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나무 이야기
반 칠 환
‘열치매 나타난 달이/ 흰 구름 따라가는 것 아니냐?/ 새파란 냇가에/ 기랑의 모습이 있구나./ 이로부터 냇가 조약돌에/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따르련다./ 아아 잣가지 높아 서리 모를 화랑이여.’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향가 찬기파랑가다. 신라 경덕왕 때 충담이 화랑 기파랑을 추모하여 지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잣나무는 학명이 피누스 코라이엔시스(Pinus Koraiensis) 다. 종명 코라이엔시스는 한국 고유종임을 뜻한다. 뾰족한 침엽이 두 장씩 달리는 조선소나무나, 세 장씩 달리는 북미산 리기다소나무와 달리 다섯 장이 한 묶음으로 달리는 잣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과 상록교목이다.
잣나무 앞에서 청중에게 묻는다.
“잣나무가 왜 잣나무인 줄 아시나요?”
“그야, 잣이 달리니까 잣나무죠.”
“그럼 잣은 왜 잣일까요?”
“잣이야 그냥 잣이지 뭐 특별한 뜻이 있나?”
7년 동안 숲 해설을 해온 내가 잣나무 아래에 서면 십중팔구 저와 같은 질문이 오간다. 잠시 생각할 여지를 주기 위해 뜸을 들인 다음 에둘러 묻는다.
“옛날에 딸을 낳으면 어떤 나무를 심었지요?”
비교적 자신 있게 여기저기서 대답이 나온다..“
“오동나무요.”
“왜죠?”
“딸 시집보낼 때 혼수로 장롱 짜 주려고요.”
대개 생장이 빠른 나무는 목질이 나빠서 가구를 만들기 어렵지만, 오동나무는 예외다. 열여섯 꽃피는 딸이 시집갈 즈음이면 벌써 가구를 짤 만큼 키가 크고 둘레가 커진다. 가볍고 단단해서 느티나무, 먹감나무와 함께 목수들이 꼽는 3대 우량목에 들어간다.
“결혼하신 분들은 안방마다 오동나무 장롱이 있을 테고, 미혼인 분들은 마당에 오동나무 한 그루씩 잘 자라고 있지요? 그거 없으면 시집 못갑니다.”
아파트 수직 절벽에 칼새처럼 깃들어 사는 도시 처녀들에게 공중마당 한 뼘 없음을 잘 알면서 흰소리를 보태면, 더러 킬킬 웃다가 고자누룩해진다.
“오동나무가 딸나무라면, 잣나무는 아들나무입니다. 한자로 아들‘자(子)’에 사이시옷을 넣어 잣나무가 된 것이지요. 대체 잣나무는 왜 아들나무가 된 걸까요?”
“잣알처럼 자식을 많이 낳으라고요.”
“오래오래 곧고 푸르게 살라는 거 아닙니까?”
다양한 답이 나오지만, 제대로 알아맞히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면 모르는 사람은 둘러대고,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힌트는 오동나무가 딸을 여읠 때를 대비해서 심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들 여읠 때? 아들이 데릴사위로 가는 것도 아닐 테고….”
“물론 데릴사위 장가 밑천은 아닙니다. 잣나무를 심은 뜻은 아들이 장차 자라서 혼인해 아들, 며느리, 손자 다 보고 수를 누린 다음 조상님들 계신 선산으로 올 때 타고 오라는 뜻입니다.”
“아, 관을 만드는 나무로군요!”
사람들은 그제야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떡인다.
“맞습니다. 잣나무는 관재(棺材)입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 참 걱정도 팔자지요? 방금 삼신할미가 궁둥이 찰싹 때려 내보낸 멍 자국도 지워지지 않은 갓난아이들을 보고 시집보낼 걱정, 죽을 걱정을 하다니요. 요즘 사람들 가운데 이런 걱정을 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미리 배냇저고리와 장난감을 마련해 둔다거나, 백일이나 돌잔치 궁리를 하거나, 자라서 어떤 인물이 될까 상상은 하여도 아들 낳았다고 관목을 심으러 뒷산으로 가는 부모는 들어보지 못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자기 집에서 태어난 분들 손 좀 들어보십시오.”
사오십 줄 이상의 사람들이 쭈뼛쭈뼛 손을 든다.
“역시 연식(年式)이 좀 오래된 분들이로군요.”
나이 든 사람들은 빙긋이 웃고, 젊은 사람들은 깔깔깔 웃는다.
“인생을 흔히 연극에 비유하지요? 옛사람들이 세상에 처음 등장하고 마지막에 퇴장하는 곳은 제 집 아랫목이었죠. 아랫목은 가장 따뜻한 곳이고, 가장 귀한 손님에게 내어 주는 곳이지요. 신생아는 그곳에서 첫 들숨 들이쉬고, 임종하는 이는 마지막 날숨을 내놓지요. 그들은 아랫목으로 와서 아랫목에서 갔지요. 요즘 사람들은 병원으로 와서 병원에서 갑니다. 세상을 살러 온 게 아니라 입원하는 모양새가 되었어요. 하지만 퇴원할 때는 수저 들 힘도 없지요.”
청중들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병원으로 오신 분들을 비웃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도 오기는 아랫목으로 왔지만 가는 것은 병원이기 십상일걸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 있죠? 이것은 빛을 추구해 온 문명이 제 어둠을 가리키는 역설처럼 보입니다.”
첨단 분명은 더 편리하고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인류는 가혹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기술과학을, 두려움의 근원인 무지를 밝혀내기 위해 학문을 탐구해 홨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의학을 발달시켜 왔다. 덕분에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건강과 수명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질병뿐 아니라 죽음마저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극복할 수는 없어도 새로운 의술과 신약으로 끝없이 유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숙연하고 성숙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부정되고 외면 받는 것이 되었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의 완성임을 깨닫는 오래된 전통을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언제까지나 살 것처럼 행동하다가, 느닷없이 죽고 만다. 자기 삶의 의미를 매듭을 짓지 못한 생애는 회한으로 남는다.
“어떤 주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완전 고용하는 저승주식회사지만, 이처럼 준비되지 않은 신입회원을 받는 염라대왕의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겁니다. 다시 옛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생명의 출발에서 완성을 생각하던 그들의 행위가 ‘걱정도 팔자’였던 걸까요? ‘내다보는 지혜로움 이었던 걸까요?
잣나무를 지나면 사촌 격인 소나무가 기다린다. 아기가 태어날 때 금줄을 치고 죽어서 무덤가 도래솔로 심던 나무다. 2차대전 후 영국 노동당의 슬로건을 빌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말로 ‘이승에서 저승까지’ 한국인의 삶과 복지를 책임지던 나무다.
소나무 앞에서 다시 청중에게 묻는다.
“소나무가 왜 소나무인 줄 아시나요?”
“…….”
첫댓글 글 감사합니다.ㅎ
반칠환님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
2단원 살핌(察) 은 '아들나무 이야기'로 막을 내리고
다음 3단원은 연민(憐연)의 느낌이 담긴 수필을 올릴 예정입니다.
수필은 치유의 글 이라고도 합니다. 쓰라린 상처를 보듬으며 탄생시킨
작가의 글이 독자의 가슴에 공명하면서 위로를 받고 아픔을 달래는 것이지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저도 수필집을 즐겨 읽는데 후안님
덕분에 좋은글 더 많이 접하게
되었답니다 ~
고맙습니다 ~^^~
김회장님! 아코 뿐 아니라 책도 열심히
읽고 계실거라 짐작했습니다. 매사 열심히 하시는 모습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