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무언(無言)이라, 참된 이치는 말이 없는 자리다. 말로 할 것 같으면 그만 어긋나 버리고 말을 하지 않으면 그만 잃어버린다. 진리는 말이 없는데 그것을 말로 하려고 하면 안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부처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방편으로 팔만사천의 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법사도 할 말이 없지만 여러분들이 법회에 참여했기 때문에 말로써 설법을 하는 것입니다.”
경남 양산 통도사의 산내 암자인 백련정사 감원 원산 스님은 8월 16일, 음력 7월 초하루 법회를 맞아 찾아든 200여 불자들을 위해 법상에 앉았다.
“우리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즉 땅기운, 물기운, 불기운, 바람기운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수화풍으로 된 육체가 법문을 들을 줄도 모르고 할 줄도 모른다 이 말입니다.
‘무엇이 법문하고 듣는가?’ 하고 물으면, ‘입이 법문하고, 귀가 듣습니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송장은 입이 있고 귀가 있어도 말을 못합니다. 육체가 법을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니며, 허공이 법을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역력히 밝은 가운데 형단(形段, 모양)이 없는 한 물건이 있는데 그 자리가 법문을 하고 듣는 것입니다. 형단없는 그 자리가 모든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의 그 자리고, 역대조사의 안목이 거기 있는 것입니다. 또 영가의 본래면목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불교는 ‘나고 죽는 것이 큰일이다(生死大事)’라고 했습니다. 오늘 축원할 때 많은 영가 이름을 불렀는데 과거 많은 영가가 태어나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 왔다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아는 이가 잘 없어요. 부처님께서 정반왕궁의 태자로 태어나서 지존의 자리에 있었지만 아무리 왕이 된다 해도 나고 죽는 일을 해결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싯다르타 태자가 생로병사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하여 설산 6년 고행을 하고 보리수 나무 아래서 대도를 깨친 것입니다.”
이날 스님은 49재를 맞은 영가를 위해 “육체가 나고 죽는것은 허공 가운데 구름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과 같이 체가 없으며, 생사를 따르지 않는 한 물건이 있어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 것”이라며 “생사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의 자리에 태어나는 것이 불교의 최고 목표”라고 설했다.
초하루 법회와 49재 천도재가 끝나고 <금강경> 일독이 끝난 후에야 스님을 친견할 수 있었다.
스님에게 출가동기부터 대뜸 여쭈었다.
“입산동기라…. 세상에 할 것이 있어야지. 장사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게 될 것 같거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불합리하지. 비진리의 세계잖아. 그 속에서 할 것이 없었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 지금 생각하면 절에 너무 잘 왔다 싶어. 정말 천만 다행인게지.”
스님은 1998년 2월 15일부터 2001년 3월 9일까지 3년 동안, 하루 한끼 공양을 하며 3년 무문관 수행을 했다. 당시, 조계종 교육원장까지 역임한 중진 스님이 모든 것을 던지고 들어간 무문관 수행의 모습에 세간이 떠들썩했던 것은 물론이다.
“스님, 무문관 결사를 마치고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수행자의 당연한 길을 걸었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씀하신다. “사람이 어릴 때와 성장했을 때가 다른 것처럼, 법당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처럼, 좀 다르다”며 “물을 마셔보면 달고 짠 것을 알 수 있듯이 물을 마셔봐야 아는 것이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불자들에게 ‘생명의 근원을 알아야 한다’고 늘 강조하는 원산 스님을 뵙고 있으니, 얼마전 팔공산 갓바위를 올라갔다가 만난 사람들이 생각났다. 경기침체다, 청년실업자 문제다 해서 좌절과 고민에 빠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면 될지를 여쭈었다. 또 부처님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비는 것이 기복신앙인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질문했다.
“중생 세계는 참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요. 배고프고, 슬프고, 괴로운 세상이지.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는 말이 있어요. 결국 불교의 목적은 고통을 떠나 즐거움(죽음이 없는 낙)을 얻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지. 그렇기에 갓바위 오르는 이들을 절대 기복으로 봐서는 안돼요. 부처님 찾는 동기는 저마다 다르더라도 마침내 괴로움 없는 열반락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나고 죽는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부처님 사상이야. 일념으로 기도를 잘 하다보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도 있지요. 괴로운 마음이 풀어지면 소소한 어려움도 다 저절로 해결되는 법이지요. 궁극에는 생사해탈에 까지 이릅니다.”
그렇다면 일반 재가불자들에게 맞는 수행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스님은 “상근기일 경우 참선이 좋고 하근기인 경우 기도, 주력이 적당하지만 어느 것을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가는 방법에도 고속철이나 무궁화 열차를 타기도 하고, 걸어서 가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어요. 어쩌면 걸어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며 자기에게 맞는 것으로 일념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이셨다.
“근기에는 상하가 있지만 법에는 상하의 구별이 없고 시공도 초월했다”고 말했다. “세상엔 빠르고 느린 것이 있지만 그 자리에는 빠르고 느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주공간이 하나로 통해 있는 것을. 가고 옴이 없고 공간과 시간도 없어 모든 것이 평등하며 무차별이지요.”
원산 스님은 근세 우리나라 최고의 선지식으로 추앙받았던 경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또 대강백인 관응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다. 두 은사스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기억나는 가르침을 넌지시 여쭸다.
“경봉 스님은 ‘사람이 객으로 남의 집에 하룻밤을 유숙하더라도 주인을 찾아봐야 무례한 사람이 되지 않거늘, 육체를 평생 끌고 다니는 자기 주인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아서야 말이 되는가’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경봉 스님의 한 말씀이 마음 한 구석을 서늘히 울리고 지나간다.
또 관응 스님은 ‘세상 모든 것은 하나’임을 늘 말씀하셨다고 한다. 스님은 “진리를 알지 못해 갈등과 시비,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고, 나와 너를 각각 보기 때문에 우리 삶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즉 무명(알지못함)으로 모든 것이 일어나니,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스님의 계획을 물어 보았다. 스님은 공부를 더 하고싶다는 ‘욕심아닌 욕심’을 숨기지 않으셨다. 조계종이 화합종단으로 가야한다는 뜻도 내비추셨다. 그럼에도 결론처럼 “계획은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무계획이 나의 계획입니다. 나고 죽는 것이 계획없는데 무슨 계획을 세울게 있습니까. 그저 앞으로만 갈 뿐이지.” 그 말씀에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라는 나옹 선사의 게송이 문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