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호이안 지역 작전및 철군 1) 승룡 1호작전시의 상황
* 여단본부 참모장 염태복 대령 * 승룡 1호작전의 동기는 여단장이 교대를 했어요. 8월 5일부로 이동호 장군이 지휘권을 인수한후 부대파악도 하기 전 이고, 작전방침을 세울수도 없었기 때문에 여단장께서 상황을 파악할수 있도록 평소에 본인이 느끼고 있던 내용을 건의 했습니다.
부대운영, 전술기지 재배치, 우리지역내의 적 특성, 우리가 대응해야할 특징지울수 있는 전술등 이런것 들을 이해를 시켜 드리면서 전술기지 재편성에 대해서 건의했어요.
전술기지 재편성을 건의한 중요목적은 우기가 도래하기전에 전술기지의 고립을 방지하고, 전술기지간의 상호지원을 원활히 하고, 우리가 꼭확보해야할 지역을 중점적으로 우리 통제하에 명확하게 해놓고, 각 예하대대의 지휘체제를 명백히 하기위한 이런목적으로 전수기지 이동에 대한 건의를 했고, 여단장께서 그것을 100% 승인한 겁니다.
그래서 전술기지 이동을 한꺼번에 할수없으니까, 전술기지 이동에 대한 제1단계로 다지시티 지역에 들어가서 고립되어 있던 제2중대를 디엔반 북쪽 1번도로를 확보하고, 준동하는 지방게릴라 활동을 억제하는 임무를 제2중대에 부여했지요.
그리고 제2중대를 옮기자 말자 "8월 공세가 있다" 는 첩보가 있어 긴장을 하고, 적이 통과할수 있는 요소요소에 매복을 강화 했는데, 디엔반 내부에서 활동하던 적과 고노이 에서 활동을 하던 월맹군이 합세를 해서 디엔반을 공격한 겁니다. 그작전은 사흘간 조우전 비슷하게 치열한 작전으로 격퇴한것입니다
그다음에 제3대대 본부가 주이쑤언 1번도로 동측방에 기지를 구축하고 있었는데, 제3대대 제11중대가 대대본부하고 같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11중대로 대대의 전술기지를 책임지게 하고, 대대본부는 호이안 북방 제9중대 진지를 대대본부로 하고, 여단과 호이안간에 지방게릴라 1개소대가 활동을 하는 지역에 제9중대 전술기지를 새로이 설치했어요.
그래서 적의 지역을 깔고 앉는것으로 호이안의 북쪽에 대한 적의 위협을 제거하고, 여단본부가 적에게 노출 되어 있는것을 방지하는 기지이동 작전을 했지요. 이것이 승룡 1호작전의 특징이지요.
청룡부대가 받는 첩보는 주월사, 미해병 상륙군 사령부, 미 해병1사단, 그다음에 각 군청, 성청, 성경찰, 이런곳에서 받아요. 비교적 정확한 것은 경찰에서 받는것 입니다.
우리 MIG 는 포로를 획득해서 월남군 통역관에 의해서 심문을 하는데, MIG 에서 첩보수집을 해서 우리가 성과를 낸것은 승룡 6호 작전때입니다.
그때 적의 동굴을 안내받아 포로를 한꺼번에 47명인가 잡았어요. 주이쑤언 지역이지요. 월남에서 들어오는 첩보라는 것은 역 정보가 50% 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만성이 되어버리면 정보도 역정보로 생각하기 쉬운 것이고, 월남에서 정보처리를 한다는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동호장군이 부임한 이후 귀순자가 줄었는데. 이장군도 대민사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승룡작전에 들어가면서 부터 전 지역에서 귀순자가 줄었어요.
그래서 월남군 제1군단 사령부라든가, 미 제3상륙군 사령부라든가, 주월군 사령부에서 "왜 귀순자가 안나오 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특별히 연구를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때 중요한것은 월남백성들의 사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렀느냐" 또 적이 어떻게 활동하느냐?" 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승룡작전을 하는기간중에 귀순자를 획득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왜그러느냐 하면, 바로그때가 "존슨이 출마를 하느냐 안하느냐?, 닉슨이 당선되는냐 안되느냐?" 하는 시기 이고, 그다음에 베트공이 미국에 대해서 협상을 하는데, "다낭을 포함하는 월남군 제1군단이 점령하고 있는 8개성인가 몇개성을 베트공 지역으로 하자" 그러니까 이지역을 베트공 정부지역으로 하자는 것을 논의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니까 이때는 주민들이 아무리 선무공작을 해도, 그리고 심지어는 쌀을 주는것도 안받고 이런시기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따라서 "귀순자가 감소한것은 작전개념과는 무관하였다" 고 생각합니다.
참모장인 본인의 입장에서 볼때 이동호 장군은 아주훌륭항 지휘관입니다. 절대로 적을 경시하지 않고, 우리 실력을 너무과시 하지않고, 사전 철저한 계획과 준비, 또한 물샐틈없는 감독으로 부대를 운영해서 좋은결과 를 창출해 내는 지휘관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위스의 시계를 고치는 시계공 같은 치밀한 것이 첫째 특징이라고 할수있고, 둘째로 탁월한 전술 능력, 세번째로 부하를 무언중에 포용하는 넓은 아량, 그리고 철두철미한 노력가 입니다.
또한 우방군이나 타군과도 훌륭한 유대를 유지해 나가는 그런 인간성의 문제를 이장군의 특성과 장점으로 이야기 할수있지요. 한가지 예로 이분이 자기가 암만 바쁘더라도 주월군에서 사령관님을 대리해서 나온 손님들을 직접만나고, 전달되는 상부 방침을 자신의 지휘에 100% 소화시키는 이런정성이 있어요.
그리고 아주 강인한 노력, 이것을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상황이 발생하면 상황실에서 어려운지역에서 활동 하는 지휘관들을 격려를 해가면서 상황판단을 하고, 요구를 하던 안하던, 자기가 지원할수 있는것은 최대 한으로 지원을 해주고, 날이 밝기가 무섭게 현지를 확인하는 이런실천과 노력, 이런것이 그분이 월남에서 좋은결과를 낳고 돌아오게 한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수한 청룡부대장 이셨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희생을 최대한 감소하면서 전과를 올렸는데, 청룡부대 보충병들에 대해서 충분히 교육을 하고, 여단에 생생한 베트공 장애물을 확보해서 폭파및 부비트랩 교육대를 설치하고, 거기에 청룡부대에 전입하는 요원과 청룡부대에서 장기간근무로 타성화된 요원들을 추가적으로 입교시켜 새로운 교육으로 요원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작전이 끝나면 꼭 작전평가 회의를 합니다. 그래서 작전을 정밀 분석하지요.
또한 이전에는 1일단위 작전을 수행하던 것을 바꿔서 10일내지 15일 동안 계속 수행하는 방식으로 하고, 공병을 배속해서 작전지대를 샅샅이 파혜처서 전과를 철저히 확인한 결과 였습니다.
승룡 2호작전이 10월 1일인데 그작전은 제3대대와 특공중대, 제26중대 그렇게 5개중대를 운용해서 호이안강 가운데에 끼어있는 삼각주를 공격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작전에서 적으로 부터 호이안 공격계획서를 노획 했어요.
그때의 작전도 10일간을 계속한 것인데, 얼마 넓지않은 지역이었지만, 부대투입 2일만에 그작전 지역을 깔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베트공들은 대원들이 깔고 앉은 바로 그지역에서 밤에 은패되어 있는 동굴의 뚜껑을 열고나와 아군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적과 섞여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작전6일째 되는 밤에 폭음이 나서, 아침에 확인해보니 베트공들이 동굴에서 자결했습니다. 이에따라 다수의 시체를 확인하고, 무기와 식량등을 노획했는데, 적의 Q-80대대를 완전히 섬멸시킨 결과여서 상황이 종결 되었지요.
그리고 삼각주를 점령한후 계속 확보하기 위해서 특공중대를 그곳에 계속 주둔시킨 이후부터는 호이안북방을 밤에 돌아다녀도 관계없을 정도로 지역평정을 했지요. 그리고 여단외곽에 대해서도 근심할 필요가 없을 정도 로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에 있었던 승룡3호작전은 역시 여단외곽에 대한 작전이었는데, 적들이 헬리곱터장에 스나이핑 만 날리고, 밤에 여단본부에 82mm 박격포를 쏘고, 또 호이안에 박격포를 쏘는것입니다. 그래서 그지역을 제3대대로 차단시키고, 제5대대를 공격을 시켰어요. 거기에도 불도자 4대를 붙여서 쓸어 버렸는데, 일주일간 작전을 했지요.
그리고 승룡3호 작전이 10월 인데. 10월에 적의 공세설이 있었지요. 이어서 우기공세가 시작되었지요. 그때 비가 엄청나게 많이 내려 제2중대, 제7중대, 제5중대 전술기지를 덮어 버렸어요. 그때 제5중대 전술기지를 적이 기습했어요. 즉각 제6중대로 차단하고 제5중대로 역습을 시켰어요.
그래서 적 2개소대 가량을 섬멸하고 공용화기를 많이 노획했어요. 그리고 물이 빠진다음 적의 공세설이 있어 제1대대로 선제공격을 시켰는데, 제3중대가 자기 전술기지에서 500m 떨어진 호이안강 근처에서 적과 조우 한 겁니다.
그래서 제2중대로 증원을 했지요. 전차를 투입해서 사흘간을 공격했는데, 사흘후에 적이 점령했던곳을 들어가 보니까 적은 언제 구축을 했는지, 교통호부터 방카, 철조망까지 쳐놓고 있었어요. 거기서 적 60명을 사살하고 무기를 노획했어요. 또한 디엔반 공격에 대한 적의 요도를 노획했어요.
그다음에 승룡 7호 작전은 주이쑤언 지역에서 제2대대가 Q-81대대 근거지를 섬멸을 하기위해서 실시한 작전인데, 제6중대가 지역을 차단하면서 부비트랩을 제거하기 위해서 땅을 쑤시고, 두둘겨 보고하는데, 이상한것을 발견했어요. 파보니까 식량창고 였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개척하여 쌀 5.000가마인가 노획했는데. 월남전에서 대량의 적 식량창고를 발견한것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월남군 3개사단이 한달을 먹는 식량이 4.800가마란 것입니다. 그같은 특이한 전과로 인근의 지휘관들 ( 미 제24군단장, 월남군 제1군단장) 이 현지를 두번씩이나 방문을 하고, 여단장도 방문을 하고 했는데, 그후에 바로 그옆 대나무 숲에서 월맹군 포로를 잡았어요. 그때 장군들이 왔을때에 한번만 당겼으면 큰일 날뻔한 위험한 지역이었어요. 그것이 승룡 7호작전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