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폭한 로맨스] 08 - 어쩌다보니 백업플레이
1. 프롤로그 (박무열의 집 거실)
박무열이 실종되기 전날 밤이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즈음의 일기장을 본다.
(초등학교 5학년 박무열 목소리) : 오늘도 비가왔다. 감독님이 또 자유시간을 줬다. 애들은 감독님이 가자마자 집에 갔다.
혼자서 스윙연습하고, 손목운동하고, 스쿼트를 했다. 집에 가면 야구를 할 수가 없다.
나는 야구가 좋다. 엄마보다 좋다. 야구를 할 수 없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박무열이 일기장을 내려놓는다. 나이트 테이블위에서 공을 집는다. 실밥을 따라 공을 만져본다.
그가 눈길이 닿는 곳보다 더 먼 곳을 본다.
2. 타이틀
제 8회 ‘어쩌다보니 백업플레이’(*아참 음악은 계속 나오죠 스포츠 중계음악)
백업플레이 의미 자막으로 뜬다.
‘백업플레이란 동료의 수비를 돕기 위해 뒤를 받쳐주거나 수비중 틈이 생긴 공간으로 위치를 옮겨서 하는 협력플레이를 뜻한다.’
3. 박무열의 집 거실 (낮)
진동수, 유은재, 아줌마...
유은재 : (일기장의 마지막부분을 중얼거린다) 야구를 할 수 없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진동수 : (통화중이다) 예 아버님.... 혹시 연락 오면 이쪽으로 전화 좀 주세요 .... 예 부탁드립니다. (끊는다)
진동수가 박무열의 핸드폰으로 최근통화를 검색한다.
‘동수형. 동수형. 김실장. 꼴통. 꼴통. 김실장. 동수형. 동수형. 동수형....
아줌마 : (넋이 나간 상태다) 내 잘못이야...이럴 수도 있다고 예상했어야는데....내가 좀더...
(문득) 경찰!... (전화기를 잡는다)
진동수 : (아줌마를 말린다) 무열이가 없어졌다는 게 알려지면 기자들이 또 달려들 거예요.
그럼 무열이는 진짜 못 돌아옵니다.
아줌마 : (행여 울음이 터질까봐 흐느끼듯 심호흡한다)...
테이블위의 신문. 단호한 헤드라인 ‘선수자격박탈’
4. 선수자격박탈에 대한 인물들의 몽타쥬
-고기자의 방
‘선수자격박탈’ 고기자가 신문을 본다. 그는 기쁜 걸까? 슬픈 걸까? 애매한 얼굴로 한참을 앉아있다.
-병실
서윤이가 창턱에 기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중이다. 침대위에 신문이 놓여있다. ‘선수자격박탈’
그는 눈을 내리뜨고 있는데 긴 속눈썹 때문에 어쩐지 후회하는 듯 한 느낌도 난다.
-케빈장의 사무실
‘선수자격박탈’ 헤드라인의 신문.
케빈장이 비틀 거리며 물러난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주저앉는다.
케빈장 : (이럴 수는 없다) 아. 박무열!! 아! 특별보너스!!
-유은재의 집 거실
은재아빠가 자리돔회를 거실 테이블에 놓는다. 유창호가 샴페인을 터트린다.
김동아가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은재아빠 : 은재 어디 갔냐?
-유은재의 집 마당
유은재가 개집 옆에 앉아 달을 쳐다본다. 안에서 ‘만세 삼창’이 들려온다.
유은재가 달을 보며 한숨짓는다.
-홍보실
홍보실은 오랜만에 조용하다. 매일 매일 전쟁을 치루다 갑자기 일이 없어져서 다들 멍하다.
안장훈이 박무열에 대해 만들었던 보도 자료들을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린다.
김태한이 ‘선수자격박탈’ 신문을 접어 그 위에 툭 던진다.
다른 종이 쓰레기들이 쌓인다. 시간이 흘러간다.
- 박무열 집 복도
기자들이 복도에 가득 차 있다. 박무열에 대한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다.
(점프)
기자가 반으로 줄었다. 지쳐간다.
(점프)
서너 명의 기자들. 하품을 하다가 돌아선다.
5. 박무열의 집 거실 (저녁)
유은재. 진동수, 아줌마....세 사람은 여전히 앉아있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
유은재가 그날을 후회한다.
(인서트)
박무열 : 너도 그냥 내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냐? 그래서 그놈 때린거라구?
유은재 : (뒤늦은 대답을 중얼거린다) 아녀.
진동수가 문득 고개를 든다. 해가 진다.
진동수 : (중얼거린다) 야구를 할 수 없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아줌마 : (힘없이 돌아본다)...
진동수 : 야구를 할 수 있다면 살겠다는 거잖아..
유은재 : (진동수를 본다)...
진동수 : (유은재를 본다) 다시 야구할 수 있게 하면 돼요.
6. 선수협 사무실 복도 (낮)
진동수가 선수협 간부를 설득 중이다.
선수협회장 : (이동하며)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진동수 : (쫓아간다) 진우형!
선수협회장 : 누가 봐도 박무열이 잘못한 건데 선수협이 왜 끼냐?
진동수 : 무열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선수협회장 : 몰라서 묻냐?
진동수 : 무열이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잖아요.
선수협회장 : 징계위 가서 아무 말도 못했다며...
진동수 : 그건 뭔가 사정이 있으니까...
선수협회장 : (사무실로 들어간다) 박무열이 그 자식 때문에 우리 선수들 이미지가 얼마나 추락했는데...
내가 어딜가서 야구선수란 말을 못해.
진동수 : (쫓아 들어간다) 혀엉...선수협이 선수편을 들어줘야지...
7. 카페 (낮)
유은재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장발. 키 작은 남학생. 안경 쓴 남학생이 움찔거리며 들어온다.
유은재 : (손을 든다) 여기.
세 명의 오타쿠들, 그들은 1회에서 계란을 던졌던 사람들이다.
그들, 처음엔 유은재를 못 알아본다.
유은재 : (친한 척) 나 기억 못해여?
장발 : (혹시) 경호원?
유은재 : 예 그때 봤죠. 계란투척 때. (장발을 가리키며) 뻑무열님?
장발 : (그렇긴 한데) 에...
유은재 : (안경을 가리키며) 안타는 쓰레기님?
안경 : (고개를 끄덕인다, 왜 불렀는지 궁금해 하면서)...
유은재 : 박무열이라 쓰고 개차반님?
단신 : (고개를 흔든다) 아녀. 저는 ‘죽고 싶어 안달’인 데여.
유은재 : 아...그 동영상 진짜 (엄지손가락을 치켜준다)...
단신 : (의아한 와중에도 칭찬받으니까 좋다)...
장발 : (경계한다) 근데 왜 우릴...
유은재 : 뭐 그렇게 경계해여? 우리 다 식구예여. 나 ‘그놈 없는 세상!’
장발 : (경악한다) 에?
안경 : 진짜여? 박무열을 죽이는 아흔아홉 가지 방법을 쓴 그놈 없는 세상님?
유은재 : (고개 끄덕인다)...
단신 : (놀랐다) 와...경호원 누나가 우리 회원이라는 건 알았지만 세상에... (일어나서 꾸벅 인사한다) 영광입니다.
유은재 : 아이 뭘...
장발 : 금요일 밤에 ‘박무열 자격박탈 4천만 축하채팅’ 있거든요. 그때 꼭 오세요.
유은재 : (애매해진다) 에....
안경 : 근데 무슨일루...?
유은재 : 아..별건 아닌데... 박무열 없으면 누구 욕하면서 야구 보죠?
장발. 단신. 안경 주춤한다.
유은재 : 내가 꼭 챙겨보는 게임이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 시걸즈 경기. 또 하나는 그 놈의 드리머즈 경기.
생각해봐여.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얼만데.
장발 : 하긴... 뻑무열 손가락 다쳐서 세경기 못나왔잖아. 그때 시합이 재미없긴 했어여.
유은재 : 그렇다니까... 쓰레기님은요?
안경 : 난 박무열 있으나 없으나 그게 그걸 것 같은데. 미운놈은 또 생길테구.
유은재 : 안달님은?
단신 : 난 뻑무열보다 그 맞은 놈이 싫더라구, 웃는 게 가식적이지 않냐? 표정이 이거 하나야. (흉내 낸다)
안경 : (툭 치며) 잘생겨서 싫은 거면서...
유은재 : 그래서 말인데여. 우리 박무열 구명 운동할까요?
세명, 대놓고 놀란다.
유은재 : (장발 보면서) 박무열 없어지면 우리 카페도 없어지는데 뭔 재미야?
그 숱한 사진들 자료들....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질거구...아까워라.
장발 : (그건 그렇다) ....?
단신 : (회의적이다) 그치만 우리가 뭘 어떻게 해여? 인터넷에 글 좀 싸질른다고 뭐가 달라져여?
유은재 : 상징이죠. 안티까페 뻑무열에서 박무열 구명 운동 일어났다, 그러면 언론이 달려들거든.
단신 : (솔깃하다)...
유은재 : 박무열은 우리가 죽여야지. 야구도 모르는 놈들이 개나소나 달려들어서 죽이는 건 자존심 상하잖아. 안 그래요?
세 사람, 그런가 싶다.
8. 김동아의 집 거실 (밤)
유은재가 박무열의 일기장 박스를 내려놓는다.
‘스토커’에 관한 책을 읽던 김동아가 올려다본다.
김동아 : 뭐야?
유은재 : 읽을거리.
김동아 : (하나 집어든다. 일기장이다) 누구 거야?
유은재 : 이걸 읽고 글쓴이에게 소중한 장소. 인상적인 곳. 특히 우울하고 속상했을 때 갔던 곳 체크해줘.
김동아 : 왜?
유은재 : 박무열 찾아야지.
김동아 : 그러니까 네가 왜?
유은재 : 경호원이잖아.
김동아 : (의미심장하게 보며) 아니! 너 요즘 이상해. 경호원을 벗어났어.
유은재 : (이 날카로운 것) 뭐가...
김동아 : (더욱 날카롭게) 너 어제 마당에서 달보고 한숨 쉬었지?
유은재 : 그게 뭐?
김동아 : 한밤중에 잠 안자고 달 쳐다본다는 건 ‘나 고민 있어요’란 뜻인데...
유은재 : (들켰구나)...
김동아 : 유은재...이거 이거... (다알어 훗) 너...
유은재 : (들켰다)...
김동아 : 박무열한테...
유은재 : 동아야 그게...
김동아 : 약점 잡혔지?
유은재 : (한시름 놓으며) 뭘 상상하든 동아선생. 당신이 정답이야.
김동아 : (뿌듯하다) ....
9. 진동수의 집 거실 (밤)
진동수가 선수협 등록 선수들의 연락처를 체크중이다. 오수영이 차를 가져온다.
오수영 : 무열씨 지지 서명 받고 이 다음에 어떡할건데...
진동수 : 이의신청을 해야지.
오수영 : 가능해?
진동수 : 우리끼린 힘들고 구단이 움직여야 되는데... 그럴려면.
10. 구단 사무실 복도 (밤)
김태한이 퇴근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진동수) : 김실장...
김태한 누군가 불렀나 싶어 잠깐 뒤를 돌아보고 엘리베이터에 탄다.
11. 김동아의 집 거실 (밤)
유은재 : (고민한다) 문제는 김실장을 어떻게 움직이냐 이건데...
김동아 : 김실장을 움직이는 법? 간단해.
유은재 : (본다) ...?
김동아 : 로봇은 밧데리로 움직여.
유은재 : (기대한 내가 바보다. 일어난다)...
김동아 : 그리고 또 한가지 김실장을 움직이는 방법이 있긴 있지.
유은재 : 뭔데?
김동아 : (씨익 쪼갠다)...
유은재 : (다시 앉으며) 미인계라고 했다간 죽는다.
12. 커피숍 (낮)
김태한 : (들어와 앉으며) 박무열선수 연락 있습니까?
진동수 : (고개 흔든다) 구단에서는 어떡할 생각이야?
김태한 : 무슨 말입니까?
진동수 : 이의신청 안 해?
김태한 : 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진동수 :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김태한 : KBO서버가 다운될정도로 항의글이 폭주했었습니다.
박무열 제명운동에 3만이 넘는 사람이 서명을 했구요. 역대최곱니다.
진동수 : (바톤터치하듯 옆의 유은재를 본다)...
유은재 : 그럴수록 구단이 더 선수를 감싸야죠. 잘나갈 때만 우리 선수고 어려울 땐 남이고.. 그게 말이 돼요?
김태한 : 구단은 학교가 아닙니다. 끝까지 믿어주고 응원하고 그런 곳이 아닙니다.
유은재 : 좀 그래주면 안돼요? 우리 시걸즈 같았으면.
김태한 : (담담하게) 그러니까 시걸즈 야구가 2등인 겁니다.
유은재 : (발끈한다) 뭐여? 지금...
진동수 : (유은재를 말린다) 은재씨!!
유은재 : (대의를 위해 참는다)...
김태한 : (일어나려 한다) 더 이상 할 얘기 없으면...
진동수와 유은재가 마지막 보루를 보듯 옆을 본다.
믿음직하진 않지만 마지막카드, 김동아가 있다.
부지런히 쥬스를 빨아먹던 김동아.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다 마신 다음에...
김동아 : 경제용어로 설명해볼게요. 구단이 박무열을 도와 이의신청을 했을 때를 투자라 하고,
이의신청이 성공했을때의 이득을 기대수익. 실패했을 때를 리스크라고 한다면 말이죠.
기대수익과 리스크를 양쪽에 놓고 비교해 보세요.
김태한 : ....
김동아 : 제가 보기에 이 상황은 보기 드문 로우 리스크 하이리턴 같은데요.
유은재 : (뭔소리야 진동수를 본다)...?
진동수 : (자기도 모른다 고개를 흔든다)...
김태한 : (아. 그렇구나...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13. 단장실 (낮)
단장 : 이의제기?
김태한 :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지면 두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박무열이라는 걸출한 유격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
둘째는 구단 이미집니다. 선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드리머즈!
이 경우 박무열선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구단 충성도가 달라지겠죠.
이 두 번째 이득은 이의제기가 실패한다고 해도 성립됩니다.
단장 : (납득한다)...
김태한 : 반면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구단이 입어야 할 손해 역시 두가집니다.
약간의 금전적 지출과 제 식구만 감싼다는 부정적 이미집니다.
단장 : (의자에 몸을 젖히며 빙긋이 웃는다. 그렇다면)...
14. 홍보실 (낮)
홍보실은 여유롭다. 신문을 보거나, 채팅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느긋하게 앉아 하품을 하기도 한다.
김태한 : (들어오면서부터 자기 자리에 앉을 때까지) 박무열 선수자격박탈 이의신청합니다.
안장훈씨! 지금까지 보도자료 기사내용 정리해 주세요.
안장훈 : 예!
김태한 : 홍연희씨. 지금까지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진 케이스, 필요합니다.
홍연희 : 예!!
직원들, 빠릿해진다. 엉덩이만 걸친 채 늘어졌던 직원이 바른 자세로 앉는다.
15. 케빈장의 오두막 (낮)
케빈장이 유은재를 배웅한다.
유은재 : 다녀오겠습니다.
케빈장 : (무게감 있게 유은재를 보낸다) 그래.
유은재 꾸벅 인사하고 나간다.
케빈장이 책상을 지나 창밖을 본다. 책상위에 ‘새 사무실’ ‘새 가구’ 사진들이 쭉 펼쳐져 있다.
케빈장 : (지긋이 창밖 허공을 바라본다. 간절하다) 무사해라 박무열!! 돌아오라 박무열!!
그래도 가야겠거든.... 주고가라, 특별 보너스!!
16. 김동아의 집 거실 (밤)
김동아가 박무열의 일기장을 쌓아놓고 한권 한권 읽는다.
유은재가 들어온다.
유은재 : 찾았어?
김동아 : (투정) 재미없어.
유은재 : 누가 재미로 읽으래?
김동아 : (읽는다) 5월 2일 스윙 연습 300번. 펑고 30분, 노크 30분.
노크가 뭐야? 똑똑똑 이거 아냐? 그걸 뭐하러 연습씩이나 한대?
(휙 던져버린다) 쳇. 남자 나이 17세. 하루걸러 한번은 응.. 야한 꿈도 꾸고 그랬을 텐데...솔직하지 못한 자식.
유은재 : 찾은 거 내놔.
김동아 : (메모지 건넨다)...
유은재 : (메모된 거 읽는다)...
김동아 : (천장을 보며 드러눕는다) 난 이핼 못하겠다.
유은재 : (힐긋 본다)...
김동아 : (중얼 중얼) 내일 연습계획. 내일은 30분 더 연습. 내일 경기 목표. 내일 내일....
내일이 온다는 걸 어떻게 그렇게 철썩같이 믿을 수가 있지.
유은재 : (오랜 친구의 아픈 면을 본다)...
김동아 : (등을 보이고 돌아누우며 평소 어조로) 은재야. 친구야. 한번만 더 그런 눈으로 보면 너랑 친구 안한다.
유은재 : (눈길 거두며 순순히) ...미안.
17. 유은재네 집 마당 (새벽)
누워있던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운다.
유은재가 나온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자. 유은재가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대문을 나간다.
강아지가 왕 짖는다. 유은재가 ‘쉿’하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한다. 유은재는 먼데를 가는 옷차림이다.
18. 타구단 구장 로비 (낮)
야구선수가 지나간다.
(진동수) : 정수야.
선수 : (별로 안 반갑다. 일단 인사) 선배님.
진동수 : (다가온다) 여기 사인 좀 해라.
선수 : (애매하게) 예에...
진동수 : 얘기 들었지? 좀 해.
선수 : (그건 좀 곤란하다) ...그건 좀 ...구단이랑 상의도 해야 되고..
진동수 : 사인 좀 하는데 뭘 상의씩이나 해. 그냥 해.
선수 : (툴툴) 그치만 제가 뭐 특별히 박무열하고 친한 것도 아니고...
진동수 : 너 자꾸 이러면 고등학교 때 게임 중에 오줌싼 거..
선수 : (기겁한다) 아. 선배님.
진동수 : (억지로 펜을 안긴다) 그러니까... 부탁한다 응?
선수 : (할 수 없이 한다)...
진동수 : (사인하는 동안) 너랑 친한 애 누구누구 있지?
19. 타구단 로비 (낮)
안에서 나오던 진동수와 들어가던 고기자가 마주친다.
고기자 : (나름 반갑다) 형님.
진동수 : (안 반갑다. 무시한다)...
고기자 : 박무열 구명운동하신다면서요.
진동수 : (그냥 지나친다)...
고기자 : (뒤에 대고) 다 끝난 걸 뭘 그렇게까지 하세요.
진동수 : (돌아본다) 고기자, 너 진짜 못됐다.
고기자 : (여전히 실실댄다) 제가 뭘요?
진동수 : 중간에 야구 관두는 게 어떤 건지 너도 알잖아. 잘 알잖아. 근데 어떻게 그런 기사를 쓰냐?
고기자 : 난 그냥 진실을 전한 것뿐이에요. 기사 소스 듣고, 크로스 체크했고. 기자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진동수 : 박무열에 대한 악의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어?
고기자 : (피식 웃는다) ...박무열이 왜 거짓말을 했나... 그걸 찾은 것 뿐입니다.
진동수 : 무열이는 거짓말은 안 해.
고기자 : 내가 박무열을 모릅니까?
진동수 : 박무열에 대해선 내가 너보다 수만 배는 더 잘 알아.
고기자 : 서윤이도 욕할 애는 아닙니다. 형님이 그앨 한번 보시면...
진동수 : (말이 통하질 않는다) 그럼 넌 네가 본걸 믿어. 난 내가 아는걸 믿을테니까...
진동수가 돌아서 나간다. 고기자도 원래 가던 길을 간다.
진동수가 화가 나서 성큼성큼 걷다가 잠깐 생각한다.
(고기자) : 서윤이도 욕할 애는 아닙니다.
고기자도 성큼 성큼 걸어가다가 마음에 걸린다.
(진동수) : 무열이는 거짓말은 안 해.
20. 초등학교 운동장 (낮)
겨울방학중이라 비어있다.
유은재가 들어온다. 메모지를 확인한다. ‘명봉초등학교-야구를 시작한곳’이라고 메모 되어 있다.
문틈으로(혹은 창문으로) 야구 비품실을 들여다본다.
(학교수위) : 거기 뭐요?
유은재 : (돌아본다)
학교수위 : (경계한다) 뭐하는 사람이예요?
유은재 : 혹시 이 근처에서 낯선 사람 못 보셨어요?
학교수위 : (툭) 봤어요.
유은재 : (덥썩) 언제요?
학교수위 : 지금 거기.. (유은재를 가리키며 대단한 농담이라는 듯 킥킥 웃는다)...
유은재 : (이 아저씨가...) 아니 남자요. 키크고 얼굴 하얗고 성질 있게 생긴 남자!
학교수위 : 그런 남자는 못 봤고. 구부정하고 곱슬머리에 성질 있게 생긴 여자는 여기 있네. (농담해놓고 또 혼자 웃는다)...
유은재 : (퍽도 재밌으십니다. 메모지에 x표하고 자리를 뜬다)...
21. 마릴린의 밤 (밤)
손님이 없다. 마담이 혼자 물끄러미 앉아있다. 딸랑 소리에 반색을 한다.
고기자가 들어온다.
마담 : (실망한다)...
고기자 : (바에 앉으며) 왜 그래? 손님한테....
마담 : (물잔 내주며) 손님은 무슨... 또 물어보고 싶은 게 생긴 거지.
고기자 : (헤헤 웃으며) 서윤이 말이야...
마담 : 거봐. 물어볼 거면 주문하고 물어봐.
고기자 : 아무거나 한잔 주든가...
마담 : (술 가지러 돌아선다)...
고기자 : (그사이) 서윤이 여기서 일한지 3년 됐다 그랬지? 어떤 애야?
마담 : 보이는 대로지 뭐. 착하고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고기자 : 그렇지? 욕하고 그런 애 아니지?
마담 : (술 놔주며) 윤이는 반말도 잘 못하는 얘야.
고기자 : 그래, 그럴거야... (생각하다가) 그전에 박무열이랑 뭐 싸우거나 그런적도 없지?
마담 : 윤이는 그런 애 아니라니까...보면 몰라.
손님이 들어온다.
마담 : (일어서며) 어서오세요.
손님 : 예약했는데...
마담 : 아. 이쪽으로...
마담이 손님을 룸으로 안내한다. 고기자는 안심하며 술을 마신다.
룸으로 들어가는 손님들을 본다. 그 방은 전에 박무열이 서윤이를 폭행한 바로 그 방이다.
마담 : (다시 나와 물과 잔 챙기며 지나가는 말투로) 사람들은 저 방에 CCTV 없냐고 계속 그러는데,
CCTV 있어봐, 그땐 또 그게 왜 있냐고 난리지.
고기자 : (아. 까맣게 잊고 있던 게 생각난다.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놓고 서둘러 나간다)...
마담 : (왜 저러나 보다가 돈 챙긴다)...
22. 고기자의 방 (밤)
고기자가 들어와 녹음장비를 책상에 올려놓는다.
테이프가 있나 확인하고 앞으로 돌렸다가 재생버튼을 누른다. 현장음과 더불어...
(진동수) : 미안. 세시간 작업한걸 한방에 날리는 바람에...너 엑셀이란거..
고기자 : (뒤로 빨리 돌린 다음 다시 재생한다)...
(박무열) : 형!
(진동수) : 오늘 얘기는 없었던 걸로 하자.
의자 빼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그리고...
고기자가 책상위에 돌아다니는 야구공을 잡는다. 눈으로는 여전히 테이프를 노려보다가.
이런, 한순간 눈을 감는다. 테이프는 계속 돌아간다.
23. 마릴린의 밤 (밤)
룸에서 나오는 마담.
마담 : (혼잣말한다) 매상 좀 올려주면서 수다를 떨든가...
룸 한군데만 찼을 뿐, 홀은 비었다. 진동수가 들어온다.
마담 : (반갑다) 웬일이래? 우리 진선수가 자기발로 여길 오구...
진동수 : 예...
마담 : 박선수 어쩌구 있어요?
진동수 : (바에 앉는다) 그냥 뭐...
마담 : 어쩌다 그런 일이 생겼나 몰라. 속상해 죽겠어.
진동수 : 그 아르바이트생 말이예요.
마담 : 서윤이?
진동수 : 예...어떤 얘에요?
마담 : (픽 웃는다)...
진동수 : 왜요?
마담 : 아까도 누가 똑같이 물어봤거든...
24. 고기자의 방 (밤)
고기자는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됐다. 테잎을 노려본다.
테잎이 돌아가길 멈춘다. 재생버튼이 툭 튀어오른다.
그 소리가 신호인 것처럼 고기자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25. 저수지 부근 (아침)
물안개가 낀 저수지. 갈대도 있고, 보기엔 아름답다.
유은재가 메모지를 펼쳐본다. 세 개쯤 x표시가 되어 있고 ‘예덕 저수지-가족과 함께 간 마지막 여행지’ 표지판을 본다.
예덕저수지...그리고 그 밑에 적혀있는 자살 방지 문구.
‘이 어둠을 지나면 새벽이 오고, 이 언덕을 넘으면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영원한 어둠도 계속되는 고난도 없습니다.
잠깐만 멈춰서 눈을 감고 떠올려보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죽음은 해결이 아닙니다. 세상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따위의 문구가 오히려 불길하다.
유은재가 저수지를 둘러보다가 멀리 한 남자가 서 있는 걸 발견한다. 키나 스타일이 박무열같다.
그는 움직임 없이 저수지를 향해 서있다. 유은재가 그를 향해 뛰어간다.
(점프)
남자는 여전히 저수지를 향한 채 서 있다. 갑자기 들리는 소리.
유은재 : 야!!!
남자가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유은재의 이단 옆차기가 날라온다.
유은재 : (쓰러진 남자의 멱살을 잡으며) 박무열 내가 너 찾느라고...
남자 : (두려움에 올려다본다)...
유은재 : (아니다)...?!
여자 : (카메라를 들고 뛰어오며) 자기야!!
남자는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거다.
유은재 : (남자와 여자를 번갈아보다가 일단 도망간다. 멀리 떨어진 후에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자 : 저 여자 뭐야? 자기 아는 사람이야?
남자 : (고개를 흔든다) 아니...
남자가 얻어맞은 등짝을 문지르며 도망가는 유은재를 바라본다.
26. 블루시걸즈 구단 로비 (낮)
김태한이 시걸즈 홍보실장과 이야기중이다.
김태한 뒤에 동영상 카메라를 든 안장훈과 롱코트를 입은 김동아가 서있다.
김동아는 구장 견학 온 어린이같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시걸즈 홍보실장 : 소용없다니까. 김실장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왜 이렇게 밀어붙여?
김태한 :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 얘기나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시걸즈 홍보실장 : 내가 다 얘기했어. 근데 선수들이 싫대. 안한대.
김태한 : ...
시걸즈 홍보실장 : (좀 미안하다) 뭐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김태한 : (미심쩍은 눈으로 김동아를 본다) 저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만.
김동아 : (걱정말라는 듯 웃는다)...
김태한 : (시걸즈 홍보실장에게)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그때 로비 안쪽에서 선수들이 지나간다.
시걸즈 홍보실장, 할 수 없다. 선수들에게 다가가 뭐라고 한다. 선수들 김태한 쪽을 흘깃 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시걸즈 홍보실장, 그것보라는 듯 김태한을 보는데.
(김동아) : 잠깐만요!!
지나가던 선수들 돌아본다.
김동아가 촤락 롱코트 자락을 쫙 벌린다. 선수들이 움찔 놀란다.
김태한이 홱 돌아본다.
김동아가 코트 안에 입고 있는 것은 ‘파란 갈매기’ 마크가 찍힌 앞치마다.
송동율 : (자기도 모르게 신음하듯) 파란 갈매기!!
27. 파란 갈매기 (낮)
장사준비를 하는 은재아빠와 창호.
은재아빠 : (여기저기 찾으며 혼잣말한다) 어디 간거야? 이놈의 앞치마.
유창호 : (야채를 씻으며 아빠를 흘깃 본다. 칠칠맞기는)...
28. 블루시걸즈 구단 로비 (낮)
시걸즈 선수들이 대여섯명 모여 있고 송동율이 제일 앞에 서서 인터뷰중이다.
안장훈이 촬영한다.
한쪽 ‘파란 갈매기’ 앞치마 두른 김동아는 광화문의 이순신장군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김태한 : (인터뷰 하는거 지켜보며) 어떻게 된 겁니까?
김동아 : 12년 장어덮밥의 힘이죠.
송동율 : (카메라에 대고) 사람들이 박무열 선수랑 저랑 원수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거 없습니다.
물론 경기하다보면 열받을 때도 있고 그런데요. 금방 잊어버리구요.
29. 파란 갈매기 (밤)
모서리에 붙어있는 오래된 텔레비전.
(송동율) : 저번에 또 박무열 선수가 빈볼은 투수의 무기 중 하나다..그렇게 말해주기도 했구요. 에또...
바쁜 시간이다. 손님이 꽉 찼다.
은재아빠와 창호가 홀 한가운데 서서 경건한 자세로 벽에 붙은 텔레비전을 올려다보고 있다.
손님 : 여기요. 물 좀...
유창호 : (조용하라고 쉿한다)...
(송동율) : 아무튼 잘 해결됐음 좋겠습니다. (뒷쪽보고 합을 맞추더니) 박무열.
(여럿이) : 파이팅!!
은재아빠 : (감동받았다. 박수친다) 아. 저런 대인배들... 그대들이 용서한다면 나도....
유창호 : (함께 박수치며) 용서할려구?
은재아빠 : (고민스럽다)...
손님, 직접 물 떠다 먹는다. 이집 뭐냐? 싶다.
30. 시골버스 (낮)
은재가 시골버스를 타고 있다. 버스는 반쯤 비어 있다.
길 상태가 안 좋아서 몇 명 안 되는 승객들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매스 게임하듯 움직인다.
버스는 시골길을 달린다.
31. 산골 읍내 (낮)
은재가 버스에서 내린다. 버스 표지판은 ‘청량사 입구’ 주변을 둘러본다. 그저 시골읍내다.
은재가 청량사라는 표지판을 따라 산길을 올라간다.
32. 몽타쥬
-안장훈이 초등학교 일기장을 스캔한다.
어린 박무열이 졸라맨처럼 서툴게 그린 땅볼 잡을때의 무릎과 발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이 보인다.
-모니터 ‘내일 훈련계획. 러닝 운동장 20바퀴. 배팅 2시간, 피칭 2시간. 손목운동 한시간. 하체운동 한 시간’
그림 옆에 주의사항 땅볼을 잡을 때 왼쪽 무릎 고칠 것, (*고칠 것이라는 말에 동그라미까지 그려져 있다)
-초등학교 야구선수들이 부실에서 컴퓨터로 박무열의 야구 일기를 본다.
누군가 말한다. ‘이걸 하루에 다해?’ 몇 명이 대꾸한다. ‘우와. 미쳤다’ ‘대박’
-교무실. 50대 여교사가 학생기록부를 들여다보며 이야기한다.
자막 ‘박무열의 초등학교 3학년 담임 박연숙(47세)’
박연숙선생 : (학생기록부 평가란 읽으며) 학업성적은 우수하나 의욕이 없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이게 3학년 1학기 때 평가구요. 2학기 때는 체육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룹에서 리더쉽을 발휘한다.
(카메라를 본다) 여름 방학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거든요.
-오피스텔 복도 아줌마가 문 앞에서 쭈뼛쭈뼛 인터뷰중이다. 기자 한명이 받아 적는다.
아줌마 :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지 못한다, 그게 더 진실해 보인다) 하루 종일 말도 잘 않고……. 밥도 잘 못먹구...
어려서부터 뭐든 혼자 견디는 버릇이 있어서...
33. 산길 (저녁)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유은재 :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한다) 다섯시도 안됐는데 벌써 어둡냐? (발걸음을 재촉하며) 일 났네...
어디선가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34. 산속 공터 (저녁)
바람 가르는 소리가 먼저 들린다. 무겁고 긴 철봉으로 스윙 연습하는 남자는 박무열이다!!
35. 진동수의 집 거실 (저녁)
오수영은 학생들 그림을 보고 있다. 한쪽 귀퉁이에 짧은 소감을 적어 넣기도 한다.
진우영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진동수가 들어온다.
진우영 : (아빠에게 달려든다) 아빠!!
진동수 : 오지 마. 감기 옮아.
오수영 : 감기 걸렸어요?
진동수 : 응...목이 간질간질해.
오수영 : (약을 찾는다)...
진동수 : 큰일이네. 내일은 부산 갔다가 대구 들러야는데...
오수영 : (약을 찾았다) 하루 쉬면 안돼요?
진동수 : 시간이 없어.
오수영 : (물을 가져온다) 오빠는 무열씨한테 왜 그렇게 잘해요?
진동수 : 내가 잘하는 거야?
오수영 : (안쓰럽다) 아닌 거 같애요?
진동수 : (약을 먹으면서 생각해본다) 네 옆에 말이야. 고흐가 있어. 좀 있으면 자화상도 그리고 해바라기도 그리고 그럴 건데,
그림을 못 그리게 됐어. 너라면 어떡하겠냐?
오수영 : ...
진동수 : 간단한 거야. (방으로 들어간다)
오수영 : (문이 닫히는 거 보면서) 간단한 건가?
진우영 : 아빠 요새 재미없어.
오수영 : (웃는다) 맞아. 재미없어.
36. 산속공터 (밤)
마침내 박무열이 스윙연습을 멈춘다. 그제서야 날이 저문걸 알아챈다.
철봉을 놓고 장갑을 벗는데 장갑이 잘 안 벗겨진다. 손바닥 물집이 또 터졌다.
돌아갈 준비를 한다.
37. 산길 (밤)
박무열이 성큼 성큼 산길을 오른다. 앞쪽에서 뭔가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린다.
뭐지? 자기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여 다가간다.
(점프)
은재가 가방에서 여분의 밧데리를 찾고 있다.
유은재 : (산속의 밤이 무서워서 쉴새없이 두리번거리며 궁시렁댄다) 이러다가 조난당하는 거 아냐?
에베레스트도 아니고 동네 뒷산에서...아 그건 너무 쪽팔린데... 뭐 이렇게 깜깜해...
망할 인간. 내가 이 고생 했는데 없기만 해봐라. 밧데리 어딨는 거야, 분명히 챙겼는데...
(박무열) : 꼴통?
유은재가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자기 앞에 우뚝서있는 박무열을 본다. 믿기지가 않는다.
박무열 : 너 여기서 뭐하냐?
유은재는 갑자기 너무 안심 돼서 자기도 모르게 흐흐흑 눈물이 난다. 어린애처럼 어깨까지 떨며 흐느낀다.
박무열 : (유은재가 울자 당황한다) 야. 우냐?
유은재 : (반갑고도 서럽다) 이 양아치.
박무열 : (쭈그리고 앉아) 야 울지 마. 왜 울어?
유은재 : (눈물을 닦으며 흐느끼며) 갑자기 놀래키니까 그렇져. 그렇잖아도 무서워 죽겠는데...
(아예 소리 내 운다) 에이...진짜...얼마나 무서웠다고...
박무열 : (이렇게까지 우니 미안하다. 은재어깨를 안고 토닥토닥해준다) 야. 울지 마....야아...그렇게 무서웠냐?
유은재, 박무열품에서 한참을 흐흐흑흐흑 운다. 그러다가 자기가 박무열 품에 안겨있음을 자각한다.
어랏... 울음소리 잦아들고, 긴장이 된다. 어쩌나?
박무열 : 다 울었으면 그만 떨어지지.
유은재 : (코를 들이키고 엉거주춤 물러선다) ...한번만 더 그래봐 진짜.
박무열 : (좀 귀엽다) 꼴통 너도 무서운 게 있구나...
(하다가 자기 가슴팍에 묻은 물기를 본다) 이거 뭐냐? 눈물이냐? 콧물이냐?
유은재 : (코를 들이마신다)...
박무열 : (찜찜하다) 에에이...지저분하게.. (배트 가방 매면서 일어선다) ...
유은재 : (서둘러 일어나 박무열의 옷소매를 잡는다)...
박무열 : (돌아본다)...
유은재 : (어쩐지 어색하다) 또 놓치면 어떡해여? 깜깜한데...
박무열이 소매를 쓰윽 빼더니 대신 손을 잡고 앞장선다. 유은재가 뒤따라간다.
(점프)
박무열이 유은재 손을 잡고 산을 올라간다. 사방에 눈이라서 (혹은 달밤이라서) 그렇게 어둡지는 않다.
38. 병실복도 (밤)
고기자가 병실 문 앞에 서 있다. 생각이 복잡해서 선뜻 노크하기가 어렵다.
39. 병실 (밤)
간호사가 주사를 놓기 위해 묶었던 고무줄을 풀르며 서윤이에게 웃어 보인다.
서윤이 : (예의바르게 웃는다) 수고하셨습니다.
간호사 들뜬 얼굴로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움찔 놀란다. 문앞에 고기자가 서 있다.
서윤이 : (반갑다) 고기자님!!
간호사가 얼른 표정을 수습하며 비껴 나간다.
고기자가 들어온다. 고기자가 서윤이를 보며 웃는다.
서윤이 : (착하게 웃는다) 바쁘셨어요? 요즘 왜 안오셨어요?
고기자 : (애매하게 웃으며) 왜...나 보고 싶었어?
서윤이 : 고기자님한테는 감사드려요.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고 있을 때 처음부터 제 편 들어주시고...
고기자 : (물끄러미 서윤이를 본다)...
서윤이 : 고맙습니다.
고기자 : (서윤이를 보며 실실 웃는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
서윤이 : (왜 저러지? 일단 마주 웃는다) ...앉으세요.
40. 암자 앞 (밤)
암자는 흙과 나무로 지어진 조그만 집이다. 박무열과 유은재가 마당에 들어선다.
유은재 : (둘러본다) 뭐하는 데예여?
박무열 : 절일걸.
유은재 : 스님은여?
박무열 : 전엔 있었는데 없어졌어. 죽었나봐. (먼저 들어간다)
41. 암자 방 (밤)
이상한 구조의 방이다. 방 한가운데 구덩이가 파져있고. 그곳에 불을 피우게 되어 있다.
박무열이 불을 피우는 동안, 은재가 방을 둘러본다.
벽에는 나무 선반이 걸려있다. 오래된 살림도구 몇 개가 보이고.
나무상자위에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불상이 놓여있다.
불을 피운 박무열이 물 주전자를 장작불 위, 늘어진 쇠고리 위에 건다.
박무열 :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냐?
유은재 : 일기장 봤어여.
박무열 : 왜 남의 일기장은 보고 그래?
유은재 : 일기장이라고 뭐 별것도 없두만. 윗몸일으키기 몇 회. 스윙 몇시간. 그게 일기예여. 일지지.
박무열 : ...
유은재 : (타박) 이게 뭐예여? 다 늙어서 가출이나 하고.
박무열 : 속상하니까 그렇지.
유은재 : 속상하면 뭐 지만 속상한가.
박무열 : 나 말고 누가 속상한데...
유은재 : (차마 자기라고는 말 못한다) 동수선배도 속상하고. 아줌마도 속상하고...
박무열 : 너는? 넌 만세 불렀지?
유은재 : ..
박무열 : 너네 식구 또 축하회 먹었냐?
유은재 : (욱한다) 예 먹었어요. 자리돔으로다가 배터지게...남의 속도 모르고...
박무열 : (픽 웃는다)...
유은재 : 여기서 뭐 했어여?
박무열 : 세상 마음대로 안돼서 중 될라구 그런다. 불교계의 큰스님!!
유은재 : 불교계의 큰 재앙이 되것지.
박무열 : (피식 웃는다) 암튼 저 꼴통...
유은재 :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스님이 된대?
(둘러보며) 이게 뭐하는 짓이야? 혼자 도망와 갖고... 야구밖에 없다며? 야구 못하면 죽는다며?
그럼 끝까지 싸워야지. 죽기 살기로 싸워야지. 그 자식이 무슨 욕을 했는지,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싸워서 이겨야지.
박무열 : ...
유은재 : (속상하다) 그 자식이 뭐라 그랬는지 왜 말 안 한 거예여?
박무열 : (담담하다) 말할까도 생각해봤어.
유은재 : 근데...?
박무열 : 증인도 증거도 없는 상황이야. 그자식이랑 나. 우기기밖에 더 되냐? 진흙탕 개싸움이 될텐데...
그럼 있는 말 없는 말 다 나올 텐데... 그 속으로 끌어들일 순 없어.
유은재 : (답답하다) 누굴?
박무열 : (툭 던진다) 종희...
은재는 갑자기 싸해진다. 대신 물이 끓는다.
42. 병실 (밤)
고기자가 음료수를 딴다.
고기자 : (불쑥) 강종희가 누구냐?
서윤이 : (음료수를 마시던 서윤이가 고기자를 본다. 잠깐 표정이 바뀌지만 곧 예의바른 얼굴로 돌아온다) 예?...
고기자 : 너 참 대단한 얘구나.
서윤이 : (고기자를 본다. 예의바른 얼굴이지만 위기감을 느끼는 중이다)...
고기자 : 그 정도 연기력이면 아카데미상감인데 말이야...어?
서윤이 : (버텨본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고기자 : 괜찮아. 다 알고 왔으니까...
서윤이 : (고개를 숙였다가 잠시 후에 든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것이 서윤이의 맨얼굴이다) 어떻게 알았어요?
고기자 : (그 변화가 놀라워서 오히려 웃음이 난다)...
서윤이 : (씨익 웃는다. 들켰네하는 수준이다)...
고기자 : 박무열한테 왜 그런 거냐?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서윤이 : (별거 아니다란 식이다) 기자님이 끼어드는 바람에 일이 커진 거잖아요. 전 그냥 돈만 받고 끝낼려고 그랬는데...
고기자 : 돈 때문이었어?
서윤이 : 그깟 야구 좀 한다고 50억씩이나 받는데...좀 나눠 쓰면 좋잖아요.
고기자 : (마음에 걸리는 단어다) 그깟 야구라...
서윤이 : (조근 조근 말한다) 그렇잖아요. 알고 보면 공부 못해서 운동한 거면서...
얼마나 무식한지 말도 못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영어로 세지도 못할걸요.
근데 지가 제일 잘난 줄 알아요. 얼마나 건방진지... 그런데 50억. 미쳤지. 안그래요?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검사 초봉이 얼만줄 알아요. 3, 4천이예요.
근데 말이 돼요? 공 좀 잘 맞춘다고 50억.
고기자 : (생각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웃는다) 너무 많긴 하지.
서윤이 : 기분 나쁘잖아요. 겨우 공놀이나 하는 주제에...
고기자 : (씨익 웃는다) 그렇지... 근데 말이야 너, 순간에 인생을 걸어봤냐?
서윤이 : 예?
고기자 : 공 하나에 네 인생뿐 아니라 딴사람 인생까지 걸어봤냐?
서윤이 : ...?
고기자 : 너 손바닥이 까지도록 방망이 휘둘러 봤냐? 손바닥이 짓물러서 손등으로 세수해봤냐?
서윤이 : 무슨 ...
고기자 : (그대로) 너! 너 때문에 수천만 관중이 울고 웃고 그렇게 해봤냐?
네가 한번이라도 그래봤으면, 네가 가져도 돼. 그 50억. (픽 웃더니 돌아서 나간다)...
서윤이 : (고기자의 뒷모습을 본다)...
서윤이는 잠깐 생각해본다. 베개밑에서 뭔가를 꺼낸다.
눈이 훼손된 박무열 사진이다. 뒤를 보면 ‘강종희를 건드리면 박무열은 폭발한다’라는 메모가 적혀있다.
고기자가 나간쪽을 흘깃 본다. 어떻게 알았을까?
43. 암자 방 (밤)
박무열이 뜨거운 물을 따라 한잔은 은재에게 건넨다.
박무열 : 난 왜 찾았냐?
유은재 : 구단에서 이의 제기 했어여.
박무열 : (남의 얘기하듯) 그래?
유은재 : 이번에도 말 안할 거예여?
박무열 : ...
유은재 : 진짜 야구 못하게 되는데?
박무열 : 야구는 할거야.
유은재 : 어떻게?
박무열 : 미국이든 일본이든 야구할 수 있는데로 갈거야. 이민가지 뭐. 난 이름도 바꿀 수 있어. 나까무라 어떠냐? 나까무라 박.
유은재 : (조른다) 그냥 얘기하지이.
박무열 : 싫어.
유은재 : 그 여자도 이해해줄지 모르잖아여.
박무열 : 그래도 싫어.
유은재 : 야구 못하게 돼도?
박무열 : (고집부리는 애 같다) 야구는 한다구.
유은재 : (울컥한다) 너 바보냐!!
박무열 : (픽 웃는다. 불 옆에 눕는다) ...자라.
유은재가 모닥불 너머 등돌리고 누운 박무열을 본다. 그리고 강종희라는 여자를 생각한다. 이름만 아는 여자에게 질투를 느낀다.
유은재 : (조금 울고 싶다. 작게 혀를 찬다) 쳇. (f.o)
44. 암자 앞 (아침)
박무열이 세수한다.
45. 암자 방 (아침)
유은재가 짐을 싸고 있다. 몸이 아파서 힘들어한다. 어질어질하다.
박무열 : (들어온다) 너 밤새 끙끙대더라.
유은재 : (힘들다) 빨리 준비하고... 가여.
박무열 : ...
유은재 : (힘들어서 숨이 차다) 내일 재심사...한단 말이예여... 참석해야지.
박무열 : (유은재 이마를 집어본다) 너 열 있다.
유은재 : 이 정도는 정신력으로... (하다가 너무 힘들다. 숨을 몰아쉰다. 시계를 본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좀만 있다가 출발해여. 예? (자리에 눕는다) 한 시간만 쉬었다가...
유은재가 눈을 감았다 뜬다. 몽롱하다. 소리도 아득해진다.
박무열의 얼굴이 가까이 보인다. 안심한다. 박무열이 방을 나간다. 불안하다. 어딜가는 걸까?
입이 바짝 말라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다시 눈이 감긴다.
(박무열) : 꼴통 일어나!!
유은재가 눈을 뜬다. 박무열의 얼굴이 보인다. 비몽사몽간에 유은재가 웃는다.
박무열 : (일어나 앉힌다) 밥먹구 약먹어.
유은재 : (열 때문에 정신이 없다) 지금 몇시예여?
박무열 : 세시 넘었어.
유은재 : 에? 지금 깨우면 어떡해여?
박무열 : (배낭에서 비닐 포장된 배달음식을 꺼낸다) 어차피 오늘은 못 내려가.
유은재 : 내려가야 돼여.
박무열 : 그 몸으로 어떻게 가냐?
유은재 : 갈수 있어여. 내가 여기까지 왜 왔는데... (일어나려고 한다. 어지러워서 다시 주저앉는다. 쓰러지거나 하는 건 아니다)
박무열 : 산속에서 쓰러지면 빼도 박도 못해.
유은재 : 업고가면 되잖아여.
박무열 : 허리 나가.
유은재 : 그럼 혼자 가여. 난 나중에 갈테니까.
박무열 : 독립 운동하냐? 뭘 그렇게 비장해.
유은재 : (속상하다) 내가 데려간다 그랬단 말이예여. 내일까지 데려가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고 왔는데...
생전 안아프다가 왜 이런 때 아픈거야?
박무열 : (주머니에서 메모지 꺼내며) 여기 적힌데 다갔었냐?
메모지에는 일곱 개쯤 x표가 되어있고 밑에도 두군데쯤 더 있다.
46. 운영팀 사무실 (저녁)
진동수가 ‘서명’ 사인을 확인한다.
운영팀장 : 퇴근 안 해?
진동수 : 먼저 들어가세요.
운영팀장이 다른 직원들과 함께 나간다.
혼자 남은 진동수가 유은재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신호음이 나온다.
47. 복도 (저녁)
고기자가 조현우 송현진과 ‘최고의 야구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이야기를 하며 걸어오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진동수를 본다.
진동수와 고기자의 시선이 엇갈리지만 그냥 지나가버린다.
조현우 : 최고는 테드 윌리엄스지. 고기자님 맞죠?
고기자 : (진동수를 의식하느라 못 들었다) 어?
송현진 : 무식한 놈아. 홈런타자는 세단타고, 안타치는 타자는 리무진탄대.
고기자 : (실실 웃으며) 거꾸로 아냐?
송현진 : 그런가...?
고기자, 실실 웃으면서 주머니의 뭔가를 움켜쥔다.
48. 박무열의 집 침실 (밤)
아줌마가 침대 이불 끝을 다시 한 번 팽팽하게 당긴다. 베개를 만져서 올려놓는다. 언제라도 돌아오면 쉴 수 있도록.
아줌마가 침대위에 팔꿈치를 대고 기도한다. ‘무사히 돌려보내달라고’
49. 암자 방 (밤)
은재는 아직도 아프다. 박무열의 패딩코트까지 덮고 누워있는데 오한이 드는지 자꾸만 떤다.
박무열이 장작을 더 넣고 불을 일으킨다.
은재는 앓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다. 박무열이 유은재의 이마를 집어본다.
박무열 : 많이 아프냐?
유은재 : (떨지 않을려고 이를 악물며) 조금...아파여.
박무열 : 그러게 뭐 하러 와갔고...
박무열이 유은재를 내려다본다. 유은재가 덜덜 떨고 있다.
박무열이 은재 뒤에 누워 끌어안는다.
유은재 : 왜여?
박무열 : 덮치는 거 아니니까 그냥 자.
유은재 : (여전히 떨린다)...
박무열이 은재가 덮은 옷을 꼭꼭 여민다음 은재의 머리를 끌어안는다. 그렇게 한참 있다가...
박무열 : 고맙다. 꼴통.
은재의 떨림이 멎는다. 은재가 눈을 감는다. 잠이 온다.
박무열은 잠이 오질 않는다.
50. 산길 (아침)
박무열과 유은재가 내려온다. 앞에선 유은재가 비틀거리자 박무열이 잡아준다.
51. KBO회의실 (아침)
직원들이 회의 준비를 해놓는다. 자리마다 회의 안건 용지를 삐뚤어짐 없이 내려놓고 물 잔과 물병을 셋팅한다.
52. 회의실 앞 복도 (아침)
기자들 대여섯명이 별 긴장감 없이 서성인다.
기자1 : (들어오면서) 이것밖에 안 돼?
기자2 : 다 결정 난 건데여. 뭐...
진동수와 김태한이 들어온다. 진동수가 다시 한 번 유은재에게 전화를 건다.
53. 버스 안 (낮)
유은재가 창 쪽에, 박무열이 통로 쪽에 앉았다.
유은재가 핸드폰을 켜본다. 밧데리가 떨어졌다. 속상하다.
박무열 : (귤을 건네며) 귤이나 먹어.
유은재 : (할 수 없다 귤을 깐다) ...지금쯤 시작했을 텐데.
54. KBO회의실앞 복도 (낮)
진동수 : 안 받아!
김태한 : (조용히 한숨 쉰다)...
징계위원회소속 위원들이 회의실로 들어간다.
진동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진동수가 서둘러 발신자를 본다. 모르는 번호다.
진동수 : (혹시나 싶다) 여보세요?
55. 마릴린의 밤 홀 (낮)
인테리어 공사 준비 중이다. 줄자를 들고 견적을 뽑는 인부 두 명이 보인다. 룸의 의자와 탁자가 밖으로 나와 있다.
마담 : (도청기를 들고 있다) 진선수? 생각나는거나 이상한 거 있으면 전화 달라고 했잖아요.
테이블 밑에 이상한 게 붙어있더라구. 근데 이게 도청기라네. 일하는 사람들이...
56. 회의실 앞 휴게실 (낮)
진동수 : (놀란다...) .....예 고맙습니다. (통화를 끝낸다)...
김태한 : (진동수의 심상찮은 얼굴을 보다)...
진동수 : 도청기가 왜 거기 있지?
김태한 : 무슨 소립니까?
진동수 : 누가 그런 걸......
(인서트-사건당일, 마릴린 앞에서 만난 고기자)
진동수 : (옆의 기자에게) 고기자 안 왔어요? 고재효?
기자1 : 모르겠는데...
57. 목동구장 (낮)
처음에 우리는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
고기자가 홀로 서있다. 핸드폰이 울린다. 진동수다. 잠깐 고민하다가 받는다.
고기자 : (통화한다) 예. 형님.
(진동수) : 지금 어디야?
고기자 : 여기요?
그제서야 우리는 이곳이 목동구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기자는 마운드위에 서 있다.
58. KBO회의실 복도 (낮)
진동수 : (나가면서) 내가 갈 테니까 거기 있어.
김태한 : (쫓아간다) 왜 그러십니까?
진동수 : 나중에... (벌써 사라졌다)...
59. 버스 안 (낮)
유은재는 다시 시계를 본다.
박무열 : 그만 봐라. 본다고 뭐 뾰족한 수가 생기냐?
유은재 : 지도 초조해 죽겠으면서...
박무열 : 난 이미 초월했어.
유은재 : 공갈 염소똥.
박무열 : 뭐?
유은재 : (모르는척한다)...
박무열 : 뭐 재미난 얘기 없냐?
유은재 : 있어요. 시걸즈에도 드디어 좌완투수가 생겼어요.
박무열 : (이걸 그냥 쳐다본다)...
유은재 : (헤헤 웃다가) 내 비장의 개인기가 있는데...잠깐만요.
유은재가 등 돌리고 뭔가를 한다. 박무열, 뭔가 기대한다.
유은재가 얼굴을 돌린다. 윗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박무열 : (벙쪄서 쳐다본다) ....
유은재 : (무안하다. 손가락을 입술을 들어올려 내린다) 이게 안웃겨여? 어떻게 이게 안웃겨?
박무열 : (얘 뭐냐? 허공을 보며 한숨을 푹 쉰다)...
유은재 : 웃긴데 참는 거지?
박무열 : (포기했다. 딴 데 본다)....
유은재 : 밤에 자다 일어나서 웃지 말고. 지금 웃어여. 예?
60. 진동수의 차 (낮)
진동수는 서두르고 있다. 시간이 없다. 진동수 차가 목동구장에 도착한다.
61. 목동야구장 (낮)
고기자가 발로 툭툭 마운드 판을 고른다. 진동수가 들어온다.
진동수 : (뛰어온다) 너지?
고기자 : 예?
진동수 : 고기자. 네가 도청기 붙여놨지?
고기자 : 에에이.... 도청 그거 불법인데 그런 짓을 하겠어요.
진동수 : (급하다) 지금 불법이냐 아니냐를 묻는 게 아니잖아. 박무열이 야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려있어.
고기자 : 그래요? 그럼 박무열이 야구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 하나만 말씀해주세요?
진동수 : (고기자의 멱살을 잡는다) 박무열이 야구를 관둬야 하는 이유는 뭔데?
고기자 : (뿌리치지 않고 진동수를 본다) 내말이요. 이유 따윈 없다구요.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어린애가 내앞에 나타나든 말든, 녹음테잎이 있든 없든....
진동수 :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고재효 제발...
고기자 : 그럼 다시 물을게요. 형님이 박무열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뭡니까?
진동수 : ...
고기자 : 어느 쪽이냐면, 형님은 제 쪽이잖아요?
진동수 : (손을 놓는다) 재능을 보는 눈엔 질투만 있는 게 아냐.
고기자 : (진동수를 보다가 주변을 둘러본다) 여기 서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시골 야구부애가 목동구장에 온다는 건 결승전에 올랐다는 거니까...
(발로 투수판을 툭툭찬다) 투수 고재효. 크게 와인드업. 아. 팔이 올라가질 않습니다. 아깝습니다.
진동수 : (포기하고 돌아선다)...
고기자 : 형님!!
진동수 : (돌아본다)...
고기자 : (뭔가를 툭 던져준다)...
진동수 : (녹음 테잎이다)...
62. KBO 회의실 복도 (낮)
김태한이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몇 안되는 기자 중에는 하품하는 사람도 있다.
핸드폰이 울린다. 진동수다.
김태한 : (받는다) 예.
63. 진동수의 차 (낮)
진동수가 운전하면서 통화중이다.
진동수 : 회의 어떻게 됐어? (듣다가) 김실장,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돼.
64. 회의실 앞 복도 (낮)
김태한, 전화를 끊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일단 결심한다. 회의실 문을 노크한다.
65. 회의실 (낮)
김태한이 테이블 한쪽 끝에 선다. 징계위 소속 위원들이 김태한을 본다.
김태한 : 죄송합니다. 박무열 선수와 저희 구단 레드 드리머즈를 대신해서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66. 진동수의 차 (낮)
진동수가 속도를 낸다. 지금은 안전운전을 할 때가 아니다.
차선을 바꿔 달린다. 앞차가 빌빌대자 경적을 울린다.
67. KBO회의실 (낮)
징계위원들은 궁금하다. 김태한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김태한이 심호흡을 한다.
김태한 :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 야구가 들어온 것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길레트에 의해섭니다.
이후 YMCA등 주로 선교사와 일부 특별한 계층만 즐기던 야구의 꽃이 활짝 핀 것은
1970년대의 고교야구붐이 일면서 부텁니다.
위원들 황당하다. 이게 뭐야? 뭘 하겠다는 거야? 서로를 본다.
김태한 : 당시 고교 야구는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
68. KBO건물앞 (낮)
진동수의 차가 도착한다. 차가 서자마자 진동수가 뛰어내린다.
69. KBO회의실 (낮)
김태한 : 1970년대 고교야구 인기는 이후 프로야구 출범을 가능케 했으며...
위원1 : (어이없다) 이봐요? 뭐하는 겁니까?
김태한 : (땀을 닦는다. 그러나 표정만은 진지하다) 야구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민지 개괄함으로써
박무열선수의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겁니다.
위원1 : 충분하니까 핵심만 말하세요.
김태한 : (고개 꾸벅하며) 알겠습니다. (다시 시작한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 군사정권이 내세운 프로야구의 캐치프레이즈는
국민에게 건전한 여가선용을 어린이에게는 꿈을...
위원1 : (벌떡 일어난다) 뭐하자는 거야. 이건 회의방해야!!
‘당장 나가’ ‘뭔 수작이야’ ‘당장 끌어내’‘경비 불러’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70. 목동야구장 (낮)
고기자가 마운드에서서 구장을 둘러본다.
71. 계단 (낮)
진동수가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72. 회의실 (낮)
위원1 : (직접 김태한을 끌어내려한다) 나가!!
위원2 : (위원1과 합세한다) 뭐하자는 거야. 이거.
김태한 : (끌려가면서도) 잠깐만요. 여기가 핵심입니다.
위원1 : (잠깐 주춤한다)...
김태한 : 1982년 개막전에서 터진 김유동선수의 역전 홈런은
이후 10년 동안 프로야구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위원들 김태한을 끌고 간다. 김태한이 막 문 앞까지 끌려왔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린다. 진동수가 숨을 헐떡이며 서 있다. 그가 테잎을 건넨다.
위원들도 김태한도 이게 뭐지 싶다.
(점프)
오디오기계가 셋팅된다. 김태한이 테잎을 넣고 재생버튼을 누른다. 테잎이 돌기 시작한다.
현장음이 이어지다가 들리는 알바생의 목소리..
(서윤이) : 박무열선수? 강종희는 잊었나봐요?
(박무열) : 뭐....?
(서윤이) : (목소리를 낮춘다) 그 여자 완전 걸레라던데? 남자라면 먼저 눕고 본다는데 사실인가요? ...
테잎은 계속 돌아가고 위원들 얼굴은 경악에 빠진다.
그때 터지는 한마디!!
(박무열) : 너 이개새끼!!
73. 버스 안 (낮)
박무열과 유은재가 머리를 맞대고 잠들어 있다.
버스기사 : 손님. 다 왔어요.
박무열과 유은재가 눈을 뜬다. 왜 이러고 잤지? 서로 쳐다보며 떨어진다.
박무열은 머리를 만지고 유은재는 침을 흘렸나 확인한다.
74. 목동야구장 (낮)
고기자가 막 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75. 회의실 앞 (낮)
진동수가 숨을 몰아쉬고 있다. 기자들은 진동수를 쳐다보지만 별 관심 없다.
회의실 문이 열린다. 위원들과 김태한이 나온다. 기자들이 둘러선다.
위원 : 박무열선수의 폭행에 대한 징계위원회의 재심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카메라 플레쉬가 몇 번 터진다.
76. 터미널 (낮)
박무열과 유은재가 내린다. 두 사람이 기지개를 켠다.
77. 인천공항청사 (낮)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눈에 띄는 여자가 있다. 유별나게 꾸민 건 아니데 분위기가 독특하다. 무표정한 얼굴이 냉정하다.
고양이가 들어있는 이동 상자를 들고 있다.
78. 편의점 (낮)
유은재 핸드폰이 충전중이다. 박무열과 유은재가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있다.
박무열 : 누가 보면 우리 노숙잔 줄 알겠다.
산속에서 이틀 밤을 보낸 유은재나, 그보다 더 오래있었던 박무열이나 참 지저분하다.
유은재가 핸드폰을 건네받는다. 켜자마자 문자 수신음이 쉴 새 없이 들린다.
박무열이 뭔가 쳐다본다.
79. 미술학원 (낮)
오수영이 교실에서 나온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원장 : 오선생님!
오수영 : (돌아본다)...
원장 : 손님 오셨어요.
공항에서 봤던 여자가 서 있다. 유리알 같은 눈으로 무표정하다.
80. 술집 앞 (밤)
꾸질꾸질한 박무열과 유은재가 간판을 확인하고 문을 연다.
81. 술집 (밤)
문이 열리자마자 샴페인이 터져 나온다. 진동수가 박무열에게 샴페인을 쏜다.
박무열 : (일단 도망가며) 뭐야? 왜이래?
진동수 : (쫓아가며 쏜다) ...
유은재 : 왜여? 어떻게 됐는데여?
김태한 : 24시간 사회봉사에 3개월 출전정집니다.
박무열 : (멈춰 선다. 잘못들은 게다) 뭐?
진동수 : (박무열 목을 끌어안으며) 그것도 지금부터 3개월이다. 이 자식아!!
박무열 : 진짜? 왜?..
진동수 : (샴페인 다시 쏜다) 왜냐구? 이자식이 왜냐는 말이 나와? 어?
박무열이 쏘는대로 샴페인을 맞는다. 실감이 났으면 좋겠다. 갑자기 진동수를 끌어안는다.
유은재가 함성을 지르며 두남자 위로 점프해 올라탄다.
박무열이 기쁨의 괴성을 지른다. 세사람이 엉겨 쓰러진다. 쓰러져서도 박무열의 함성이 계속된다.
김동아는 안주를 먹으며 구경꾼모드다. 김태한은 자기도 말려들까봐 한쪽으로 비켜선다.
세사람이 겨우 정신 차리고 떨어진다.
박무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심호흡을 했다가 웃었다가 두손으로 얼굴을 닦아냈다가 함성을 질렀다가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다.
진동수가 박무열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킨다.
박무열 : (진동수 손을 잡고 일어난 탄력으로 진동수를 와락 끌어안는다) 형 고마워. 진짜 고마워.
진동수 : (박무열 등을 탁탁 두드린다) 이제 좀 조용히 살자. 어?
박무열 : (진동수의 포옹을 풀고 유은재를 와락 끌어안더니 한 바퀴 돌린다) 고맙다 꼴통. 진짜 고맙다. (유은재를 내려놓는다)...
유은재 : (너무 좋아 울 것 같다)...
박무열 :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네가 왜 우냐?
유은재 : 내가 왜 울어여? 지가 울면서...
박무열 : (유은재 머리를 헤드락 걸 듯 잡고 흐트러트린다) 꼴통 이거...진짜...
유은재 : (바둥거리면서도 기쁘다) ...안놔여? 나 주먹 써여. 주먹 쓴다...!
박무열 : (은재를 놔주고 다시 얼굴을 닦아낸다. 샴페인인지 눈물인지 모르겠다. 김태한이 시야에 들어온다)...
김태한 : (뒷걸음친다) ...잠깐만요.
박무열 : (김태한을 와락 끌어안으며) 고맙다. 김실장.
김태한 : (아플 정도로 안겼다. 박무열이 포옹을 풀자 옷에 묻은 샴페인을 살짝 털어낸다)...
김동아가 다음은 자기겠구나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박무열 : (김동아도 끌어안는다) 고마워요.
김동아 : (토닥토닥 두드리며) 별말씀을...
유은재 : 근데 어떻게 된 거예여?
(점프)
다들 앉아서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중이다.
박무열 : 테잎이 왜 나와?
진동수 : 몰라. 나중에 고기자한테....
(소리) : 야, 박무열!!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한다. 공항에서 본 여자가 서 있다.
여자를 본 박무열이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표정하던 여자가 활짝 웃더니 무작정 박무열에게 달려든다.
유은재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경호원이다.
여자가 팔짝 뛰어 두팔과 두다리로 박무열에게 매달린다.
김동아, ‘대박’ 감탄한다.
유은재가 여자를 떼어놓으려고 어깨를 잡는다.
박무열이 손을 들어 유은재를 제지한다. 유은재, 멈칫한다.
진동수가 여자와 함께 온 오수영을 본다.
여자가 박무열에게서 내려온다. 여전히 두 손을 박무열 어깨에 올려놓은 채 갸우뚱한다.
여자 : (끌어안은 채 상체를 뒤로 젖히며) 보고 싶었다. 박무열!!
박무열 :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강종희?!
강종희!! 그 이름에 유은재가 숨을 멈춘다.
바로 코앞에서 강종희가 박무열을 끌어안고 등을 팡팡 두드린다.
박무열이 현실감을 느끼려는 듯 천천히 강종희를 힘주어 끌어안는다.
유은재가 한발 물러선다. 두 사람이 너무 가까이 있다. 외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