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장,
엘리베이터가 멎자 김정숙은 아들의 아파트 문 앞으로 다가간다.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잠금 쇠를 번호를 자신 있게 누른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응? 내가 잘못 눌렀나?”
김정숙은 다시 차근차근 번호를 하나씩 눌러 나간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어보았으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왜 이러지?”
행여 자신이 집을 잘못 찾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호수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 보지만 틀림없는 아들의 집이다.
몇 번을 해도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김정숙은 그제야 번호를 바꾸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이것들이 그냥................”
아들의 핸드폰의 번호를 누른다.
몇 번의 신호 끝에야 아들의 음성이 들린다.
“네!”
“대체 네 집의 번호를 왜 바꿨냐?
몇 번인지 말해!”
“네?
엄마가 지금 어디 계신 거예요?”
“어디긴 어디야?
네 집에 와서 들어가려니 네가 분명이 번호를 바꾸어서 문이 열리지 않고 있으니 이 어미가 밖에서 너희들 올 때를 기다려야겠니?”
“엄마!
그대로 돌아가세요.
저희들 지금 멀리 나와 있어서 며칠 뒤에나 돌아갑니다.
그러니 그대로 대구로 내려가세요.“
”뭐야?
이 에미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서야한다는 말이냐?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어서 번호를 말해!“
”그럴 수 없습니다.
그만 돌아가시는 것이 좋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별 수 없다.
열쇠장이들을 데려다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는 없는 일이겠지.“
김정숙이 거의 협박조의 말을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의태는 잠시 멍하니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엄마의 끝없는 횡포를 어찌해야 할 것인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의태는 엄마의 휴대폰의 번호를 누른다.
김정숙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들의 전화를 받는다.
“어서 번호를 말해!”
“엄마!
아버지께 전화를 드릴까요?
분명히 아버진 지금 엄마가 저희 집에 올라가 계신 것을 모르실 것이고 저희가 돌아가는 며칠 동안 엄마 혼자서 계시는 것이 심심하실 것이니 아버지와 함께 기다리실래요?“
”뭐야?
너 지금 이 어미를 협박하고 있어?
좋다, 내 반드시 네 곁에 있는 쓸모없는 것들을 이대로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고 있어!“
김정숙은 아들의 전화를 끊고 나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이제 아들의 집이라고 와서 자신의 맘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
생각을 할수록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들의 집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다.
자신이 마음 놓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 아들의 집이다.
당연히 당신 자신의 집처럼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어야 하는 집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어이가 없다.
김정숙은 그렇게 한참을 아들의 집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다.
자신이 들어가야 할 집에서 거부를 당하고 철저하게 무시는 당하는 기분이기에 김정숙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아무도 오가는 사람도 없다.
시멘트 벽 사이로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삭막한 곳이다.
사람의 그림자커녕 그 어떤 움직이는 조그마한 물체조차도 찾아 볼 수조차 없는 삭막한 회색빛으로 둘러 싸여진 곳이다.
그렇게 김정숙은 한참을 버티고 난 후에야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시간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감각이 없다.
행여 누구라도 오겠지 하는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각이 없다.
거의 오후시간을 그렇게 혼자서 버티어 온 김정숙이다.
배에서 심한 공복을 느끼며 무언가를 달라는 강한 신호가 괴롭히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김정숙은 우선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근처를 둘러보며 마침 눈에 들어오는 분식집으로 향한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다.
김정숙은 간단한 우동으로 허기진 배를 달랜다.
그리고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서울역으로 향한다.
그렇게 벼르고 별러서 온 아들의 집을 들어 가 보지도 못하고 다시 대구로 돌아가는 김정숙은 그래도 허탈한 심정이 된다.
차에 몸을 싣고 차가 출발을 하자 비로소 남편이 알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행여 의태가 통화를 하지 않았을까하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알기만 하면 가만히 있을 남편의 성질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온 김정숙은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내일 돌아올 남편이 모르고 있어야 한다.
비로소 자신이 남편의 뜻을 거스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운 김정숙의 표정은 마치 중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초췌해 보이고 까칠한 피부가 십년은 더 늙은 여자로 만들어 놓는다.
김정숙이 그런 마음고생을 하며 밤을 지내고 있을 때 의태와 희영은 깊은 잠이 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해한다.
하루 종일 피곤했다는 듯 두 아이는 세상모르게 잠이 들었다.
새벽에 출발을 하는 것부터 오는 내내 제잘거리며 한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았던 보라와 인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인영이도 보라와 수다를 많이 떨었지요?”
희영이 묻는다.
“말을 하려니 우리 인영이도 만만치 않은 수다장이든데?”
“호호호...........
그래야지요.
두 아이 모두 밝고 명랑한 성품이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보다 맑고 고운 성품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아이들로 성장을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암!
모두 당신의 성품을 닮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소.“
”참, 아까 어머님의 전화였지요?“
“그렇소!
아마 또 아버지 뜻을 거역하시고 우리 집에 가셨던 모양이오.“
희영은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시어머님이 또 다시 드나드신다면 아이들이 받을 상처가 얼마나 클 것인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진다.
“어떻게 해요?
이제 겨우 마음을 열고 밝게 살아가려는 우리 인영이가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 해요?“
”여보!
그런 일이 없게 내가 모든 것을 다 처리를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오.
다시는 엄마가 우리 집에 오지 못하시도록 할 것이니 당신은 그런 걱정을 하지 말고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시오.“
”네!
그렇지만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요.“
의태는 그런 희영을 자신의 가슴에 품어 안는다.
아이들이 깊이 잠든 것을 알고 의태는 아내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깊은 애무와 함께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뜨거운 몸짓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감에 젖어드는 부부다.
그렇게 여름 피서를 보내고 오일 만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인영의 모습은 편안해지면서 이제는 보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라도 보라를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보라에게 묻고 보라가 공부를 하는 시간조차도 곁에서 함께 공부를 하는 모습으로 함께 있곤 한다.
이제 인영도 입학을 한다.
참으로 의젓하고 환하게 모습이 바뀐 인영이다.
“와!
우리 인영이 정말 멋지다.“
”엄마, 정말 인영이 멋져요?“
인영은 조금은 수줍어하는 듯한 태도로 묻는다.
“멋지고말고.
엄마 아들이 정말 아주 멋지고 근사해요.
우리 아들 사랑해요.“
”엄마, 인영이도 아빠와 엄마 그리고 누나를 사랑해요.“
희영은 더욱 신경을 쓰면서 일학년인 인영의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한다.
준비물이라도 행여 빠지는 것이 없나 살피기도 하고 보살핀다.
보라보다도 더욱 섬세한 마음을 지닌 인영이다.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인영의 섬세한 성품이라는 것을 알기에 보라보다도 더욱 세심한 신경을 써 주어야 하는 인영이다.
남편이 어떤 조처를 취했는지 몰라도 시어머님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지만 그래도 늘 불안하고 안심이 되지 않는 희영의 마음이다.
쉽게 상처받을 수 있고 피를 흘릴 수 있는 인영이기에 행여 시어머님의 무지한 횡포로 인영이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보라보다 더욱 심한 상처를 받을 것이고 쉽사리 치료가 되지 않을 인영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불안한 마음이 되어간다.
“여보!
어머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불안해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버지와 의논을 했소.
더 이상 엄마가 서울을 올라오시지 못하시도록 하신다는 말씀이었소.
지금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스포츠댄스를 배우러 다니고 있소.“
“네?
스포츠댄스를 두 분이서 배우신다고요?”
“그렇소!
내가 아버지께 학원비를 대 드리고 있소.
다행히 그렇게 안하시겠다고 하던 엄마다 더욱 열성적이고 흠뻑 빠져들었다고 하니 이제 우리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으실 거요.“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잘 된 일이에요.
건전하고 두 분의 건강을 위해서도 정말 잘 된 일이에요.“
희영은 비로서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그들의 가정은 그렇게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생각보다 영인도 학교생활을 잘 적응을 하면서 점차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밝고 명랑하게 변해간다.
또한 인영은 다른 아이들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사내아이답지 않은 커다란 눈과 하얗고 뽀얀 피부는 인영을 더욱 돋보이는 인물이 되게 한다.
키 또한 또래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더 큰 키를 자랑하고 있다.
희영은 그런 인영을 보면서 늘 행복함에 젖어든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