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의기소침해 있다.
4월말과 5월 10일경 심은 땅콩과 고구마 농사가 거의 폐농 직전이다.
띄엄띄엄 살아있는 것이 전업농부라면 밥빌어 먹기 알맞다. 해마다 판판이 깨지는 이유는 생각을 하지 않고 농사를 지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비어있는 곳마다 풀은 어찌나 잘 자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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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밭이 이러니 전업농이 아니길 망정이지.
“장모님 풀 좀 잡아주세요.”
망할 때 망하더라도 풀잡는 일이 더 급했다. 결국 어머니께 SOS를 날렸다. 내게 장모님은 영원히 베풀어 주시는 무너지지 않는 성이다. 요즘은 시간이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 직장에 저녁회식이 있는가 하면 그 다음날 저녁에 뭔가를 하려면 가까운 지인의 부음을 듣고 달려가다 보면 주중에는 당최 일할 짬을 내지 못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달려가는 것이 정답이나 낮 근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보면 결국 욕심껏 벌여놓은 농사를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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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달인, 장모님은 무너지지 않는 황골농부의 성이다.
어린이집 텃밭으로 향했다.
한 달에 한번씩 얼라들이 찾아와 푸른 배추며 상추며 고추, 토마토가 자라는 풍경을 보고 가기에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쌈채소와 야콘, 땅콩과 옥수수를 심어놓고도 밭이 남았다. 이백평의 작은 텃밭이나 쌈채소와 각종 채소로 채우기에는 너무 큰 밭이라 고민이 많았다.
“흰 참깨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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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살아준 고구마가 고맙다.
“유대장님 흰 참깨가 남아 있나요?”
언젠가부터 유대장이라 호칭한다. 이 분이야말로 1인 3역을 거뜬히 소화해낸다. 퇴근하면 농사일과 장사일로 바쁘게 산다. 밭농사 이천 평과 논농사 팔백 평의 농산물로 뷔페에서 소용되는 식재료를 대고 나머지는 손님들에게 팔기도 한다. 채소부터 여러 가지 잡곡에 이르기까지 10가지 이상 재배하는 농사솜씨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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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IC부근에 개업한 고시래 부페기사식당 4대가 한집에 산다.
사위가 주방장인데 맛깔스럽다. 1인당 6천원으로 제법 먹을 만 하다.
“쬐끔 남아있어요. 얼렁 오세요.”
조금 남아있는 게 아니라 아주 많다. 덤으로 주신 호박고구마 모종이 실하다. 가식하여 뿌리를 많이 내렸다. 유대장님을 안 지 몇 개월 되지 않지만 인정이 후덕하다. 내년에 고구마를 심는다면 이천기님이 알려 주신대로 매실발효액 소독 후 땅에 가식했다가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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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주고 심었는데도 잎이 금방 시들었다.
뿌리가 내린 것을 심었으니 잘살 거라는 예감!
바카스 병마개에 구멍 세 개를 뚫어 흔들면 깨씨가 대 여섯 개씩 떨어진다. 살짝 묻는다. 씨앗크기의 세 배 정도만 묻어야지 더 깊이 묻으면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장모님의 파종솜씨가 멋지다. 농장주인은 미세한 종자파종은 잘하지 못하여 다른 일을 했다. 다른 일이라고 해야 땅콩과 옥수수 포기에 자라는 풀뽑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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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 심는데 유용한 바카스병
텃밭일을 끝내고 나니 점심참을 넘겼다.
큰 밭의 풀을 뽑아야 하는데 작은 밭일로 시간을 잡아먹었으니 마음만 급했다.
“장모님 내일 하루만 더 해 주세요.”
“안돼. 나도 얼른 가서 흑임자깨 넣어야 돼. 너무 늦었다구.”
아무리 추운 홍천 서석이지만 참깨 파종이 늦지 않았을 것인데 너무 서두르시는 것 같다. 서리태도 5월 10일경 파종하여 많이 자라있다. 잘 달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장모님은 이른 파종을 해도 가을에는 수확을 잘하신다. 그래서 농사는 이론보다 경험이 더 좋은 스승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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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텃밭을 흰 참깨로 채웠답니다.
집에서 점심먹고 다시 황골밭으로 향했다.
“농사를 한두 해 지어보나? 다른 사람들은 잘 올라오는데 자네는 매양 왜 이 모양인가?”
그런 말씀 안 하시면 이상한 것이지. 땅콩이라고 심어놓은 것들이 잎이 올라온 것이 드문드문하고 이따금씩 주둥이를 내미는 폼이 한숨쉬게 했다. 원인은 너무 깊이 심은 게 원인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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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산까치(어치)의 횡포가 심합니다. 나쁜 넘들~
그래도 제대로 된 게 있다면 시험적으로 심은 고랑이다.
땅콩 심고 배색 비닐을 씌웠는데 습기 유지를 잘해서인지 15일 늦게 심었는데도 먼저 심은 것보다 실하게 올라왔고 결주도 별로 없다.
<아하, 땅콩농사는 이렇게 해야겠군>
문제는 투명필름을 씌웠기에 풀이 함께 자라 땅콩포기를 꺼내놓을 때 풀을 제거해야 하기에 품이 많이 든다는 결점이 있다. 옥수수도 그렇게 심으면 100% 발아가 문제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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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기 귀찮아 껍질째 불려서 심었더니 껍질을 뒤집어쓰고 내민 모습이 귀엽네요
장모님을 새벽 버스로 보내드리고 나서 다시 밭으로 나오니 여섯 시다.
어제 못다한 일을 하고는 고구마 포기에 돋아난 풀들을 제거하는 일이 보통아니다. 이것도 배색 필름에 심어 놓았기에 포기에 풀들의 기세가 대단하다. 고구마 포기의 뚫린 곳을 흙으로 막아주다 보니 일이 더디다. 여덟시 반에 일을 끝내고 나니 작업량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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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기산농부님께서 주신 초석잠을 보는 것으로 위안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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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정도 비오지 않았다고 파의 성장이 별로다.
"할머니 파밭에 물주면 잘 자랄까요?"
"그냥 놔두어요. 물을 아주 흠뻑 주면 몰라도 조금 뿌리고 말면 가뭄을 더 탄다오. 화요일 수요일에 비온다니 그냥 기다리는게 좋을 걸요."
이 글을 정리하는 지금 밖에 비가 추적거린다. 그예 못 참고 파밭에 개구리 오줌만큼 뿌렸다면 또 후회할 뻔 했다. 황골농부는 영원한 초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막내 아들과 함께 사신다는 84세 노인, 동네 교회 다녀 오셨다고 하는데 정정하다. 게다가 인심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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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정리하고 가려는 중 원주댁과 스타님이 오셨다.
반갑게 인사하고는 이 분들이 어찌 오셨는지 궁금하다.
"제가 뭘 드리기로 했나요?"
"염교 달라고 했잖아요."
아하 그렇구나. 요즘 정신상태가 이렇다. 염교와 차이브를 푸짐하게 가져오셨다. 그 분들의 덩치만큼이나 인정이 넉넉하다. 황골농부는 이 분들께 드릴 게 없는데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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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나눔받아 대충 흩뿌렸는데 이름은 모르지만 꽃이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후회가 막심하다.
주말농부가 왜 이렇게 욕심을 부려서 안달하느냐 말이다.
“마음은 급하고 일할 시간은 없고 너무 벌여놓아 못 하겠네요. 벌이는 농사마다 제대로 안되니 더 힘들어요.”
아내에게 고민을 말하니
“그러게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농사를 왜 그렇게 많이 벌이세요. 하지만 당신이 이왕 시작한 농사들이 모두 생명이니 당신이 책임져야 하지요. 우리가 아이들을 낳아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지듯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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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화가 제법입니다.
어느날 하얗게 핀 불두화가 큰 아들이 타고 온 차인 줄 알았다는 84세 노인의 말씀!
막내아들이 잘 모시고 있는데도 맏아들이 그리운가 봅니다.
맞다.
자식을 낳는 것이나 밭에 씨앗을 넣는 것이나 그것은 자유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힘들어도 그 생명들에 대한 책임질 일이 남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새 힘이 솟는다.
자유에 대한 책임, 이것이 황골농부가 짊어진 금년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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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꽃
맨날 예쁜 꽃이나 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경쾌한 음악을 넣어 농장풍경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즐감하세요
첫댓글 하나 배웠습니다. 박카스병에 구멍 뚫어서 깨씨 넣는 방법을요. ㅎ
지바고님께 가르침을 드려 기쁩니다 ㅎㅎ
해마다 반복인 농사일도 할때마다 틀리게하니....그렇다고 정답도 정석도 ....그냥 맘을 편하게 먹는게 젤인것같아요.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로 일관합시다.ㅋ/장모님홧팅입니다.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한 가 봅니다.
염교와 차이브를 밭 한켠에 잘 심어두었습니다.
이 꽃....
샤스타 데이지랍니다. 모종으로 부터키워 2년째 저희집도 온 집안이 이꽃 세상입니다.
이꽃 씨앗
어디서 구하나요
알켜주심 감사하겠어요
키가 좀 큰걸 보니 샤스타 데이지군요.
동민님 한국종자나눔회 카페에 가시면 꽃종자들을 원없이 분양받으실 수 있습니다.
저는 저쪽의 곧** 카페..... 에서
모종을 만원정도주고 구입했습니다. (라면박스로 바닦에 좌~악 한판.) 약 5평 가득 채울수있으며,
스스로 월동합니다.
황골농장님
넘 잘보고 가요
글도 재밋고 사진도 많아 풍성해서 좋네요
읽고 보면서 배우기도 했지용
저도 장모님께서 땅콩 심었는디
거의 다 나왔더라고요. 저도 비닐 깔고 심었는디
크면 바로 벗겨내야 한다고 하네요
그래야 잘 퍼져 땅콩이 많이 열린다나요
땅콩을 잘 나는 것 같아요
고무마는 군데 군데 죽은 것이 보이고요
허접하지만 이 글 쓰느라 두시간 걸렸지요
재밌게 읽어주신 동민님 감사합니다.
땅콩꽃이 필 때 비닐을 벗겨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내년에는 땅콩농사 아주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ㅋㅋ
저는 땅콩 모종내서 멀칭하고 심었는데 잘 자랍니다.
위 하얀 꽃은 마가렛..이라고 하는 거 같은디요?
배색필름을 쒸웠다가 땅콩이 자랐을 때 벗겨주면 새피해 예방가능할 듯 싶습니다.
내년에는 좀더 잘해 봐야지.
마가렛이란 이름도 있군요
자유를 갈망하시는 모습이 이해가 됩니다. 저도 이제조금 여유를 갖고 싶어지네요......ㅎㅎㅎ
텃밭지기님 요즘 잘 계시죠?
내년에는 욕심 좀 덜 부리고 살아야겠습니다. ㅎㅎ
두시간동안 힘들여쓰신걸 단 삽분만에 읽어서 또한 죄송합니다 ㅎㅎ
내년엔 조금씩 줄여서 농사일이 즐거웠으면 더 재미있을것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풍경님 감사합니다.
주말농부는 절대 욕심을 버려야 후환이 없더라구요 ㅎㅎㅎ
정말 힘들어 죽을 지경입니다 ㅎㅎ
땅콩을 싹 틔워 심었는데 이제서야 흙 속에서 노란잎이 생겨올라오고 있습니다
단군나라님 땅콩 대풍 기원합니다.![앗](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5.gif)
싸
백번 공감 합니다.
혼자서 하다 보니 장난이 아니고요, 풀이 서서히 밀고 올라 오는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좋을지 고민 중이랍니다.
고민하다 보면 그만큼 풀만 자랍니다.
시간나는대로 틈틈이 뽑아버리는 게 가장 좋겠지요.
올해도 여전히 고군분투하시네요~ 이제 풀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조롱박님 감사합니다. 화이팅입니다.
땅콩 껍질 뒤집어 쓰고 나온 잎은 첨 보네요~ 귀한(?)사진 입니다~ㅎㅎ
껍질째 심으니 모두 저 모양으로 나오네요 ㅋㅋ
농부가 엔간히 게으른 편이라고 욕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