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을 지키자고 한목소리를 내는 날이 있다. ‘지구의 날’인 4월 22일이다. 지금은 세계 최대 환경보호 운동 중의 하나가 된 이날이 탄생한 배경에는 대형 기름 유출 사고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 인근 원유 시추 시설에서 폭발물을 이용해 시추하던 중 파열이 일어나는 바람에 원유 10만 배럴이 바다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해양 생물은 물론이고 생태계에 오래 지속될 피해를 안겨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연 훼손과 환경오염으로부터 지구를 지키자”고 제정한 날이 지구의 날이다. 1970년이었다. 해마다 이날은 “지구 시간”이라 불리는 소등 행사를 저녁 8시부터 10분간 한다.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매년 이날을 전후로 일주일을 ‘기후변화 주간’으로 정하고,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며 탄소중립을 위한 실천 행동으로 소등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여러 곳에서 소등 행사 소식을 알려왔다. 아파트에서도 주민에게 소등을 권하는 방송을 했다. 8시가 되어 집안의 전깃불을 다 껐다. TV도 껐다. 준비한 촛불은 켜지 않은 채 거실 소파에 남편과 둘이 나란히 앉았다. 중간에 거실 창 블라인드를 살짝 제쳐보기는 했다. 불이 그대로 켜진 집이 많아 실망스러웠다. 혹, 누가 10분 소등에 관해 묻는다면, 아주 특별했다고 대답하겠다. 그 어둠과 고요는 낯설면서도 평화로웠다. 뭐랄까. 작은 일이지만 우리가 이 일로 지구를 지키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마음에 숙연해지면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책상 위에 놓고 가끔 들춰보는 책 하나를 펼쳐 든다.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이다. 이 책은 두 해 전 여름, 목포 원도심에서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을 따라가다 발견한 예쁜 서점, ‘지구별 서점’ 서가에서 뽑아 든 책이다. ‘세계 51가지 기념일로 쉽게 시작하는 환경 인문학’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내용이 쉽고도 튼실하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찾아서 불을 끄는 일로 구체적으로 효과를 본 예가 있는지 찾아본다. 있다. 2020년 이날, 충청북도에서는 ‘불끄기 행사’를 실시했고, 이 일로 감축한 온실가스가 2,660kg이다. 30년생 소나무 403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한 탄소량에 맞먹는 양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지구인 모두가 이날 하루 10분 만이라도 자기 집의 불을 끈다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지구를 위하는 일은 바로 우리를 위하는 일이고 미래를 위하는 일이다. 내년부터는 더 많은 집이, 마을이, 도시가, 나라가 “지구 시간”이라 불리는 이 시간의 소등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이 일 하나로 지구가 회복될 리는 없지만, 이 일이 지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높이는 일은 될 수 있다. 모든 일은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하는 법 아닌가. 그러니 희망은 있다.
다른 나라들은 이날에 지구를 위해 어떤 일들을 벌일까. 인터넷 기사들을 찾아본다. 미국에서는 국립공원이나 자연보호지역에서 ‘지구의 날 산책 및 달리기 행사’가 열리고, 영국에서는 전기차 쇼 및 자전거 타기 대회가 열린다. 일본에서는 지구를 위한 청소 캠페인과 자전거 타기 대회가 열린다. 호주는 더 특별하다. 지구의 날 말고도 “지구 시간(Earth Hour)”이라 불리는 소등 행사가 “매년 3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 8시 반부터 1시간 동안 이어진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호주의 ‘1시간 소등’은 이 뜻에 공감한 나라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세계 최대의 자연보전 캠페인이 되었다. 190여 개국, 7,000여 개의 도시, 1만 8,000여 개의 랜드마크가 참여하고 있다니, 지구를 위해 행동하는 마음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이야기다.
다시 책을 펼쳐서 5월과 6월에 있는 특별한 날들을 찾아본다. 5월에는 세계 공정 무역의 날, 세계 벌의 날, 국제 생물 다양성의 날, 세계 거북의 날, 세계 수달의 날이 있다. 6월에는 세계 자전거의 날, 세계 환경의 날, 세계 해양의 날, 세계 사막화 방지의 날, 세계 난민의 날, 철도의 날이 있다. 우리가 어떤 날을 특별한 날로 지정하고 기념하는 이유를 생각한다. 일 년에 하루라도 진지하게 ‘우리의 큰집 지구’의 지속가능한 안녕을 위하고,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자는 것일 테다. 생각하면 모든 날이 지구의 날,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작지만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날들이다.
(주부편지 6월호' 지구살림‧생명사랑' 코너에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