식관(數息觀), 달마다라의 염불선(念佛禪), 백연사(白蓮社)의 염불관(念佛觀)등이 유행 했었지만 아직 하나의 선종으로 독립된 것은 아니었다.
달마종(達摩宗)이라 함은 달마대사를 개조로 한 종이라는 뜻이다. 조계 혜능(曹溪 惠能) 이후에 와서야 선종으로 공칭되기에 이르렸다.
선종은 모든 교종에 대립되는 종파로서 교종과 상대적인 것만이 아니라 교종보다 차원을 달리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종지(宗旨)를 내세우게 되므로 선종의 존재적인 특징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2) 선종(禪宗)의 종지(宗旨)
법상(法相), 삼론(三論), 천태(天台), 화엄(華嚴) 등의 교종과 같이 어떤 경론(經論)을 소의로 한 종(宗)이 아니라 불입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이 사구(四句)의 종지를 내세우는 바 백천경론(百千經論) 밖에 불(佛)의 별전(別傳)한 뜻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이 또한 불교의 한 종이므로 모든 경론은 달(月)을 가러 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므로 진리인 명월은 문자언설(文字言說)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언외(言外)의 묘리(妙理)를 스스로 깨닫는 데에 있다.
3) 선종(禪宗)의 제 종파(諸 宗派)
선종의 계보로서는 의례히 초조 달마(達摩), 2조 혜가(慧可) 내지 육조 혜능(惠能)으로 공인되어 왔다. 그러나 돈황본(敦煌本) 능가사자기(愣伽師資記)에 의하면 달마대사는 능가종(愣伽宗) 제2조로 되어 있고 초조는 구 나발타라삼장(求那跋陀羅三藏)이다.
그 계보는
제1조 구나발타라삼장(求那跋陀羅三藏)
제2조 보리달마 (菩提達摩)
제3조 혜 가 (慧 可)
제4조 찬 선 사 (璨 禪 師)
제5조 도신선사 (道信禪師)
제6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제7조 신수대사 (神秀大師), 현의대사 (玄義大師), 노안대사 (老安大師)
제8조 보적선사 (普寂禪師), 경현선사 (敬賢禪師)
이 사자기(師資記)는 능가종(愣伽宗) 제7조인 현의대사의 제자 정각(淨覺)의 찬(撰) 이다. 정각은 북종의 신수계(神秀系)인데 그 종이 곧 능가종이므로 인법사승(人法相承)의 계보로서 이 글을 기록한 것이다. 이 능가종은 홍인(弘忍) 하에 신수(神秀)를 정통으로 한다.
(1) 달마종(達摩宗)
달마선을 능가선적 계보로 보더라도 구나발타라를 제 1조로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구나발다라가 다만 능가경의 역주(譯註)일 뿐 달마와 사자(師資) 관계가 전무하고 동시대인도 아니다. 능가경은 꼭 구나발타라의 전유가 아니기에 달마는 달마대로 능가경을 전수하였던 것이므로 구나발타라 를 초조로 한 것이다.
(2) 신수(神秀)의 북종(北宗)
선종(禪宗)이라면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위앙종(潙仰宗), 법안종(法眼宗), 신수종(神秀宗) 우두종(牛頭宗), 정중종(淨衆宗) 하택종(荷澤宗)등 많은 종파가 있다.
달마선계(達摩禪系)는 혜능대사(惠能大師)를 중심으로 한 조계남종(曹溪南宗)이 일어서기에 앞서 신수(神秀)의 북종이 달마의 정통으로 그 선풍이 북지(北支)를 풍미 하였다.
신회(神會)가 개원(開院) 20년(732) 남종의 정통임을 선언하고 투쟁하기 전에는 천하가 오직 북종만이 있는 줄만 알 뿐 조계의 선지(禪旨)가 따로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5조 홍인 문하에는 신수(神秀), 법여(法如), 지선(智詵), 노안(老安), 혜능(惠能)등 수십 명의 대덕이 있었다. 이 가운데서 신수(神秀)가 가장 연덕이 높고 도행이 거룩했다. 신수는 양경법주(兩京法主) 이제문사(二帝門師)로서 그 덕망은 일세에 풍미하였고 그 교세는 크게 떨쳤다.
(3) 정중종(淨衆宗)과 보당종(保唐宗)
족계남종(曹溪南宗)은 하택신회(荷澤神會)에 의하여 건립 되었지만 하택종이 성립될 무럽에 일남계(釰南系)의 정중종(淨衆宗)이 분립 하였다. 황매홍인(黃梅弘忍 602ㅡ675) 문하에 지선선사(智詵禪師 609ㅡ702)가 있었다. 지선은 처음에 현장법사(玄奘法師) 에게 경론을 익히고 뒤에 홍인에 게 귀의하여 법인을 전수 하였다고 한다. 그 제자에 처적(處寂 659ㅡ732)이 있었는데 그 법인을 진남(鎭南) 정중사(淨衆寺) 무상대사 (無相大師 680ㅡ756)에게 전했다. 무상은 신라 왕족으로서 속성이 김(金)씨 이므로 세인은 김화상(金和尙)이라 불렀다 그는 무억(無憶), 무념(無念), 막망(莫妄)의 3구를 주지로 하여 전도 하였다. 무억은 과거 일을 생각하지 않음이요, 무념은 미래를 염려하지 않음이요, 막망은 지(智)와 상응 하여 혼란 하지 않음 이라고 하였다. 무상의 제자 무주(無住, 714ㅡ774)는 보당사(保唐寺)에 주하였으므로 세인이 보당종(保唐宗)이라 하였다.
(4) 조계남종(曹溪南宗)과 하택종(荷澤宗)
신수를 북종의 계주라고 하면 혜능(惠能)을 조계남종의 개조로 본다. 그러나 조계남종이 따로 성립되기에 앞서서 북종이 크게 세력을 떨치었는데 혜능 입적 후 12여년에 신회가 낙양에 들어가서 북종과 대항하여 남돈(南頓) 종지를 선양하므로 비로소 남북 종의 명칭이 들어 났다. 신회가 입적한 후 30여 년인 정원(貞元) 12년(796)에 선학전(禪學傳) 을 모아서 선종 종지를 사정하고 혜능을 육조로, 신회를 제7조로 정하므로 북종에 대하여 조계남종이 확정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조계종이라거나 혜능 종이라 하지 않고 하택 종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하택 종이라 함은 남악 파와 청원 파(靑原派)에서 마조(馬祖), 석두(石頭)와 같은 거장이 나와서 조계남종의 선풍을 크게 휘날리기 이전의 조계 남선을 포함시키게 되었다. 그때에 국법으로 신회가 조계대사를 이어 7조가 되었다. 그래서 세인은 선에 남돈북점(南頓北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날과 같이 합리주의 만을 인정하는 시대의 선은 만인에게 보편한 지도체계가 요청된다.
고려시대에 새로운 불교 운동자인 보조국사(知訥 普照國師 1158ㅡ1210)는 종밀(宗密)의 선교일치(禪敎一致), 정혜쌍수(定慧雙修),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이념을 부활시켰다. 그리고 초 이론적인 간화선(看話禪)을 활용했다.
(5) 남악파(南岳派)와 홍주파(洪州派)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등이 전개되기에 앞서서 조계남악파(曹溪南岳派)의 홍주종(洪州宗)과 청원파(靑原派)의 석두종(石頭宗)이 있었다. 그러나 후세에 5종이 전개된 뒤에는 홍주종과 석두종은 은밀했다.
회양화상(懷讓和尙 667ㅡ744)의 속성은 두씨(杜)이며 금주안강(金州安康) 사람이다. 약관에 형주 옥천사(荊州 玉泉寺)의 항경율사(恒景律師)에게 출가하여 숭산노안화상(崇山老安和尙)에게 도를 물었고 조계 혜능화상(曹溪惠能和尙)을 참방하였다. 양화상(讓和尙)은 형식적 좌선보다 불지견(佛知見)의 개발에 주안을 두어 그 법을 전하였다.
마조도일(馬祖道一709ㅡ788)은 정중사(淨衆寺)의 김화상(金和尙)의 제자로서 중국 선사상 마조의 지위는 조계이후 제일인 이다. 문하에 백장회해(百丈懷海 720ㅡ814)를 비롯하여 장경 회휘(章敬懷暉), 서당 지장(西堂智藏), 아호 대의(鵝湖大義), 반산 보적(盤山寶積), 마곡 보철(麻谷寶徹), 염관 제안(鹽官濟安), 대매 법상(大梅法常), 귀종 지상(歸宗智常), 분주 무업(汾州無業) 남전 보원(南泉普願), 등은봉(鄧隱峰)등 백삼십명의 용상이 배출되므로 남종조계는 북종신수의 법석을 능가하는 일대 선풍을 일으켰다. 조계남선의 오종칠가(五宗七家)를 통하여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분은 마조이다. 마조의 뒤를 이어 백장 회해(百丈懷海) 황벽 희운(黃蘗希運), 임제의현(臨濟義玄)에 이르러 임제종이 개립되고 황벽 희운 위산 영우(潙山靈祐), 앙산 혜적(仰山慧寂)으로 상승되어 위앙종(潙仰宗)이 분립되었다.
그 양종 문하에 수많은 명장이 배출되었지 만 마조의 분신일 뿐 그 구체자는 찾기 어려웠다. 마조는 그와 같이 중국 선종의 거성이었다.
(6) 청원파(靑原派)와 석두종(石頭宗)
남악과 동문에 청원 행사(靑原行思)가 있었다. 행사(行思 ㅡ740)는 길주(吉州)의 안성인(安城人)으로서 성은 유씨(劉)이며 도를 즐기더니 조계에 참여하여 인정을 받았다. 법을 전수한 뒤에 고향인 길주 청원산 정거사(吉州 靑原山 靜居寺)에 머물며 현풍을 고취 하였다. 그 문하에 석두 희천(石頭希遷)이 있어서 크게 선풍을 떨치고 그 문하에 천황 도오(天皇道悟 748ㅡ807) 약산 유엄(藥山惟儼 751ㅡ834), 단하 천연(丹霞天然 739ㅡ824)등 용상을 배출하여 선풍을 선양하였다. 이것을 청원파(靑原派)라고 한다.
석두 희천(石頭希遷 )의 속성은 진씨(陳) 서주(瑞州) 사람으로 어려서 조계에 참학하였고 조계 멸 후에 행사에 종학하여 법인을 수하였다. 돈오절윤(頓悟絶倫)하여 인각(麟角)의 칭여가 있다. 천보 초년(742) 형악(衡嶽 중국 5악의 하나) 남사(南寺)의 동쪽 반석 위에 초암을 짓고 살았으므로 세인은 석두화상이라 했다. 석두의 법계는 천황 도오ㅡ용담 숭신(龍潭崇信)ㅡ덕산 선감(德山宣鑒)ㅡ설봉 의존(雪峯義存)ㅡ운문 문언(雲門文偃)에 이르러 운문종(雲門宗)이 개립 되고 운문과 동문인 현사 사비(玄沙師備)는 나 한 계침(羅漢桂琛) 법안 문익(法安文益)으로 상승되어 법안종(法眼宗)이 개립되고 또 석두(石頭) 약산 유엄(藥山惟儼), 운암 담성(雲岩曇成), 동산 양개(洞山良价), 조산 본적(曹山本寂)에로 상승되어 조동종이 개립되었다.
(7) 우두종(牛頭宗)
우두산(牛頭山) 법융화상(法融和尙)의 선계를 우두종이라 하며 본종은 달마계 와는 관계없는 중국적 독창 선임이 알려져 있다.
우두산 법융선사의 속성은 위씨(韋) 윤주(潤州) 연릉인(延陵人)으로서 19 세에 유도 교전을 관통하였으나 만족치 않아 모산(茅山)에 들어가 삼론학을 배우고 응심 정좌하여 선관을 닦은지 20여년 백팔총지묘문(百八摠持妙門)에 들어가 요설을 다했다. 정관 17년(1118) 우두산 유서사(幽棲寺)에 들어가서 모암(茅庵)을 맺고 선정을 닦았다. 현경(顯慶) 2년에 건초사(建初寺)에서 법을 설하다가 입적하니 세수는 64세었다.
우두종지는 삼론반야(三論般若)의 공사상을 깊이 체득하여 제법개공(諸法皆空)을 주지(主旨)로 하여 오(悟) 수(修) 증(證)의 방편으로서 무불(無佛), 무중생의 공리(公理)를 요달하고 일체시처(一切侍處)에 임운무심(任運無心)하여 절관망조(絶觀忘照)함을 그 비요(秘要)로 한다. 융대사(融大師)의 제자로는 도찬(道贊), 도빙(道憑), 지암(智巖), 담관(曇瓘) 등 9인이 있다. 제 2조는 지암(智巖) 제 3조는 혜방(慧方), 제4 조는 법지(法持) 제5 조는 지위(智威) 제6조는 혜충(慧忠) 이후 4대에 이르러 종세는 쇠퇴하게 되었다.
5. 정토종(淨土宗)
정토종(淨土宗)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신앙대상으로 하여 신(信) 원(願) 행(行)을 닦으므로 그 서방세계에 왕생하기를 종지로 하는 종파로서 정토종 또는 염불종(念佛宗)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종의 소의경전은 무량수경(無量壽經)과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과 아미타경(阿彌陀經) 등이다. 이상을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한다.
다른 대 소승 교설에 의한 수행은 난행도(難行道)라 하고 정토문(淨土門)은 이행도(易行道)라 한다. 난행도라 함은 자력으로 수도하여 불과(佛果)를 증득하려 하므로 많은 난행을 겪어야 하는데 정토문은 염불의 공덕에 의하여 타력으로 정토에 왕생하여 불과를 이루게 되니 쉬운 길이라는 것이다.
당나라의 도작(道綽)은 불타의 일대교를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으로 나누었다. 이 세계에서 스스로 정근수행(精勤修行)하여 성불하는 것을 성도문(聖道門)이라 하고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하여 신(信) 원심(願心)을 내어 염불하여 정토에 왕생하는 교법을 정토문(淨土門)이라고 한다. 당나라의 선도대사(善導大師 613ㅡ681)는 관경소(觀經疎)에서 이 세계에서 수행하여 성위(聖位)에 들어가는 모든 교리는 점교(漸敎)이고 염불의 공덕으로 정토에 왕생하여 성위에 들어가는 것은 돈교(頓敎)라 했다.
이 정토 왕생사상의 연원은 인도에서 이미 용수(龍樹) 세친(世親)에 의하여 개척되었다. 용수는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일체 교설에 의한 자력성불은 난행도인데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한 염불행으로 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이행도(易行道)라 했다. 그 뒤에 세친은 정토론(淨土論)을 저술하여 예배(禮拜) 찬탄(讚嘆) 발원(發願) 관찰(觀察), 회향(回向)의 염불문을 닦으므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아미타불을 친견한다고 하였다. 관찰문은 지관(止觀) 곧 밖으로 모든 방연을 그치고 안으로 정토와 불상을 관하므로 삼매를 성취하여 왕생의 직접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관을 중심으로 한 염불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일심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라는 원과 믿음을 고취한 것도 그의 신앙 면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정토부의 경전이 처음 번역된 것은 삼국시대에 강승개(康僧鎧)가 무량수경을 번역한 것이 효시가 되며(252ㅡ253) 그와 동시에 지겸(支謙)은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번역 하였다.
동진(東晋) 때에 서역승 불도징(佛圖澄 232ㅡ348)의 제자에 도안(道安 312ㅡ385)은 반야(般若) 학자로서 선관과 정토왕생(淨土往生), 도솔왕생 사상을 고취하였다. 도안의 제자 혜원(惠遠 324ㅡ417)은 여산(廬山)에 들어가서 동림사(東林寺)를 세우고 선법을 일으키며 아미타불을 모시고 정토왕생을 발원하였으며 도속 123인과 백연사(白蓮社)를 결사하여 염불수행을 하였다. 그 염불은 정토와 부처님을 관상(觀想)하는 염불이었다. 백연사의 염불은 일종의 선관으로서 오정심관(五停心觀)의 하나인 염불관이라고 한다.
강량야사(畺良耶舍)가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번역하고 그 선법을 지공(誌公)에게 전하였는데 이 또한 염불관이라 한다. 남지종의 담홍(曇弘)은 무량수경 및 관경을 외우며 정토왕생을 발원하면서 분신하기도 하였으며 북지에도 정토신앙이 유행되어 혜광(慧光), 도빙(道憑)도 왕생을 발원 했다. 중국의 정토종 개조로서 담란(曇鸞 476ㅡ542)은 예찬정토십이게(禮讚淨土十二偈)와 정토론주(淨土論註)를 지었다. 도작(道綽 562ㅡ645)은 담란(曇鸞)이 입적한 20년 뒤에 태어난 사람으로 14세에 출가하여 열반경(涅槃經)을 익혔고 현중사(玄中寺)에서 담란의 비문을 읽고 정토신앙에 들어갔다. 입적한 뒤에 방광의 서기가 있자 그에 감복 되어 정토신앙에 귀의한 이가 많았다고 한다. 그의 저서 안락집(安樂集)은 정토신앙의 중요한 법문이다. 선도(善導)는 서하에서 도작을 만나서 염불업을 닦았다. 그의 저서에 관경소(觀經疎) 법사찬(法事讚), 관념법문(觀念法門), 왕생예찬(往生禮讚), 반야찬(般若讚)등이 있다. 그의 제자 회감(懷感)은 본래 법상조(法相宗) 사람으로서 선도를 찾아 와 염불삼매를 얻었다.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을 지어서 정토신앙의 회의를 풀었다. 이가 정토종 제 4조가 되었다. 제 5조 소당(少唐)은 법화 능엄 화엄경을 배우더니 기서에 감독하고 광명사 선도화상의 영당에 이르러서 서거를 얻고 정토문에 귀의하여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정토업을 닦았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후 선도라 불렀으며 그의 저서로는 이십사찬(二十四讚), 서응강전(瑞應剛傳) 이 있다.
담란계의 정토종 외에 자민삼장(慈愍三藏 680ㅡ748)계가 있다. 자민의 이름은 혜일이며 의정 삼장(義淨三藏)을 만나서 서천순방의 뜻을 세우고 중종(中宗) 사성(嗣聖) 19년(702)에 떠나서 3년간 동남 해 중 여러 나라를 역방한 뒤 13년 동안 인도제국을 편력하였다. 다시 4년간 설산 지방을 순회하고 북인도 간다라지방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답파하고는 세간의 고통을 사무쳐 느끼고 이 고에서 벗어나는 법을 여러 선지식에게 묻자 학자들은 정토신앙을 예찬하였다. 그리고 간다라에서 관세음보살로부터 이리행 원(二利行願)은 왕생정토의 염불로부터 얻는다는 계시를 받고 현종 개원 7년 (719)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전후 18년 동안의 여행이었다. 이에 현종은 크게 감회하여 자민삼장의 호를 내렸다, 근 종생토록 정업을 닦고 또 타인에게도 권했다. 저서에는 왕생정토집(往生淨土集), 반야삼매찬(般若三昧讚), 서방찬(西方讚)이 있으며 그의 사상은 선정일치(禪淨一致)에 기본 하였다고 한다.
6. 법상종(法相宗)
법상종(法相宗)이린 사물의 성질을 밝혀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性)이란 불변의 본체를 말하며, 상(相)이란 변화하고 차별로 나타난 현상계의 모습을 말한다. 법상의 법은 본체적이며 정신적이며 정신적인 사물 즉 물질과 마음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가러킨다. 따라서 법상종의 주요 목적은 모든 존재의 성질과 모습을 탐구하는 것이다. 법상종에서는 사물의 본성을 우리의 마음과 의식 즉 심식(心識)이라고 보고 이 심식이 외부로 드러난 모습이 모든 현상이라고 보기 때문에 유식종(唯識宗)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소의경전은 해심밀경(解深密經)과 성유식론(成唯識論),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이며 인도에서 무착(無着)과 천친(天親)이 세웠고 중국에서는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계현론사(戒賢論師)에게 배워 와서 규기(窺基)에게 전했다. 규기는 자은사(慈恩寺)에 있었으므로 일명 자은종(慈恩宗)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원측(圓測)이 현장에게 유식론과 유가론을 배우고 유식소초(唯識疎抄)를 지었다. 계법과 점찰법(占察法)을 겸해 닦아 실행하고 법상종의 종지를 제자 영심(永深) 보종(寶宗), 신방(信芳)등에게 전하여 법주사 동화사 등에서 크게 떨첬다.
이종은 우주만유의 본체보다도 현상을 세밀히 분류 설명 했으므로 법상종이라고 하며 유식종이라 함은 온갖 만유는 오직 식이 변해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만유는 오로지 아뢰야식으로 연기한 것이라 한다. 그 연기의 주체인 능변(能變)의 시초는 제 8식이며 그 능변은 제 7식이라 한다. 이것들은 다 내심으로 외경을 변현 하는 것이므로 삼계유심, 심외무별법을 설한다. 만유를 분류하여 오위백법(五位百法)으로 정하며 만유의 참된 실재와 허망을 밝히기 위하여 3성을 설한다. 식이 바깥 경계를 인식하는 과정에 나아가서는 이를 4분으로 나누어 세밀히 설명하고 유식의 이치를 깨달아 알게 하는 방법으로 5중유식관을 세웠다. 중생이 해탈하는 방법에 나아가서는 5성이 각각 다르다고 말하여 영구히 해탈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 그 종의 삼승교 만이 진실하고 다른 종파의 일승교는 가설이라 하므로 이 종을 권대승(權大乘)이라 한다.
이도에서는 본래 중관종(中觀宗)에 대립하여 유가종이라 부르던 것인데 불멸 후 900 년경에 미륵이 중 이도에 내려와서 유가사지론 분별유가론 대장엄론 변중법론 금강반야론 등을 설하고 무착과 천친이 이를 이어 받아 섭대승론 현양성교론 혹은 섭대승론석 유식삼십송 등을 지어 교의를 발휘했고, 호법등 10대론사는 또 호법(護法)의 문하에 계현(戒賢)이 당시에 중국으로부터 건너간 현장에 그 법을 전했다. 현장(玄奘)은 돌아 와 10대론사의 해석을 합하여 성유식론을 짓고 그 제자 규기는 유식론술기 유식론추요를 지어 본종의 교의를 크게 이루었다. 이 유식론추요와 혜소(慧 沼)의 유식요의등(唯識了義燈)과 지주(智周)의 유식연비초(唯識論演秘抄)는 유식의 3대소라 하여 본종의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되었다.
7. 삼론종(三論宗)
중관파(中觀派)의 세 논서를 채택하여 이해의 근간을 삼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셋은 중론(中論) 시이문론(十二門論), 백론(百論)인데 이를 한역하여 중국에 전했던 인물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였으므로 이 삼론종의 창시자는 구마라집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 종파의 이론을 대성한 분은 길장(吉藏)이란 스님이다. 이 종파를 전승해온 계보에는 승랑(僧郞)이란 고구려 출신의 스님이 있다. 이 종파의 교설은 크게 세 가지로 전개된다. 즉 파사현정(破邪顯正), 진속이제(眞俗二諦), 그리고 여덟 가지의 부정을 통해 중도를 밝힌다는 팔불중도(八不中道)이다. 삼론종은 중관사상(中觀思想)의 이해로 중도(中道)의 해석에 전념했는데 중도란 아무런 걸림이 없이 바르게 관찰하는 것 즉 무애정관(無礙正觀)이다. 그리고 이의 이해를 위해 파사현정을 설한다. 즉 파사 이외에 따로 현정을 이해하지 않고 파사가 그대로 현정이라고 한다. 잘못을 깨뜨리는 자체가 바로 바름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정이란 중도를 깨우치는 것으로서 걸림이 없는 바른 관찰이다. 그러나 세속적인 진리에 의하지 않고서는 궁극의 진리가 드러나지 않으며 이 궁극의 진리에 의하지 않고서는 열반을 증득할 수 없다하여 진속이제를 설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일상적인 말과 부처님의 가르침인 교리이다. 중론에서는 모든 부처는 이제에 의하여 법을 설하는데 첫째는 세속제(世俗諦)로써 설하고 둘째는 제일의제(第一義諦)로써 설 한다고 하며 열반경(涅槃經)에서는 중생을 수순하기위해 이제로써 설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제란 설법의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즉 공(空)에 집착하는 자에게는 세속의 진리를 설하여 유(有)를 밝히고 유에 집착하는 자에게는 참된 진리를 설하여 공(空)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공이 곧 유이며 유가 곧 공이다. 이 것이 모든 진리의 실제 모습이다. 그런 진리의 실상을 보다 확실히 인식시키기 위해 팔불중도(八不中道)를 설한다. 이는 연기(緣起)의 진리를 밝히기 위한 여덟 가지 사항의 부정이다.
不生不滅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다.
不常不斷 지속됨도 없고 단절됨도 없다.
不一不異 통일됨도 없고 다양함도 없다.
不來不出 들어오는 것도 없고 나가는 것도 없다.
이 팔불중도는 8 가지의 미혹을 타파하여 일체의 집착심을 정화하기 위해 설해진 것이다.
삼론종의 실천은 공관(空觀)에 입각하여 선(禪)을 닦는 것이다. 선이라는 집착이 없는 명상의 실천을 통하여 공관(空觀)과 불성(佛性)이 상통함을 실현코자 하였다. 길장의 제자 중에는 혜관(慧灌)아란 스님이 있었다. 그는 고려 사람으로 중국에 유학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삼론종의 개조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이후에는 더 이상 진작되지 않았으나 선종에 발전적으로 흡수 되었다.
8. 율종(律宗)
율장(律藏)에 의하여 세운 종지로 석존(釋尊) 일대의 설법 중에서 제자의 부정한 행위를 하였을 적 마다 낱낱이 그 근거에 응하여 율을 일러 바로잡았다.
제1결집 때에 우바리 존자가 80회에 나누어 외어내어 팔십송률(八十誦律)을 결집했고 그 뒤에 가섭, 아난, 말전지, 상나화수, 우바국다의 5 존자가 차레로 전승 했으며, 불멸후 100년 경 다무덕부, 살바다부, 가섭유부, 미사색부, 바추부라부의 5 부로 나누었다.
중국에서는 250년(위의 가평 2년)에 중인도의 담가가라가 처음으로 사분률(四分律)의 1분을 전했고 그 후 150여 년을 지나 요진(姚秦) 때에 구마라집이, 404년에는 십송률(十誦律)을 번역했다. 그리고 불타야사가 408년에 사분률(四分律)을 번역 했다.
백제(百濟)의 겸익(謙益)이 인도에 가서 율을 공부하고 배달다삼장과 함께 율문을 번역 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에 가서 종남산 운제사의 승니의 기강을 숙정하고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세우고 보름마다 계를 설해 율종의 초조가 되었다.
9. 조계종(曹溪宗)
조계종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다. 고려시대까지 불교가 국교로서 숭상되던 때는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성립된 거의 모든 불교종파가 유입되었으며 또한 독자적인 발전도 이루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과거의 전통은 여지없이 단절되고 말았다. 우리의 불교를 더듬 어 보면 많은 종파가 성립되었고 그 중에는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명칭도 있었다. 조계종도 그 중의 하나이며 우리의 전통불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문제점들이 있다. 아직까지 그 뿌리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또 독창적이라 할 만 한 종지도 확연하지 않다. 한국불교가 현재의 조계종이라는 종명은 일제치하인 1941년의 일이다. 현재의 조계사인 태고사(太古寺)를 세워 총본산으로 삼고 1911년 총독부의 사찰령으로 인해 조선불교 선교양종(朝鮮佛敎禪敎兩宗)이라는 애매모호한 명칭으로 불러오던 것을 과거의 선종의 일파로 있던 조계종이란 명칭으로 바꿨던 것이다.
조선조의 태종은 억불정책의 일환으로 종래의 12종을 7종으로 정리했고 또 세종은 이중 3종을 묶어 선종이라 했고 4종을 묶어 교종이라 했다. 이때 선종 속에는 조계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선종으로 폐합됨으로써 조계란 그 이름을 잃고 말았다. 조계종은 고려시대에 성립되었던 것은 분명하나 그 개조나 건립연대에 대해 언급이 없다. 중국의 선종은 일찍이 전래되어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는 아홉 지파로 성황 했었다. 따라서 조계종이 선종인 것은 분명하며 그 연원은 선문구산이 될 것이고 그 아홉 파의 선종이 하나의 종파로 묶어 조계종이 되었을 것이다. 그 내용을 살피면 혜능(惠能)의 선을 이어 받은 것이라 여겨진다. 혜능의 돈오선(頓悟禪)이 전래된 이래 조계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경우 조계는 모두 혜능을 가르키는 말일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보조지눌국사(普照智訥國師 1158ㅡ1210)가 6조 혜능에 의거하면서 독자적인 선풍을 크게 떨쳤고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 1301ㅡ1382)는 원나라에 가서 인가를 받고 명성을 날린 후 돌아와 과거의 구산선문(九山禪門)을 통합 하였다하니 현재의 조계종은 그 연원을 이 두 분에게서 찾고 있다. 그래서 조계종이 보조의 선을 계승했다는 입장과 태고의 선을 계승했다는 입장이 대립되고 있다. 현 조계종 자체내에서는 보조선을 전통으로 삼는 입장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는 한국 고유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의 독창적인 활동과 사상으로는 정혜사(定慧社)라는 결사를 조직하여 정진하였으며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한 것이다. 돈오(頓悟)와 점오(漸悟)는 중국 선종의 상반된 기본입장이었다. 그러나 보조는 양쪽의 가치를 다 이정하여 돈오로서 깨달음을 얻고 나서 모든 사람을 위한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해야한다는 입장이 돈오점수이다. 정혜쌍수는 실천인 선(禪)과 이론인 교(敎)를 조화시킴이다. 이는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의 맥을 잇는 것이다. 조선시대 이래 우리나라의 선은 임제종(臨濟宗)계인 간화선(看話禪)을 주류로 했다. 그러나 태고(太古)는 중국에서 전해온 임제종계통의 선을 잇고 있다.
일제치하에서 태고사를 짓고 조계종을 재출범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임제종도 6조 혜능 이래의 조사선(祖師禪)으로부터 분파된 것이다. 따라서 조계종의 성격은 부립문자(不立文字), 교오별전(敎外別傳)의 기치아래 성립된 돈오선이며 실제에 있어서는 모든 선교사상을 포괄한 한 불교이다. 이렇듯 종지(宗旨)와 종통(宗統)의 문제가 얽히게 된 것은 조선시대의 억불정책과 일제의 말살인 불교정책에 기인한다.
일제말기에 조계종을 출범시켜 종단의 쇄신을 기했지만 종권의 구성원의 대부분이 신교육을 받은 대처승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상황이 해방이후의 이승만 정권하에서는 불교정화라는 미명하에 대처승과 비구승과의 종단분규를 야기 하였다. 1960년에 극심했던 분규의 와중에서 군소종단이 난립하였고 조계종 자체 내에서는 내실 있는 종지를 선양하는 일에 주력할 력량이 없었다. 비구측과 대립하던 대처측은 1972년에 이르러 급기야 조계종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정식으로 태고종을 출범시켰다. 그럼에도 양측의 분규는 완전히 종식 되지 않았고 더 심각한 문제로서 조계종 내에서는 분규가 첨예화 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 점철된 조계종내의 분규는 주로 종권 다툼으로 일관하여 역시 불교발전의 저해요소가 되었다.
이제 분규는 어느 정도 가라앉고 불교인은 한결같이 불교 중흥에 힘써야 할 때라고 한다.
조선조의 불교말살정책으로 퇴보 위축의 길을 걸어 왔다. 모처럼의 진보 발전의 기회를 맞았으나 외래의 이데올로기와 극심한 이교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종교의 세계적 추세가 불교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음을 감안해서라도 조계종은 제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 밖으로 내실을 기하면서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길 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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