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8년 2월 18일자에 실린 <‘기숙형 학원’ 실험 통했다: 순창군 운영 옥천인재숙 2년째 대입 ‘반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순창군에서는 올해 대학 입시에서 세 명이 서울대에 합격한 ‘경사’가 일어나 군청·교육청 등 곳곳에 ‘경축, 서울대 합격’‘2년 쾌거를 축하합니다’ 같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순창군이 운영하는 옥천인재숙의 존폐 여부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던 걸 기억하는 터라, 이 기사는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당시 옥천인재숙에 대해 ‘농촌교육 활로’라는 찬성 의견과 ‘공교육 파괴자’라는 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었는데, 나는 그 어느쪽 주장에도 흔쾌히 손을 들어주기 싫은 중간적 입장이었다.
나는 쟁점과는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건 옥천인재숙과 전북장학숙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옥천인재숙은 ‘공교육 파괴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전북장학숙에 대해선 말이 없다. 말이 없다기보다는 오히려 예찬의 대상인 것 같다. 그래서 전주시도 올해 서울 구기동에 60억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전주장학숙을 짓기로 한 게 아니겠는가.
옥천인재숙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은 ‘공교육 파괴’ 이외에 “군민의 세금으로 소수 학생들을 위한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내가 궁금한 건 전북장학숙과 전주장학숙은 그 설립·운영 자금이 어떤 형태이건 도민의 돈으로 소수 학생들만을 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차이가 있다면 단지 ‘사교육 조장’의 유무일텐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재는 서울로’라는 이데올로기이며, 이 점에선 옥천인재숙과 전북장학숙의 차이는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교육이 서울로 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전북장학숙도 ‘사교육 조장’에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인재는 서울로’! 이건 조선조 건국 이래로 600년 이상 묵은 이데올로기다. 조선의 걸출한 사상가인 다산 정약용(1762~1836)마저 죽기 전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가지 말고 버텨야 하며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고 신신당부했다고 하지 않는가.
사정이 그와 같은 바, ‘인재는 서울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진리라는 반론이 가능하겠다. 개인과 가문의 영광만을 생각한다면 진리일 수도 있을 것이나, 지역발전을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재는 서울로’가 지역발전전략으로 통용되고 있는 현실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게 웬말이냐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볼 걸 권하고 싶다.
‘인재는 서울로’ 이데올로기의 전제는 전북 학생들이 서울에 많이 올라가 출세를 하면 전북에 떨어뜨려 줄 게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이는 전북 인구가 252만명에서 180만명대로 감소한 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허구성이 금방 드러난다.
‘인재는 서울로’는 각 개인과 가문의 발전전략일 수는 있어도 전북 전체의 발전전략일 수는 없다. 각 개인과 가문의 영광을 위한 시도는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지만, 그것이 과연 공적 지원으로 이뤄져야 할 성격의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시도는 그 어떤 공적 지원이 없다 하더라도 필사적으로 이뤄지기 마련인 바, 공적 지원은 지역에 남아 지역을 위해 일해보고 싶어하는 인재들을 위해 쓰여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옥천인재숙에 대한 비판에 원론적으론 동의하면서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 제기 없이 옥천인재숙만을 문제삼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중간적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좀 과장되게 이야기하자면, 전북은 “1류 인재는 서울로, 2·3류 둔재는 전북에!”라는 슬로건을 범도민적으로 추진하면서 서울 하늘만 바라보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전북엔 이렇다 할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기도 하지만, 2·3류 둔재만 남은 전북에 일자리가 많이 생길 리 없다는 생각은 왜 해보지 않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