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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한국 3대 사찰 중 하나인 불보(佛寶)사찰 `통도사`가 있는 경남 양산으로 떠난 여행
청목/金永柱 추천 0 조회 161 15.03.09 01: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3년 10월 13일 일요일 오전 11시16분
경남 양산시 덕계동에 위치한 덕계종합상설시장 앞에서 양산 여행의 첫 걸음을 시작한다.
지난 1995년 문을 연 3층 건물 옥상에는 태양광 집열판이 설치되어
매월 132.5㎾의 전력을 생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청 산하의 '시장경영진흥원' 이라는 명칭의 정부기관에서
상당액의 보조금이 지원되어 이루어진 오늘 여행 길.
항구도시인 부산,울산과 인접한 곳이어서인지
타 지역 시장에 비해 싱싱한 생선 등 수산물이 비교적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정부 예산이 지원되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홍보차원에서
3,8 장인 양산 장날에 맞춰 이곳을 찾았건만 이곳 덕계상설시장과
전통장인 5일장을 주관하는 측의 알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부예산이 지원되는 시장투어임에도 덕계시장 관계자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휴일임을 내세우며 나 몰라라 하는 작태가 한심하다.
이런 곳에까지 정부예산이 낭비됨이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시장 건물 내 1층에만도 80여개의 점포가 영업중일 정도로 비교적 넓은 시장안.
그 넓은 면적의 1/3 정도는 각종 음식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시장을 찾은 맛을 느끼기 위해 '호수분식'이라는 작은 식당에서
조금 이른 휴일 점심 시간을 갖는다.




반찬은 작은 종지에 담긴 깍두기 한 가지.
무척 소박한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두 분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재래시장을 찾은 참 맛을 느낀다.
친절하고 소박한 호수분식 아주머니 두분으로부터 덕계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5일장이 열린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낮 12시14분
덕계상설시장에서 북동쪽으로 500여 m 거리에 위치한 덕계동 주민센터 부근에서부터
전통 5일장터가 펼쳐진다. 최근들어 도시화의 여파로 점점 규모가 작아지는 5일장의 추세는
이곳 양산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휴일 낮 12시를 갓 넘긴 이른 시간인지라 조금은 여유있게
버스가 다니는 대로변에 자리한 상가 뒷골목을 따라 펼쳐진 5일장터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아마도 수년 후면 이런 모습을 우리 주위에서 쉬이 접하기는 어려울게다.




요즈음 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도토리도 이곳 5일장에서는 눈에 띈다.
예전에는 흉년이 들었을 때 묵을 만들어 끼니를 때우는 구황식물의 일종이었으나
요즈음은 웰빙식품으로 취급받는다.
참고로 '참나무과'에 속하는 신갈나무·떡갈나무·갈참나무·졸참나무,굴참나무 등의 열매를
통칭해서 도토리라 칭하며, 같은 참나무과이지만 상수리나무의 열매는 상수리라 부른다.




집 주위 텃밭에서 기른듯 싶은 여러 종류의 채소를 조금씩 늘어놓고 파는 시골 아주머니는
옥수수 씨를 열심히 발라낸다. 저 옥수수 낱개를 사 가시는 분들은 뻥튀기를 위함일까?
아니면 내년 봄쯤 그보다 더 작은 텃밭에 심기 위함일까?




세숫대야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각종 잡곡을
가지런히 벌여 놓은 시골 아주머니도 눈에 띈다.
윤기나는 잡곡들이 담긴 용기마다 박스를 찢은 투박한 종이 조각에
비록 명필은 아니지만 알아보기 쉬운 큰 글씨로 원산지 표기가 되어 있다.
5일장터에서만 접할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오후 1시24분
덕계상설시장 및 5일 장터에서의 시장투어를 끝낸 후 도착한 곳은 두번째 행선지인
'양산유물전시관'이다. 양산시 북정동에 위치한 이곳은 금년 4월에 개관한 곳이다.
건물의 외관은 오래 전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는 원적산 봉수대,
신기동 고인돌, 통도사 대웅전 처마의 곡선을 형상화했다고 전해진다.




2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유물전시실 중 2층에는 이와같은 야외전시물도 볼 수 있다.
이 전시물은 최근 인근 북정동 683번지에서 발굴된
유적5호 앞트기식돌방무덤의 모습이다.
이 무덤에서는 부장품으로 각종 항아리와 쇠낫,쇠화살촉 등의 철기류를 비롯하여
귀고리 1쌍도 발견되었다 한다.




이것은 위의 무덤과 같은 장소에서 발굴된 유적13호 앞트기식돌방무덤의 모습이다.
이 무덤의 경우는 사진에서처럼 길게 다듬은 뚜껑돌 5개가 발굴되었다 한다.
접시 등의 소형 토기류를 비롯하여 대형 토기류 및 철기 등 97종의 부장물이 발견되었다 한다.




3,4층 내부 전시실에는 각종 유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양산지역의 선사유적은 하천을 중심으로한 평야지대와 낮은 구릉을 중심으로 발굴되었으며,
양산 지역의 문화는 몇몇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지형적 여건으로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면서 청동기 시대 이후인 4,5세기에 급격한 발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가야 및 신라의 무덤양식을 함께 가진 당시 무덤의 경우
최근 발굴된 부부총(夫婦塚) 등을 통해 '순장(殉葬)' 풍습이 행해졌던 점을 알 수 있다 한다.

참고로 '순장(殉葬)'이라 함은 어떤 죽음을 뒤따라 다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주된 시신과 함께 묻는 장례 습속을 말하는데,
통치자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남편이 죽었을 때 신하나 아내가 뒤를 따르는 습속은 세계적으로 분포하는데,
중심을 이룬 것은 신분 계층이 있는 사회, 뚜렷하게 가부장제적(家父長制的)인 사회,
특히 초기 고대문명과 그 영향권에 있는 사회에서 성행하였다.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지만, 순장은 우리 조상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당시의 무덤에는 부장품(副葬品)을 같이 묻는 풍습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 진다.
부장품(副葬品)이란 피장자를 장식하거나 사후세계를 위해 물품을 껴묻어주는 행위에 의해서 남게 된 것을 말하는데,
피장자에게 옷을 입히거나 장신구를 달아주는 행위로부터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을 함께 묻어 주기도 하며,
피장자의 신분이나 지위 또는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물품을 따로 만들어 묻어주는 등이다.

부장품으로 같이 묻었던 금동(金銅)신발이 오랜 세월이 지났음을 알려준다.




부장품으로 무덤에 묻혔다 출토된 자작나무관모(冠帽)도 전시되어 있다.
요즈음은 우리나라의 경우 중부 이북 지방, 주로 강원도 산간지방 등
추운 지방에서만 자라는 자작나무가 1,500여년 전에는 이곳 남쪽 양산에서도
자랐던 것일까?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듣는 단체관람객들이 대부분 지루함을 못견뎌한다.
나 또한 잠시 지루한 해설을 듣다 말고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에서 접하는 문화해설사들에 대한 재교육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중요 대목만 간단히 설명하면 좋을 것을
너무나 지나치게 지엽적인 내용을 외운대로 읊조리다보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 지루하다.
어떤 면에서는 편안한 관광에 오히려 큰 장애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듯 하다.




이곳 양산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불렀던 동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이라는
동요의 가사를 쓴 이원수 선생의 고향이기도 할만큼
양산 이씨, 광주 안씨 등 양반들이 많았다.
교지,고문서 등 각종문화대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 사진의 문서는 '왕지(王旨)'로 조선조 세종16년(1434년)
'자헌대부중추원부사(資憲大夫中樞院副使)'의 직을 이징석이란 이에게 내린 문서로
보물 제1001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8년여의 사업기간동안 190억 여원을 투입해 만든 인구 28만 여명인 양산시의
유물전시관을 뒤돌아보며 광역시인 대전에 거주하는 나 자신
지난 2012년 말 개관한 대전역사박물관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럽기만 하다.




오후 2시51분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위치한
통도사 입구 주차장은 차량과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신라 선덕왕15년(646년)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한 것을 기념한
개산대제가 10월9일에 시작되어 오늘까지 열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오늘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는 이처럼 넓고 아늑한 걷기 편한 흙길이 이어진다.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숲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온통 아름드리 소나무가 짙은 숲 그늘을 만들어주는 이 숲길을 20여분간 걷는 느낌 또한
월정사 전나무숲길 이상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울창한 소나무숲길 옆으로는 이와같은 개천을 따라 흐르는 물 소리가 끊임없이 귓전을 맴돈다.
이 물줄기의 이름은 양산천이다.
이 양산천은 양산시를 가로 질러 흐른 후 물금읍에서 낙동강에 합류하게 된다.




해발 1,000 여 m 에 이르는 영축산,천성산 줄기에서 발원하여 흘러 내리는 때문인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갈수기임에도 그냥 눈으로 바라보기만해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맑은 물이 바위틈을 헤치며 힘차게 흘러 내린다.




오후 3시6분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린 오늘인지라 통도사 경내 관람에 지장이 있을까하여
빠른 걸음으로 걸었더니 통산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15분만에 '영축총림'이라는 표지석 앞에 당도했다.
이곳 통도사를 감싸 안아 찬 북풍을 막아주는 산이 해발고도 1,081m 영축산이며.
'총림(叢林)'이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이름인데,
우리나라의 수많은 사찰 중 '총림(叢林)'으로 부를 수 있는 곳은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예산 수덕사, 장성 백양사 등 몇군데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이곳 통도사가 국내 굴지의 대 사찰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축총림 표지석을 지나자 마자 또 하나의 돌 비석이 뭍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묵묵히 서 있다.
수레를 탄 사람은 내리라는 하마비(下馬碑)이다. 즉 신성구역을 뜻하는 경계비인 것이다.
이와 같은 하마비는 승보 종찰인 순천 송광사 일주문 앞에도 세워져 있다.

하마비의 연원은 아마도 1413년(조선 태종 13년) 왕명으로 종묘,
그리고 궐문 앞에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고 새긴 경계석을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게 했던 것일게다.




영축총림이라는 현판이 내걸린 문을 들어서기 전 우측에는 2개 층의 단으로 나뉘어진 거대한 부도원(浮屠園)이 있다.
부도(浮屠)란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것으로
탑이 주로 사찰 안에 있는 반면 부도는 사찰 밖에 세워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규모가 큰 부도원은 국내 어느 사찰에서도 보기 힘든 규모이다.




엄청난 규모의 부도원을 지나며 정면 3칸 규모의 '영축총림'이란 현판이 걸린 큰 문을 지난다.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이 문을 사찰의 경내로 들어감을 의미하는 '일주문'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문은 최근 지은 것으로 일주문이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총림문"이라해야 할 것이다.




총림문을 지나 성보박물관까지 이르는 길은 오늘까지 이어지는 개산대제 행사로 인해
극심한 혼잡을 이룬다.
걸음을 걷기가 힘들 정도의 혼잡이 조금 짜증스럽기는 하지만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철부지 아이들이 떠들썩한 생일 파티를 좋아하는 유치함이 있음을 알기에
이해하고 넘기기로 한다.




성보박물관 앞은 더욱 시끄럽고 혼잡스럽다.
밴드가 동원되어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소리가 무척 시끄럽다.
최근들어 조용한 사찰에서까지 음악회를 개최하는 경우가 왕왕 눈에 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사찰을 찾는 이유는 자연 속에 묻힌 고즈넉함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1주일간의 도시생활에서 수많은 소음에 시달리던 내 귓속에
자연을 찾아온 보람도 없이 도시의 그것보다 더 시끄러운 소음을 들려준다는 것.
참 슬픈 일이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도시 곳곳에 널려 있다.




성보박물관을 막 벗어난 지점. 일주문 조금 못미친 지점에서 개천을 가로지르는 멋진 돌다리를 만난다.
가을 햇살속에 조금씩 단풍이 들어가는 가을 정취를 느끼며 돌다리를 조심스레 건너간다.

다리 우측 표지석에 쓰여진 '三星半月橋(삼성반월교)'라는 글은 지난 1937년 6월
이 다리를 만든 경봉스님의 글씨다.
'삼성반월(三星半月)'은 '마음 심(心)'자를 뜻한다.
'心'자를 풀어 쓴 것으로 삼성은 세개의 점을, 반월은 나머지 한 획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서반월교'는 곧 '일심교(一心橋)'를 의미한다.
깨끗한 한 가지 마음으로 건너야 하는 다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다리에는 난간이 없고 폭도 좁다.
헛된 생각으로 정신을 못차리면 다리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오후 3시12분
삼성반월교의 뜻을 음미하며 다리를 건넜다 되돌아온 후 통도사 일주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일주문(一柱門)이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일주문은 사찰의 경내로 들어가는 첫번 째 문이니 이제 비로소 통도사 경내로 들어서게됨을 의미한다.

영축산의 한자 표기는 ‘靈鷲山’으로 이에 대한 한글표기는 ‘영축산’. ‘영취산‘으로 하고 있는데
원인은 한자 ’鷲’자에 대한 한글표기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일반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일주문을 들어선 후 대사찰답게 한송정찻집,노천유물관,
육화당,금당,은당 등 많은 건물들이 촘촘히 자리잡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 '천왕문'을 만난다.
전통적 사찰 양식에서 일주문을 지난 후 두번 째 문이 '금강문'인데 이곳 통도사에는 금강문은 없는듯 하다.
천왕문(天王門)은 사찰에 들어갈 때 일주문,금강문 다음으로 세번 째 만나는 문으로
사천왕상을 안치한 천왕문은 사찰을 지키고 악귀를 내쫓아 불도를 닦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찰이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헤 세워진 문이다.




천왕문을 들어선 후에도 혼잡은 해소되지 않는다.
조금치의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무수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극락전,범종각,명월료(종무소),영산전,약사전,만세루,영각, 등등.




범종각에는 '범종루(梵鐘樓)' 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범종각의 경우 2층의 누각(樓閣)으로 되어 있을 때는 범종루라 하고,
불전사물 가운데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이라고 한다.
불전사물(佛前四物)이란 범종(梵鐘)·운판(雲板)·목어(木魚)·홍고(弘鼓)의 4가지를 말한다.




2층에는 운판(雲板)·목어(木魚)·홍고(弘鼓)가 봉안되어 있고,
아랫층에는 대형 범종이 2개 봉안되어 있다.
불전사물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 중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홍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생일파티로 야단법석인 와중에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불이문으로 들어선다.
불이문(不二門)이란 사찰에서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으로
진리는 둘이 아니며 진정한 불이(不二)는 모든 번뇌를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란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모습이라는 뜻으로《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야단(野壇)’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이고,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다.
즉,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므로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석가가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할 때 최대 규모의 사람이 모인 것은
인도의 영취(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로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게 된다.
이처럼 경황이 없고 시끌벅적한 상태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이던 말이 일반화되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게 되었다.




불이문을 들어선 후에도 사방으로 수많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원통전,관음전,용화전,화엄전,천자각,대광명전,감로당,명부전 등등.
그 와중에 정면으로 국보 제 290호인 대웅전 건물이 보인다.
'대웅전'이란 현판이 걸린 이 부분은 대웅전의 정면이 아닌 동쪽 측면이다.
통도사의 가람건축들은 대부분 동서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나 대웅전은 남향으로 세워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정면 3칸, 측면 5칸의 겹치마 팔작지붕 건물인 대웅전 건물의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1961년 7월 보수공사 때 동편 합각(合閣) 머리의 서까래 3개에 쓰여 있는
“順治二年甲申五月…”의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어 건립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한다.
순치 2년은 1645년(인조 23)에 해당된다.
신라 선덕왕15년(646년) 자장율사가 창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건물을
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찰 건물 중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 등 불상이 안치되어 있지만
이곳 통도사 대웅전에는 특이하게도 불상이 없이 제단만 있다.
그 이유는 대웅전 북측 뒷편 금강계단(金剛戒壇)의 사리탑 속에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의 남쪽에는 응진전,명부전,설법전에 둘러 싸인 채
'금강계단(金剛戒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법보사찰인 합천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고,
승보사찰인 순천 송광사의 경우는 보조국사 이래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했기 때문이고,
3대 사찰 중 불보(佛寶)사찰인 이곳 통도사의 경우는
대웅전 건물 뒷편의 금강계단에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봉안한 때문이다.




대웅전 건물의 서쪽에는 '대방광전(大方廣殿)'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데,
대방광전(大方廣殿)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의 다른 이름으로
대적광전(大寂光殿)은 화엄종(華嚴宗)의 주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시는 법당에 붙이는 이름이다.

참고로 법보사찰인 합천 해인사의 주불전에도 정면에 대적광전(大寂光殿),
왼쪽(서북측면 창방 위)에 법보단(法寶壇), 오른쪽(동남측면 중앙)에 금강계단(金剛戒壇),
뒷쪽에 대방광전(大方廣殿)이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져 있다.




대방광전(大方廣殿)'이란 편액이 보이는 서쪽 뜰에는 이와같은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연못을 가로지르는 자그마한 돌다리에는 연못 이름인 '구룡지(九龍池)'와
다리 이름인 '강룡교(降龍橋)'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아마도 이곳 통도사의 창건 설화에서 비롯되는 연못에 살던 아홉마리 용이
자장율사의 설법에 감화되었다는 얘기, 그리고 그 아홉마리 용 중 하나가
자장율사의 설법에 감화되어 이곳 연못에 내려와 사찰을 지키게되었다는 얘기와 연관되는 듯 싶다.




연못 뒤에는 삼성각과 산령각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각(三聖閣)은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당우이며,
산령각(山靈閣)은 산신을 모시는 전각인데,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로
불교의 포용력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통도사가 불보사찰이란 칭호를 얻게 된 근원인 금강계단은 대웅전 건물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나,
출입이 통제된 상태인지라 출입문 틈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은 금강석(다이아몬드)과 같이 단단하고 보배로운 규범이란 뜻으로
부처가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이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고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절 이름을 통도사(通度寺)라고 하였다 한다.

통도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는 금강계단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금강계단 형태를 따랐다.
정사각형의 넒은 기단을 상하 이중으로 쌓고 가운데에 연꽃 모양의 받침돌 위에
종 모양의 사리탑을 봉안한 형태로 사리탑계단이라 불리기도 한다.
네 모서리에는 계단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서 있고 동서남북에는 석등이 세워져 있어 계단을 장엄하게 한다.




대웅전 건물 북쪽의 야트막한 언덕에서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관망해 본다.
대웅전 건물 북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 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643년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이곳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이 이에 해당된다.




오후 3시42분
너무나 혼잡한 통도사 경내를 정신없이 둘러 본 후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이번에는 드넓은 통도사 경내를 휘감아 돌며 흐르는 양산천을 가로지르는 삼성반월교를 건너
비교적 한산한 천변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성보박물관 주변의 온갖 활엽수들도 이제 서서히 원색으로 물들어 간다.
음악소리로 시끄럽긴 하지만 귀를 막고 눈으로만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휴일 하루 행복했던 여정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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