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밤 2018, 만촌의 무언극
엊그제인 2018년 9월 13일 목요일 오후 5시 반쯤의 일이다.
“다들 영신숲으로 와.”
그 한 시간 전쯤에, 문경읍내 우리 대원퀸즈힐 명작아파트 전셋집에서 나서면서 내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인 안휘덕 친구가 한 말이 그랬다.
이날은, 우리 중학교 동기동창 친구들 중에 서울 강동에 터 잡고 사는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모이는 ‘강동회’를 새로 이끌게 될 회장단 친구들인 정재룡 친구와 김창현 친구가, 고향땅 친구들을 찾아 그 사실을 고하기로 일찌감치 작정해놓은 날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이왕이면 보고 싶은 친구들 더 만나보겠다는 생각이었던지, 그 둘은 점심때부터 고향땅 친구들을 불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불러낸 친구가 안휘덕 친구였고, 천송길 친구였고, 황학현 친구였는데, 그 둘은 그것으로 성이 안 찼던지, 우리가 새로 얻어 이사를 한 문경읍내 우리 대원퀸즈힐 명작아파트 전셋집으로 이삿짐 정리한다고 요 며칠 째 내려 가있는 아내까지 불러내서, 우리 문경의 명승지인 진남교 그곳 휴게소에서 점심 약속을 해놓고 있었다.
그 판에 내가 끼어들었고, 그 끝에 다들 우리 집으로 몰려갔다가, 아내가 끓여 내주는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헤어지는 그 순간에, 안휘덕 친구가 그렇게 다음 일정에 대한 길을 터준 것이다.
정재룡 친구와 김창현 친구가 이날 고향땅 문경을 찾은 본래의 목적인, 고향친구들과의 저녁 만남의 때까지는 아직 두어 시간이 남았기에, 그 시간을 채워주기 위해서 그렇게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한 시간쯤 뒤에, 안휘덕 친구를 다시 만나러 우리 어린 시절의 놀이터인 바로 그 영신숲으로 나간 것이었다.
그 숲에 쌓여있는 이린 시절의 추억을 돌이키고픈 마음이 하도 급해서, 내가 앞서 강가로 나갔다.
그 강가에 우뚝 솟았던 포플러나무 두 그루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것이 참 아쉬웠고, 건너편 금빛 모래밭이 없어진 것도 참 아쉬웠다.
아래쪽에 보가 있어서 그런지, 강물이 흐르는 듯 마는 듯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내 생각도 그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황원현 내 친구가 언젠가 사랑하는 동생이 유명을 달리하고 난 뒤에 ‘엄마냐 누나야’라는 동요를 한참 동안이나 핸드폰 컬러링으로 담고 다니던 사연을 떠올렸고, 기원전 6세기경에 유다왕국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비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그 고난의 세월을 기록한 성경 시편 137장을 재구성한 미국 보컬 보니엠의 노래 ‘바빌론 강가에서’도 떠올렸다.
내 그러다가 문득 친구들이 어디 있나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두 친구가 있었다.
정재룡 친구와 안휘덕 친구 그렇게 둘이었다.
우리가 ‘만촌’(晩村)이라고 부르는 안휘덕 친구가 뭔가 몸짓을 크게 하고 있었다.
두 팔을 들어 깜짝 놀라는 몸짓을 했다가, 그 든 팔로 가슴을 감싸 안는 몸짓을 했다가, 그대로 주저 않는 몸짓을 했다가, 다시 일어서서 두 팔을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몸짓을 했다가, 또 깜짝 놀라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말이 들리지 않으니, 그 몸짓의 사연을 알 수가 없었다.
만촌의 무언극 한 편 보는 듯했다.
“방금 한 짓이 뭐라?”
가까이 다가와서야, 내 그렇게 물어볼 수 있었다.
안휘덕 친구의 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 답을 들어서야 방금 전의 무언극의 사연을 알게 되었는데, 낚시 하다가 한 번 또 펌프질 하다가 한 번, 그렇게 하루에 벼락을 두 번이나 맞았다가 살아났다는 경험담이었다.
영강 그 강가의 포플러나무 두 그루가 사라진 것이 바로 그 벼락을 맞아 죽어서였다고 했다.
한 갑자 세월 전으로 거슬러, 내 어린 시절에 깨복쟁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그곳 영신숲 그 추억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