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뭐지? 비어있던 꼬마 빌딩 1층에 불이 켜졌다. 10년 동안 우리 동네 ‘우아한 맛집’으로 사랑받던 곳인데, 소리 소문도 없이 문을 닫은 지 일 년이다. 집 가까이 있는 데다 아이들도 좋아해 자주 찾던 곳이어서 내내 서운했다. 그러니 펜던트 조명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는 것이 반가울 수밖에. 드디어 뭘 새로 시작하려나 보다. 마침 건물에서 나오는 분이 있어 뭐가 들어오는지 물었다. “학원이라는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대로 부풀었던 마음이 풍선 바람 빠지듯 꺼졌다.
학원이구나. 그러고 보니 레스토랑 대각선에 있는 4층 건물도 3~4층은 학원이다. 아파트 앞 마트가 있는 5층 건물도 3~5층은 학원과 스터디카페다. 1km 근방에 고등학교 둘, 중학교 하나, 초등학교 둘이 있으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가 즐겨 찾던 레스토랑까지 학원이 접수한 걸 알고 나니 온 동네 상가를 학원이 금세 점령해 버릴 것 같다. 아이들을 많이 만나는 동네라고 좋아했는데, 왠지 두렵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행복지수는 낮고 자살률은 최고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발표한 ‘2023년 아동 행복지수’가 생각나 찾아본다. 전국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아동, 청소년 2,231명을 대상으로 “수면, 공부, 미디어, 운동 4가지 생활영역의 하루를 분석해 그 균형 정도를 산출한 지수”이다. 최근 3년 통계 중 행복지수가 가장 낮다. 수면시간은 더 짧아지고 공부 시간은 더 많아졌다. 운동할 시간은 아예 없다. 느는 것은 ‘집콕’에 ‘혼밥’에 온라인 여가 활동뿐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는 아동 수면과 휴식 권리 보장, 가족과 저녁 식사, 대면 교제 공간 확보 노력을 강조하지만, 실행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더 오래 공부하고 더 오래 깨어있고 더 피곤해진 아이들은 부족한 잠을 어디서 메꿀 수 있을까. 말하기도 두렵지만,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더 신뢰하는 현실에서 학교이기 쉽다. 이미 학원에서 선행학습으로 다뤄서 흥미를 잃은 수업시간에….
부모들도 걱정은 한다. 무엇이 좋고 중요한지도 안다. 하지만 초중고 교육이 대입용이 된 현실이다. 사교육이 ‘공포 마케팅’으로 선행학습을 유도해 아이들을 끌고 가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아이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일단 성적을 올리는 일이 먼저다. 그러니 다른 것은 나중으로 미뤄도 좋다고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런데 급변하는 세상에서 그 좋은 미래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예측 못한 변수들이 돌발하고, AI와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길이 막다른 길,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런 걱정이 든다. 놀 틈도 쉴 틈도 잘 틈도 없이 달려온 아이들이 그 목표하던 자리에 도달했을 때 행복할까. 미래를 위해 잃어버린 오늘을 완전히 보상받았다고 느낄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는데, 아이의 때를 누리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리면 그 결핍을 어디서 채울 수 있을까. 기억의 방이 그저 공부, 그것도 학원 문제 푸는 일로만 채워졌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행복한 기억 없는 어른이 된 아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AI에게서 꿈을 빌려오거나 이식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들이 오늘 행복하면 좋겠다. 마을버스나 등하굣길에서 만나는 저 아이들이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행복하면 좋겠다. 오늘 핀 벚꽃을 보고 환호하는 아이들, 제비꽃 앞에 앉아 예쁘다고 쓰다듬는 저 작은 아이가 계속 자연과 친한 사람으로 크면 좋겠다. 학원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끝없이 도는 것을 멈추고, 호기심에서 출발해 관찰하고 배우고 생각하며 공부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공부는 학생의 본분이고 책임 아니냐며 즐겁게 공부하는 아이들, 공부하다 지치면 몸 풀러 밖에 나가 공도 던지고, 밤하늘의 별도 올려다보며 우주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 아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부모들, “지금 오늘 이 자리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부모들이 늘어나면 정말 좋겠다.
(주부편지 5월호, '지구살림‧생명사랑'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