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 전원일기 2021 / 차준철 논설위원 / 한겨레. 21. 6. 27.
마음 한갓진 일요일 오전, 온 가족이 TV 앞에 둘러앉아 ‘본방 사수’했다. 따~다다단, 따~단. 귀에 익은 느릿한 소프라노 색소폰 주제곡이 흐르면 모두가 TV 속 양촌리 마을로 들어갔다. 김 회장댁, 일용네, 응삼이, 복길이, 금동이...그리고 약방에 감초 같은 마을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왔다.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은 정겹고 푸근했다. 도시 사는 시청자도 양촌리 사람들을 한동네 사람들을 한동에 이웃처럼 친근하게 여겼다. 1980년 10월21일 첫 회부터 2002년 12월29일 마지막 회까지, 22년2개월여 동안 총 1088회 방영된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얘기다.
<전원일기>는 요즘에도 커이블TV 채널 곳곳에서 자주 나온다. 오래전 드라마라 화질이 칙칙한데도 시청률이 낮자 않다고 한다. 추억과 향수를 그리는 장년층 ‘전원일기 세대’뿐 아니라 젊은 층 자녀 세대도 즐겨보고 있어서다. “우연히 엄마와 함께 보기 시작했다가 내가 푹 빠졌다”는 젊은 층의 반응이 적지 않다. 젊은이들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나 유튜브를 통해서 옛날 명작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있다. <전원일기>는 최근 국내 한 OTT의 인기 드라마 순위에서 10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말하자면, ‘옛드(옛날 드라마)의 역주행’이다.
비단 <전원일기>뿐 아니다. 젊은 층의 복고 영풍과 더불어 <야인시대> <태조 완건> <허준> <용의 눈물> 등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인기 드라마들의 ‘다시보기 정주행’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야인시대>는 최근 이를 패러디한 웹 예능 프로그램 <야인 이즈 백>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외에 2030세대가 ‘추억의 명작’으로 꼽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드라마도 상당수다.
젊은 층이 옛날 드라마에 빠지는 이유는 겪어보지 못한 옛날 감성을 느껴서다. <전원일기> 시청 소감 중에 “매번 해피엔딩이라 맑은 공기를 마시는 느낌”이라며 “지금 봐도 힐링이 된다”는 얘기가 있다. 복수·불륜·법죄가 얽히고설키는 요즘 드라마에는 없는 감성을 본 것이다. <전원일기>가 다시 뜨는 것은 지금 드라마에 대한 불만으로 읽힌다. 드라마라도 자극적이지 않은 스토리로, 담백하고 정겨운 일상을 그려주기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 같다.
-생각-
지난 주 MBC 드라마 <전원일기> 과거 출연진들이 나와 드라마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선사했다. 풋풋하고 아름다웠던 이미지는 변했지만, 연륜이 묻어난 명배우들의 품격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특히 최불암, 김혜자는 한국의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상으로 시청자에게 각인 되었다. 전원일기 김정수 작가는 글을 쓰면서 이분들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배우들의 이미지와 그들의 일상을 듣고 드라마 소재로 썼다고 한다. 시골에 전화가 처음 생겼을 때 일이다. 어느 저녁 날 김혜자가 몇 년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머리맡에 놓인 전화 소화기를 조용히 든다. 옆에 남편(최불암)은 곤히 잠들어 있다. 소화기를 든 김혜자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거기 ○○댁 좀 바꿔주세요.” 드라마 대사는 보고 싶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생전의 어머니의 고달프고 힘든 모습이 절절히 드러난다.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최불암이 잠에서 깨어난다. 이런 모습을 본 남편 최불암은 대사가 없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특유의 몸짓 연기로 안타까워할 뿐 ......전원일기는 명 드라마다. 농촌의 단순한 일상뿐 아니라 양촌리 마을에서 일어나는 인간미 넘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명작은 시대가 변해도 명작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