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16:00 금정역
4번 출구 앞에서 한 시간을 서성였다. 그 사이 먹거리가 구입되고 있었고 동행인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5시쯤 되고서야 330번 버스를 타고 제부도 목전 종점에 이르렀다. 하루에 두 번 육지에서 제부로 이르는 물길이 개방되며 수심이 얕아 배는 뜨지 안한다. 옛날엔 지역주민들이 돌을 쌓아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린 콘크리트 바닷길을 반쯤 걷다 지쳐 전화로 차편을 요청했다. 응, 중간에 전신주로 빠지는 샛길에 있어요, 어여 와요.
우리가 묶을 곳은 '어촌민박'이었다. 엉? 인터넷에 보인 건 이게 아이었는디? 아파트형 민박이래서 위로 높을 줄 알았는데 옆으로 뻗었다. 그렇니까 동 구조란 말이겠죠, 1동 2동... 넓은 마당에 각기 딸린 평상.. 쾌적함. 나쁘지 않다.
댓근 정도 되는 삼겹살을 구워볼 작정이다. 우린 그 전에 해안가로 나가 일몰을 지키기로 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조물조물 거리다, 바위님 신발을 벗는다.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뻘이었다. 갯벌. 엉겹결 모두 바위님을 좇아간다. 너른 갯벌을 찰떡찰떡 한참을 밟고나서야 바닷물이 좀 철렁인다. 그들은 물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고개를 한 데 모은다. 해는 이미 젔고 그들의 몸은 검은 실루엣으로 남실거린다.
찌개도 끓입시다. 고기엔 된장찌개. 재료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애들립으로 그럴싸하게 한 냄비 마련됐다. 여러분들이 조리감독이었던 내게 격려의 말씀들을 한다. A형은 칭찬이 필요한 사람이다. A형 조리감독은 흐뭇해한다. 상엔 맥주가 돌아다녔지만 한 잔쯤 마시니 영 아니다. 괴기엔 된장찌개, 그리고 소주다. 명왕성님에게 소주를 받는다. 쌈을 싼다. 상추 두 잎에 깻잎 한 장. 고기 맛이 좋다.
밖 평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알콜타임이 심화된다. 꾸준한 과음으로 장의 심기는 언제나 불편하지만 술은 들어가고 제부의 밤은 즐거워지고 있다. 혈액형, 별자리, 싫었던 순간, 좋았던 순간들... 초입에 말씀이 없던 윤진님의 재담에 모두들 놀라하고 있을 즈음.. 일제히 모두 바이킹놀이기구로 향했다. 아리아님, 바위님, 윤진님(향긋한 젊음)의 발랄한 선두로 소침한 나마저도. 모두 함께 한다는 건 확실히 신나고 매력적이다.
아마 기억이 맞다면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된 날 이후 처음 타는 바이킹이었다. 건너편엔 바위, 아리아, 토끼심장님이 가운덴 작은이름, 윤진, 명왕성님이 다시 이편엔 나. 건너편에서 바위님이 건너오라고 손짓을 했지만 나는 자리를 지켰다. 낯선 선원들 옆에 앉아 고독한 해적이 되고싶었나. 난 종종 엉뚱하다. 외소한 선장노인의 힘찬 운행으로 모두들 만세를 외친다. 물론 가운데 여리신 우리님들의 만세는 없었다고 하겠다. :) 가뿐한 항해를 마치고 배를 내리는데 이런 소리 들린다. 한 번 더 탈까?
메인 프로그램이었던 시낭독시간이 다가왔다. 우린 낭독 타이밍에 대해서 나름 심혈;을 기울였다. 나만 그랬나? 낭독자와 듣는자의 흥을 돋구는 데는 적당한 취기가 부채질이다. 나는 제부로 오기전에 낭독할 시를 프린트하고자 했다. 헌데 애먼 연애시를 떠올리고 있으려니 찹찹하더라. 개인적으로 낭독타임은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명왕성님 제외로 모두 처음 뵈는 분들이었고 그런데 시를 들려주고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넘겨받아 또 다시 들려주고, 그러한 훈훈함이란.. 나는 그게 매우 소중한 것임을 안다.
화로 위에 조개가 지글지글하다. 조개구이기술자 작은이름님은 목장갑을 끼고 숙련된 솜씨를 보인다. 고러한 정성된 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꼬막과 맛조개, 바지락 그리고 왕 큰 바지락비슷한 조개.(그것의 이름은 누구도 몰랐다. 이건 그냥 '조개'야. 명왕성님이 말씀했지만 윤진님 의아한다. 나도 의아한다.) 맛조개는 살집을 꿈틀거리며 아파한다. 문득 생각이 든다. 왜 이 조개는 맛있을까. 난데없이 김선일씨 사건이 떠올랐다. 나는 종종 비약이 심하다. 소주가 잘 들어간다.
사전협의가 없었기에 나는 이번 제부행에 뭘 준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버너? 돗자리? 애라, 번개처럼 참가하는 사람이 무슨 걱정은.. 하면서 대웅제약 광고문이 박힌 비치 발리볼을 하나 챙겼을 뿐이다. 준비된 건 행해져야 한다. 마침 우리는 족구를 할 태세였다. 대덴치스! 열결에 성비도 잘 맞춰진 팀이 구성된다. 바위, 명왕성, 윤진님 VS 부메랑, 아리아, 작은이름님. 심판 토끼심장님. 배구공으로 냉정한 승부가 시작된다. 나는 쓰레빠를 끌고 망둥어같은 뜀박질을 춘다. 운동치는 슬프다. 두어번 자빠진다. 무릎도 어깨도 긁히지만 대수가 아니다. 서브 하나도 장렬하다. 열심으로 뛰는 운동치. 두 다리와 두 팔이 맹렬하게, 내 몸이, 맹렬한 내 몸이 기쁘다. 빛나는 패배를 안고 대웅제약 비치 발리볼로 후식을 만끽한다. 패스 그리고 다시 패스. 박자와 박자.
먹는 게 남는 거라고 어느덧 된장라면 시식이 거행되고 있다. 남은 된장국물에 삼양사발면을 끓여서 모두들 나눈다. 나도 좀 들래요. 쫀득하다. 쫀득쫀득. 부메랑님 취했어요. 나는 쫀득하게 눈이 풀리고 쫀득하게 취했다. 나는 엉금엉금 방으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덮는다. 제대로 논 거다.
29일 10:**
조개 퍼왔어요! 밥 묵어요!
놀랍게 부지런한 사람들. 나는 삼발로 일어난다. 뭡니까? 밥을 묵어야제. 얼결에 조리감독이 된 부메랑은 예정대로 김치찌개를 준비한다. 김치를 볶아서? 기름이 없잖습니까. 김치에 마늘, 고추장, 미원, 맛소금, 라면스프, 고추, 참치가 들어간 김치찌개로 바위님이 몸소 챙겨온 밥통의 밥은 완벽하게 처리됐다. 이로써 한 팩 삼양사발면도 말끔히 처리되는듯 하였으나 한 사발이 숨어있었으니, 작은이름님의 얕은 한탄이 그만이다.
작은이름님 차량에 두 분의 숙녀가 승차하고 나머지 분들은 버스를 이용해 물길을 건너 육지로 돌아간다. 먼저 도착한 부메랑, 작은이름, 윤진님은 훼미리(강릉의 돈까스점 아니죠, 윤진?)에서 막대하드 하나씩 문다. 요맘때 파인애플맛, 스크류바, 보석바. 후에 도착한 바위, 아리아님은 실론티를, 토기심장님은 권상우가 선전하는 아미노업, 명왕성님은 아무것도 없이 그냥 푸근하다. 귀가길은 푸근하다.
명왕성, 바위님은 먼저 금정행 버스를 타고 떠난다. 심심하면 전화해요. 그럼요. 팔을 몇 번 휘젓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작은이름님 차량으로 안산을 향한다.
인상만큼 부드러운 작은이름님의 운행 속에 깍아지른 산의 단면적, 무성한 숲, 촌스런 간판들, 얕은 가옥이 스친다. 옆에 앉은 아리아님과 윤진님은 고맘때 대화로 조곤조곤, 묵묵한 토끼심장님, 곰 세마리를 모셔달라는 작은이름님, 나는 윤종신의 '2시에 데이트' 첫곡이었던 verve의 bitter sweet symphony에 감격해한다. 안산터미널에서 3시 표를 끊고 강릉에서 오신 귀빈 윤진님과의 작별을 목전에 둔채, 멤버들 풀가에 둘러앉는다. 무언가 얘기들이 두런두런 오간다.
아리아, 토끼심장님과 중앙역에서 4호선 전차에 오른다. 그리고 금정에서 다시 1호선 전차로 옮긴다. 1호선은 낡았다. 오랜만큼 폭이 다양한 군상이 인상적이다. 나의 시선은 말기 소년 둘에게 머물러있었다. 둘 다 특이했다. 하나는 물렁물렁한 살에 키는 커서 그런지한 패션에 헤드폰을 삐닥하게 둘렀고, 나머지 하나는 곱게 생긴 손으로 박스테이프가 십자로 붙여진 조그만 포장물을 애틋히 매만지고 있었다. 둘은 전차 문옆에 마주보고 주저앉아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분명하지만 전혀 어울리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가리봉역에서 아리아군과 작별을 고하고 다시 토끼심장님과 작별을 고하고 나는 역을 빠져나와 집으로.. '뿌듯했니.' 참이슬 다섯 병이 든 가방을 짊어지고 그렇게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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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적인 기록으로 쓰일 것이었는데, 함께 게시합니다. 덕분에 즐거웠구요, 그런 점은 기록의 행간에 충분히 표현되지 않았나 합니다. :)
첫댓글 아핫~ 전 너무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서 참 행복했습니다. 제주였더라도 난 갔을꺼에요. 물론 헤어질땐 머리를 두어번 쥐어 박더라고 말입니다... 하하
누나의 음식은 정말 맛이있었어요~^^;;누나의 시낭송도 정말 최고였구요~^^*
또 다시 부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어쩜 그리 자세히도 기록을 하셨는지. 마치 함께 동참한 듯한 생각마저 드는군요.
동참 하시지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