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준대표님의 카톡에서]
◇좋은 하루 되세요
어리석은 개미는
자기 몸이 작아 사슴처럼
빨리 달릴 수 없음을 부러워 하고,
똑똑한 개미는
자신의 몸이 작아서 사슴의 몸에
붙어 달릴 수가 있음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의 단점을 느끼면서
슬퍼하고,
똑똑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찾아내어 자랑한다.
화내는 얼굴은
아는 얼굴도 낯설고,
웃는 얼굴은
모르는 얼굴이라도 낯설지 않다.
찡그린 얼굴은
예쁜 얼굴도 보기 싫고,
웃는 얼굴은
미운 얼굴이라도 예쁘게 보인다.
고운 모래를 얻기 위해
고운 체가 필요하듯,
고운 얼굴을 만들기 위해서
고운 마음이 필요하다.
매끄러운 나무를 얻기 위해
잘드는 대패가 필요하듯이,
멋진 미래를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력이 필요하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연장을 두고서
남의 연장을 빌려 쓴다.
그러다 그만 자기 연장을
녹슬게 하고 만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혼자 힘으로 서려고 않고
남에게 기대선다.
그러다 그만 자기 혼자 설
힘조차 잃고 만다.
동행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이랍니다.
- 좋은글 중에서 -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수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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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대 1의 승리자
한사람이나 소수의 사람들을 잠시 동안 속일 수 있어도,
많은 사람이나 다수의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파격적인 진급을 하고 현지에 부임한 李舜臣(이순신)은 당시
경상 좌수사 박홍
경상 우수영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그 울타리에
전라 좌수영 절도사로 왔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 조직에서 파격적인 계급장을 달고 내려온 장수를 보고 순순히 인정하고 가만 있었을리는 없는 것이다.
1597년(정유년) 2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한산통제영 에서 체포된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형장이 열리고 선조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문무백관 / 200명 모두가 "이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마땅하옵니다."외친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읍조 하며 임금(선조도 속으로 는 동조 함)을 압박하고 있으니 이순신을 발탁해주고 6계급 파격 진급에 힘을 써준 유성룡 까지도 "공은 공 / 사는 사라고 하며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는 문무백관 들의 의견에
반대를 하지 못한다.
당시 이순신의 누명 상황이 어떠한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틀이 걸려도 이순신 형 집행을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당시 領議政 (영의정) 겸 都體察使(도체찰사) 국가비상 사태 직무 총사령관인 梧里 李元翼(오리 이원익) (1547~1634)이 임금의 어명으로 전시상태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시상태에서는 임금과 문무 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 외쳐도 이원익의 승락 없이는 선조 임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 이었다.
이원익은 거듭되는 선조의 형 집행 재촉에 청사에 길이 남는 그 유명한 명 대사로 고한다.
전하께서 전시에 신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중에 삼도수군 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 하지 못하옵니다.
이원익의 이 말에 선조도 체념을 하고 이틀이나 걸린 이순신 "국형장" 에서 문무백관 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도체찰사가 그리 말을 하니 이순신이 죄가없는가 보구나.!"
오직 한사람의 곱고 바른 판단과 집념으로 199명의 고집을꺽었다.
드디어 이순신은 사형을 면하게 된다.
당시 문무백관 199명 대 1 이원익 한 사람만이 반대를 하여 이순신을 살려 낸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나라와 백성 만 떠받든 공복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 자리를 잡게 되는 소박 하고 비범한 조선의 대표적 청백 리 초가집에 살았던 "조선의 명재상 오리 이원익 대감"
세월은 400년이 지나고 시대만 수없이 변했을 뿐 정치는 변한게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알아주는 한사람만 있으면 외롭지 않은것이 대장부의 자존심이요 명예이다.
더구나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전쟁통에는 더할것이다.
온갖 시기질투와 모함으로 사형 직전까지 간 만고의 충신을 알아 보고 199대 1로 임금의 불신으로 부터 믿어준 탁월한 先見之明 (선견지명)의 굳은 신념이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들의 생명과 조선 사직을 지켜낸 오리 이원익 대감이야 말로 만고에 길이 빛나 는 충신이며 나라의 보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사람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 이원익이 나라를 구했던것이다.
한 사람.! 올바른 한 사람이 중요하다.
생각해 본다면 이순신장군 은 행복한 분이셨다.
자신의 목숨을 두려워 하지않고 불의에 뜻을 굽히지 않았던 오리 대감과 같은 분이 시대에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87세로 눈을 감으시면서 모든 자식들을 불러 놓고 !
"나를 위해 부고도 알리지 마라 사후에 어떠한 사당이나 칭송된 일이나 비석도 세우지 마라"
그러기에 오리 정승은 우리에게 잊혀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400년이 지났지만 오늘의 이 시대에 이원익 대감 같은 "정정 당당" 했던 淸白吏(청백리)는 어디 에 있는지 묻고 싶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각나게 할 뿐이다.
지금 시대에 李元翼(이원익) 政丞 (정승) 같은 正正 堂堂(정정당당) 했던 분이 계시면 좋겠습 니다.
받은글 편집
■이원익(李元翼)
1547년(명종 2)~ 1634년(인조 12)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한성부 출신.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李礻+多)의 4세손 키가 작아 키작은 재상으로 널리 불렸다.
이원익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74년(선조 7) 황해도 도사가 되어 병정을 정비했고,
1587년 안주목사로서 기민 구휼과 민생 안정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나자 명장 이여송과 함께 평양을 탈환했고 1595년에는 우의정 겸 4도체찰사로 일했다.
광해군 재위기에 왕에게 올린 직언이 수용되지 않자 병을 이유로 낙향했다.
인조반정 후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성품이 소박하고 단조로워 과장이나 과시할 줄을 모르고, 소임에 충실하고 정의감이 투철하였다.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으나 집은 두어 칸 짜리 오막살이 초가였으며,
퇴관 후에는 조석거리조차 없을 정도로 청빈했다 한다.
인조로부터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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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길녁 💙
살아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요..
내 뜻이 틀릴 수도 있고
남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고~^
인생 새옹지마라
정답도 없네요~..
너무 마음 아파하며
너무 아쉬워하며 살지말고,,
그냥 그려려니하고
살아갑시다~°
잘 나면 얼마나 잘나고
못 나면 얼마나 못났을까
돌아누워 털어버리면
빈손인 것을~" "
화를 내서 얻은 들,
싸워서 빼앗은 들,,
조금더 기분 내고 살뿐
마음은 퍽이나 좋았겠습니까?
져주고~,,
남이 웃으니 아니 좋습니까?
남 아프게하는 말보다
따사한 말 한마디로~°
가슴에 못박지 말고
서로서로 칭찬하며 살아요~...
좋아도 내사람
미워도 내사람~"
나중에
그 미워하던 사람도 없으면~,
외로워서 어찌살라고..
그냥 순리대로
서로서로 위로하며~,,
말벗이 되고
친구가 되어~°
남은 여생
오손도손
즐기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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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이야기 🍵
지구촌 제1 음료인 커피는 언제,
어디서, 누가 발견했을까?
여기에는 많은 설들이 있으나
최초의 커피 발견자는 6~7세기경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 지방에
살았던 목동 '칼디(Kaldi)’
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달리 성실하였던 '칼디'는 염소를
보살피는 일에는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염소들의 습관이며
즐겨먹는 목초 등을 세심하게
관찰해 보살펴주어서
칼디의 염소들은 건강하고
성장속도도 빨랐다.
목동으로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칼디는 이상하게 생긴 붉은 열매를
먹고 있는 염소들을 목격하였다.
칼디'는 그 열매가 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염소들이 실컷
먹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붉은 열매를 먹은
염소들은 모두 힘이나서 활동적으로 되고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칼디'는 염소들이 먹은 열매를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물에 끓인 후 마셔 보았더니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칼디'가 이 신기한 사실을 인근
이슬람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알리자 수도사들은 이 열매가 악마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모두 불 속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던져버린 커피 열매가 불에 타면서
특이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내기 시작했고
수도사들은 곧바로 불에 타다 남은 열매를
수거하여 뜨겁고 검은 커피 음료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수도사들은 커피가 잠을 쫓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내 그때부터 사원의 수도사들은 밤에 기도할 때 졸지 않기 위해 이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 커피란 이름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여기에도 몇 가지 주장이 있으나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에티오피아의 지명
‘카파(Kaffa)’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랍어로 ‘힘’을 의미하는 말로,
이 지역은 에티오피아의 커피나무
자생지이기도 하다.
이 말이 터키로 전파되어 Kahweh,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에서 Cafe,
이탈리아에서 Caffe, 독일에서Kaffee,
영국과 미국에서 Coffee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처음 마신 사람은
고종황제인데,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 당시 처음으로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02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하우스인 손탁호텔(Sontag Hotel)이 문을 열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인스턴트 커피가
일반인들 에게도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 세계 3대 커피
ㆍ예멘의 모카 (Mocha)
ㆍ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Blue Mountain)
ㆍ하와이의 코나 (Kona)
예멘의 '모카'는 한때 세계 최고의 커피 무역항이었던 모카항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커피의 여왕"으로 지칭된다.
지금은 예멘과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되는
커피를 '모카 커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은
"커피의 황제" 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 왕실에 납품되는 최고급 커피다.
'코나' 커피는 하와이 빅 아일랜드의 북쪽과 남쪽 코나 지역의 Hualalai와 Mauna Loa의 경사면에서 재배 된 커피의 시장 이름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커피 중 하나다.
하와이의 '코나'는 파인애플 향의 약간 신맛이 난다.
🍵 커피의 꽃말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Always be with you)
사랑은 4가지 종류가 있데요.
ㆍ육체적이고 정열적인 에로스 사랑
ㆍ동료적이고 우정적인 필리아 사랑
ㆍ순수하게 정신적인 플라토닉 사랑
ㆍ희생적이고 조건없는 아가페 사랑
한 여인이 한 남자를 그리워하다 죽어서 그 여인의 무덤가에 피어났던 꽃의 열매가 바로 '커피'라 합니다.
커피의 색은 어두운 핏빛인데 그건 그 여인의 눈물 빛깔이고 너무나도 울어서 피 눈물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랍니다.
커피가 쓴 이유는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고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밤낮으로 그 사람을 기다렸던 그 여인의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커피의 향이 그윽한 이유는
그 여자의 사랑하는 마음이 향기가 되어
흩날리기 때문이랍니다.
커피향도 즐기시고
여유롭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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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금
"아침편지"
"고통을 견디는 방법"
"당신과 제가 느끼는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겠지만 일에 몰두하는 동안은 그래도 견딜 만할 겁니다.
몸이 지치면 마음이 괴로울 여지가 없으니까요."
삶은 늘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 고통을 견디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몸의 고통은 마음으로, 마음의 고통은 몸으로
푸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푸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에 몰두하다 몸이 지쳐, 고통을 느낄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통없는 기쁨만 가득한 새날 맞이 하시고.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
주찬 (酒讚) 너무 훌륭한 글이라 올려드립니다!
swkor624.tistory.com/m/2514
🌶
김치로 고칠 수 없는 질병은 없다! myun5381.tistory.com/m/288
https://myun5381.tistory.com/m/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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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生覺)의 차이(差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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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금발(金髮)의 여성이
맨해튼에 있는 은행안으로 들어와서 대출(貸出)담당자를 찾았습니다.
그녀는 업무상 유럽에 출장가서
2주간 체류(滯留)할 예정이라면서
5천 달러(약 6백만 원)가 필요하다며 은행에 대출을 요청했습니다.
은행 담당자는 그 여성에게
대출을 위해서는 보증(保證)을 위한 담보(擔保)가 필요하다고 설명 했고
그녀는 담보물로 자신의 롤스로이스 차량 열쇠를 건네줬습니다.
그 자동차가 그녀의 이름으로
등록된 차량임을 확인한 은행측은
모든 신상정보(身上情報)가
이상(異常)없음을 확인 했습니다
은행에서는 그녀의 차를 담보로
5천 달러의 대출을 승인했습니다.
은행장과 직원들은
고작 5천 달러의 대출을 위해
25만 달러(약 3억 원)의 고급차를 담보(擔保)로 맡긴 그녀를 모두가
의아(疑訝)하게 생각 🍎했습니다.
한 은행직원이 대출 담보물인
그녀의 차를 곧 바로
은행 지하 차고에
예치(豫置) 완료하였습니다.
2주 후,
그녀는 돌아와서
5천 달러 원금에 이자(利子)를 합해 은행 대출금을 갚았습니다.
이자는15달러 41센트(약 만 8천 원).
은행 대출 담당자가
그녀에게 물어봤습니다.
"아가씨, 우리는
정확한 날짜에 돈을 갚아주신 데 대해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우리 은행은 아가씨께서
5천달라를 대출해 가신 후
아가씨 신용 정보를 조회해보니, 억만장자(億萬長者)이시더군요.
그런데 왜 고작 5천 달러를 빌리는데
어려움이 있으셨던 건가요?"
은행원의 질문이 떨어지자 마자
그 금발의 여성이 답했습니다.
"복잡하고 빈자리가 없는 뉴욕시에서 2주간(週間) 주차(駐車) 하는데
고작 15달러 41센트만 내면 되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효율적인 해결방안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적(創造的)인 아이디어가 아니겠습니까요?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되고,
'역경(逆境)'을 거꾸로 하면
'경력(經歷)'이 되고,
'인연(因緣)'을 거꾸로 하면
'연인(戀人)'이 되고,
'내 힘들다' 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 가 된다는걸
모르는 사람 없는데도
그런 방법과 이치(理致)를 깨닫고
그런 원리(原理)를 응용(應用)하고
활용(活用)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쉽지않습니다.
세계적 도시 뉴욕의 번화가(繁華街), 왕래가 빈번(頻繁)한 길거리에
앞을 못 보는 노인이
구걸(求乞)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의 앞에는
I'm Blind. Please Help Me,
(나는 맹인입니다. 도와 주세요)
라는 글씨가 적인 판지(板紙)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판지의 글을 읽으면서
불우한 맹인 노인의 앞을 지나쳐
많은 사람이 오고 가지만
기끔 한 두 사람이 동전 한닢을 던지다 십이 보태주는 시늉을 하듯
바삐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그 때 젊은 여성 한 사람이
그 맹인 앞을 지나 가다가
I'm Blind. Please Help Me,라고 적힌 판지(板紙)을 집어 들더니 그 판지 뒷면에다 싸인 펜을 꺼내
It's a beautiful day but
I cant see it.
(아름다운 날입니다.하지만,
나는 그걸 볼 수 없네요)
라는 내용의 글로 고쳐 놓았더니
맹인 노인의 앞을 지나는
모든 사람이 너 나 할것 없이
노인의 앞에 놓인 캉통에 동전을 비롯 지폐 까지도 던지지 않고 공손히 넣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캉통에 동전과 지폐가
차고 넘쳐났습니다
판지(板紙)에 적혔던 처음 글이나
나중에 아가씨가 내용을 고쳐서 적은
글씨의 내용은 사실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표현을 다른 말로 고쳐
썼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차비를 절약하기 위한
금발 아가씨의 생각이나 방법과
구걸하는 요령 까지도
사람의 '생각(生覺)' 은
너무도 큰 차이를 만들어 줍니다.
결국
생각이 깊은 사람은
마음도 깊을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자신의 깊은 내면(內面)을
관찰(觀察)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평소에도 내 자신의 깊은
내면을 관찰하는 습관과
예지(叡智)를 발휘할 수 있다면
내 마음에는 환희(歡喜)와 기쁨
그리고 입가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을것입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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