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9일 “나무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 회원 43명과 더불어 고흥지역으로 답사를 갔다. 먼저 1916년 자혜의원으로 설립된 소록도를 찾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소록도는 일제에 의해 조성된 쳔형(天刑)으로도 일컬어지는 한센병 환자들이 오랜 기간 외부세계와 격리되어 치료를 받은 곳이다. 단지 병자라는 이유로 인권 유린이 말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강제로 거세까지 당했다고 한다.
그들이 살았던 시설물과 공원을 둘러보았다. 그중 넓고 잘 관리된 곳에 매화가 열매를 달고 있어 한 알을 따서 가지고 와서 내가 관리하는 금호강 둔치 에스파스 생태공원에 파종했다. 한 알의 이 매실에는 인간의 자유가 타의에 의해 구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그들이 어떤 감정으로 이 꽃을 보며 위안을 받았는지? 이 꽃 한 송이로 그들의 억울함에 동참할 수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에서였다.
완숙하지 않은 설익은 상태라 발아가 될까 혹 포장을 관리하는 인부들이 그냥 잡초처럼 뽑아 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키웠다. 땅이 메말라 가물 때는 물을 주고 거름도 주며 애쓰며 보살폈다.
그런데 6년 만인 2023년 봄에 소록도와는 수백 리 떨어진 이곳에서 꽃을 피워 가슴이 뭉클했다. 따지고 보니 씨를 묻을 때 내 나이가 72세였다. 지금까지 나이 따위는 모르고 살았는데 지인이 보내준 박목월의 글 ”.씨뿌리기“를 보고 새삼 적지 않은 나이를 의식하게 되었다.
”호주머니에 은행 열매나 호두를 넣고 다니며, 학교 빈터나 뒷산에 심는 노교수 이야기가 나온다. 이유를 묻자, 빈터에 은행나무가 우거지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언제 열매가 달리는 것을 보겠느냐고 웃자! ‘누가 따면 어떤가?
다 사람들이 얻을 열매인데!’ 하고 대답했다.
여러 해 만에 그 학교를 다시 찾았을 때, 키 만큼 자란 은행나무와 제법 훤칠하게 자란 호두나무를 보았다. ‘예순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 (六十不種樹)’고 말한다. 심어봤자 그 열매나 재목은 못 보겠기에 하는 말이다.
송유(宋兪)가 70세 때, 고희연(古稀宴)을 했다. 귤(柑) 열매 선물을 받고, 그 씨를 거두어 심게 했다. 사람들이 속으로 웃었다. 그는 10년 뒤, 귤 열매를 먹고도 10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떴다.
황흠(黃欽)이 80세에 고향에 물러나 지낼 때, 종을 시켜 밤나무를 심게 했더니 이웃 사람이 웃었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요?’
황흠이 대답했다. ‘심심해서 그런 걸세! 자손에게 남겨 준다 해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랬더니 10년 뒤에도 황흠은 건강했고, 그때 심은 밤나무에 밤송이가 달리니 이웃을 불러 말했다.
‘자네 이 밤 맛 좀 보게나! 후손을 위해 한 일이 날 위한 것이 되어 버렸군.’
홍언필(洪彦弼)의 아내가 평양에 세 번 갔는데 어려서 평양감사였던 아버지 송질(宋軼)을 따라갔고, 두 번째는 남편을 따라갔으며, 세 번째는 아들 홍섬(洪暹)을 따라갔다.
아내로 처음 갔을 때 장난삼아 감영에 배를 심었고, 두 번째 갔을 때는 그 열매를 따 먹었다. 세 번째 갔을 때는 재목으로 베어 다리를 만들어 놓고 돌아왔다.
세 이야기 모두 '송천필담 (松泉筆譚, 조선 후기의 학자 심재가 쓴 글)'에 나온다.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예순만 넘으면 노인 행세를 하며, 공부도 놓고 일도 안 하며 그럭저럭 살다 죽을 날만 기다린다.
100세 시대에 이런 조로(早老)는 너무하지 않을까? 씨를 뿌리면 나무는 자란다. 설사 내가 그 열매를 못 딴들 어떠랴! 지금 어떻랴 ‘지금 시작하랴 나이는 없다. “
명재상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도 62세에 소나무를 심었다. 서문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나이 사십이 되어 몇 그루 어린 소나무를 심는가? 인생 칠십은 예부터 드물다는데 언제 나무가 자라 그늘을 볼 것인지'하였다는 당나라 시인 백낙천의 '소나무를 심고'라는 시를 보고 자제들과 함께 심으며 스스로는 그늘을 보지 못해도 천년 지나 봉황의 보금자리가 되기를 기원하며 나무 심는 뜻을 밝히고 있다.
시문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찌하여 늙은이 나이 들어 자라기 힘든 솔을 심었을까. / 나 비록 그늘 보지 못해도 뉘라서 흙 옮겨 심은 뜻 알겠지 /천 년 지나 하늘 높이 솟으면 봉황의 보금자리 되리라.
내년이면 80이다. 조선 후기 명신 황흠(黃欽, 1639~1730)처럼 “80 종수(八十種樹) 즉 80에 나무를 심고 싶은데 무슨 나무를 심을까 고심해 본다.
첫댓글 이 회장님! 참으로 의미 깊은 글입니다. 그래서 저는 八十植種樹 즉 팔십에 과일나무(種樹)를 심겠다고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은 아직 젊습니다
내년에 80을 기념으로 식수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소록도 갔다 온지가 벌써 6년이 되었군요
저도 그 이후로 못 가봤습니다
전에는 일면에 한두번은 갔는데요
매화열매가져와 심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이정웅 회장님 답습니다
정성이 대단하십니다.
내년에는 저도 소록도에서 온 아기매화 꽃 보러 에스파스 생태공원에 가 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