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가 믿음입니다(마 14:14-21)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의 삶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까? 어떤 분은 감사할게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아내는 아내대로 짜증내고, 남편은 남편대로 괴로워하고, 아이들은 제멋대로인대, 뭐가 그리 감사할 것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환경을 보면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많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감사는 믿음입니다. 성도는 환경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가 깨달아지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이 기대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 감사를 잊어버리고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점점 심령이 점점 메마른 사막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글이 있습니다.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그만큼 재산이 많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조금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많다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생겨난 불평불만들, 바꾸어 생각해보면 다 감사한 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쓰고 있는 안경에 따라서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빨간색 안경을 쓰면 세상은 다 빨갛게, 검정색 안경을 쓰면 세상은 까맣게, 마찬가지로 불평하자고 들면 끝이 없습니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떤 안경을 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의 안경을 쓰고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은혜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치 않고 불평의 안경을 쓰고 나면 아무리 모든 것이 충족해도 불평거리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안경이냐? 아니면 불평의 안경이냐? 불평의 안경을 끼고 살면 더 많은 불평거리가 생길 것입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움이 있어도 감사의 안경을 쓰면 반드시 더 많은 감사거리가 생길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은 대상이 아니라 재능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사람들은 흔히 어떤 좋은 조건이 자기에게 다가오면 그 대상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속에서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재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삶에 대하여 본을 보이셨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배불리 먹은 사람의 수가 여자와 어린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수를 다 합하면 최소한 2만 명은 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무리 앞에 먹을 음식은 고작 작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턱없이 모자라는 음식 앞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본문 19절에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축사하다”는 말의 의미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2만 명이 넘는 무리들 앞에서 어린아이 도시락 하나를 앞에 두고 감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감사를 선택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감사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감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감사는 선택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것, 친구를 맺는 것, 내가 소속된 교회, 내가 다니는 직장, 이 모두가 다 내가 선택한 것입니다. 이런 것만 아니라 감사하느냐 아니면 원망하고 불평하느냐 하는 것도 선택입니다. 환경이 좋다 하여 다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환경이 좋지 않다고 하여 다 원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만 명의 무리 앞에서 아이 도시락 하나를 놓고 감사하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이것은 환경을 보고 감사하신 것이 아니라 감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절대 부족한 상황, 절대빈곤의 상황에서 원망이나 불평이 아닌 감사를 선택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가운데 이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감사를 선택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감사가 먼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어떤 어려움가운데서도 감사를 선택하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은 유대인 청년으로 나라가 멸망할 때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갔습니다. 남달리 영리하고 지혜로웠던 다니엘은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공부를 했고 훗날 바벨론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지혜로웠던 총리 다니엘은 왕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왕의 총애를 받는 것을 시기한 간신들이 음모를 꾸며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세상이 그 어떠한 위협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지금까지 그를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기도를 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해서 창문을 열어놓고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냉용을 삻펴보면,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지금 감사할 조건이 아닙니다. 감사할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환경을 보고 감사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감사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던져졌지만 천사가 나타나 사자의 입을 막으므로 무사했습니다. 간신들의 음모임을 뒤늦게 깨달은 왕이 그 간신들을 사자 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 결과에 대해 다니엘서 6장 24절에 기록하기를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고 했습니다.
감사를 선택했더니 감사한 상황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감사할만한 상황을 보고 감사한 것이 아니라 전혀 감사할 상황이 아니지만 먼저 감사했을 때 감사할 상황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또 이러한 일화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이었던 이무라 가즈오씨는 일본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오사까의 한 병원 내과의사로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섬유육종 암으로 오른편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한 쪽 다리를 절단한 후 초인적인 인내로 의사의 사명을 다하다가 암이 폐로 전이 되어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기록한 편지와 글이 “종이학”이란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종이학이란 제목으로 영화도 만들어 일본 열도에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책에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가 보다”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습니다. 그가 남긴 글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것에 사람들은 왜 감사할 줄 모를까?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형제가 있고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이고, 손을 뻗어 무엇을 잡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
이것보다 더 멋지고 감사한 일이 있을까!
그런데 아름답고 귀한 것이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르고
그거야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루 세끼 밥 먹고, 밤이 오면 잠자고, 다음날 아침을 맞는다는 것,
웃고, 울고, 노래하고, 소리치고, 뛰어 다닌다는 것,
산에 오르고, 바닷가를 거닌다는 것,
온갖 자연의 멋지고 아름다운 것에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는 것,
너무나 희안한 일이 아닌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눈물나게 소중한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아무도 무른다.
그걸 아는 사람은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려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야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주위를 살펴보면 감사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말씀하셨습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언제나 항상 범사에 감사를 선택하고 진정으로 감사할 때 더 큰 감사의 환경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선택입니다.
2. 감사는 능력입니다.
데보라 노빌이라는 사람이 쓴 ‘감사의 힘’이라는 책에서 그는 말하기를 “감사합니다 라는 짧은 말이 우리 인생 전체를 바꿀만한 강력한 힘이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더 나아가 “감사라는 말은 그 사람 속에 잠재된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비밀열쇠”라고 했습니다.
1) 감사는 행복을 안겨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모두가 소원하는 행복은 무엇으로 오겠습니까? 전혀 부족함이나 불편함이 없는 잘 갖춰진 완벽한 환경을 통해서 오겠습니까?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치스러운 환경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은 종이위에 태양을 그려놓고 그 그림에서 햇빛이 발산되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과 같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부족함이 없는 환경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함께 넘치도록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남치는 복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큰 기쁨속에서 행복을 누렸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모든 것들이 그로 하여금 교만하게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범하는데까지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가 깨닫고 고백한 말은 (전1:2,14)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결코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싹이 나고 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외부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눈이 가려 이미 얻은 것, 현재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현재 없는 것, 못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천하를 얻는다 해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참된 만족이 없을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가는 아내의 정성을 생각한다면 아내에 대한 감사한 생각이 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이 있습니다. 남편의 성실한 삶을 생각한다면 비록 수입이 많지 않다 할지라도 남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솟아날 것입니다.
또한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자녀의 모습을 본다면 비록 학교에서 1등은 못한다 할지라도 감사한 마음이 가득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나를 이만큼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부모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사무쳐 올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은혜, 내 영혼과 육신을 이 날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나로 하여금 순간마다 깨닫게 하시며 새 힘을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감사함이 넘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미움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이해와 사랑이 솟아납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불평과 원망이 사라집니다. 이러한 마음에 만족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에 환경과 상관없는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행복을 바라시는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2) 감사는 질병을 지료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의 젊은 화가 “오너 숄맨”은 결혼을 하고, 얼마되지 않아 임파선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숄맨은 아내에게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 "우리 감사합시다. 이때까지 살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우리 부부의 좋은 만남과 사랑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합시다. 바로 죽지 않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는 남은 3개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예수님의 성화를 그리기로 결정하고 정성을 다해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의 생명은 3개월의 한시적인 생명이라고 의사는 진단했는데, 30년이 지나도 그는 죽지 않고 건강했습니다. 그의 주치의인 존 헨리는 말하기를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이다. 감사는 최고의 해독제이다. 감사는 최고의 치료제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감사의 능력입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맑은 음성과 화면을 보려면 채널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에도 생체 리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체 리듬을 감사함에 맞추어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때 인체의 기능이 원활할 뿐 아니라 회복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반면 불평하며 원망하게 될 때, 인체의 리듬이 깨어지며 건강을 약화시킵니다.
건강한 삶의 비결은 평안한 마음과 기쁨이 넘치는 삶,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즉 감사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라고 합니다. 의사들의 주장에 의하면 감사는 인체의 신진대사를 정상화해 면역력을 높여주고 자연 치유력을 활성화시켜 건강한 삶을 지켜주는 열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건강한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감사를 생활화하는 사람입니다.
3)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하셨습니다. 수만 명 앞에 놓여진 어린아이 도시락인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절대 부족 속에 감사를 선택하여 감사하신 예수님 앞에 하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12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 다니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힘력자(力)를 쓰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권력(勸力), 재력(財力), 실력(實力), 체력(體力)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힘이 있습니다. 감사력(感謝力)입니다. 감사의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힘입니다.
사람의 말이나 삶은 모두가 심는 씨앗과 같습니다. 감사의 씨앗을 심으면 감사의 열매가 맺습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는 목사는 말하기를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주님께서 천국을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면 레벨이 높아집니다. 작은 것을 보고 감사하면 더 큰 것을 주시고, 더 큰 것 주심에 감사하면 그보다 더 큰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가 믿음입니다.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의 삶은 감사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파멸로 이끄는 사탄의 미혹입니다. 감사는 선택입니다. 감사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행복이 임하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육신의 건강이 임하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감사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일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사람의 심령을 시험하십니다. 감사는 그 사람의 진정한 믿음을 알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범사에 감사를 선택하시므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힘입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