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라는 말. 시간과 변화는 정비례한다는 뜻이죠. 정말이지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는 아파트와 고층빌딩, 공원들로 인해 이 속담이 실감되는 요즘입니다. 무조건, 많이 개발했던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주변 경관, 목적 등에 따라서 ‘건축’에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오늘 소개할 분은 바로 ‘빈자(貧者)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입니다.
전란 후, 이북 출신인 부모님을 따라 부산에서 살았던 선생님은 8가구가 함께 사는 작은 판자촌에 살았다고 합니다. 원래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선생님은 화가가 되고 싶엇지만, 옆집 가난한 주정뱅이 화가의 모습을 겪은 부모님은 크게 반대하셨다고 해요.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신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 마저도 반대에 부딪혔을 때, ‘건축 공부 해볼래?’라는 누나의 한마디에 뒤돌아보지 않고 건축학과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1974년 12월 대학 졸업반 시절, 과 교수님의 추천으로 들어간 회사는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님의 <공간연구소>였죠. 고 김수근 선생 출처 : 한국화중앙연구원 김수근 선생은 한국 근대 건축사의 한 획을 그을 만큼 높은 업적을 쌓은 인물입니다. 아직 건축이라는 개념조차 확실치 않았던 50년대 후반, 남산 <국회의사당>공모전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며 건축계에 새롭게 등장했는데요. 이후 <공간사옥><마산 양덕성당>등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들을 창조해냅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공간사옥. 얼마 전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배경이 되기도 했죠?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마산 양덕 성당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하지만 입사하자마자, 어찌나 일을 시키던지 자신의 대학 졸업식도 까먹을 정도로 외부와 단절된 생활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계몽적 전제군주’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곧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선생님의 성격 덕분에 대들고 깨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해요. 하지만 마음만은 푸근하고 여렸던 김수근 선생은 일에 지쳐 힘들어할 때면 말 없이 차에 태워 함께 목욕탕을 가거나, 한 달 월급이 넘는 카메라를 잃어버렸을 때 다른 이 몰래 주머니에 슬쩍 수표를 넣어주는 등 인간적인 배려도 많이 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공간연구소>를 맡아달라는 유언을 받고 사후 3년 간 사무소를 이끌어나가기도 했다는군요. 이후 <이로재> 건축사무소를 개소한 후 본격적인 승효상표 건축미학을 설계해 나갔는데요~ 자자 이쯤에서 승 선생님의 작품들 한번 볼까요? 유홍준 前 문화재청장의 부탁으로 만든 <수졸당> 서울 논현동 소재 출처 : 승효상 <승효상 작품집> 중에서 93년도에 지은 이 작품은 유홍준 교수가 책을 발간하기 전이라 주머니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을 때였다고 합니다. 건축비를 깎은 후 유 교수는 승 선생에게 200여년된 현판 하나를 선물해다고 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이로재(이슬을 밟는 집)>였다고 하네요. 출처 : 네이버 캐스트 광고회사의 사옥인 웰콤시티 (2000) 출처 : 네이버캐스트 동국대 옆에 있는 웰콤시티는 도심속 건축의 공공성을 강조한 작품이죠.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은 풍경과 건축의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냅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ironbellk/150082276380 저서활동 역시 활발히 하고 있는 건축가 중 한명인 승효상 선생님.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 1999 한국건축협회 이사 시절, 10여년 간 건축 철학에 대해 쓴 글들을 모은 책이죠. <빈자의 미학> 2002 그의 건축철학이 응집되어있는 저서라고 할 수 있죠. <건축, 사유의 기호> 2004 그가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물을 답사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사진과 함께 담은 책으로 새로운 시대와 함께 열린 새로운 건축물 총 17개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SEUNG H SANG> 2010 얼마 전 그의 작품세계를 모은 책이 출간되기도 했죠 :) 출처 : 네이버 책 1992년 자기 건축을 시작하면서 승효상 선생이 밝힌 철학은 ‘빈자의 미학’입니다.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집, 절제와 검박을 갖춘 집을 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996년 그가 펴낸 책 ‘빈자의 미학’에는 이런 문장이 있죠.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그의 철학이 오롯이 배어있는 작품들을 살펴볼까요? 출처 : 승효상 <승효상 작품집> 중에서 1998년 완공된 수백당은 여러 개의 마당을 건물과 담으로 나눠 배치한 지하 1층, 지상 2층, 총면적 200m²의 소박한 주택입니다. 침실과 작업실 등 두 개의 실내 공간과 일곱 개의 텅 빈 정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승 대표의 일관된 건축적 화두인 ‘빈자(貧者)의 미학’을 잘 구현한 작품이죠. 부산 구덕교회 출처 : 부산일보 그의 고향은 부산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부산 구덕교회의 창립멤버이기도 하셨죠. 그는 2008년 교회의 부탁으로 아버지의 신심이 담겨있던 구덕교회를 새로이 짓게 됩니다. 그 역시 모태신앙이지만, 신앙의 의미로 교회를 지은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현재 대부분의 교회건물은 과거 로마네스크, 바로크 양식을 본따 만든 거기에, 우리의 땅과 하늘과는 어울리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합니다. 이런 것이 ‘교회건축’이 될 수는 있지만 ‘교회적 건축’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승효상 선생의 지론이죠. 충남 당진 <돌마루성당> 출처 : 이로재 공식웹사이트 1995년 완공된 <돌마루공소>역시 빈자의 미학이 잘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현재는 공소에서 성당으로 바뀌었지만, 돌담이 만들어내는 방과 마당의 공간분할은 승효상 작품의 대표적인 트레이드 마크이죠. 그의 작품은 여기에서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넘어서서 공공을 위한 건축물에도 큰 기여를 했는데요. 대표적인 작품이 故 노무현 대통령 묘역입니다. 출처 : 승효상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집 앞 아주 작은 비석만 세워달라’ 했던 그의 유언에 따라 공원 가운데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너럭바위 하나를 올려놓았는데요. 승 선생님은 한 인터뷰에서 “노무현은 생애를 그답게 마쳤다. 우리에게 노무현의 삶은 생소하다. 묘역도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생과 사가 매개되는 광장 같은 묘역이다.” 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5년 발표된 <독도 환경보호계획>에 동참하기도 했는데요. 독도 전면개방을 앞두고 독도를 있는 그대로 관람할 수 있는 건축물을 논의하기도 했는데요.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3단계 리모델링을 발표했었죠. 독도환경보호계획 발표하는 승효상 건축가 출처 : 연합뉴스 그의 작품은 한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각광을 받았습니다. 북경장성거주단지-클럽하우스 출처 : http://cafe.naver.com/porigin/40 중국 북경 만리장성 부근에 2001년 아시아 건축가 11명과 함께 주말주택 겸 클럽하우스의 설계를 제안 받아 만들어진 호텔입니다. 그의 작품은 건축호텔로 사용되어지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2002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주제관에 초청되기도 했다는군요! 차오와이 소호 & 객가토루 출처 : 온바오 닷컴 2006년 설계한 차오와이 소호는 토루의 지혜를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중국의 대표적 건축물인 푸젠성의 토루는 가운데 빈 공간을 두고 원형으로 지어진 2,3층 높이의 독특한 건물인데요. 건물 가운데의 빈 공간은 공동 작업장으로 사용됐으며 1층의 방들은 현대적 개념의 사무실로, 2,3층은 거주 공간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그 나라의 전통을 거스르지 않고 잘 융합하는 것. 승효상 건축철학의 기본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그는 2012년 베네치아(베니스) 비엔날레 주제관 작가로 초청되었습니다. 2008년 국가관 초청 이후 두 번째인데요. 그가 선보일 작품은 '거주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20여 년간 설계해온 거주 공간 10채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묘역도 포함돼 있고요. 산 자의 집 9채와 망자의 집 1채. 그러나 산 자와 죽은 자의 집은 그동안 그가 우리 전통 건축에서 끊임없이 주목하고 재해석해온 공간인 '마당'으로 통하도록 했는데요. 국가관은 각 나라의 작가를 그 국가에서 직접 뽑는 것이고 이와 다른 주제관은 주최 측에서 직접 작가를 초청하는 형식인데요. 아시아에서는 일본 작가 세지마 카즈요씨와 단 둘만 초청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명예로운 순간이지만 승효상 선생은 피플 인사이드에서 ‘서구중심사회에 관한 생각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않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아시아 건축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부각되는 이 때 시대에 역행하는 것 같아 떨떠름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지구라는 하나의 공간에 특정 시기를 살다 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먹고 자고 또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죠. 건축은 인간에게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의 건축이 아름다운 이유는, 건축이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기 때문일 겁니다. 문은 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창은 내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이기 위해서 뚫은 것이며 마당은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여서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죠. 2011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앗던 그는 비엔날레의 주제를 노자 도덕경의 첫구절인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를 본 따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라고 정했습니다. 노자의 사상처럼 우리는 자연의 한켠에 잠시 머물렀다가 그대로 두고 떠나야 하는 작은 존재인거죠. 혁신, 개발이 난무하는 이 때 고요, 조화의 힘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건축가 승효상. 앞으로도 그의 무궁무진한 건축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네이버 캐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