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12. 1
♧♣ 하얀 배추 속 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헛말을 많이 했던/우리의 지난 날을 잊어
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때로는 파가 되고/때로는 생강이 되는/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항상 지켜야 해요/ 한 겨울 추위 속에/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해인의‘12월의 아가’
◆벌써 12월입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매일의
시간들이 빨리도 지나감은 아마 제가 나이를 먹는다는 뜻도 될 테지요? 나무가 잎과 열매를 다 떠나보내고 비어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
지네요.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다시 읽어보는 저의 시를 아직은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드립니다. 제 목소리가 생각보다 명랑하고
씩씩해서 실망했다는 분도 있던데 좀 더 차분하게 연습할까요? 타고난 목소리니 어쩔 수가 없지만 한 때는 성우?지망생이기도 했으니 흉내는 꽤 잘
내는 편이랍니다.
◆지금 제 옆에는 시인 최승호님의 <물렁물렁한 책> 분도회 미국 수녀 죠안 치티스터의 <빛을 받은
삶>, 강희근 시인의 <시 읽기의 행복>등이 놓여 있습니다. 새로 보내주는 책들을 다 읽지도 못하는 날들을 살면서 예전에는
바빠도 책을 더 깊이 읽으며 밑줄 긋거나 독서카드에 옮겨 적곤 하던 기억을 고운 추억으로 떠올려 본답니다. Lectio Divina(성독)를
소홀히 하면 수도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알면서 요즘 제 삶은 늘 밖으로 도는 것 같아 반성목록 1호로 삼고 있지요. 특히 그날 그날
성서구절의 보물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삶으로 들여놓는 연습을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곧 대림절이 다가오니 마음에도 촛불이
켜집니다.
◆11월엔 특히 강연을 많이 하느라 몸도 마음도 좀 힘들었으나 기쁨과 보람도 따랐습니다. 이화여대 채플 강론과 국민대
특강,수원교구 여성연합회 특강,울산 현대 중공업 주최의 교양강좌 그리고 수능 끝낸 고3
이상의 하느님과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 모임
등등....나름대로 의미있고 아름다운 모임이었으며 정성 다해 제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던 참석자들의 그 순수한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잔치를 베푼 주최측에선 일단 사람이 많이 모이니 매우 즐거워했고 저는 속으로 떨리면서도 덩달아 웃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울산 성바오로
성당엔 500-700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1200명이나 왔으니까요. 제 아이디를 신부님이 공개하는 바람에 앞으로 혼자서는 감당키 어려울만큼
전자우편이 쏟아질 것 같습니다. 어쩌지요?
12월엔 서초여성회관에서 노영심,
윤석화님과 함께 하는 작은 프로그램이 있고, 청소년 상담자 전국대회 특강(통영),
문예진흥원의
금요특강, 그리고 조계사에서 하는 불교 청년들을 위한 특강이 있어 서울에도 며칠 다녀오고..
12/11 기말 시험 보고 나서 학생들 채점도 마무리해야
하는데 참으로 천사의 도움이 좀 필요할 테지만 그래도 채점만은 혼자 다 하려고 하지요. 수업시간에 표정이 조금만 어두워도 무슨 근심있느냐고 메일을
보내오는 학생들이 사랑스럽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에페 2:10) 이 아름다운 구절이 요즘은 계속 마음 안에 머물러있고 이웃과 나누고 싶은 구절로 다가옵니다. 정말 우리 모두
선한 생활을 지향해야 할 그분의 작품으로서 더욱 구체적 노력을 계속해야겠지요? 제가 여러분께 미리 드리고 싶은 성탄 선물은 여러분께 받은 사랑을
‘제 삶의 자리에서 더욱 기쁘게 꽃피우고 열매 맺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답니다. 그러니 마음으로 받아주세요!
◆벌써 2001년도 연중피정
일정이 나와있는데 저는 (2/12-20)다섯 번째 피정을 하려고 신청해 두었지요. 내년엔 수녀회 70주년이므로....수업도 줄이고 특강도
줄이고 안으로 마음 모아 집안일에 더 할애하기를 희망하지만 뜻대로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건강은 좋은 편이지만 날이 차가워지니
모든 중년의 사람들이 겪는 아픔 정도를 겪고 있을 뿐이지요. 사소한 일들로 우울해 하지 않고 마음을 밝게 지니는 것 또한 건강의 비결인
듯
합니다.
◆제 1차 남북 이산가족 만남
때는 해외에 있어 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2차로 만나는 장면들을 TV로 지켜보려니 눈물이 앞을 가려
차라리 자리를 피하게 되는군요. 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 저의 아버지는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는지?(
href="http://haein.samtoh.com">http://haein.samtoh.com '나의 길' 에도 들어있는 눈이 깊은
제 아버지 사진을 보셨나요?)
얼마 전, 내년이면 어느새 구순이 되시는 어머님을 뵈오며 꼭 50년을 혼자 사신 어머님의 그 긴 세월과
아버님의 모습을 함께 생각하며 비애감에 젖었습니다. 어머니는 머리에 숱이 없으시니 고운 모자로 살짝 가리시고 아직은 좋아
보이시지만 이젠 체구도
아주 왜소해 지셨답니다.....수도원에서도 그렇고 노인들의 삶을 보면 쓸쓸함과 더불어 우리가 그분들을 매우 서운하게 만들고 있다는 자책감이
생기면서 우선은 시간을 내어 따스한 말한 마디라도 건네야 될 것 같은 마음이에요.
요전엔 본당 미사를 가는 길에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저더러
성당을 못찾아 미사에 못간다고 하셔서 함께 모시고 간 일이 있습니다. 딸네 집에 왔다가 미사에 가려니 성당을 못 찾아 우두커니 앉아 있던
중이었다면서....늘 바쁜 것을 핑계로 우리가 비켜가는 동안 노인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
청소년용 성탄선물로 샘터에서 손바닥만한 포켓 붘을 만든다니 눈여겨 보시고 애용해도 좋을것 같아 미리 소개해
둡니다.
아름다운 이야기 모음인 노란 손수건 시리즈를 따로 묶고 피천득님의 수필 <인연>,
법정스님의 수필, 정채봉님의
동화, 그리고 이해인수녀의 <꽃삽>을 넣어 한 질로 만든다는 연락을 받았기에 책이 매우 깜찍하게 나올 것 같아 저도 여러권 구입해서
성탄, 새해 선물용으로 쓰려고 합니다. 이 정도는 P.R 좀 해도 되지요?
박우사에서
라는 영문시선집을 에 이어 내는데 여기엔 <외딴 마을...>과 <다른
옷은...>에 들어있는 시들이 들어갈 것입니다.
◆고요하고
겸허하고 깨끗하게 가꾸어가는 마음을!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예민한 귀를! 주위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커다란
눈을! 늘 사려깊고 따뜻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랑의 입을!
저는 요즘 묵상 노트에 이렇게 적었답니다. 새해 결심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서로 이렇게 노력하며 기도 안에 만나길 바랍니다. 저의 약점과 실수,그리고 게으름으로
인해 상처 받고 서운한 점들이 있으시다면 은총의 대희년을 마무리하며 용서 해 주시길 부탁드려도 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도의
선물을 다시 기대해 봅니다.... 2000년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사랑과 기도에 깊이 감사 드리면서 해인 글방에서,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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