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 (16) 곡성군 죽천마을 류연자 씨 ‘고들빼기김치’
남도매일신문 2023. 02.21(화)
혀끝 감도는 쌉싸래한 맛, 꼬둘빼기 꽃이 피었습니다
무화과 만난 비법 육수에 17가지 재료 양념 감칠맛 가득
쪽파까지 버무리면 중독성 강한 별미로, 밥 한 공기 ‘뚝딱’
친환경 무화과로 감칠감을 한층 끌어올린 류연자 씨만의 고들빼기 김치.
“뭣이 중헌디”라는 유행어를 남긴 영화 ‘곡성’(哭聲)의 제목과 지명이 같아서 유명해진 곳이 있다. 바로 전남 곡성(谷城)이다. 지리산이 품고 섬진강이 적시는 곡성은 제철 산물들이 풍성하다. 그중에 예부터 사람의 손길이 하나 없어도 바람을 타고 곡성 흙에 뿌리를 내린 천혜의 들풀이 있다. 바로 고들빼기. 곡성 사람들은 오뉴월에 잎이 쫙 펴지고 쌀쌀해질 때 잎사귀가 오그라들어서 ‘꼬둘빼기’라고 부른다.
고들빼기는 이미 순천의 특산물이라는 명성에 가려져 곡성 고들빼기의 맛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가을이 되면 곡성의 땅심과 기후에서 자란 고들빼기를 캐서 김치를 담는 음식문화는 꽤 오래됐고 그 맛 또한 특별하다. 지금도 결혼이나 환갑잔치 등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 고들빼기김치는 가족 친지나 동네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나누는 곡성의 제철음식이다. 지난해 11월, 취재팀은 고들빼기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솜씨꾼을 만나러 곡성군 죽곡면 당동리 죽천마을을 찾았다.
류연자 씨가 비법 육수와 젓갈, 17가지 재료를 더한 양념에 고들빼기와 쪽파를 버무린 고들빼기 김치를 소개하고 있다.
너른 들논을 적시는 보성강을 품고 당동리 서남쪽에 자리한 죽천마을.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토박이로 9대째 살고 있는 최성길 씨의 아내 류연자 씨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그가 어린 17살에 고향인 곡성군 석곡면에서 시집왔을 때, 시댁 마을의 가구 수는 대략 50호 정도였다.
이 마을에 최초로 사람이 살았던 시기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 펴낸 ‘섬진강유역지석표1(2018)’에 따르면, 죽천마을 앞 밭과 대나무숲에 위치한 ‘지석묘 9기’에 대한 기록은 그때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죽천마을의 유래에 대해 그의 남편 최씨는 이렇게 말한다.
마을 이름인 ‘죽천’(竹泉)을 상징하듯 마을 뒷편에 대나무 숲이 넓게 펼쳐져있다.
“죽천은 대나무 죽(竹) 자, 샘 천(泉) 자를 써요. 입향조는 잘 모르겠고. 성주 이씨, 광산 김씨가 많이 살았제.” 한글학회에서 펴낸 ‘한국지명총람 전남편’(1983)에는 죽천마을을 ‘대밭골’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의 집 뒤에 있는 대숲이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해 보이는 이곳에 특별한 우물터가 있다. 최씨의 말이다.
“제가 태어난 탯자리 옆에 우물이 있어요. 옛날 저 마을 원님이 살고 있는 데가 보성강이 흐르는데 물가에 샘을 파니까 강물이 간간하고 서정마을에 가서 물을 떠다 먹어도 안 좋고. 근데 여기 우물물을 떠다 먹으니까 여름에는 완전히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숩고 해서 좋았다고 해요. 이 우물 깊이가 석질(90㎝)이 넘습니다.” 류연자 씨 부부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식 주택 옆에 60여 년간 살았던 작은 슬레이트 가옥이 있고 그 옆에 허름한 폐가가 남편의 탯자리이다. 과거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 우물을 신앙처럼 떠받들었다고 한다.
“항시 물이 있다가 바짝 마를 때가 있어요. 그럼 기우제를 드린 게 아니라 3일 정도 부정을 타지 않게 몸단장을 했었죠. 그러고 나서 마을 위에 얕은 성뫼(山)에 가면 조그마하니 항시 안 마르는 물이 나거든요. 4-5명이 올라가서 한 사람은 대두병에다 물을 담아서 솔잎을 마개로 하고 나머지는 징 치고, 꽹과리를 쳐요. 대두병을 거꾸로 추켜들고 물이 찔끔찔끔 나오게 해서 걸어 내려오는디 성뫼 거기서부터 우물까지 좀 먼 거리를 와요. 이 의식을 치르고 나면 물이 점차적으로 우물에 가득 채워져요. 토속신앙이제. 우리 마을에서는 귀한 보물이여.”
그때는 동네 사람들이 울력으로 우물에 내려가 청소를 하면서 정성을 다했지만 지금 이 우물은 최씨가 모터를 이용해 농업용수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내력을 지니고 있는 마을이지만 이곳은 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5가구가 살고 있는 죽천마을이 당동2구인 서정마을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2012년에 펴낸 ‘곡성군 마을 유래지’(由來誌)를 살펴보면 서정마을 유래에 대해 알 수 있다. 마을 일대에 백제시대 욕내현(浴乃縣, 현 곡성군)의 치소(治所)가 자리잡고 있었고, 이 지역은 조선시대 곡물을 보관해 두고 흉작에 대비해 구호해 주었던 기관인 ‘사창’이 있어 ‘사창’(社倉)이라고 불렸다.
조선조 말에는 교동, 서정, 죽천, 본토로 마을 이름이 구분됐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당동리(堂洞里)로 개칭해 교동은 당동1리, 서정, 죽천, 본토는 당동2리가 되었는데, 1970년에 본토마을이 당동3리로 분리되어 현재는 당동1, 2, 3구가 됐다. 이렇게 행정체제 개편 과정에서 사라졌지만 당동리에 속한 죽천마을은 곡성군 원래의 터라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예부터 이곳 사람들은 주로 논밭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대표적인 특산물은 없었다. 그러다가 30여 년 전부터 농가의 든든한 효자작목으로 떠오른 것이 고들빼기이다. 여름에 파종해 재배한 이 고들빼기가 잘 팔리면서 농가 소득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옛날에는 밭에 재배를 안 했어. 논두렁, 밭두렁에 많았제. 씨가 바람에 날아가서 땅에만 앉았다 하믄 나는 거야. 사방 데 나고 그래. 농약을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그의 집 앞 텃밭가에 살포시 앉아 자란 고들빼기 한 포기가 있었다. 빗살처럼 갈라진 줄기에 새끼손톱만 한 노란 꽃이 피어있고 꽃이 진 자리에는 하얀 솜털 같은 관모가 있다. 고들빼기는 7-9월에 꽃이 핀다고 하는데 11월에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집 앞 텃밭가에 살포시 피어난 고들빼기 꽃. 씀바귀 꽃과 비슷한데 수술이 검은 씀바귀 꽃과 달리 수술이 노랗다
그들의 텃밭에는 녹색과 검붉은색 이파리로 싱싱함을 드러낸 재래종 고들빼기가 두둑 가득히 있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싱그럽게 하였다. 그가 호미로 고들빼기를 뿌리째 캐면서 옛이야기를 꺼낸다.
텃밭 가득 녹색과 검붉은색 이파리로 싱싱함을 드러낸 재래종 고들빼기.
“남편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한 마지기 논에 농사를 짓다가 20살에 군대를 갔다 왔제. 근디 아파서 일도 못하니까 67년인가 큰집 오빠가 녹차를 심는다고 오라고 해서 보성으로 갔어요. 거그서 나무 꺾꽂이와 꽃꽂이를 배워서 지금까지 정원사 일을 하고 있제. 그때 보성 사람들은 고들빼기를 토끼풀이라고 하더랑께. 뿌리는 오래 놔두니까 배추 뿌리만씩 한데 해 묵을지를 몰라. 그래서 고들빼기김치를 담아서 줬더니 다들 맛있다고 탄복을 해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입맛을 감동시킨 류연자 씨표 고들빼기김치는 그의 친정엄마에게 물려받은 솜씨이다. 여기에 그만의 비법이 있다면 과거 친정엄마의 방식인 ‘조청’을 쓰지않고 ‘무화과’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5년 전, 1000평에 달하는 비닐하우스에 무농약농법으로 친환경 무화과를 재배하면서부터이다.
5년 전부터 1천여 평에 달하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를 시작한 무농약 농법 친환경 무화과.
자 그럼, 그의 고들빼기김치를 담는 법을 소개한다. 먼저, 밭에서 캐온 고들빼기를 다듬는다. 뿌리에 묻은 흙을 물로 꼼꼼히 씻어야 하기에 잔손이 많이 간다. 이어서 고들빼기 뿌리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 소금을 친다. “물에 소금을 넣고 찍어 먹을 때 간간하게 해. 소금을 너무 많이 넣으면 고들빼기가 질겨. 짤박짤박할 정도로 해서 숨이 죽게 돌로 눌러 놓고 하룻밤 재워.”
소금물에 약 12시간 정도 절인 고들빼기는 다시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뺀다. 고들빼기와 궁합이 잘 맞는 쪽파도 깨끗이 씻은 후, 큰 통에 절인 고들빼기를 넣고 그 위에 새우젓으로 숨죽인 쪽파를 놓아 이를 반복해서 켜켜이 놓는다. 다음은 그의 남다른 고들빼기김치 맛을 좌우하는 육수와 젓갈 만들기. 먼저 무, 다시마, 내장을 제거한 멸치, 양파, 대파를 넣고 3-4시간 정도 끓이다가 속살이 빨갛게 익은 무화과를 넣어 단물을 우려낸 후, 건더기들을 건져내면 육수가 완성된다.
이 육수를 적당히 부어 고춧가루에 개어 놓으면 발효돼 맛이 좋고 색깔은 고와진다. 또 멸치젓과 찹쌀죽의 맛을 더하기 위해서 육수를 사용하는 것이 그만의 노하우. 싱싱한 멸치와 천일염을 섞어 2-3년간 삭힌 멸치젓은 부직포를 깐 바구니에 퍼담아 하루 동안 받쳐 둔다. 맑은 멸치액젓에 육수를 부어 끓인 후, 찹쌀가루를 넣어 죽을 쑤면 회색을 띤다. 여기에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다.
이어서 싱싱한 갓, 쪽파, 대파, 당근을 곱게 썰고 배, 마늘, 생강을 믹서기에 곱게 간 다음 총 17가지나 되는 재료들을 합방시키면 고들빼기김치에 어우러질 양념 준비는 끝. 맛깔스럽게 보이는 양념을 고들빼기와 쪽파에 아낌없이 넣어 살살 발라주면 고들빼기김치 완성이다.
각종 재료들에 류연자 씨의 손맛이 더해지면 ‘특급 고들빼기 김치’가 완성된다.
고들빼기에 파를 곁들어 맛보면, 다소 맵지만 차진 양념이 입에 착착 감기고, 쌉싸름하나 상큼한 쪽파향이 더해져 입맛을 톡톡 살리고, 달지 않으나 은은한 단맛이 혀끝을 녹인다. 그의 넉넉한 인심이 더해져 갓 지은 따끈한 밥과 곡성의 대표 먹거리인 흑돼지로 만든 수육, 고들빼기김치로 한 상이 차려진다. 쌀밥을 한 숟가락 떠서 흑돼지 수육과 고들빼기김치를 올려 입 속에 넣으면 그 맛에 탄성이 절로 나는데, 꿀맛 같은 이 맛은 먹어본 자만이 안다.
“옛 어른들은 고들빼기김치가 ‘쓴께 위에 좋다’고 말하제.” 이렇게 말하는 올해 나이 일흔아홉인 류연자 씨도 옛 사람들의 축적된 지혜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맑은 대숲 바람 소리를 머금고 무화과의 달콤한 매력과 그의 정성이 빚어낸 고들빼기김치는 오랜 세월 동안 내 부모, 지아비, 자식들, 이웃들에게 건강한 맛을 전하는 사랑의 선물이다. 곡성 죽천마을에는 또다시 노오란 꼬둘빼기꽃이 피겠죠.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