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의 전반부는 정책에 대한 토론이었다. 후반부 '진보대통합' 문제를 다룬 토론보다는 밋밋했지만, 복지ㆍ노동ㆍ주택 문제 등 서민과 중산층의 삶의 영역과 뗄 수 없는 주제들이 다뤄졌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각각의 카드들을 펼쳐 보였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토크 콘서트 사회자 조국 서울대 교수 ⓒ김철수 기자
이명박 정부는 OO이다!=본격적인 정책토론에 앞서 조국 교수는 두 대표에게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짧은 평가를 요구했다. 두 대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법도 한데 사회자의 요구대로 짧은 평을, 그러나 핵심적인 평가를 내놨다.
이정희 대표는 "자기 검열과 통제의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가장 중심적 표징"이라고 말했다. "언론을 통제하고 국가보안법을 부활시키고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만듦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움츠리게 한다"는 것이다.
유시민 대표는 반어법을 이용한 평가로 청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저에게 이명박 정부는 많은 깨우침을 주는 훌륭한 정부다." 이 대목에서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유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첫째, 우리는 항상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두번째, 악과 싸우고자 하면 무릇 연대해야 한다. 세번째, 대한민국이 훌륭한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콘크리트가 아닌 사람을 중시해야 한다."
조국 교수가 내준 첫 번째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한 두 대표는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수권 정당을 지향하는 야당으로서 정책 준비 정도를 펼쳐놨다.
복지정책=정책토론의 첫번째 주제는 복지 정책이었다. 조국 교수는 이명박 정부 탄생 직전으로 시계를 돌렸다.
"몇 년 전 국민 다수는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다. 그 시대 어떤 광고가 유행했냐하면 배우 김정은의 비씨카드 광고 '부자되세요'가 선풍적으로 회자됐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 당시에 렉스턴이란 차는 대한민국 1%가 타는 차라는 광고를 했고, 증권회사에서 '부자아빠'라는 이름의 펀드를 팔았다. 모든 개인이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부자가 됐나? 그렇지 않다. 이제 그런 방식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
개개인이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사회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가 아니라는 듯이 들렸다. 조 교수는 그러면서 민주당이 내놓은 '3무1반'에 대해 거론했다. '3무 1반'은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을 말한다. 최상위계층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가 불안한 삶을 사는 한국사회에서 복지는 꼭 필요한 사회 안전망이다. 조 교수는 유시민 대표에게 "3무1반을 강력히 비판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유시민 대표는 "강력히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 민주당 대표가 안 계시기 때문에 좀 조심스럽다"면서도 "3무1반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걱정이 돼서 였다"고 밝혔다.
"무상급식 같은 경우는 아이들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 국가에서 밥을 준다고 아이들이 밥을 두 번 먹지는 않는다. 예산이 확정적이라는 얘기다. 반면, 무상의료 같은 것은 환자의 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 아픈 분들이 병원에 가는 횟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8조원이 든다는 (민주당의) 돈계산에 문제가 있어서, 무상의료 약속을 했다가 책임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들어서 얘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제가 좀 부적절하게 표현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걱정이 많다고 해야 하는데 복지 정책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는 것 처럼 비춰졌다. 제 1야당이 복지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가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집권에 가장 가까이 와 있는 1야당은 정밀하게 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얘기한 건데, 오늘 자리에서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다."
민주노동당은 무상의료 원조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정희 대표는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갔다. "저희는 무상의료를 11년 전부터 얘기했다. 단지 무상의료를 넓히자고만 얘기한 것은 아니다. 공급체계 개편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 무상의료는 지향해야 할 바다. 왜냐면 아픈데 (치료를 못 받아) 서럽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점에서 적극 추진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당이 '3무1반'에 대해 얘기한 것에 대해 참 잘했다고 얘기한 것이다." 이정희 대표는 '3무1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증세를 통해 재정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유시민 대표와 이정희 대표는 복지, 주택, 교육, 세금, 노동분야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김철수 기자
대학등록금, 저출산 대책=이날 프레스센터 행사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남녀노소 청중장년 등 다양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도 다수 보였다. 조국 교수는 청년뿐만 아니라 자식을 키우는 장년층의 관심사인 대학등록금 문제를 꺼냈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등록금이 OECD 수준에서 보면 2위인데, 대학교육수준이 2위인지는 의문"이라면서 "프랑스 소르본
대학 등록금은 50만원인데, 우리 사립대학 등록금은 500만원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정희 대표는 "국립대는 반값등록금을 실현시키는 게 맞고 사립대는 언제까지 국가재정으로 메워줄 수는 없어서 고민은 된다"라며 "지혜를 모으고 정부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유시민 대표도 "국공립대 등록금은 전적으로 낮춰야 하고, 소득수준에 비례해서 서로 다른 이자율을 적용하는
학자금 융자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전쟁상태에 있는 나라보다 낮다"라며 저출산 문제에 대한 대책도 물었다.
유시민 대표는 "출산은 개개인의 실존적 선택"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운을 띄운 뒤, "출산율이 조금씩 내려가면 괜찮은데 사회문화적으로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인구구조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게 문제"라면서 출산장려정책, 보육에 관한 지원정책이 매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대표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좀더 생생한 이야기를 했다. "저는 둘을 낳아 키우니 편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둘을 낳으면 나중에 둘이 놀게 하고 엄마 아빠는 따로 놀 수 있다고 많이 권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보통의 엄마들이 직장생활하면 6시 땡하면 어린이집으로 뛰어가기 바쁘다. 그렇게 가도 우리 아이만 (부모가 늦게 와) 울고 있는 게 많은 사람들이 처한 현실이다. 이거는 끊어줘야 한다.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근로시간 줄여달라는 캠페인을 하면서 첫번째 카피가 '우리 딸아이 얼굴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이었다. 잔업 특근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최저임금 수준을 올려야 한다. 보육과 교육을 사회가 도와줘야 하고, 감당하기 힘든 대학등록금을 해결해야 한다."
주택문제=다음 정책 토론의 주제는 주택 문제였다. 조 교수는 개인적 경험을 풀어놓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유 대표가 저보다 연배가 위고, 이 대표는 저보다 좀 밑인데, 제 또래를 보면 대학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10년 쯤 일하면 전세를 끼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살 수 있었다. 어느 대학을 나왔던 관계없이 대부분 집을 샀다. 요즘 20~30대 청년들을 보면 우리 세 사람보다 스펙이 한 10배 이상 좋다고 본다. 해외여행 경험이 있고, 컴퓨터 도사고 어느 정도의 영어회화는 기본이다. 그런데 직장을 가져도 집 문제는 힘들게 됐다."
이정희 대표가 마이크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 사회주택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면서 프랑스와 한국을 비교했다. "프랑스의 임대주택 공급비율이 수십퍼센트 수준인데 우리나라 공공임대 주택은 4.2% 수준 정도 될 거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국민임대주택 200만호를 늘리겠다고 했지만 거의 중단된 상태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보금자리주택을 하고 있다. 전에는 값싸게 빌려주는 거였고, 이제는 다소 싸게 줄테니 빚내서 사라는 정책으로 바뀌었다. 사고 팔아서 부를 늘리는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가족과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야당에서 전세대란 해법의 하나로 내놓고 있는 "전월세 상한제가 4월 국회에서 입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주택 문제는 그만큼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수십년간 해결하지 못하고 끌어온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실제 집값이나 임대료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수급의 불일치, 즉 공급의 부족과 초과 수요가 굉장히 커서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수급 불일치가 전체 가격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주택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그래서 공급물량의 일부를 국가가 쥐고 있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공공주택 비축물량 자체가 극히 적다. 임대료 상한제는 신규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지금 눌러놓으면 나중에는 터진다. 때문에 공공임대주택을 대규모로 늘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 대목에서 유 대표는 "2012년에 대통령이 바뀌면 주택 정책도 빨리 바꿔서"고 말해 청중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복지위한 증세=다음 주제는 세금문제였다. 복지국가 논쟁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된 증세문제는 진보개혁진영에서도 논쟁적인 주제다. 조 교수는 복지 확충을 바라면서도 세금 문제가 제기되면 주저하게 되는 이중적인 면을 꼬집으면서 두 대표에게 "보편적 복지로 가야한다는 방향은 잡힌 것 같은데 세금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유 대표는 생활 속 경험을 얘기하며 해법을 제시했다.
"제가
개인사업자다. 이 말은 비정규직이라는 얘기다. 문필업에 종사하는 개인사업자인데, 책을 두 권 냈는데 잘 팔려서 세금을 엄청나게 냈다. 세금 내러 국세청에 갔더니 왜 이렇게 많이 내냐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안 낸다는 거다. 그러면서 사업자등록증 내고 사무실 내고 차량 사서 운영하면 지금 내는 세금의 10분의 1 정도만 내게 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더라. 저는 또 출마할지 몰라서 '그렇게 하면 큰일나요'하고 세금을 다 냈다."
유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를 원상복귀하고 참여정부가 초기에 했던 법인세 인하 전까지 원상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세사업자나 중소사업자의 경우, 위는 두텁게 내게 하고 아래쪽은 적게 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득이 적은 분들도 그냥 면세할 것이 아니라 만 원 정도는 내게 하는 게 좋지 않냐는 생각이다. 그래야 시민으로서 당당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증세와 관련한 해법을 내놓은 바 있다. 이정희 대표는 아이 둘 이상을 낳으면 세금을 깎아 주는 다자녀 추가공제의 혜택을 구체적으로 보면, 소득 하위 10%는 1인당 3원의 세금이 깎이고, 상위 10%는 1인당 3만8천원의 세금 절감 효과를 본다면서 역진적인 조세감면제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소득세, 법인세 최고구간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시민 대표와 이정희 대표의 토크 콘서트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 ⓒ김철수 기자
비정규직 문제=정책토론의 마지막 주제는 노동문제였다. 참여정부의 한 축이었던 국민참여당과 당시 세력은 작았지만 진보 야당이었던 민주노동당 간에 첨예한 차이가 존재했던 부분이다. 비정규법안 입법 과정에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최근 유시민 대표는 GM대우 사내하청노동자 농성장을 찾은 자리에서,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이 함께 주최한 토론회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놓은 바 있다. "사내하청을 금지해야 한다"고 까지 밝혔었다.
조국 교수는 "유 대표의 대표 수락 연설 중에 참여정부의 부채를 계승한 정당이다. 국민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라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유 대표는 참여정부의 3대 부채로 노동, 복지, 정치혁신을 꼽았다.
"노동쪽은 노동시장이 양극화되면서 시장분배가 악화됐다. 국가가 사후적 교정노력을 했으나 부족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는 공평한 것, 정의로운 것에 대한 직관이 있다. 어린 애들도 차별을 하면 싫어한다. 똑같은 일을 똑같은 노동강도로 하는데 소속된 회사의 대우가 갑절이 차이가 나는 것은 정의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국가가 모든 시민을 공정하게 대하고 물리적 경제적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면 그 정부를 구성했던 사람들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정규직에) 되게 미안한 거고. 미안하다고 말만 하면 안 되니 악착같이 갚아야지 결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법을 잘 만들어도 그 법을 피해서 악용하려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법이나 정책수단만 갖고는 안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개입, 국가가 가진 권력을 통해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여정부가 이것에 소극적이었다."
유시민 대표의 반성에 이정희 대표는 일종의 덕담으로 운을 뗐다. "그래도 노무현 정부 시절에 노동문제와 관련해 좋은 일을 한 것이 있다면 대법원에서 민주주의, 인권에 기초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법관들을 임명해주신 것이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관련해 2년 이상 사용한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한 언급이다.
이정희 대표는 "사법부에서 뚫어놓은 작은 구멍을 넓게 뚫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며 "2012년 우리 사이의 연대의 가능성, 단합의 가능성은 여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고공 크레인 농성을 70일 넘게 이어가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트위터로 격려 문자를 날려달라고 청중들에게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조국 교수는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컨베이어벨트가 굴러가면서 차를 제작하고 양쪽에서 바퀴를 박는데, 한쪽 조끼와 반대편 조끼 색깔이 다르다. 동일한 조건에서 노동하는데 한쪽은 반값 임금을 받는다. 이게 어떻게 정의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노동법을 개정하는 것"이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제화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유시민 대표는 "당연하다"고 답했고, 이정희 대표는 "야 5당이 노동계와 함께 노동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국 교수는 "법안을 발의하면 지금은 소수파이기 때문에 (안 되고) 내년 총선에서 투표를 잘해서 다수파가 돼야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관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소 민감했던 노동문제는 이렇게 정리하고 길었던 정책 토론을 마쳤다.
첫댓글 기사형식이라서 후기방에서 시사/지식/정보방으로 이동시켰습니다. 태이님 글 감사드려요^^