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시인>>
<<이병철 시인의 양력>>
* 1984년 서울 출생.
*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한양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 2014년《시인수첩》신인상 시 등단,
* 2014년《작가세계》신인상 문학평론 등단.
* 시집 : 『오늘의 냄새』.
* 산문집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 ‘평택 생태시 문학상’ 대상 수상.
<<이병철 시인의 시>>
겨울바람의 에튀드*/이병철
당신의 발가락은 오래된 건반, 거기서 떨어진 봄의 기억은 모두 음악이 되었다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면서
계속 걷는 발이 불쌍해, 발톱이 튕겨내는 겨울을 창백한 소리로 노래하며 걷고 또 걸었다
내 입술은 당신의 언 발가락을 녹일 수가 없어, 햇빛을 날카롭게 갈아 굳은살을 베어내도 차가운 음계는
발끝을 떠나지 않았다 이 음악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자, 발가락이 유리잔 처럼 깨져버릴 것만 같아
폭설은 이미 잘 짜여진 한 벌의 옷처럼 우리를 감쌌고 얼음의 숨소리가 귓가에 파란 브로치를 달았다 발톱
에서 솟아오른 달이 하얗게 변할수록 길은 불협화음으로 부서져갔다 유리 바다를 걸어도 얼어붙은 발에선 피
가 흐르지 않았다
따뜻한 바람이 발가락 사이에서 불어왔다 한 계절보다 긴 음악이 마침내 끝나가고 있었다 더는 걸을 수 없어,
언 몸을 녹이려고 끌어안았을 뿐인데, 당신은 맑은 파열음을 내며 수천 조각으로 깨졌다
내가 들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 쇼팽의 연습곡 「Etudes」25번 중의 제11곡, A단조.
허밍은 거침없이/이병철
잉어는 평화롭게 헤엄치지만
물을 벗어날 수 없고
물은 거침없이 흐르지만
보를 넘어갈 수 없네
물을 벗을 수 없는 잉어의 자유와
보를 넘을 수 없는 물의 질주는
악보 안에서 평생을 사는 바이올린처럼
아름답고 성실한 반복을 연습하는 중
잉어는 평화롭고 물은 거침없고
바이올린은 느릿느릿 헤엄치다 격렬히 달려가고
나는 그 반복 속을 걷다가
새로운 해석에 또 실패한다
물을 벗어날 수 없는 잉어가 머릿속으로 헤엄쳐 오고
보를 넘을 수 없는 물이 오후의 감정을 파랗게 적시고
악보 밖으로 나온 바이올린이 내 허밍을 연주해도
불가능한 것은 다 생각 안에만 있네
생각이라는 단어를 사랑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잉어와 물은 음악처럼 흐르고
강이 얼면 흐르는 것에서 음악이 분리되고
멈춰버린 반복은 또 다른 반복으로 흐른다는 내 생각이
비로소 풍경이라는 불가능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때
나는 천변에 살지 않으면서
천변을 벗어날 수 없는 귀신이 되었네
이제 생각은 평화롭고 허밍은 거침없고
바이올린은 같은 곡을 연주하지만
다르게 듣는 귀가 생겼다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고 잉어가 헤엄치는 천변을 걷는다
해석이 막 시작되었다
해석이라는 단어를 사랑으로 바꿔도 좋다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소나기/이병철
구름 위에서 신이 푸른 몸집을 불리는 동안 구름 아래 우리는 계절을 반씩 잘라먹으며 말싸움을 한다
끝없는 네 주장을 듣고 있으니 텅 빈 반성문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다 네가 뭐라고 말할 때마다 하얀
글자들이 귀를 씻겨주는 것 같아 이 말싸움이 끝나지 않으면 좋겠어 꽃잎처럼 붉고 나비 날개보다 가벼
운 네 혀가 내 지겨운 꿈들을 저 세상으로 떼밀어주니까
최초의 사랑과 살인이 모두 말싸움에서 시작됐다는 거 알아? 이 대화가 끝나면 우리는 서로를 죽이려
들지도 몰라 싸우면서 자라는 아이들처럼 우리도 흩어지는 말들을 쌓아올려 구름 위까지 올라가 보자
응? 닥치고 내 말 들으라고? 나는 닥치고 귀를 펄럭인다 네 저기압이 무거운 빗방울들을 끌어내릴 때
신이 파랗게 쏟아지며 소리친다 접이식 3단 우산이 너희의 방주야! 우산 밖에서는 비가, 우산 속에서는
섬유유연제 향기가 내 서툰 사랑의 구원인 오늘, 서로 더 말하지 못하게 입술을 삼켜 한 문장짜리 책이
되어버리는 우리의 신앙
어떤 종교의 학습/이병철
어제 시작된 종교에는 사랑보다 기도가 무성하다
아직 신앙을 모르는 무릎은 장마처럼 푸르고
수레에서 쏟아지는 청사과들과 함께 분별없이 빛난다
사과껍질을 예쁘게 깎아내는 너는 새하얀 구원
이빨이 닿을 때마다 씨앗이 열리는 몸
내 귀에 말씀은 달고 달아서
가뭄이 들면 심장에 분수가 솟고
홍수가 나도 살이 무르지 않을 것만 같은 믿음
기도가 사랑이 되기까지는 백 년쯤 걸린다지
사과나무에서 소금이 자라나는 여름은
사랑을 모른 채 휘발되는 영혼들의 수다
나는 오랫동안 이 종교를 학습했으므로
별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라진 한낮에도
네가 살던 세상의 투명한 잔영들을 이어 붙여
사다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닿지 못하는 천국이 끝내 지옥이라 하더라도
도미노 놀이/이병철
공사장에서 우리는 무슨 냄새를 맡고 있었다
개들이 짝짓기 하는 냄새야 아니야 날지 못하는 새의 똥 냄새야
죽은 사람 냄새야,
시멘트 먼지 속으로 우리는 코를 킁킁거렸다
죽은 사람 냄새는 슬프다
슬픈 게 뭔지 어떻게 알아? 그건 아직 배우지 않았잖아
철근 위로 어둠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일어서자
우리는 냄새 쪽으로 자갈을 집어 던졌다
저기엔 아무도 없어, 여기서 자고 갈래?
무서워 너희들 등 뒤로 냄새가 따라오는 게 보여
겁쟁이, 우리는 안 죽어
냄새로부터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는 걸 너희는 몰라
어둠이 냄새를 환하게 밝히는데
너희는 죽음의 냄새 같은 건 없다는 듯
벽돌로 도미노 놀이를 하며 웃고 있었어
그날 밤, 나는 공사장에 코를 두고 왔다
어떤 꿈에선 앞으로 나란히,
도미노처럼 넘어지는 너희를 본다
누가 너희를 밀었니?
아무도 웃지 않는다, 냄새가 난다
내가 마지막 블록이 될게
오늘의 냄새/이병철
낮이 화창하면 저녁은 우글거린다. 쇠고기 스튜, 까르미네르 와인, 음식물 쓰레기,
달, 키스, 피, 오이비누. 냄새가 모인 골목엔 아이들이 뛰어놀고, 냄새를 못 맡는 노인
들은 스스로 냄새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익숙함을 기억할 뿐 코는 감각하지 못한다.
담배와 꽃, 쇠와 유리 사이로 아까시가 우유처럼 엎질러지는 오늘, 냄새와 향기는 어떻
게 다르지? 냄새는 향기를 흉내 내고 향기는 어쩔 수 없이 냄새가 된다. 나는 네 향기보
다 냄새가 좋아. 우리가 누운 자리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된 쇠고기 스튜와 키스가 된 까
르미네르 와인과 오이비누에 씻겨나간 핏물 위로 달이 부풀었다. 너한테서 모르는 냄새
가 난다. 이제 우리는 코와 새끼발가락만큼 멀어질 거야. 너는 발을 코에 갖다 대며 웃었
다.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 말이 없었다. 이미 죽은
땀 냄새 살 냄새가 우리의 마음이야. 창문을 열자 새벽이 짙은 몸을 방 안으로 밀어 넣었
다.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은 귀신, 서로의 냄새가 너무 익숙한 우리는 귀신처럼 새벽을
걸었다. 손을 잡아도 손이 없고 어깨를 빌려줘도 머리가 없는.
불과 빨강과 뱀/이병철
입속에서 몇 번, 계절이 바뀌어
네가 늦봄을 내밀 때 나는
꽃잎에 덮인 꿀벌들의 소로와
벼랑 틈 숨은 폭포를 몰래 감춘다
우리는 속으로만 스며드는 핏물을 붙잡고
선지 덩어리로 굳어지는 중이야
아니, 은밀한 배꼽까지 활짝 열고
진공 상태의 죽음을 듣고 있는지도 모르지
혀끝의 여름, 혀끝의 겨울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해?
나는 모퉁이들로 우글거리는 마을이 될 거야
불붙은 얼음들이 떠다니는 테트리스도 좋고
그건 그렇고, 너는 정말 달다
이빨 사이마다 체온계가 꽂혀 있어
우리는 이제 전염병 창궐한 격리병동이야
비린내 나는 해동생선이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흉한 점괘야
서로가 도망 못 가게 불과 빨강과 뱀으로
묶어도 묶어도 아름다운 음악처럼 풀어져버리고
계절이 바뀌어도 도깨비 뿔 같은 종유석만 밀어 올리는
우리는 서로 입 벌린 무덤이 되어
하루 종일 먹고 뱉고 먹고 뱉고
삼키지도 못하면서 죽었다가 부활하는
장난, 목구멍 타들어가는 불장난만 하면서
수평선을 걷는 장화들/이병철
파랗고 맑은 냉기에도 코가 얼지 않는 우리는
언제나 싱싱한 뒤축으로 수평선을 걷는 장화들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수심(水深)이 깊어질수록 바다의 과거를 잘 기억하는
오래된 가죽장화, 유빙에다 이마를 닦아 물광을 내며
아열대의 꽃잎을 흉내 내는 크릴새우를 쫓아다닌다
우리는 발목도 없이 발가락도 없이 난류에서 한류로 행진한다
캄브리아 시절에 따뜻한 바다 위를 걸어가던 신들이
탁족(濯足)을 하려고 장화를 벗어 놓았는데
그게 그만 바다에 빠져 밍크고래들이 된 것을
나는 다 발설해버리고 말았으니,
우리는 구멍으로 물숨을 쉬는 끈 없는 장화들
옆구리에다 파도를 주먹밥으로 뭉쳐 매달고 다니면
장화를 바느질하려는 수선공들을 만나기도 한다
태양에 달군 뾰족한 쇠가 내리꽂혀도
유선형의 몸은 능글능글한 데가 있어 작살을 바다로 흘려버린다
물빛 발자국들을 한꺼번에 연안으로 몰고 가면서 우리는
가죽나팔을 길게 분다, 높고 고운 소리 너머로
깨진 유리 바다가 일어서도, 장화들은 끄떡없다는 듯이
하늘 우체국/이병철
하늘 우체국에 가본 적 있다
구름이 치는 전보 속에서는
깨알빛 새들이 시옷자 날개를 펴고
텅 빈 서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우체국을 품고 있는 산맥의 품에서
연필심이 수런수런 피어올랐다
만년설 아래에도 흑연이 숨어 있을까
투명한 결정들이 지면을 이룬
거대한 엽서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눈 깜빡이듯 낮과 밤이 바뀌는 동안
사람과 산양들이 서툰 글씨로
저마다의 사연을 기록해둔 곳
잉크 자국조차 가물가물한 설원엔
펜혹을 닮은 바위들만 솟아 있었다
나는 손바닥만한 알프스를 사서는
그 뒷면에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마을까지 퍼지지 못하고
바람에 증발되는 목동의 노래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일까
눈 삼키다 멈춰 선 제설차의 기침을
옮겨 적을 수 없었다, 그때
해발 3,500미터의 쓸쓸한 우체국*에서
네가 있는 서울 반지하 주택까지의 거리가
크레바스보다 더 움푹 팬 흉터로 아려왔다
나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엽서 위에
긴 문장을 적듯 천천히 우표를 붙였다
유리창에는 서리가 적어 놓은 주소가
소리 없이 지워지고 있었다
* 알프스의 융프라우요흐 전망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우체국이 있다.
비의 미장센/이병철
비는
부드러운 카메라 무빙과
거친 필름 질감을
혼합한다
배우들이 우산 아래 감춘 눈썹은 색감이 과장됐다
코끼리 늑골보다 더 굵은 우울이
배우들의 불규칙한 식습관을 읽어나간다
자막을 삽입하느라 필름 빛깔로 눈이 물든 택시기사들이
일본어 중국어 회화책을 들고 있다
현장에선 누군가 라면을 쏟아버리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면발을 쪼아 먹는 비둘기들은 너무 뚱뚱해
소품으로 쓸 수가 없다
어스름이 필름을 문질러
그로테스크한 영상미를 만든다
냉동탑차와 피자 배달 오토바이가 합을 맞춘 액션씬은
롱테이크로 간다
널브러진 피자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근접 촬영해
안개로 위장한다 안개 속에서 일그러지는 몸짓들
앰뷸런스에 길을 내주는 운전자들의 연기는 부자연스럽고
피가 아스팔트를 스멀스멀 기어가거나
뒤집힌 오토바이 바퀴에 불빛이 휘감기는 건
낡은 미장센
이것은 비가 자주 쓰는 연출기법이다
비를 듣는 오늘은/이병철
1
카르멘; 하차하는 휴가병들 군화소리
입석표 가진 젖은 몸들이
더운 숨 섞으며 뒤척이는 몸짓
소나기; 물빛 바이올린 현
네 왼팔에서 붕붕거리는 애기똥풀 향기
김 서린 차창에 그림을 그리는 네 손가락이 작은 물고기로 헤엄쳐
내 눈길이 닿자 하얀 주먹, 앙다문 꽃봉오리 속으로 숨는 물고기
기차는 간이역에 멈추고 숨죽인 빗줄기들이 파르르 흔들려
툭, 툭 빗줄기가 끊어지자 녹슨 햇살이 네 하늘색 셔츠의 스트라이프를 켜기 시작해 네 젖은 어
깨로 손을 뻗을 때, 손끝에 와서 닿는 따스한 떨림, 난 네 지난날을 연주하고 싶어
카르멘; 비 내리는 철길로 날 몰고 온 소리
한 때 올무였던 기차바퀴의 악몽, 살 찢긴
짐승들의 눈망울
소나기; 이제 인식조차 되지 않는 바코드
유통기한 지난 네 눈빛이 썩어가는 냄새
2
바람에 귀를 씻고 포플러 잎사귀를 듣는다 박자가 느린 구름을 기다린다 소리를 튕겨내기 위해
탄력을 더하는 거미줄, 새들이 허공의 음향시설을 점검한다
아침에 내리는 비는 물의 현을 스타카토로 튕겨낸다 소나기는 크레센도와 데크레센도를 오간
다 봄비는 얼었다가 녹은 심장에 날개를 달아준다 푸른 표범들이 흰 고래를 뜯어먹는 밤비는 닫
힌 창문과 싸워 완투패한 내 어깨를 조롱한다
빗소리가 더듬는 얼굴이 내 귀에 바람을 불어 넣는다 그치지 않는 웃음소리가 스타카토, 알레
그로, 피아니시모! 머리칼이 비를 타고 스크래치, 노이즈, 에코로 내 몸에 주름을 새긴다 비를 듣
는 오늘은 네 발자국이 모두 증발한 초우(初虞), 카르멘
비 개인 저녁의 안부편지/이병철
네가 사는 마을에는 은빛 비가 내릴 것 같아
수련 위에서 빗방울은 찬 빛을 뿜겠지
햇살이 젖은 꽃잎을 말릴 때
물방울은 붕붕거리는 데이지 향이 되어
네 반지에 내려앉을 거야
물소리가 일어나는 네 자궁 속에는
손끝에 별빛을 틔운 아기가 웅크리고 있겠지
백합과 히아신스 그리고 티아라
그 꽃말들을 아직 기억하는지
네 입술이 뱉는 자음 모서리에 나비가 날아들고
들뜬 아기는 자꾸만 발을 구를 거야
가로등불이 이끄는 수레에 저녁이 담기고
감자수프 냄새로 내려앉는 밤하늘,
너는 서툰 이국말로 상인들과 흥정하며
별을 담듯, 쾌활하게 장바구니를 채우겠지
네 입술이 엎지른 적포도주가 되어
바게트 빵 같은 어깨로 스며들 때
저 먼 대륙에서는 소년병들이 쓰러지고
벵골호랑이는 질긴 살가죽을 찢으며
피비린내를 음미할 거야
잠깐이라도 소년병들과 벵골호랑이를 생각해줘
그러면 내 더벅머리도 떠오를 테니
내가 비 개인 붉은 저녁을 바라볼 때, 너는
오전의 싱그러움 속에서 빨래를 널고 있겠지
저 노을은 네 침실의 할로겐 불빛일 것만 같아
긴 손톱으로 할퀴어놓은 흉터가 따끔거려
까마귀가 날아와 내 살을 쪼아 먹기까지
달빛에 몸을 말리며 여기 서있고 싶어
젖은 몸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키스/이병철
여자는 마포대교 난간에 앉아 그림자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있다 나는 여자의 귀밑으로 흐르는 햇빛을 닦아내는 중이다
우리는 몇 시간 전에 만났다 기왕이면 금빛 죽음이 좋겠습니다 나란히 앉아 석양을 기다리는 사이
바람이 시원해서 달콤하기까지 하다는 나를 여자는 미친놈 보듯 쳐다본다 강물에서 재즈 피아노가 들린다고 하는 여자를
나 또한 이해할 수 없다 몸이 곧 폐쇄됨을 알아차린 감정들이 밖으로 도망쳐 나온다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눈물 나게 아름답
다 미친년이라도 사랑하고 싶다
여자와 나는 서로를 끌어안고 난간 위에 선다 강물이 하늘을 빨아들여 금빛 탑을 세워놓는다 이제 죽어도 좋겠습니다 금
탑을 향해 뾰족해진 발이 송어 새끼처럼 떨린다 살아서 다 심장에 박지 못한 절망들이 발밑으로 꽃 넝쿨을 늘어뜨리는데
우리는 금빛으로 죽어가면서 입 맞추고 있다 금빛으로 살아나면서 그림 액자가 되고 있다 서로의 캄캄한 입술 속으로 걸
어 들어가면서 다른 세상의 황금을 캐는 광부가 되고 있다
우리는 몇 시간 후에 만났다
하나의 금빛으로 섞인 채,
입술을 반쯤 연 채로
빔/이병철
프로젝터를 켠다
푸른 피를 채혈하듯
광선의 정맥을 쓰다듬는다
잉크가 번지는 물속으로
나는 물안경을 쓰고 잠수한다
사탕 같은 물고기들이 공기방울을 뿜는 바다 속
깊이 내려갈수록 숨 쉬지 않아도 숨 쉬어진다
물의 가장 깊은 곳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는데
불꽃을 떠올리자 무서운 상어가 온다
물고기들이 도망친다
내 팔다리를 입에 물고
물 밖으로 나가야 해
아니,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자
수압에 뒤틀리는 비대칭의 몸
달력이 해파리처럼 떠다니는 심해에서
나는 어제 읽은 책들의 높이만큼 가라앉는다
불꽃처럼 나를 보는 단 하나의 눈
불꽃처럼
불꽃처럼
파랗게 목 졸린 침대 위로
빈 스크린이 내려온다
빨간 입술의 계절/이병철
오늘 당신은 나쁜 계절을 충전한 빨간 입술이다
입술이 열리면 먼저 비릿한 냄새가 난다
냄새 뒤에 오는 것은 온기 또는 냉기
습기 아니면 건기다
냄새와 온기와 습기를 숨이라고 한다면
숨 다음에 오는 것이 계절이다
차갑게 젖거나 바싹 마른 계절은
아직 냄새 이전에 있다
당신은 계절을 소식이라고 한다
소식은 계절의 우표다
나쁜 소식 없이 나쁜 계절은 오지 않는다
당신과 나 사이에서 창이 흔들린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것이다
어제는 햇빛이 좋은 소식처럼 쏟아졌다
너무 맑은 날은 믿을 수 없다
헛기침과 마른벼락을 지나
몇 개의 숨을 넘어서 오는 당신의 소식
우리, 라는 음절은 오늘의 나쁜 우표다
열린 창으로 비가 들이친다
무섭게 쏟아지는 계절을 막을 수 없다
겨울도 저 빨갛고 조그만 구멍에서 올 것이다
내 입술은 더 이상 당신의 계절에 핀 꽃이 아니다
시계속의 안개/이병철
당신이 바다로 걸어 들어간 날부터 안개가 시계 속에 알을 낳는다 뿌옇게 울음을 터뜨리는
둥근 이마들, 핀셋을 쥔 초침이 반투명한 뼈들을 부숴도 안개는 또다시 산란한다 모든 것을 통
과시키지만 어느 것도 내보내지 않는 유리에 갇혀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죽는 시간을 안개, 라고 불러본다 시계 속에서 자꾸 물소리가 난다 머
리맡에 물이 흐르는 날이면 어김없이 꿈에서 당신을 본다 세 시와 다섯 시 사이에 번지는 습기
가 당신의 젖은 발톱이라면, 당신은 지금 어느 사리에서 파란 입술을 버리고 있는 중일까
안개가 알을 낳기 시작한 뒤부터 나는 똑딱 똑딱, 입으로 시간을 흉내 내는 사람이 되었다 죽
은 시간을 데려다가 끌어안고 잠드는 미치광이가 되었다 시계 유리 속에서 원망도 기대도 없
이 나를 보는 눈들을 손으로 문질러 없애는 냉혈한이 되었다
당신이 바다에서 나올 때까지 나는 시계를 서랍 속에 넣어두기로 한다 당신이 서랍을 열고
차가운 발을 내밀 때까지 나는 몽정을 할 것이다 시간 속에서 시간이 죽듯, 안개 속에서 나를 죽이며
입산금지/이병철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은 불타고 있었다 나뭇잎마다 붉은 연기가 될 때 뱀 냄새를 맡았다
냄새로 기어오는 뱀의 기억
숲의 그을음이 살갗에 우툴두툴한 비늘로 돋아났다 뱀 냄새, 코를 막자 혀가 갈라졌고 혀
를 삼키자 목젖에 독이 끓었다 계곡으로 기어 올라가는 길은 불타고
낮게 엎드리는 것은 빛나는 발목을 물어뜯기 위함이지만 뾰족한 발에 짓밟히려는 자세야
알록달록한 발톱들이 내 몸에 박혀 징그러운 표정이 되도록
초록이 검정이 되고 검정이 하얗게 부서질 때까지 울었다
불탄 나무들은 전부 뱀이 되었다 나는 뱀과 뱀 사이에서 팅팅 부어오른 시체처럼 폭설을 맞
았다 뜨거운 이빨이 식어가는 동안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은 폐쇄되었다
눈이 녹자 투명한 박제가 된 뱀들이 물소리로 계곡을 흘렀다 물에서도 바람에서도 뱀 냄새가
났다 세상은 곧 불탈 것처럼 바삭거렸다 내 얼굴에는 촘촘한 실금이
탐구생활/이병철
삐라 줏으러 간 산에서 길을 잃었다
길이 어디서부터 사라졌는지 모르는
여자애들이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눈에 고인 물기를 빨러 날파리들이 몰려왔다
손톱에 봉숭아 물들인 작은 손들이 파리를 쫓았다
팔을 크게 휘두르다 자빠진 여자애는
우스꽝스러웠다 낄낄거리는 남자애들이
뒤돌아선 채 덤불에다 오줌을 눴다
포경수술 안 한 고추가 통통했다
지린내 속으로 누런 햇살이 반짝였다
남자애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추 끝에 닿는 매미 울음이 서늘했다
소리만 들릴 뿐 매미는 보이지 않았다
길을 찾아보겠다고 나선 남자애가
새카만 매미 울음 속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성경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불렀다
우리 이름이 메아리쳤고 랜턴 빛이 이마를 비췄다
어른들이 낸 길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등 뒤에서 매미 울음 무섭게 쏟아졌다
노을의 방식/이병철
노을을 펼치기 위해 구름 뒤편에선 투전판이 벌어진다 그 거룩한 링에는 미움이 없다
핏방울은 사랑스럽게 튀어오르고 꽃 같은 싸움, 물감으로 흉내 낼 수 없는 붉음
태양을 찢은 건 구름이 숨긴 이빨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역광을 날아가는 새들이 실
은 하늘의 상처를 꿰맨 자국이라니
싸움개의 전생은 수상좌대에 낚시를 펴고 물고기나 낚아 올리던 한량인지 모른다 철창
세운 겨울나무들에 갇혀 피 흘리는 건 전생에 대한 형벌, 송곳니 박힌 곳에서 노을은 태어
나고
한 생애가 맹랑하게 덤벼들었다가 피 쏟고 축 늘어질 때, 울지 마라 싸움에서 진 개들이
시커먼 어둠으로 우러나더라도
그대와 나는 철창 안에 마주 선 두 마리 개였을까 내 더러움 속에 깃든 한때의 촛불에 그
대 언 손 따뜻했었나 나는 그대 어깨에 날개 문신 새겨준 것 후회하지 않는다
그대가 낯선 몸을 열어 둥근 이마를 빛내고 검붉은 얼룩으로 앞강 적실 때. 그대가 서 있
는 곳의 노을을 나에게 방류해주길
나는 투견처럼 상처입고 단단하므로
노을은 내 세계를 에워싸는 어제의 명암이므로
다른 몸/이병철
밤마다 내 몸은 사람 죽은 우물이 된다
흐르지 못하는 기침들이 박혀드는 바닥
물보다 가벼운 뼈가 살을 버린다
아프지 않아도 고통스러울 수 있구나
오래 전 죽은 사람이 숨 속으로 걸어온다
네 몸은 네 것이 아니야
한 방울씩 떨어져 폐에 박히는 다른 피
고양이를 차로 친 적이 있다
나는 분명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발바닥에선 고양이 옆구리가 뭉개졌다
흐물흐물한 아스팔트
으스러지던 뼈의 감촉
혈관과 근육이 터져 몰캉거리던 다른 몸
우물 속으로 하얀 손목이 내려온다
내가 버린 내 몸에 지진계를 매달아주러
언제나 싱싱한 다른 몸을 보면
뱃속에서 죽지 못하는 갈증이 끓는다
잘라서 끓인 고기를 씹을 때마다
입 안에 고양이 살점
우물 같은 내장이 삼킬 수 없는 목숨의 진동
기침으로만 호흡하는 수련들이 바닥에 피어난다
우물 밖으로 올라가는 하얀 손목에
고양이털 뭉친 피가래
연꽃을 매달아주고 싶은데
항생제 냄새 속에서 붉게 태어나는
다른 몸
나는 다른 몸이 될 수 없어 우물처럼 깊게 우는 사람
일기예보/이병철
잡풀들이 울고 있어
겨울밤 이부자리의 온기와
비스듬히 기울던 네 어깨의 경련이 들려
쓸쓸한 교정에서 울리던 차임벨 소리가
약기운처럼 내 폐부로 가라앉아
오, 내게로부터 뻗은 길들이 뒷걸음질 쳐
나는 왜 발자국마다 불쾌한 냄새를 남겨온 거지?
여전히 깊은 뿌리에선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을까
발소리 멎은 자리, 떨리는 네 입술에선
말할 수 없는 말들만 후드득 후드득 방울져 내려
네 숨결은 독보다 달구나
침묵으로 지은 집은 무너질 것만 같아
네 입술이 닫히는 순간
세상의 모든 문들도 닫히고
문을 품었던 집들은 와르르 무너져
젖은 먼지 날리는 네 숨결 속에서
고양이 새끼마냥 웅크린 불씨들이 태어나
나자마자 어른이 되어버린 불의 눈빛은
몸속에 수만 줄기 길을 내며 타오르고
나이테들은 가장자리부터 차례대로 지워져
가엾은 추억들아, 필라멘트를 꺾지 마
아직 내 속살에 새겨지던 그 지문을 기억해
보드라운 날갯짓이 어떻게 인두가 될 수 있었을까
다시, 침묵들이 방울방울 떨어질 때
물관 속에서 깜박거리는 불씨들
수억 촉 고통은 무슨 힘으로 불을 밝히지?
이제 물에 젖지도 불에 타지도 않는 몸뚱아리
까맣게 그을린 나는 얼마나 단단해졌나
언젠가 네 얼굴이 푸른 빛으로 반짝이는 날
뒤틀리고 찢겨진 살결을 보이며
검게 물든 엽록소를 배설할 거야
플로어 스탠드/이병철
너는 등대가 아님에도
바다의 귀를 지니고 있어
어두워지는 무렵의 내 울음을 잘 들을 수 있지
너는 날 수 없는 새
빈 늑골에다 무채색을 채우는 백상아리 주검
나는 그 색채를 생각의 칼로 떠서
음미하기를 좋아하는 미식가다
그게 아픈 너는 내 생각을
달콤한 촛불의 춤으로 바꿔놓으려 하지
내 눈썹에서 희미한 꿀 냄새가 풍기는 이유야
네 눈물은 내 눈으로 와서 노래를 퍼붓는 비가 된다
비를 맞으면 허무의 높이를 딛고 선
발가락이 뚝뚝 부러져
그때 오렌지색 머리칼 속에서 네 눈망울은
고열로 부풀어 오른 어린 행성이야
땡땡 부어오른 붉은 아가미야
오늘도 나는 네 머리칼 속으로
숨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혀를 내밀어
네 금속 척추를 아름다운 알몸으로 바꾸는 중이지
두근거림보다 환한 새벽이 밀물로 오는 소리 들으며
블루홀/이병철
푸른 태양이 눈을 헤엄친다 발끝에서 한 올씩 풀려나가는 음악, 우리는 허우적거리며
겨우 숨 쉬는 입술을 가졌지
은빛 정어리 떼와 함께 몰려왔다가 유리처럼 부서지는 너라는 파립, 흩어지는 네 몸 모
든 조각들이 눈부셔서 나는 피 흘리고 피 냄새가 저 깊고 검은 물을 깨우기 전 두 다리를
퇴화시켜 지느러미를 얻었다
사람들은 걸어 다니는데 우리는 헤엄친다 물에 잠겨 부레가 되어가는 심장에 산소를 채
우느라 빵과 키스를 거부하며 죽음으로 삶을 부르는 호흡법, 다른 세상을 살기 위해 이 세
상에서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그해 여름도 물속에서 보냈지 수압을 견디느라 귀 막고 눈 감은 채, 산소통을 메고 내려
오는 전도자들을 피해 바다 속을 영원한 낮잠으로 바꾸려고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물과 너는 나의 전부다
물은 세상 밖으로 흘러가는 걸까? 바다의 끝이 어딘지 너는 알고 있고 나는 그저 너를 쫓
아가는 게 좋아…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물속에서 종아리에 내 목숨을 매달고 헤엄치던 너는
정말 예뻤는데
너를 따라 물의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너는 거기 없고, 너를 찾던 나는 끝없이 푸른 꿈의
코르크마개를 그만 열고 말았지 유령처럼 낯선 울음이 들려오던 그 구멍이 실은 세상을 빨아
삼키는 단 하나의 입이었을 줄이야
휘파람 소리로 소용돌이치며 소멸하는 세계, 우리가 드나들던 녹색 철문과 시집이 꽂혀 있
던 우편함과 빨랫줄에 매달린 수건과 오후 여섯 시의 라디오 소리가 비명 같은 음악으로 빨려
들어가고
물살에 감겨 물살이 되어 얼음의 시간을 향해 떠내려가는 우리
아니, 소용돌이 속에는 나 혼자 있고
이 세상과 내가 함께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네 푸른 눈이 저기에
강물의 속공 플레이/이병철
손은 놓치기 위해 스물일곱 개의 뼈와 다섯 개의 손톱을 가졌다
움켜쥔다는 것은 놓아버릴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천변에서 소년들이 농구를 한다
얼마 전 집중호우로 불어난 강물이 펼치는 속공 플레이
이맘때 물소리는 불안을 키우는 병이다
손을 구겼다가 길게 펴면서 물이 물을 놓아버리고
놓친 물은 놓쳐진 것들끼리 다시 손을 만든다
물에서 가깝지만 물이 될 수 없는 손들이 농구공을 기다린다
물소리를 모르는 귀들이 뾰족해진다
농구공이 날아간다
두 손에서 열 손으로
잘 놓친 공만 통과할 수 있는 쇠의 원주율을 향해
골대 아래 손들이 펼쳐진다저마다 잘 놓칠 수 있다고, 쉰네 개의 뼈를 움직이면서
농구공이 잘못 날아간다
손이 닿을 수 없는 강물의 속공으로
패스미스
시작과 동시에 끝나버린 농구 시합
열두 개의 손을 무력하게, 승리와 패배를 고요하게, 324개의 뼈를 정물로 만들면서
해를 받아먹는 하류의 금빛 골대를 향해
스팔딩 천연가죽 농구공이 흘러간다
가장 잘 놓친 손에게 물소리를 쥐어주는
강물의 속공 플레이
수련회/이병철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는 모습으로
나무들이 쌓여 갔다
기름 냄새가 떠도는 강가에서
우리들은 손을 이어잡았다
이름표를 목에 걸고
누군가는 형광 조끼를 입고
호루라기 소리를 내면서
불이 타올랐다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노래를 부르고
다시 거꾸로 돌면서 축복해, 말하고
나무들이 무너지는데
불은 자꾸 커지기만 했다
우리들이 만든 원에는 출구가 없었다
이십 대 초반의 청년부 회장이 입구에 서서
원을 벗어나려는 동작들을 제지했다
회원들의 그림자가 멀리 강물에 닿았다
불은 얼굴들을 비추고 꺼뜨리고
두려워하는 표정을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두려워하게 됐을 때
우리들은 죄를 말해야 했다
말하지 않으면 불 속에서 그가 고통받기 때문에
미워했다고 말하자 나무가 무너졌다
저주했다고 말하자 누군가 울기 시작했다
불 앞에선 더 솔직해야 한다고
꽉 잡은 손이 더워 놓고 싶었지만
우리들은 서로에게 기대면서 무너졌다
가장 어두운 죄만큼은 불에 비치지 않게
고개를 숙여 그늘을 만들면서
마음을 속여 기도를 만들면서
눈물을 흘릴수록 불이 커졌다
회장의 죄가 무엇인지 잘 듣지 못했다
내내 울고 내내 소리치는
그의 안경에는 불이 두 덩어리나 타고 있었다
죄보다 긴 그림자는 없으므로
우리들의 얼굴은 밤새 환했다
손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뺨이 뜨거운 이유를 알아야 했다
형제 안에서 영광을 보네
자매 안에서 존귀를 보네
우리들이 원 안에서 불에 타고 있었다
서로의 안에서 무너지며 소리치고 있었다
난 보았네, 7월에 너를/이병철
한적한 들길 길섶
무리지어 웃고 있는 너, 코스모스야
어쩌자고
태양이 작열하는 이 무더위에 피었더냐
더위 속에서도
무리지어 키들대는 너희 모습
한 점 티끌 없는 소녀의 순정 그대로
분홍빛 얼굴 참 이쁘기도 하다 마는
드문드문 후끈한 바람 속에서도
어깨 맞대어 소곤거리는 너희 모습
새실 많은 소녀 모습 그대로
참, 청순하기도 하다 마는
새실이 바빠 계절을 잊었더냐
가을바람에 피어야 더 사랑스러운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