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설교하라
존 파이퍼 지음
이동기목사발표
서문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풍겨나지 않는 설교로 한때의 즐거움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신의 영광을 보이소서!”라는 영혼의 숨은 외침에는 부응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교파나 기관에 열광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 때, 주권자이신 왕의 중단되지 않는 목적을 알 때 열광합니다.
위대한 옛 설교자 조나단 에드워즈가 보고 매료되었던 그 하나님을 보지 못해서 고생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1부 왜 셜교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높여야 하는가?
1장. 설교의 목적: 하나님의 영광
1. 하나님의 말씀 사역으로 부르셨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주관적인 증거: “그 일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길 정도로 강렬한 열망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1)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분 자신을 높이는 것이지 설교자를 높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모든 진정한 설교의 목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양심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진리로 정신을 먹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상상력을 정화시키고,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을 열게 하며, 하나님의 목표에 의지를 바치게 하는 것입니다.
3)이 책을 통해 제가 하려는 일은 설교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2. 설교의 목적에 대한 주장들
1)코튼 메더의 설교 목적에 대한 가르침
(1)“기독교 설교자의 직무에 담긴 중대한 목적과 의도는 인간의 영혼에 하나님의 왕권과 통치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2)설교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즐겁게 그 나라에 복종하게 해야지 억지로 복종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3. 설교의 본질: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과 “그의 한없는 가치를 드러내며 그 아름다움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
4. 존 파이퍼의 설교의 목적에 대한 결론: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즐겁게 복종하는 인간의 마음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설교를 하도록 보장해 주는 사실이 여기 있습니다. “만족하는 이가 영광을 얻으며 기쁨을 주는 이는 보화가 된다”
2장 설교의 토대: 그리스도의 십자가
1. 설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결되어야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의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교만(죄)입니다.
2. 설교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알면서 어떻게 죄인에게 소망을 선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설교자란 세상이 아닌 성경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많은 청중이 그 존재도 알지 못하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영적 실재와 늘 씨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영광스러운 해결책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3, 자존감을 중시하는 현대의 예언자들은 십자가야 말로 우리의 무한한 가치를 입증하는 증거라고, 우리를 얻기 위해 하나님이 기꺼이 비싼 값을 치르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형편없이 왜곡하는 말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십자가는 영광의 가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지 보여주는 증거이자 교만의 죄가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1)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입증하고 높이는 일과 죄인의 소망과 기쁨과 즐거움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2)십자가는 설교자와 회중의 교만을 못박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점에서 겸손의 토대가 됩니다.
3)십자가는 과거에 일어난 대속의 사건이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처형의 경험입니다.
4)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은 설교자의 설교는 무효라고 바울은 말합니다(고전 1:17)
3장 셜교의 은사: 성령의 능력
1. 설교는 전적으로 성령에 달린 일입니다.
1)설교의 목적을 이루려면 오직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2)성령을 의지한다는 것은 곧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는 말씀을 진심으로 믿는 다는 뜻입니다.
2. 기독교의 모든 설교는 성경 본문을 강해하고 적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스펄전은 존 번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를 아무데나 찔러보라. 그의 피는 성경으로 되어 있다는 것, 그에게서 성경의 핵심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그가 항상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그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설교자가 설교할 때 능력도 주시고 영광도 받으십니다.
존 파이퍼가 설교를 바로 앞두고 마지막으로 요청드리는 내용 APTAT
1. 시인(Admit):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시인합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2. 도우심을 구함(Pray): “그러므로 아버지 당신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3. 신뢰(Trust): 하나님의 선하심을 일반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시간에 소망의 기반이 되어줄 약속을 구체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4. 확신(Act):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며 셜교를 합니다.
5. 감사(Thank): 메시지(설교)를 마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질문: 목사님은 강단에서 설교하기 전에 어떤 기도를 주로 드리십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전할 때 임하셔서 이 설교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고 믿게 해주세요.
4장 설교의 진지함과 즐거움
감정의 강렬함, 논증의 무게, 엄숙함이 배어 있는 정신, 경건의 능력에서 풍겨 나는 향취, 영혼의 열정,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야말로 에드워즈의 설교의 진지함을 보여주는 표지들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한 가지를 배운다면, 이처럼 자신의 소명을 진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의 행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을 사랑하는 목자는 말씀 사역에서 자신의 기쁨을 함양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설교자는 복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를 주는 것입니다. 아무 즐거움 없이 그저 ‘순종’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하는 목사는 그런 삶을 교인에게 전하게 됩니다. 또 한가지는 확연하게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는 목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의 기쁨과 수많은 목사들의 웃음과 농담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 부분적인 이유는 수많은 목사들이 말하는 행복이 거룩한 진지함과 함께 섞여 있지 못한데 있습니다.
설교에 마땅히 진지함과 간절함이 있어야 하는 것은, 설교야 말로 죄인을 구원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일 뿐 아니라 성도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이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삶과 설교에는 즐거움과 진지함이 함께 있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무심한 영혼은 깨워주고 성도의 짐은 감미롭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즐거움과 진지함으로 함양하기 위한 실제적인 제안 일곱가지
기쁜 마음에서 나오는 실제적이고 진심어린 거룩함이 삶의 모든 영역에 나타나도록 힘쓰십시오.
여러분의 생활-특히 연구 생활-이 기도로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되게 하십시오.
찌르기만 해도 성경이 흘러나오는 이들, 피를 토하는 간절함으로 진리를 논한 이들의 책을 읽으십시오.
죽음을 자주 묵상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십시오.
설교자인 여러분이 더 엄한 심판을 받는 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하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예수님의 모범을 생각하십시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해지기 위해 온 힘을 다하십시오(벧전 5:6).
2부 어떻게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설교를 할 것인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목회에서 얻은 지침
무엇보다 에드워즈는 하나님께 푹 빠진 설교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설교를 다루는 이 책에서 그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5장 하나님을 중심에 두라: 에드워즈의 삶
대학시절에 그는 70개의 결심문을 작성했습니다.
그는 보통 새벽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일어나 서재로 갔습니다. 항상 손에 펜을 들고 연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수없이 많은 노트에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여행을 하면서도 길가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잊지 않기 위해 쪽지에 적어 두곤 했습니다.
에드워즈가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경험했던 날을 기록한 것입니다.
“1737년, 건강을 위해 말을 타고 산으로 가다가 평소 하던 대로 한적한 곳에 내려 거룩한 묵상과 기도를 위해 걷는데, 특이하게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신 아들의 영광과 그 놀랍고도 크고 충만하고 순결하며 감미로운 은혜와 사랑, 온유하고 부드러운 겸손을 보게 되었다. --- 내 생각에는 한 시간가량 계속된 것 같다. 나는 그 시간을 대부분 눈물을 쏟으면서 큰 소리로 울면서 보냈다”.
에드워즈는 목회를 하며 몇 가지 큰 실수를 했는데, 그 실수들이 결국에는 해고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첫째는 몇 명의 무고한 젊은이들을 외설적인 추문에 연루시킨 일이었습니다. 다른 하나 목회에 종지부를 찍게 된 계기는, 구원을 받지 않아도 성찬을 허용했던 관행을 비성경적인 태도로 여겨 거부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책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1750년 6월 22일 금요일에 해고가 공포되었고, 7월 1일에 “고별설교”를 하기에 이릅니다. 그때 나이가 46세입니다.
노샘프턴에 있는 동안 에드워즈는 거룩한 전 앞으로 오르기 위한 인간 점화기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마침내 뉴 잉글랜드에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비상한 부흥의 시절이 온 것입니다(1734-1735년과 1740년-1742년).
노샘프턴의 회중교회에서 해고된 후 그는 서부 매사추세크 주 스톡브리지에서 목사겸 인디언 선교사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는 1758년 프린스턴 학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7년 동안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의 기간은 그에게 아주 생산적인 기간이었습니다. 1758년 1월 그곳을 떠나 스톡브리지를 떠나 프린스턴 대학의 학장으로 초빙을 받아 그곳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2월 13일 천연두 예방접종을 받은 후 2차 감염으로 인해 열이 나고 목구멍에 포진이 생기면서 약을 삼키지 못하게 되었고, 마침내 1758년 3월 22일 쉰네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병상을 지키며 비탄에 빠져 두려워했던 친구들에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러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6장 감미로운 주권에 복종하라: 에드워즈의 신학
조나단 에드워즈가 설교한내용과 방식은 하나님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중대한 진리를 잠잠히 상고하는 가운데 조나단 에드워즈는 존재 자체가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지식과 무한한 거룩함을 의미하는 엄위하신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온전한 충만함의 원천이고, 온전한 충만하심은 온전한 거룩하심의 원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은 에드워즈가 하나님에 대해 믿은 진리들 중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에드워즈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에 사로잡혔다고 해서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았습니다. 현실도 영광의 일부였습니다. 현실 또한 그가 엄청난 열정으로 사랑했던 무한히 영광스러운 분의 크고 긴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감미로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통찰에서 추론할 수 있는 두 가지 중 하나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의 목적은 자신의 영광을 지키시고 드러내시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주된 목적”이라고 여겼습니다. 즐거워하는 것은 에드워즈가 말하는 감정입니다. 그는 “참된 신앙은 대부분 거룩한 감정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정을 “영혼의 의지와 외행을 좀 더 격렬하고 예민하게 행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는 것에는, 예를 들어 죄에 대한 미움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 하나님과 교제하는데서 나오는 만족감, 하나님의 아들이 마지막에 나타나실 것에 대한 열망, 그분이 이루신 구속에 대한 환희, 그분을 사랑하지 못한 데애 대한 비찬과 뉘우침, 자격없는 자에게 베푸신 혜택에 대한 감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는 열심, 의에 대한 굶주림 등이 포함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거룩한 감정이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며, 성령의 강력한 추동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거룩한 감정과 인내가 없으면 참된 신앙(또는 참된 성도)가 아닙니다. 그는 “경건하게 살려 하지 않는 자들은 스스로 택함을 받지 못한 자임을 알게 되며,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택함을 받은 자임을 알게 된다”
에드워즈는 믿음에 대하여 결정적인 두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로 구원받은 믿음에는 “진리를 믿는 믿음과 그에 상응하는 마음의 성향이 포함됩니다.
둘째로 구원받은 믿음은 인내하는 믿음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잠잠히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알았을 때, 그의 눈 앞에는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스스로 충만하시고 온전히 충만하신 하나님,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 그렇기에 온전히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7장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라: 에드워즈의 설교
하나님에 대한 에드워즈의 통찰은 어떤 설교를 낳았을까요?
영적 각성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주권적인 역사를 위해 수단을 사용하시되, 특히 설교를 사용하십니다.
저자 존 파이퍼는 에드워즈 설교의 핵심을 열가지 특징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것을 ‘좋은 설교의 열가지 특징’이라고 이름합니다.
첫째로, 좋은 설교는 ”거룩한 감정“-죄에 대한 미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 그분의 약속을 기대하는 소망, 그분의 자비에 대한 감사, 거룩해지려는 열망, 부드러운 긍휼같은 감정,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것은 요약자의 견해로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둘째로, 좋은 설교는 정신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머리를 깨우기보다는 마음의 감화를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을 감화시키는 설교가 가장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거룩한 진리로 청중의 정신을 깨우치는 것이야말로 좋은 설교의 목적입니다.
셋째로 좋은 설교는 ”성경에 기초한“ 설교가 아니라 ”성경에 푹 잠긴“ 설교입니다.
넷째로 좋은 설교는 비유와 이미지를 사용하는 설교입니다. 이미지에 대한 설교를 통해 받은 실제에 가까운 인상이 강렬하고 오래가도록 해야합니다.
다섯째로, 좋은 설교는 죄와 지옥,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위협하고 경고합니다. 이는 이렇게 두려움을 갖도록 겁을 주어서 그 죄악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섯째로 좋은 설교는 반응에 호소하는 설교입니다. 에드워즈는 ”죄인들을....열심히 초청해서 복음이 제공하는........모든 매력적인 격려의 말로 구주께 나아와 그분을 영접하며 그분께 마음을 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곱째로, 좋은 설교는 마음의 움직임을 파헤칠 때 나옵니다. 에드워즈가 마음의 움직임을 잘 파헤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자기 마음을 철저하게 성찰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대각성 기간에 나타난 강렬한 신앙의 체험들을 살펴보며 옥석을 가려내는 과정에서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습니다. 셋째, 그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들을 꿰뚫고 있었기에 이런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덟째로, 좋은 설교는 기도로 성령께 굴복할 때 나옵니다. 설교의 목적으로 이루려면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가 거룩한 영향을 받도록 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도를 통해 설교자를 도우십니다.
아홉째로, 좋은 설교는 상한 심령, 온유한 심령에서 나옵니다.
열째로, 좋은 설교는 치열하게 전합니다. 청중에게 얼마나 중대한 문제가 걸려있는지 보여주는 설교가 좋은 설교입니다. 설교에 치열함이 없다는 것은 설교자가 자신이 전하는 바의 실재성을 믿지 않거나 그 실재성에 한 번도 심각하게 압도 당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에드워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결코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질문: 좋은 설교 열 가지에서 목사님은 어느 부분이 강하고 어느 부분이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3부 33년 후
설교와 목회에서 여전이 최고이신 하나님
8장 33년 후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하여:선명하게 해주고 확인해 주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제 인생의 영웅이자 친구이자 성경 저자를 제외하고 제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신학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저 자신과 교회와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사고 전체를 형성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심으로 영광을 받으실 뿐 아니라 그영광을 기뻐하게 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신다“라는 그의 통찰은 제 설교관과 목회관 전체를 떠받치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이라는 설교는 충격적인 경험이었고 그것을 다 읽을 때까지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가슴속에 파고 들었습니다. 포도를 짜내듯 본문을 으깨어 짜낸 포도주가 흘러넘쳤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의 목적에 다가서며’라는 제목의 설교는 요한계시록 21장 6절을 설교한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모든 역사와 섭리 속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이 큰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가 내놓은 대답은 이것입니다.
”자신의 뜻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복 주시고 반대하는 모든 원수를 멸하시며, 죄로 가득한 비참한 인류 중에서 온전히 영화로운 배필을 아들에게 주시려는 것, 그리하여 하나님이요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전해주시고 영광을 받으시려는 이것입니다.“
여기서 저자인 존 파이퍼의 설교 중심을 차지해 온 강조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강조점은 하나님이 창조와 역사 속에서 이루려 하시는 최종 목적의 최고 높은 자리와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높이시는 일을 통해 이루시려는 궁극적 목적은 아버지의 영광에 있습니다.
두 번째 강조점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중대한 목적-원대한 계획-이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려는 데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전해주시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선명하게 해준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일의 중요성입니다. 에드워즈는 아주 매력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과 교회를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원대한 계획의 목적에 다가서며’라는 설교는 저자가 45년간 강조해온 사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그 안에서 만족할 때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감미롭게 확인해주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통해 그가 영광을 받으신다는 이 사실을 옹호하고 설명하고 적용하는데 인생의 대부분을 바쳤습니다.
9장 성경에 매인 설교를 높이며: 장 칼뱅과 오락적인 목사
33년간 꾸준히 설교하며 목회사역을 하고 난 지금,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성경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갈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실재에 매어 놓습니다.
성경에 속박됨으로 광대해진 칼뱅: 성경의 광대한 지형을 설교하는 일에 헌신했던 장 칼뱅도 굉장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에서 전통에 종속되어 있던 성경을 구해냈습니다. 칼뱅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을 힘써 계속하도록 고취시켜 줍니다. 칼뱅에게 설교란 성경에 매이는 일이었습니다.
오락지향적인 설교자와 성경지향적인 설교자의 차이는 설교자가 하는 말과 그 말의 권위를 보장하는 성경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오락지향적인 설교자는 권위있는 책에 매여 말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메시지를 전할 때 성경이 가르침을 넘어 다른 말 하길 즐기는 것 같습니다.
성경지향적인 설교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보냄받은 하나님의 대변자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의 무게와 기쁨을 느낍니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자신의 계시에 뿌리를 내리고 깊이 잠겨야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수 있음을 압니다.
이 책의 주된 요점의 한 가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을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 마음의 갈망이 거기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설교자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구원과 생명과 죽음과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이 세상에서 일하시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성경에 잠긴 진리와 경이감을 꾸준히 접하게 되면 그 영혼이 넓어지고 마음이 강해지며 예수를 말할 수 없이 귀히 여기게 됩니다.
질문: 목사님과 목사님의 교회의 성도는 하나님의 위엄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살아가는 이유가 달라지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달라진다.
10장 상황화를 넘어 개념을 창조하는 설교
성경 메시지를 상황화라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하는 만큼, 듣는 이들의 정신구조 속에 아예 없는 개념의 범주들을 마련해주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는 점이 이전 어느 때보다 선명히 제게 다가왔습니다. 청중이 가진 기존의 사고구조만 활용하면, 아무리 상황화를 잘해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성경의 진리들을 이해시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정신구조를 기도와 설교를 통해 창조해내야 합니다.
성령이 인간의 저항을 꺾으시는 한 가지 방법은 그를 낮추어 익숙한 사고 패턴을 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이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시각과 이해와 믿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사용해서 주십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가진 기존 범주에 맞추어 복음을 상황화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새로운 성경적 사고의 범주가 생기도록 돕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개념 창조의 예시
모든 사람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모든 선택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어김없이 확실하게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죄를 짓게 하셔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하여 일어나게 하시는 일과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일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상반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높이는 것으로서, 스스로 높아지려는 이 목적이 우리를 향한 사랑의 핵심에 있다.
죄는 일차적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월한 가치를 믿지 않거나 그에 무관심함으로써 그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나안 거민의 전멸을 명하신 것은 온전히 정의로우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쇠는 ‘다른 분’이 행하시는 대로 행하는 비결을 배우는데 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미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임에도 날마다 육체를 죽여야 한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요점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성경의 범주를 사람들의 범주에 맞추어 상황화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해야합니다.
질문: 성경과 상황화의 차이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11장 목사가 되는 일이 위대한 30가지 이유
1. 하나님은 온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실재시다. 목사는 계속 차오르는 기쁨으로 그 바다에서 헤엄치는 자다.
2. 이전에나 이후에나 예수는 가장 위대한 구주시요, 주인이시요, 친구시다. 목사는 날마다 그를 상고하며 권하는 자다.
3. 성령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혜사시다. 목사는 성령으로 계속 충만해야 하는 자다.
4. 성경은 모든 책중에 가장 위대한 책이다. 목사는 그 책을 주야로 즐거이 묵상하는 자다.
5. 복음은 모든 소식 중에 가장 위대한 소식이다. 목사는 그 소식을 반가이 믿고 매일 전하는 자다.
6. 공동의 예배는 그리스도를 귀히 모시고 함께 사는 삶이 흘러넘치는 위대한 일이다. 목사는 매주 그 경이를 느끼고 그 불씨를 살리는 거룩한 특권으로 날아오르는 자다.
7. 믿음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받는 가장 위대한 경험이다. 목사의 모든 말은 이를 위한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8. 장래의 은혜를 바라는 소망은 복음에 순종케 하는 위대한 용광로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나 그 용광로에 불을 지피는 자다.
9. 기쁨은 하나님 안에 있는 원천을 크게 보여줌으로 고락간에 즐거워하게 만드는 위대한 충동이다. 목사는 기쁨을 파괴하는 모든 악습을 버리고 양 떼의 거룩한 기쁨을 위해 사는 자다.
10. 사랑은 가장 위대한 행동이다. 목사는 무슨 행동을 하든 사랑을 큰 목적으로 삼는 자다.
11. 거룩함은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을 닮는 위대한 일이다. 목사는 자신의 거룩함과 다른 이들의 거룩함을 위해 날마다 자기 죄를 죽이는 자다.
12. 고난은 위대한 신학교다. 목사는 교인들을 위해 반드시 이 학교에 다녀야 한다.
13. 위대한 진리를 설명하는 것은 위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길이다. 목사에게는 그렇다. 목사는 가장 위대한 사상들을 거침없이 서명할 책임을 맡은 자다.
14. 가장 중대한 진실을 알리는 것은 위대한 특권이다. 목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전령이다.
15. 인간에게 성취불가능한 목표는 위대한 보혜사를 찾게 만든다. 목사의 모든 영적 목표는 성취불가능한 것들이다.
16. 천국은 위대한 운명이다. 무슨 일을 하든 목사의 목표는 사람들이 그곳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다.
17. 지옥은 중대한 위험이다. 무슨 일을 하든 목사의 목표는 사람들이 그곳을 피하도록 돕는 것이다.
18. 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한 임재와 능력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목사는 자기 영혼과 양떼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다.
19. 새 출생은 위대한 기적이다. 목사는 항상 놀라움을 느끼며 일하는 하나님의 산파다.
20. 성찬은 가장 위대한 만찬이다. 목사는 거룩한 상징을 자기 손으로 직접 잡는 자다.
21. 침례는 죽음과 삶의 가정 위대한 상징이다. 목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드라마를 실연하는 자다.
22. 장례는 영원한 세계를 보여주는 중대한 예식이다. 목사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이들과 함께 넘치는 소망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자다.
23. 결혼은 남녀가 평생 함께 하도록 하나님이 재정하신 중대한 예식이다. 목사는 모든 사람이 이해하도록 이 드라마를 보여주는 자다.
24. 병원 심방은 위대한 소망을 전덜하는 성스러운 일이다. 목사는 손과 음성으로 이 거룩한 교류를 중재하는 자다.
25. 마귀는 중대한 원수다. 목사는 날마다 거룩한 전쟁을 치르는 자다.
26. 지헤롭고 성경적인 조언은 많은 정금보다 위대하다. 목사는 이런 조언들로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자다.
27. 세계 선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업이다. 목사는 모든 교인이 가는 자나 보내는 자가 될 때까지 설교하고 기도하며 관심을 일으키는 자다.
28. 돈을 사랑하는 욕심은 수많은 악의 뿌리다. 목사는 그 욕심을 자기 영혼에서 끊어낼 뿐 아니라 모든 양 떼 가운데서도 기꺼이 사라지게 하려는 자다.
29. 모든 양 떼의 중대한 필요는 거룩한 길로 인도받는 것이다. 목사는 ‘큰 목자’밑에서 겸손히 인도자의 역할을 맡는다.
30. 종으로 낮아지는 것이야말로 큰 자로 높아지는 길이다. 목사는 즐거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말하는 자다.
결론
사도들이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고후 4:6)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이 지향하는 목표 또한 영광입니다(고전 10:31).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큰 비밀이 바로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그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유일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가장 높은 영광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다.”
질문: 하나님이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즐거워하시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그때 목사님은 만족을 느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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